[심해에서 온 괴물] (C) Warner Bros.한국영상자료원은 오는 8월 30일부터 9월 18일까지 1950년대 SF 몬스터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원자폭탄, 방사능, 외계인의 침입, 군비 경쟁, 과학기술의 부작용 등 냉전시대의 사회상과 상상력이 반영된 고전 SF영화 14편이 선정되었다. 후대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명감독들의 걸작, 아날로그 시각효과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스펙터클, 강렬한 개성을 지닌 괴물들을 세상에 알린 원조 작품 등 흥미롭고 풍성한 라인업이다.
스톱 모션 시각효과의 거장 레이 해리하우젠의 작품이 4편 포함되었고, 60년대 작품이긴 하지만 괴수 대전물의 전범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은 <킹콩 대 고지라> (미국 공개판)도 감상할 수 있다. 단 1회만 상영되는 작품들도 있으므로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하자.
부대행사로 강연 4회와 북토크 1회가 진행될 예정이며, 괴수보호구역 @ 아토믹 레이 운영자가 강연 중 하나에 참여할 예정이다. 아울러 30일부터 빅 몬스터 클럽의 협조로 시네마테크 KOFA 로비에 괴수 피겨가 전시된다. 특별전 정보는 여기, 상영 일정은 여기를 참조하시라.
상영작
<괴물> (The Thing from Another World, 1951)
감독: 크리스천 니비
<지구 최후의 날>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1951)
감독: 로버트 와이즈
*<지구가 정지한 날>, <지구가 멈추는 날>로도 알려져 있다.
<심해에서 온 괴물> (The Beast from 20,000 Fathoms, 1953)
감독: 유진 로리에
<우주전쟁> (The War of the World, 1953)
감독: 바이런 해스킨
<방사능 X> (Them!, 1954)
감독: 고든 더글러스
<놈은 바닷속으로부터 왔다> (It Came from Beneath the Sea, 1955)
감독: 로버트 고든
<검은 늪지대의 생명체> (The 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 1955)
감독: 잭 아놀드
*국내 DVD 출시명은 <해양 괴물>.
<타란툴라> (Tarantula, 1955)
감독: 잭 아놀드
<신체 강탈자의 침입>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1956)
감독: 돈 시겔
<금지된 혹성> (Forbidden Planet, 1956)
감독: 프레드 M. 윌콕스
*<금지된 행성>, <금단의 행성>, <금단의 혹성> 등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구 대 비행접시> (Earth vs. the Flying Saucers, 1956)
감독: 프레드 F. 시어즈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The Incredible Shrinking Man, 1957)
감독: 잭 아놀드
<지구에서 2천만 마일> (20 Million Miles to Earth, 1957)
감독: 네이선 주런
<킹콩 대 고지라> (King Kong vs. Godzilla, 1963)
감독: 혼다 이시로, 토머스 몬트고메리
*미국 공개판
강연
1950년대 헐리우드 SF영화의 세계관들
일시: 9월 2일 (금) 19시 <우주전쟁> 상영 후
장소: 시네마테크 KOFA 1관
강연자: 박상준 (서울 SF 아카이브 대표)
거대 괴수영화의 시작과 계보
일시: 9월 3일 (토) 13시 <심해에서 온 괴물> 상영 후
장소: 시네마테크 KOFA 1관
강연자: 홍기훈 (괴수영화 전문가), 박상규 (영화 연구가), 김현재 (작가)
제목 미발표
일시: 9월 16일 (금) 19시 <지구 대 비행접시> 상영 후
장소: 시네마테크 KOFA 1관
강연자: 김익상, 이성원 (팟캐스트 <배드 테이스트> 진행자)
침입에서 융합으로 – 외계의 존재가 지배하는 것을 넘어 인간과 타자가 하나로 변해 가는 경향을 살펴본다
일시: 9월 18일 (일) 13시 <신체 강탈자의 침입> 상영 후
장소: 시네마테크 KOFA 1관
강연자: 김봉석 (평론가)
북토크
[SF 괴수 괴인 도해백과]
일시: 9월 17일 (토) 13시 <지구 최후의 날> 상영 후
장소: 시네마테크 KOFA 1관
참석: 고성배, 백재중 (작가)
진행: 이주현 ([씨네 21] 편집장)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 국내 개봉을 맞아 영화 주간지 [씨네 21] 532호(2005년 12월 13일자)에 기획 기사 형식으로 기고한 글이다.
모든 킹콩 영화의 원조가 된 1933년판 <킹콩>부터 그 아류작까지 70여 년에 이르는 역사를 작품 중심으로 정리했고, 기획 단계에서 좌절된 미완성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도 간략하게 실었다. 10년 전에 쓴 글이므로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에 유의하시라.
이 글의 저작권은 나와 [씨네 21]이 갖고 있으므로 무단 인용이나 게재는 허락하지 않는다.
