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 키드] (2015)

(C) EMA Films, Epic Pictures Group, Timpson Films
(C) EMA Films, Epic Pictures Group, Timpson Films

<터보 키드>(Turbo Kid)는 멸망한 세계의 폐허를 뒤지며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 가는 이름 모를 소년 이야기이다. 그런데 극중 현재 시점으로 설정된 해는 1997년. 현실에서는 이미 과거가 된 지 오래인 이 해는 파스티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즉, <터보 키드>는 2015년에 만들어진 1980년대 SF-액션영화라는 것이다. 본편이 시작하기 전 스크린에 뜨는 제작사 로고 중 하나에는 ‘업계를 선도하는 레이저디스크 회사’ 운운하는 홍보 문구가 곁들어져 있다. 비애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순간이다.

<터보 키드>가 베낀(좋게 말해 ‘오마주한’) SF나 액션 장르영화가 뭔지는 금세 알 수 있다. 한두 편이 아닌 데다 워낙 뻔하게 드러나니까. 음악, 촬영, 실물 특수분장과 특수효과도 다들 너무나 80년대 풍이어서, 극장에서가 아니라 내 방에서 그동안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극적으로 발굴된 80년대 장르영화를 비디오카세트로 감상하는 기분이다. 뭐, 비디오카세트보다 화질이 우수한 레이저디스크여도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영화를 만든 이들은 이 뻔뻔한 파스티셰가 구리거나 지루하지 않게 보일 만한 지점을 잘 찾아냈다. 탄식이 나올 만큼 진부한 이야기일지언정, 그 안에는 달콤하고 아련한 향수와 지나간 시절의 장르영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빚어낸 자기들의 손맛이 듬뿍 깃들어 있다. 게다가 마이클 아이언사이드가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인데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는가? (아이언사이드는 늘 그렇듯이 노련했지만, 사실 <터보 키드>의 진짜 발견은 헤로인 ‘애플’로 분한 로렌스 라버프이다.) 여하간 엄청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영화다.

원제: Turbo Kid
감독: 프랑스와 시마르, 아누크 휘셀, 요안 칼 휘셀
주연: 먼로 체임버즈, 로렌스 라버프, 마이클 아이언사이드, 에드윈 라이트, 애런 제프리
북미 개봉: 2015년 8월 28일
국내 미개봉작 / 2015년 7월 18일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상

[앤트맨] (2015)

(C) Marvel
(C) Marvel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는 시리즈 최초의 내전(civil war)이라는 격변을 앞두고 보는 이를 잠시 엉뚱해 보이는 샛길로 안내한다. <앤트맨>(Ant-Man)은 새로운 수퍼히어로의 소박한 탄생을 그렸다는 점에서 MCU의 첫 번째 작품 <아이언 맨>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자신의 과오를 속죄하기 위해 ‘두 번째 기회’를 잡는 주인공, 수퍼히어로의 초인적 능력과 관련된 기술을 둘러싼 테크노 스릴러풍 플롯, 서로의 반대편을 반영한 듯한 두 숙적의 대결과 같은 요소들이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가 쉴드-어벤저스라는 거대한 세계의 일부이면서도 그 한구석의 미시 세계에 집중하였다는 점이다. 쇼맨쉽을 발휘하며 자신의 능력을 대중에게 아낌없이 뽐내는 토니 스타크 / 아이언 맨과는 달리, 스콧 랭 / 앤트맨은 개미들의 힘을 빌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을 펼친다. 1년 내내 열리는 스타크 엑스포의 화려한 면면과 꼬마의 방 한쪽을 장식한 토머스 기차 완구가 톡하고 탈선하는 묘사의 극명한 대비. 그러면서도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앤트맨도 결국 MCU의 벽 틈에 숨어 있던 개미였음을 암시하며, 그의 다음 임무를 기대하게 한다.

MCU의 전례 없는 성공적 전개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1년에 2편 이상의 관련작이 소개되다 보니 약간의 피로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때 나타난 앤트맨은 MCU에 참신한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피로감을 덜어 주는 숨고르기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당초 예정 대로 에드가 라이트가 완성했다면 좀 더 막나가는 재미가 짙은 이색작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라이트의 강판에 따라 프로젝트를 떠맡은 페이튼 리드의 이 버전도 결코 나쁘지 않다.