(C) Universal Pictures
12월 14일, 피터 잭슨 감독의 신작 <킹콩>이 한국의 극장가를 찾는다. 잭슨이 어린 시절 오리지널 작품을 본 뒤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일화처럼 <킹콩>은 1933년 세상에 나온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왔고, 그들 가운데 영화라는 길을 걷게 된 사람들 역시 셀 수 없을 정도다. 아울러 70여 년에 이르는 킹콩의 기나긴 역사는 다양한 속편과 관련작, 아류작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그 자체가 시각효과와 장르영화의 발전사와도 일맥상통한다. 2005년 새롭게 탄생한 <킹콩>을 보러 가기 전에 이 거대한 고릴라가 만들어 온 연대기를 한 번 되짚어 보는 것은 한층 흥미로운 관람을 위한 좋은 준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혹시 아는가. 오늘 옆 자리에서 같이 영화를 본 그 사람이 훗날 유명한 감독이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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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King Kong (1933)
감독 : 메리언 C. 쿠퍼, 어니스트 B. 쇼드색
출연 : 페이 레이, 로버트 암스트롱, 브루스 캐봇
흑백 / 100분
(C) RKO Radio Pictures
<킹콩>은 탐험가 기질을 타고난 제작자 겸 감독 메리언 C. 쿠퍼가 창조한 작품이다. 일찍이 거친 탐험과 야생동물(특히 고릴라)에 깊은 흥미를 가졌던 그는 대공황의 절정에 직면해 있던 1930년대 초의 대중을 현실 세계로부터 잠시나마 도피시켜 줄 오락 영화의 결정판을 만들고자 했다. 동료인 어니스트 B. 쇼드색과 함께 세계 각국 오지의 생생한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유명해진 쿠퍼는 <킹콩>에서 자신을 매료시켰던 모든 요소들을 펼쳐 보인다. 해골섬으로 대표되는 미지의 땅으로의 모험담, 야수 콩이 상징하는 자연과 칼 데넘이 상징하는 문명과의 대립각, 콩과 금발의 미녀 앤 대로우가 연출하는 고전적인 미녀와 야수 플롯… 이 모든 것을 영상에 담아낸 작품은 당시로서는 거의 전례가 없었다.
또한 시각효과의 역사에 있어 <킹콩>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다. <킹콩>이야말로 시각효과가 스토리를 이끌어간 거의 최초의 영화이자, 동시에 그것이 가장 완전한 형태로 구현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앤 대로우도 킹콩 자신도 아닌, 털가죽과 점토로 뒤덮인 철골 인형을 영상 속에서 날뛰는 거대 고릴라로 재탄생시킨 시각효과인 것이다. 이는 1925년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을 각색한 <잃어버린 세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솜씨. 그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과 배면 투사, 매트 페인팅 등 당시에 가능했던 모든 기술효과를 총동원해 만들어 낸 <킹콩>의 환상적인 영상은 투박한 흑백 화면을 벗어나 관객의 상상력과 경외감을 자극하는 놀라운 박력으로 가득하다. 특히 킹콩과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벌이는 격투 장면, 긴장감과 공포가 생생한 외나무다리 시퀀스, 성이 나 원주민 마을을 잔혹하게 파괴하는 콩의 묘사 그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의 장렬한 라스트 등은 그 하나하나가 고전이 되어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에서 인용 및 재생산되었다.
<킹콩>은 거대 괴수 영화의 시조로서도 가치가 높다. 공룡을 포함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거대 괴수가 등장하는 영화는 물론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킹콩은 그들과는 차별된 독자적인 캐릭터를 가졌으며 괴수 캐릭터가 영화를 대표하는 역할을 처음으로 완수함으로써 이후 레이 해리하우젠의 창조물들이나 일본의 고지라와 가메라 등으로 대표되는 거대 괴수 장르의 맹아가 된다. 약 2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1933년 3월 2일 공개된 <킹콩>은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작품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1991년에는 미국 국회 도서관의 영구 보존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는 미국 영화 연구소가 뽑은 역대 최고의 미국 영화 100편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킹콩>은 7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한 시절을 풍미한 영화로부터 시각효과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고전이자, 거대 괴수 영화의 출발점을 거쳐 당당한 문화적 아이콘의 반열에까지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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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의 아들> Son of Kong (1933)
감독 : 어니스트 B. 쇼드색
출연 : 로버트 암스트롱, 헬렌 맥, 프랭크 라이커
흑백 / 70분
(C) RKO Radio Pictures
<킹콩>의 대성공 직후, RKO는 쿠퍼에게 ‘연말 시즌을 목표로 가능한 한 빨리 속편을 만들라’고 요청했다. 쿠퍼 역시 킹콩의 유명세가 식으면서 아류작이 난립하기 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8개월 만에 신속히 만든 속편이 바로 <콩의 아들>이다. 칼 데넘 일행이 보물을 찾기 위해 해골 섬에 돌아가 킹콩의 아들 키코와 만나게 된다는 내용을 다룬 이 속편은 흥행에도 성공했고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스톱 모션 시각 효과도 여전히 훌륭했다.