이러한 장점은 시종일관 경쾌한 템포와 따뜻한 시선을 잘 유지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더욱 두드러진다. 첫 장면부터 신뢰감과 이야기를 중반까지 이끌고 갈 충분한 저력을 지녔음을 증명한 마이클 더글러스, 작품의 톤과 더 이상을 바랄 수 없을 만큼 어울렸던 폴 러드,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훔치려 들었던 멋진 감초 마이클 페냐, 이 영화에서도 좋았지만 다음 작품에서 더 설레게 할 것 같은 에반젤린 릴리, 주역 가운데 가장 허술하게 구축된 인물을 카리스마 하나로 살려낸 코리 스톨 등 정말 하나같이 훌륭한 출연진이다.

여기에 ‘크기’를 주제로 한 다양하고 기발한 시각효과 연출, B급 크리처영화의 전통을 현재 기술로 되살려내어 응용한 듯한 개미들의 묘사 등 헐리우드 정평의 영상 기술이 결합하여 MCU 최초의 수퍼히어로 주역 교대극이 완성되었다. 대군을 이룬 개미들과 함께 힘차게 팔다리를 휘두르며 달려가는 앤트맨의 모습은 마치 <줄어드는 사나이>와 <개미 제국>의 21세기식 돌연변이와도 같은 인상적인 이미지이다. 이때 화룡점정의 역할을 하는 것은 기분 좋은 복고 느낌을 듬뿍 간직한 크리스토프 벡의 음악.

굳이 옥에 티를 집어내자면 스콧의 가족애 묘사를 비롯한 일부 설정과 플롯의 진부함을 들 수 있을 텐데, 이것조차도 너그러이 넘어가고 싶을 만큼 즐겁게 보았다면 내가 과찬을 하고 있는 걸까. MCU 제2단계는 대단원에서 보는 이의 의표를 살짝 찌르며 마무리되는데, 아마도 그것은 태풍의 눈이었을 것이다.

원제: Ant-Man
감독: 페이튼 리드
주연: 폴 러드, 마이클 더글러스, 에반젤린 릴리, 마이클 페냐, 코리 스톨
북미 개봉: 2015년 7월 17일
한국 개봉: 2015년 9월 3일

[할로우] (2014)

(C) BHD, Old Photo Films
(C) BHD, Old Photo Films

심한 폭행을 당한 듯 온몸이 피투성이인 한 여성이 종교 의식에 쓰는 인형을 끌어안은 채 강으로 몸을 던진다. 같은 시간, 모종의 문제로 인해 집을 나갔던 소녀 ‘치’는 자신이 혐오하는 양아버지가 사원에 거액을 기부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있었다. 치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얻은 이복동생 ‘아이’를 잠시 돌보는데, 한눈을 판 사이에 아이가 강물에 빠져 실종되고 만다.

1주일 뒤 기묘하게도 실종 시점의 상류에서 발견된 아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귀여운 소녀가 아니었다. 치는 일련의 괴사건을 겪으면서 아이의 이상 행동에 뭔가 끔찍한 곡절이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지난해 베트남에서 헐리우드의 화제작들을 제치고 흥행 순위 정상에 올랐던 공포영화. 되살아난 사자, 빙의, 원혼, 엑소시즘 등 공포 장르에서 꽤나 보편화된 소재로 이루어져 있지만, 각각의 장점을 현지 상황에 맞추어 풀어냄으로써 독특한 색채를 띠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아울러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에 대한 온갖 가시적, 비가시적 폭력과 억압을 당연시해 온 남성 주도 사회의 왜곡된 가치관을 고발하고, 이렇게 지탱해 가고 있는 시스템이 얼마나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인지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원제: Đoạt Hồn / Hollow
감독: 트란 함
주연: 안 홍 응유엔, 마이 트란 람, 트란 바오 손, 응유엔 히엡 응곡, 케이트 눙
베트남 개봉: 2014년 7월 14일

* 2015년 7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탈로그 게재용으로 기고한 글이다.

[토라카게 대혈전] (2015)

(C) 「虎影」製作委員会
(C) 「虎影」製作委員会

<토쿄 잔혹 경찰>, <V 소녀 대 F 소녀>, <헬 드라이버>, <ABC 오브 데스> 등의 연출작으로 고어 마니아와 B급영화 팬들을 즐겁게 했던 니시무라 요시히로 감독이 이번에는 닌자영화에 손을 댔다. 아니나 다를까 첫 장면부터 분수처럼 치솟는 핏줄기를 퍼부으며, 영화는 맹렬히 질주하기 시작한다. 겉포장은 닌자 활극이지만 이야기가 흐르면서 서부극, 일본 칼부림 시대극과 기담, 뮤지컬, 심지어는 수퍼히어로와 쇼와 특촬, 파친코까지 엮어 넣은 장르 짬뽕의 진수가 펼쳐진다.