그러나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전편과 비교할 수 없이 떨어진 것으로 평가 받았다. 그 이유로는 위화감이 들 정도로 강조된 코미디와 연결이 엉성하고 부자연스러운 스토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자비한 야성의 상징이었던 킹콩과는 달리 키코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온순하고 충성스러운 고릴라인데, 애교 있고 귀엽기는 하지만 전편에서 압도적인 박력을 내뿜었던 아버지만은 못했다. 킹콩을 이용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인 데넘이 또 다시 자신의 이윤을 위해 섬에 돌아온다는 설정과 결말에서 키코가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내용도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같은 퀄리티 저하는 속편을 거의 동시에 기획하여 전편 이상으로 물량 공세를 퍼붓는 현재와는 달리 촉박한 스케줄과 절반으로 깎인 예산이라는 당시의 제작 환경에 기인한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이와 같은 작품 내외적 한계 때문에 <콩의 아들>은 킹콩의 정사(正史)에 틀림없이 속함에도,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했던 비운의 작품이 되고 말았다. 또한 이 같은 시행착오는 반세기 뒤 데 라우렌티스판 리메이크의 속편인 <킹콩 2>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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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티 조 영> Mighty Joe Young (1949)
감독 : 어니스트 B. 쇼드색
출연 : 테리 무어, 벤 존슨, 로버트 암스트롱
흑백 / 94분
<마이티 조 영> Mighty Joe Young (1998)
감독 : 론 언더우드
출연 : 빌 팩스턴, 샬리즈 테론, 레이드 세베드지야
컬러 / 114분
(C) Argosy Pictures
<마이티 조 영>은 <킹콩> 시리즈가 아니지만 메리언 C. 쿠퍼(제작), 어니스트 B. 쇼드색(감독), 윌리스 오브라이언(시각효과) 등 <킹콩>을 만들었던 여러 재능들이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아울러 야성과 문명이 충돌한다는 주제 역시 <킹콩>의 변주에 해당하기 때문에 항상 함께 언급되곤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아프리카에서 ‘조셉 영’이라는 이름의 고릴라와 함께 자란 소녀 질(테리 무어 분). 이 영화에서 그들은 칼 데넘처럼 탐욕스러운 흥행사 맥스 오하라(다름 아닌 데넘 역의 로버트 암스트롱이 연기했다)에게 발탁되어 헐리우드의 호화 나이트클럽에서 서커스를 공연하지만 결국 탈출하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킹콩>과 다른 점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해피 엔딩. 드라마와 액션의 조화가 뛰어나며 무엇보다도 훨씬 발전된 시각효과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실사 캐릭터와 스톱 모션 캐릭터가 동작을 주고받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 아프리카에서 카우보이들이 벌이는 조의 포획 작전, 조가 10명의 장사와 줄다리기를 벌이는 장면 등에서 이러한 효과가 두드러진다. 그리고 사람이 손수 모델의 자세를 바꿔야 하는 스톱 모션의 특성 상 프레임마다 털의 모양이 달라졌던 <킹콩>과는 달리, <마이티 조 영>의 조는 표면에 고무를 입히는 등의 개선이 이루어졌고 털의 재질감도 훨씬 리얼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오브라이언의 거듭된 실험의 결과로 한층 동작 묘사가 부드러워진 스톱 모션도 영상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 영화는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조수로 참여하여 약 80%에 이르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소화해 낸 레이 해리하우젠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도 스톱 모션의 역사에 있어 의미가 깊다.
1998년에 제작된 리메이크는 배경을 현대로 옮겼고 동물 보호론자로 설정이 바뀐 질이 조와 함께 밀렵꾼들의 위협에 맞서는 내용을 그렸다. <불가사리>로 시각효과 영화를 체험했던 론 언더우드 감독이 안정된 연출력을 선보였으며, 1976년판 <킹콩>과 <그레이스토크 타잔> <정글 속의 고릴라> 등을 통해 1급 특수분장 전문가로 인정받은 릭 베이커가 수트메이션과 모델을 담당했다. 여기에 적절히 사용된 CG가 조화된 영상은 유인원 시각효과의 한 정점을 기록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테리 무어와 해리하우젠이 남녀 주인공을 보며 ‘처음 만났을 때의 당신 모습이라오’ 라고 말하는 카메오 장면도 인상 깊다.
(C) RKO Pictures, Walt Disney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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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대 고지라> キングコング対ゴジラ (1962)
감독 : 혼다 이시로
출연 : 타카시마 타다오, 사하라 켄지, 아리시마 이치로
컬러 / 98분
(C) Toho Co., Ltd.
거대 괴수의 제왕 킹콩과 일본을 대표하는 괴수 고지라의 대결을 그려 큰 화제를 모았던 오락대작. 일본에서만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 고지라 시리즈 사상 최대의 흥행 기록을 세웠으며 세계적으로도 고지라 시리즈의 대표작으로서 높은 지명도를 가진 작품이다. 시각효과 면에서는 오리지널 <킹콩>의 스톱 모션 대신 일본 특유의 수트메이션(배우가 괴수 옷을 입고 연기하는 기법)과 미니어처 특촬을 활용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러나 못생긴 얼굴로 대표되는 킹콩 수트의 조악한 조형과 극중 킹콩이 고압전선을 씹어 대전체질로 변한다는 묘사, 신장 50m의 고지라에 맞추기 위해 터무니없이 거대화된 킹콩의 설정 등은 골수 킹콩 팬들로부터 혹평을 받기도 했다.
킹콩의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영화의 기원은 다름 아닌 윌리스 오브라이언.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가 재기를 준비하면서 기획했던 작품은 킹콩이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증손자가 만든 합성괴수 깅코와 대결을 벌인다는 내용의 <킹콩 대 프로메테우스>였다. 오브라이언은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의 프로듀서 존 벡과 함께 제작을 추진했으나, 우여곡절을 거쳐 오브라이언은 배제된 채 작품의 아이디어만 일본의 토호 영화사까지 흘러가게 된 것. 결국 고지라 시리즈 3번째 작품으로 발표된 <킹콩 대 고지라>는 오브라이언의 의도와는 너무나 많이 달라진 작품이 되었고, 죽기 얼마 전에야 자신의 아이디어가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갔음을 뒤늦게 알게 된 오브라이언의 상심은 대단히 컸다고 전해진다.
인간 드라마 부분에서는 괴수 대결 영화와 함께 당시 일본에서 고도성장기의 애환을 그려 인기를 모았던 셀러리맨 영화의 플롯을 차용한 것이 특징이다. 캐릭터 묘사에 능한 혼다 이시로 감독의 연출과 세키자와 신이치 작가의 각본에 의해 두 장르가 자연스럽게 결합된 수작으로 인정받았다. 츠부라야 에이지가 담당한 킹콩과 고지라의 코믹하면서도 박력 넘치는 대결 장면도 훌륭한 볼거리인 <킹콩 대 고지라>는 나름대로 현지화에 성공한 킹콩 영화의 방계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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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쇼> The King Kong Show (1966)
제작 : 아서 랜킨 주니어, 줄스 배스
출연 : 빌리 메이 리처즈, 칼 배너즈, 수전 콘웨이
컬러 / 전 26화(편당 각 6분)
(C) Rankin/Bass Productions, Videocraft International
미국 ABC 채널을 통해 방영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몬도 섬에서 연구 활동 중인 과학자 본드 교수 가족이 킹콩과 함께 다양한 모험을 체험한다는 내용으로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모았으며, 한 번만 들어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멜로디의 주제가가 인상적이다. 일본의 토에이 동화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기준에서는 다소 어설프고 조악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단순한 스토리와 친근감 있는 캐릭터들은 모든 연령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서의 본령에 충실하다. 제작자 랜킨과 배스의 대표작으로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단골로 방영되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루돌프 사슴코>(1964)가 있는데, 이 작품은 2030세대들이라면 TV로 한 번씩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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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의 역습> キングコングの逆襲 (1967)
감독 : 혼다 이시로
출연 : 타카라다 아키라, 로즈 리즌, 아마모토 히데요
컬러 / 104분
(C) Toho Co., Ltd.
토호 창립 35주년 기념작. 킹콩의 새로운 실사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킹콩 쇼>의 랜킨-배스 프로덕션과 <킹콩 대 고지라>의 대성공으로 고무된 토호의 의향이 접점을 이룬 작품이다. 원래 토호는 킹콩과 괴수 에비라가 대결한다는 내용의 <로빈슨 크루소 작전 킹콩 대 에비라>라는 각본을 제출했으나 기각되었고, <킹콩 쇼>의 캐릭터와 설정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각본이 채택되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킹콩의 역습>이다. 본드 가족 대신 UN의 다국적 연구원들이 주인공이며, <킹콩 쇼>에 나왔던 악당 닥터 후와 그가 만든 로봇 고릴라인 메카니콩도 실사로 등장한다. <킹콩 대 고지라>와 마찬가지로 수트메이션과 미니어처 특촬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영화 초반부 킹콩과 T-렉스형 괴수 고로사우루스가 싸움을 벌이는 시퀀스는 특촬감독 츠부라야 에이지가 오리지널 킹콩에 대한 존경을 표한 명장면이다.
이외에도 정교한 실사와 모델의 합성, 킹콩의 강력한 힘을 중량감 있는 영상에 담은 촬영 기법 등 전반적인 특촬의 질은 <킹콩 대 고지라>에 비해 훨씬 발전되어 있다. 닥터 후로 분한 성격 배우 아마모토 히데요, 마담 피라냐 역의 하마 미에(007 <두 번 산다>의 본드 걸) 등 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도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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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King Kong (1976)
감독 : 존 길러민
출연 : 제프 브리지스, 제시카 랭, 찰스 그로딘
컬러 / 134분
<킹콩 2> King Kong Lives (1986)
감독 : 존 길러민
출연 : 린다 해밀턴, 브라이언 커윈, 존 애쉬튼
컬러 / 105분
(C) Dino De Laurentiis Company
<킹콩>의 대규모 리메이크 계획은 1976년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으나, <포세이돈 어드벤처>나 <타워링> 등 재난영화가 한 때의 붐을 이뤘던 당시야말로 뉴욕에 나타난 거대한 고릴라의 난동을 다시 한 번 연출할 가장 적합한 시기였을 것이다. 여기에 두둑한 배짱이라면 메리언 C. 쿠퍼에 지지 않을 명 프로듀서 디노 데 라우렌티스가 나서면서 결국 1933년작 이후 첫 공식 리메이크인 1976년판 <킹콩>이 태어나게 된다.
미국에서는 파라마운트가 배급했던 이 리메이크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화화 판권을 사이에 둔 유니버설과의 혈투로 이미 상당한 이목을 끌었으며, 실물 크기의 ‘로봇 킹콩’이 등장한다는 홍보는 그 이상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부분의 리메이크가 그렇듯 오리지널에 비해 신선함과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점은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밋밋하게 늘어난 스토리에 2시간 14분이라는 상영시간은 너무 길었고, 시각효과는 오리지널보다 존재감이 훨씬 뚜렷했지만 그만큼 영상 표현의 자유도가 제한되었다. 실제 로봇 대신 릭 베이커가 고릴라 수트를 입고 연기한 장면이 더 많이 나온다는 부분은 특히 혹평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기계 장치를 통해 연출된 킹콩의 다양하고 리얼한 표정들과 실물 크기로 만들어진 인조 킹콩 팔의 완성도는 이 영화와 함께 쏟아졌던 숱한 아류작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났다. ‘내게 있어 오리지널 <킹콩>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라는 존 길러민 감독의 말처럼 킹콩에 대한 재해석도 돋보이는데, 오리지널에서의 잔인무도한 야성 그 자체였던 킹콩이 보다 감정에 민감한 동물로 묘사된 부분은 이 작품만이 가진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존 배리의 서정적인 음악과 리처드 클라인의 촬영 등 당시나 지금이나 일급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은 즐길 거리도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오리지널인 1933년판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한국에서는 이 영화를 통해 킹콩의 이미지가 각인된 팬들이 많다.