니시무라 감독은 특수분장과 특수촬영의 베테랑답게 아날로그/실물 표현을 중시하는 한편, 의도적인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모를(아마도 둘 다이리라 생각하지만) 시대착오적 퀄리티의 디지털 합성을 뒤섞어 부조리한 SFX 시퀀스를 선보인다. 여기에 원전 작품을 안다면 꽤나 즐길 수 있는 인용과 패러디, 장르 자체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이 곁들여져 니시무라판 닌자 대혈전이 완성된다.

감독의 전작에 여러 차례 출연했던 시이나 에이히(키리키리키리!)도 우스꽝스러운 악역으로 돌아왔고, 타이틀 롤은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잘 알려진 사이토 타쿠미가 맡았다. 하가 유리아, 츠다 칸지, 니시나 타카시, 이타오 이츠지 등 특촬 작품으로 인상적인 배우들이 포진해 있어, 팬이라면 그들을 확인하는 재미도 각별하겠다. 여하튼 긴장을 풀고, 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신나게 보기만 하면 된다.

원제: 虎影
감독: 니시무라 요시히로
주연: 사이토 타쿠미, 하가 유리아, 시이나 에이히, 미모토 마사노리, 세이노 나나
일본 개봉: 2015년 6월 20일

* 2015년 7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탈로그 게재용으로 기고한 글이다.

[침입자] (2014)

(C) Cinema One Originals, Quiapost Productions
(C) Cinema One Originals, Quiapost Productions

강력한 태풍이 마닐라를 뒤덮기 시작하자, 도시 곳곳에서 기괴한 사건들이 속출한다. 마치 세계 종말의 서막이 오르기라도 한 듯한 불길하고 음울한 공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둠과 공포로 채워 가는 가운데, 난동을 부려 체포된 소년이 폭우와 홍수로 발이 묶인 경찰서에 도착한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턴가, 경찰서에 갇힌 사람들 사이에서 이 소년이야말로 모든 재난의 근원이 아닐까, 더 나아가 악마 그 자신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어떤 계기를 통해 인간에게 내재된 악마적 속성이 발현될 때 생기는 일들을 탐구하는 것은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주제일 텐데, 이를 독특한 각도에서 접근한 흥미로운 아시아 호러이다. 명료한 플롯보다는 산발적인 에피소드들이 강조되어 있지만 그 하나하나가 매우 인상적인 전체를 이룬다는 점이 뛰어나다.

아트 필름의 아우라와 B급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거침없이 오가는 독특한 시선, 스크린 밖으로 습하고 후덥지근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공간의 분위기를 잘 담아낸 프로덕션 디자인, 숨통을 조이는 폐쇄공간의 이미지를 예리하게 포착한 카메라,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 등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감독 도도 다야오는 필리핀에서 영화평론가, 광고 감독 등으로 활동한 바 있고, 이 영화로 장편 데뷔를 완수했다.

원제: Violator
감독: 도도 다야오
주연: 빅터 네리, 앤소니 팰콘, RK 바갓싱, 티모시 마발롯, 조얼 라망간
필리핀 개봉: 2014년 11월 10일

* 2015년 7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탈로그 게재용으로 기고한 글이다.

[의리 없는 전쟁] (1973)

(C) Toei
(C) Toei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혼란에 빠져 있던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인 히로시마 야쿠자 항쟁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후카사쿠 킨지 감독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포착한 거칠고 동적인 화면과 마치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현장감을 자아내는 편집, 주인공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는 대신 등장인물 전체를 아우르는 군상의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한 연출 등으로 기존 범죄영화의 틀을 과감히 부수고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극중의 야쿠자들은 과거 임협영화에 등장했던, 의리를 중시하는 낭만적인 반영웅이 아니라 이권을 위해서라면 같은 조직의 부하를 팔아먹거나, 동료의 등에 칼 꽂기를 서슴지않는 냉혹하고 치졸한 욕망의 화신이다. 그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돈과 복수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의 비릿함은 실로 압권. 전후 일본 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을 생생히 담아낸 드라마로서도, 주먹과 권총, 칼이 빗발치듯 화면을 가로지르는 폭력 활극으로서도 부족한 데가 없는 걸작이다.

2000년대까지 여러 편의 후속작으로 이어지며 이른바 ‘실록 영화’ 붐을 일으켰고 키타노 타케시, 미이케 타카시, 소노 시온, 윌리엄 프리드킨, 쿠엔틴 타란티노 등 일본 안팎의 후대 창작자들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끼친 일본영화의 유산. 이번 영화제에서는 35mm 필름으로부터 새로이 리마스터한 복원판을 상영한다.