한편 <킹콩>의 속편인 <킹콩 2>에서는 전편에서 죽었다고 여겨졌던 킹콩이 10년 후 심장 이식 수술을 통해 부활한다. 여기에는 1982년 첫 개발에 성공한 인공심장이라는 과학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암컷 고릴라 ‘레이디 콩’이 등장하고 킹콩과 레이디 콩의 로맨스(!)를 도입한 방식은 1933년 당시 <킹콩>과 <콩의 아들>과의 관계를 연상시키고, 마지막 장면에서 두 고릴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그렇다. 시각효과 기법은 전편에서 사용된 방식을 대부분 재활용하고 있으나, 형편없이 깎인 예산 때문에 수트와 미니어처의 질은 상당히 떨어져 있다. 10년 전의 감각 그대로 작품을 이끌어 간 존 길러민 감독의 연출은 엉성한 각본과 함께 부작용을 일으켜 결국 전편만큼의 중량감도, 시각적 쾌감도 이끌어내지 못한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많은 킹콩 팬들에게 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으로 기억된다.
(C) De Laurentiis Entertainment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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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의 대역습> A*P*E (1976)
감독 : 폴 레더
출연 : 로드 애런츠, 조애나 컨스, 이낙훈
컬러 / 87분
(C) Lee Ming Film Co., 국제영화흥업주식회사
<킹콩>의 아류작들 가운데 거의 최하급 퀄리티를 자랑하는 문제작(?). 제목부터 데 라우렌티스의 <킹콩> 리메이크로 조성된 ‘킹콩 붐’에 편승하려는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미 합작으로 제작되어 이낙훈, 우연정, 조춘 등의 한국 배우들이 출연한 것은 물론, 대부분의 장면이 한국에서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1960년대 이후 근근이 이어져 온 한국 괴수영화의 계보에도 포함시키는 것이 가능하나, 아쉽게도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논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스톱 모션을 활용하는 대신 배우가 괴수 수트를 입는 수트메이션 기법을 채택했는데, 조악하기 짝이 없는 수트는 관객들이 고릴라로 감정이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으며, 상어 시체를 물에 헹구는 것을 대결 장면이라고 찍어놓은 꼴이나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고릴라의 황당한 모습 등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3-D 입체 영화로 제작되어 카메라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병사의 커트와 같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Z급 영화만을 즐기는 팬들이라면 환호성을 지를 만한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평범한 관객들까지 굳이 찾아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중에게 ‘킹콩은 유치한 괴수 영화’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준 데는 이런 터무니없는 영화들의 잘못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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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콩> Queen Kong (1976)
감독 : 프랭크 애그러머
출연 : 로빈 애스크윗, 룰라 랜스카, 밸러리 리온
컬러 / 87분
(C) Cine-Art München, Dexter Film London
제목 그대로 ‘<킹콩>의 여성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주요 캐릭터의 성을 오리지널과 정반대로 바꿔버린 것이 특징이다. 유방이 달린 암컷 거대 고릴라가 남성 캐릭터를 납치하며, 그 남성 캐릭터는 여성 감독의 구애를 뿌리치고 갖은 고생 끝에 고릴라와 행복하게 잘 산다는 줄거리. 이 쯤 되면 여성 버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패러디에 가까운 수준인데, 여기에 실로 조잡하기 짝이 없는 뮤지컬 장면이 이따금씩 삽입되어 황당함은 점차 더해간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설득으로 런던 시내(그렇다, 이번에는 고릴라가 빅 벤에 매달린다!)의 모든 여성들이 ‘여성 해방’ 등의 푯말을 들고 고릴라를 응원하는 것으로 끝난다.
액션보다는 코미디와 개그에 치중하는 등 ‘한 번 놀아 보자’는 제작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저예산도 아니고 ‘무예산’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조악한 영상과 허술한 연기, 뮤지컬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최악의 노래 등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끝까지 버티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작품을 심히 불쾌하게 여겼던 디노 데 라우렌티스는 법원 명령을 통해 개봉을 막았으며 2001년이 되어서야 해금, 일본에서 최초로 극장 공개되었다. 미국에서는 2003년에 DVD로 곧장 출시되었다. 킹콩의 야사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이런 것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가는 것이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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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왕> 猩猩王 (1977)
감독 : 하몽화
출연 : 에벌린 크래프트, 이수현, 곡봉
컬러 / 87분
(C) Shaw Brothers
홍콩 쇼 브라더스 최초의 본격 괴수 영화. 역시 70년대 ‘킹콩 붐’에 영향 받은 작품이기는 하나 다른 아류작들과는 달리 거대 ‘고릴라’가 아닌 거대 ‘북경원인’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인도 로케를 통해 현지의 이국적인 풍물과 코끼리, 호랑이, 코브라 등 맹수들의 활약을 화면에 담았으며 한국 관객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배우인 이수현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등 여타의 킹콩 관련작들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분위기다.
특촬은 츠부라야 에이지로부터 사사받은 아리카와 사다마사가 담당하였으며 훗날 헤이세이 고지라 시리즈의 특촬감독이 된 카와키타 코이치 등 일본 특촬계의 중진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홍콩영화의 특징적인 빠른 장면 전환과 과장된 상황 연출, 의외의 잔혹한 유혈 묘사 등으로 인해 컬트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중 북경원인의 친구인 야생의 미소녀 에벌린 크래프트의 요염한 자태는 관객은 물론 촬영 스탭들까지도 침 흘리게 했다는 후문. 200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국내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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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 불발된 프로젝트들
워낙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답게 ‘킹콩’이라는 이름을 달고 영화계를 떠돌았던 미완성 프로젝트들도 수없이 많았다. 킹콩의 아버지인 쿠퍼와 쇼드색조차 <콩의 아들>의 속편 <킹콩의 새로운 모험>을 기획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1편의 시점에서 데넘 일행이 킹콩을 뉴욕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룰 예정이었다. 쿠퍼는 자신이 개발한 시네라마 기술을 활용한 킹콩 영화를 구상하기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킹콩의 명성을 함부로 망치지 못하도록 ‘노 리메이크’ 선언을 했다. 이 때문에 1973년 그가 죽기 전까지 많은 기획안들이 무산되었다. 영국 공포영화의 명가 해머에서는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등 유니버설 몬스터의 리메이크에 이은 <킹콩>의 리메이크를 제안했고, 1970년대 초 스톱 모션 애니메이터 짐 댄포스는 당시 퍼블릭 도메인이었던 <킹콩> 소설판의 영화화를 추진했으나 RKO의 이의 제기로 무산되었다. B급영화의 대부로 잘 알려진 로저 코먼도 1976년작 리메이크의 판권을 둘러싼 북새통을 틈타 한몫 챙기려 했고, 1990년대 초반에는 토호가 <킹콩 대 고지라>의 리메이크를 검토하기도 했다. 리메이크의 배턴이 피터 잭슨에게 넘어가기 전 거론된 감독으로는 존 랜디스 등이 있다.
고지라 시리즈 50주년 기념작이자 한때 최종작으로 간주되었던 <고지라: 파이널 워즈>의 공개에 호응하여, 영화 주간지 [씨네 21] 482호(2004년 12월 14일자)에 기획 기사 형식으로 기고한 글이다.
원래는 일본 현지 취재와 감독 및 제작자의 서면 인터뷰도 담을 예정이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실현되지는 못했다. 결국, 고지라 시리즈의 50주년 역사를 정리한 글과 일본에서 직접 관람한 <고지라: 파이널 워즈>의 간략한 프리뷰를 싣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 것. 11년 전에 쓴 글이므로 현재 상황과는 맞지 않는 내용이 있음을 유의하시라. 이미 2014년 헐리우드에서 두 번째 리메이크가 나왔고, 일본에서는 12년 만에 부활하는 신작이 2016년 공개 예정으로 제작 중이다.
이 글의 저작권은 나와 [씨네 21]이 갖고 있으므로 무단 인용이나 게재는 허락하지 않는다.
핵폭탄이 만든 괴수, 명예의 전당에 오르다 – 고지라 시리즈의 50년 역사
무비 몬스터의 대명사 고지라가 올해로 50살이 되었다. 1954년 인류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반세기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만난 그도 이제 장년의 나이에 접어든 것이다. 때마침 일본에서는 50주년 기념작이자 시리즈를 결산하는 최종작 <고지라: 파이널 워즈>가 제작되어 헐리우드와 일본에서 거의 동시에 공개되는 역사적 이벤트가 거행되었다. 28편에 이르는 시리즈의 장대한 역사를 정리하고 신작 <파이널 워즈>의 프리뷰를 통해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는 인기를 이어온 캐릭터로서의 고지라에 대해 알아보자.
2004년 11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헐리우드 불러바드에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유명인들의 거리인 ‘워크 오브 페임(Walk of Fame)’에 올라갈 스타의 이름을 담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의 주인공은 일본의 배우. 그런데 헐리우드의 명예 시장인 자니 그랜트가 호명하여 나타난 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는 사람이 아닌 괴수였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취재진과 관객들에게 새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고지라였던 것이다.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거행되는 코닥 시어터 앞 보도에 영구 보존될 고지라의 족적 등록과 명예의 전당 입성은 인간이 아닌 캐릭터로서는 미키 마우스와 도널드 덕에 이은 3번째이며 일본에서 창조된 캐릭터로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행사는 그날 오후에 있을 ‘본 게임’의 식전 행사였을 뿐이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헐리우드 그라우먼즈 차이니즈 극장에서는 고지라 탄생 50주년 기념작이자 시리즈의 최종작 <고지라: 파이널 워즈>의 월드 프리미어가 일본에 앞서 개최되었다.
(C) Toho Co., Ltd.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한 고지라. (2004. 11. 29)
제1기 : 특촬 플롯의 모범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괴수의 탄생
고지라가 자신의 거대한 모습을 은막에 처음으로 드러냈던 것은 1954년 11월 3일의 일이었다. 당시 토호 영화사의 프로듀서였던 타나카 토모유키가 그 해 연말에 개봉 예정이었던 일본과 인도네시아 합작 영화 <영광의 그림자 속에서>의 제작이 좌절된 후 일본으로 귀국하던 비행기 속에서 아이디어를 냈다는 고지라의 ‘탄생 설화’는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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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1954)의 한 장면. 초대 고지라는 죽음과 공포를 상징했다.
고대의 공룡이 인간의 핵실험에 의해 깨어나 문명을 습격한다는 내용의 <고지라>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라는 미증유의 재난을 직접 겪은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았던 일본 관객들의 무의식을 자극하며 관객 동원 960만 명이라는 대히트작이 되었다. <고지라>의 성공은 2차 대전 당시 전의를 고취시키기 위해 만들었던 국책 영화에서 사용된 트릭 촬영 기법이 ‘특촬'(특수 촬영의 약자)이라는 일본 특유의 장르로 진화하게 된 본격적인 시발점이었으며 <킹콩>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괴수 캐릭터가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뜻밖의 흥행 성공으로 1편이 공개된 지 반년 만에 급거 제작된 속편 <고지라의 역습>(1955년)에서 ‘괴수 대 괴수’라는, 이후 특촬 괴수영화의 하나의 전범이 된 플롯 구성을 선보인 이후, 토호는 50년대 말부터 괴수 특촬과 SF 특촬이라는 2대 노선의 작품들을 연속으로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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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대 고지라>는 괴수영화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1960년대는 전후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에 힘입어 영화 산업도 급속도로 발전한 시기이다. 이때의 대표작인 <킹콩 대 고지라>(1962년)는 시리즈 최초로 제작된 컬러-시네마스코프 작품으로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괴수 캐릭터의 격돌이라는 화제성과 당시 고도 성장기의 애환을 다루어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던 소위 ‘셀러리맨 영화’의 플롯을 차용함으로써 많은 인기를 모았다. 박력 있는 괴수 영화의 재미와 코믹한 인간 드라마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이 작품은 무려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 고지라 시리즈 최대의 흥행 성적을 거둔 것은 물론 일본 괴수 특촬 영화의 전성기를 구가한 작품으로 기록된다. 이후 1960년대의 고지라는 토쿄 올림픽 등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한 일본 사회의 분위기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핵의 공포를 상징하던 1950년대의 음울한 정서를 벗어던진 컬러풀한 모험담의 주인공으로 변모했다.