원제: 仁義なき戦い
감독: 후카사쿠 킨지
주연: 스가와라 분타, 마츠카타 히로키, 카네코 노부오, 타나카 쿠니에, 이부키 고로
일본 개봉: 1973년 1월 13일

* 2015년 7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탈로그 게재용으로 기고한 글이다.

[어벤저스: 울트론의 시대] (2015)

(C) Marvel Studios
(C) Marvel Studios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이하 MCU)의 제2단계는 울트론의 시대로 접어들며 그 절정에 달한다(<어벤저스>로 끝맺음했던 제1단계와는 달리, 이번에는 <앤트맨> 한 편이 더 남았다). 토니 스타크와 브루스 배너가 비밀리에 개발해 온 울트론은 외계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방어하기 위한 궁극적 수단으로서, 이를테면 혁신적인 인공지능을 탑재한 아이언 맨 갑옷의 끝판왕이라 하겠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도 외계로부터 얻은 오버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사악한 야심을 채우려는 적들이 있다. MCU 제1단계부터 이어져 온 플롯을 마무리하기 위한 어벤저스의 작전은 이 두 가지 의도를 본의 아니게 충돌시켜 새로운 역풍을 생성한다.

이야기 그 자체만 본다면 이번 속편은 <어벤저스>에 약간의 변주를 가미한 반복이다. 극히 이질적인 인물들로 구성된 팀이 외부의 강력한 힘에 와해 위기에 놓이지만, 결국 어떻게든 단결하여 공동의 적을 물리친다는 줄거리. 포맷에 익숙해진 것을 넘어 그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그저 그래 보이고 말 테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어벤저스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그 정도는 각기 다르겠지만 모두 사랑하고 있고, 그들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

과연 그럴까? 바로 그 빈틈에 숨어 있는 무언가야말로 MCU의 묘미.

조스 위든 감독은 이야기를 익숙하게 흘려 보내는 듯하면서도 우리가 어벤저스에 대해, 수십 년 동안 구축되어 온 마블 세계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고, 그러니 관심을 갖고 계속 주목해 달라고 설득한다. 전작에서 미처 다루어지지 못했던 인물들의 과거나 뒷이야기(머릿수가 많으니 당연하다)를 슬쩍슬쩍 풀어놓는다거나, 예전에는 운만 떼는 데 그쳤던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 있게 발전시킨다거나, 새로운 인물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등 이번에도 이야기 밥상에는 차려진 것들이 한가득. 이 모든 것이 전편 <어벤저스>를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들었던 위든 특유의 동시다발 군상극-팀 플레이와 위트 있는 화학작용 연출로 여기저기에서 펑펑 튀어나온다. 아쉽게도 그 밀도가 전편만큼 꽉 짜여진 듯 느껴지지 않고 어떨 땐 균형이 꽤나 아슬아슬하지만, 이만큼이나 판을 키워 놓은 상태라면 너그럽게 넘어가 주고 싶어진다.

새로운 적 울트론은 한때 어벤저스 팀 전체를 붕괴시켰을 만큼 강력하다. 그가 늘어놓는 ‘인간을 절멸시켜야 할 이유’는 솔직히 진부하지만, 바늘 하나 안 들어갈 듯하면서도 의외로 격정적인 울트론의 성격을 표현한 제임스 스페이더의 연기는 노련하다. 이렇게 이야기와 인물, 무대의 규모가 대폭 불어난 만큼 그 공백을 채울 액션과 시각효과 볼거리도 잔뜩 필요한데, 그거야 헐리우드가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일이고 역시나 이번에도 눈과 귀, 가슴 모두 즐겁게 하기에 충분하다.

<어벤저스>가 MCU 제1기의 총결산이자 일단락이었다면, <어벤저스: 울트론의 시대>는 한창 진행 중인 대하 드라마의 중간쯤 드러나는 이야기의 큰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MCU는 우리를 몇 차례 우주로 데려간 적이 있지만, 다음 편에서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우주전쟁의 막이 오를 것이다. 어벤저스가 다시 모일 때까지 나는 기다릴 수 있을까? 기꺼이! 게다가 그때쯤엔 최전선에 버티고 선 이들이 어벤저스 말고도 여럿 더 있을 것이다.

원제: Avengers: Age of Ultron
감독: 조스 위든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크리스 에반스, 스칼렛 조핸슨, 마크 러팔로, 크리스 헴스워스
북미 개봉: 2015년 5월 1일
한국 개봉: 2015년 4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