일본에서 ‘특촬의 신’이라는 호칭을 얻었던 츠부라야 에이지가 담당한 특수촬영 화면 역시 <모스라 대 고지라>(1964년) 등의 작품에서 최고의 퀄리티를 보여주면서 특촬 장르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했다. 1967년에는 쇼치쿠나 닛카츠 등의 경쟁 영화사에서도 동시에 괴수 영화를 내놓았으며, 한국에서는 일본 기술진의 협력을 통해 <대괴수 용가리>(김기덕 감독)라는 작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제2기 : 9년 만의 재개, 세련된 특수효과로 새로운 팬 형성
1970년대에 들어 고지라는 쇠퇴기에 접어든다. 고도 경제 성장의 폐해 가운데 하나였던 공해와 환경오염 문제를 다룬, 시리즈 사상 가장 우울한 작품인 <고지라 대 헤도라>(1971년)로 시작한 이 시기는 이미 1960년대 중반부터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절대 강자로서의 자리를 TV에게 빼앗긴 영화의 고군분투가 한창 전개되던 때였다. 고지라는 점차 극의 맥락과는 관계없이 당시 인기 있던 만화 주인공의 동작이나 프로 레슬링의 기술을 흉내 내며 어린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어야만 했다. 이미 1969년부터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한 흥행 프로그램인 ‘토호 챔피언 축제’의 일환으로 애니메이션이나 특촬 TV 프로그램의 동시상영작이 된 고지라 시리즈는 전성기에 비해 형편없이 깎인 예산과 석유 파동의 영향으로 척박해진 제작 환경에서 만들어져야만 했다. 관객 동원수도 점차 하락, 1973년 작 <고지라 대 메가로>에서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채우지 못했으며, <메카고지라의 역습>(1975년)에서는 97만 명을 동원, 시리즈 최악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다. 결국, 토호는 시리즈를 종결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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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하한선’ 또는 ‘괴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고지라 대 메가로>.
그러나 고지라는 전국적인 리바이벌 붐과 함께 1984년, 9년 만에 부활하여 다시금 극장가를 찾는다. 미-소 냉전의 긴장 관계와 언제든 핵이 인류 멸망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공포는 고지라가 부활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제1편 이후 속편의 세계관을 완전히 배제하고 다시금 파괴자이자 응징자의 이미지를 적용한 직계 속편 형식을 띤 <고지라>(1984년)는 400만 명이라는,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거두었지만 이후 1995년까지 전개된 제2기 시리즈(일본에서는 연호를 따 ‘헤이세이 시리즈’ 또는 ‘VS 시리즈’로 불린다.)의 맹아가 된다. 1989년 작 <고지라 VS 비오란테>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제2기 시리즈에서는 생물적인 특성이 강조된 고지라의 참신하고 세련된 특수 효과가 눈길을 끌었으며, 새로운 세대의 팬들을 이끌어 내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하지만, <비오란테>의 흥행 성적이 예상을 밑돌자 다시금 과거의 인기 괴수들을 부활시키는 전형적인 ‘대전 형식’으로 돌아가 킹기도라, 모스라, 메카고지라 등이 연속하여 고지라와 맞붙었다.
1998년에는 모든 고지라 팬들의 염원인 헐리우드판 블록버스터가 롤랜드 에머릭에 의해 <고질라>로 실현되었으나, 원작을 B급의 괴수 난동 영화 정도로만 인식했던 에머릭은 팬들을 전혀 만족시키지 못했다. 분노한 토호는 이듬해 세기말적 불안감을 플롯에 접목시킨 <고지라 2000 : 밀레니엄>(1999년)과 함께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밀레니엄 시리즈’ 또는 ‘신세기 시리즈’라고 불리는 제3기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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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시리즈의 본격적인 출발점 <고지라 VS 비오란테>.
제3기 : 흥행 하락세, ‘원점 회귀’라는 강박 속에 50주년 맞아
제3기 시리즈의 특징은 마치 <에일리언> 시리즈와 같이 여러 명의 감독에 의해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데 있다. 제2기 시리즈의 전성기 재래를 바라며 ‘원점 회귀’를 강조했던 <고지라 2000>의 오카와라 타카오, 자타가 공인하는 ‘고지라 열혈 팬’으로서 팬들이 보고 싶어하는 고지라 영화를 추구했던 <고지라 X 메가기라스>(2000년)와 <고지라 X 메카고지라>(2002년) 등의 테즈카 마사아키, 그리고 과거 토호 괴수 영화에 대한 존경심과 그 파격이 이율배반적으로 어우러진 독특한 결과를 낳았던 <고지라 모스라 킹기도라 대괴수총공격>(2001년)의 카네코 슈스케는 각각의 특성을 살린 작품으로 팬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이미 과거의 명성은 간데없고 관객 동원도 당시 최고의 인기 애니메이션이었던 <방가방가 햄토리>의 극장판과 함께 동시 상영으로 공개된 <대괴수총공격>에서 잠시 반등했을 뿐, 계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2004년, 50주년을 맞아 고지라가 종결 선언을 하게 된 것은 최근작들의 연속적인 흥행 부진 탓이 크다. 아무리 날고 기는 ‘국민 캐릭터’라고는 하지만 상업영화의 숙명인 흥행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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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시리즈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GMK 대괴수총공격>.
어찌 보면 제3기 시리즈의 가장 큰 문제는 ‘원점 회귀’라는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느슨한 연결 관계로 시리즈를 이어갔던 제1기와 연속적인 세계관을 유지했던 제2기와는 달리 제3기 시리즈는 편마다 세계관을 리셋하여 6편 모두가 각기 1편의 직계 속편이 되었다. 이것은 시리즈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미 헤이세이 <가메라> 3부작이라는, 괴수영화로서의 궁극적 단계가 성취된 후, 고지라 시리즈는 가메라를 끊임없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은 가메라를 만든 감독까지 데려왔지만 그와 같은 경지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고, 그러한 파격을 시도한 <대괴수총공격>까지도 단발로 끝나버림으로써 시리즈의 앞날은 더더욱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50주년이라는 하나의 분수령을 맞은 고지라 시리즈는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유산을 집대성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완결편’적인 작품이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지라의 싸움은 계속된다. 50주년 기념작 <고지라: 파이널 워즈>는 어떤 영화?
최종작 <고지라: 파이널 워즈>의 마지막 장면. 생물학자 오토나시 미유키는 주인공인 지구방위군 병사 오자키 신이치에게 말한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로군요.” 그러나 오자키는 “아니오. 시작된 겁니다. 새로운 싸움이.”라고 대답한다. 과연 그렇다. 적어도 <고지라 : 파이널 워즈>를 보고 나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이것이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는다. 개봉 첫 날인 12월 4일, 토쿄 유라쿠쵸의 니치게키 플렉스에서 있었던 무대 인사에서 키타무라 류헤이 감독은 농담조로 “한 2년 후에는 또 만들어질지도 모릅니다. 다음번엔 <미니라 대 메카미니라>가 나옵니다.”라고 말해 관객들을 폭소하게 했지만, 굳이 그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 영화 속에는 50년을 견딘 고지라가 앞으로도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비전을 찾고자 분투한 제작진의 의지가 엿보인다.
(C) Toho Co., Ltd.(C) Toho Co., Ltd.
<고지라: 파이널 워즈>에서 고지라는 다양한 괴수들과 대결한다.
영화는 시리즈 최대의 히트작이었던 <킹콩 대 고지라>에 사용된 1962년의 ‘토호 스코프’ 로고와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초대 고지라의 실루엣과 함께 <고지라> 제1편을 만들었던 고지라의 세 아버지들인 ‘타나카 토모유키, 혼다 이시로, 츠부라야 에이지에게 바친다.’라는 자막이 나온다. 이쯤 되면 시리즈를 총결산하는 작품으로서는 어울리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키타무라 감독은 도입부에서 고지라를 남극의 얼음 더미에 파묻고 난 뒤 관객들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신하기 시작한다. 나머지 상영 시간을 인간들의 액션 장면으로 잔뜩 채운 후 영화가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갈 무렵, 이번에는 괴수들의 격투 토너먼트를 시작하고 결말 부분에서는 이 둘을 한꺼번에 병렬 진행해버린 것이다. 제2기 시리즈의 완결편인 <고지라 VS 디스트로이어>에서 고지라가 멜트다운을 통해 핵 괴수다운 장렬한 죽음을 맞던 것을 기억하는 관객들이라면, 최종작 다운 장렬한 결말을 기대했다가 격투의 제왕이 되어 새끼인 미니라와 함께 유유히 퇴장하는 <파이널 워즈>의 고지라를 본다면 누구라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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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레슬링 태그 매치를 연상시키는 클라이맥스의 한 장면.
물론, 작품의 플롯 자체는 그때까지의 토호 괴수들이 총출연하였던 1968년 작 <괴수총진격>에서 따온 침략 SF물의 색채를 강하게 띤 것이고, 영화 곳곳에 과거의 배우들이 출연하며 옛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온갖 설정으로 겹겹이 짜여 있다.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고지라 시리즈는 물론 기타 토호에서 제작된 다른 특촬영화를 꼼꼼하게 봐 두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온갖 설정 차용과 패러디가 난무하는 것이다. 그러나 27편의 고지라 영화들을 한꺼번에 보는 듯한 팬 서비스 장면들이 속출하지만 <파이널 워즈>의 고지라는 과거 고지라를 옭아매었던 ‘핵 공포의 상징’이라는 주박으로부터 철저히 벗어나 있다. 대신, 액션 영화와 격투기광인 키타무라 감독의 작품답게 고지라는 ‘절대적 강함을 자랑하는 파이터’로 그려져 있다. 인간은 물론, 자신을 제외한 지구 각지의 괴수, 외계인, 심지어는 외계인이 불러들인 우주 최강의 괴수까지 몽땅 자신의 발밑에 때려눕힌 다음에도 ‘또 맞설 놈은 없나? 다 나와!’라며 싸움을 멈추려 들지 않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50주년 기념작다운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역사에 경의를 표하는 척하면서 결국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버린 키타무라의 근성과 고집에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지만, 시리즈 최종작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기는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과연 과거와의 연결 고리를 철저하게 끊어버린 고지라는 부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