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고지라], 8월 북미 4K 재개봉

<신 고지라>(シン・ゴジラ)가 8월 14일부터 북미 지역 극장에서 4K로 재개봉한다.

아래는 재개봉판 예고편과 포스터. 전자는 기존 예고편 1에서 자막만 수정한 것이다.

(C) Toho Co., Ltd.

이번 재개봉은 2016년 10월 퍼니메이션 배급으로 북미에서 정식 개봉한 이래 약 9년 만에 이루어진다. 공개 10주년이 되는 내년을 위한 이벤트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이 4K판은 극장 상영 후 디스크로도 출시될 예정이다. <신 고지라> 4K 디스크는 2017년 3월 일본에서만 출시되었고 북미판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 고지라> 4K판의 북미 배급사는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 등의 애니메이션 전문 배급사로 유명한 GKIDS이다. GKIDS는 지난해 LA를 거점으로 하는 토호 인터내셔널의 자회사로 합병되었기에 사실상 토호가 직접 배급하는 셈이다. 4K 디스크 역시 GKIDS에서 출시되겠다.

공개 10주년을 맞아 올하반기를 기점으로 북미는 물론 본고장 일본 등지에서 <신 고지라>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벤트나 상품 발매 등이 잇달아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출처: 고지라 북미 공식 웹사이트, GKIDS 공식 웹사이트

안노 히데아키, [우주전함 야마토] 신작 제작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차기작은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戦艦ヤマト)로 결정되었다.

안노 감독과 그가 대표로 있는 주식회사 카라는 지난 6일, <우주전함 야마토>의 새로운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2025년 제작 개시를 목표로 현재 개발 중. 이 신작은 2013년 <우주전함 야마토 2199>로 시작되어 현재도 전개 중인 리메이크 시리즈와는 별개의 작품이다. 카라는 보이저 홀딩스 주식회사로부터 신작을 제작할 수 있는 권리를, 토호쿠신샤로부터 저작권 이용 허가를 각각 취득했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안노 감독이 기획, 주도하고 있는 <우주전함 야마토> 방송 50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6일 토쿄 신주쿠 피카딜리 극장에서 개최된 기념 상영회에서 이루어졌다. 이 상영회는 50년 전인 1974년 10월 6일 오후 7시 30분, <우주전함 야마토> 제1화가 방영을 개시한 시간에 맞춰 제1화와 몇 가지 희귀 영상을 상영하고 토크 쇼도 진행하는 이벤트였다. 안노 감독이 직접 토크 쇼 진행을 맡았고 <우주전함 야마토 2199>의 총감독을 맡은 바 있는 이즈부치 유타카, <우주전함 야마토> 연구의 권위자인 애니메이션/특촬 평론가 히카와 류스케가 게스트로 참석했다. 이즈부치와 히카와도 신작에 참여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맡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안노 감독은 이 자리에서 인터넷에 신작에 대한 정보를 미리 내보내는 대신, 상영회에 와 준 팬들 앞에서 직접 발표하고 싶었다는 취지를 밝혔다. 또한 그는 아직 각본이 완성되지 않아 신작의 내용은 공개할 수 없으며, 한 편을 만드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꽤 많은 여생을 바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노 감독은 50년 전 <우주전함 야마토>와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거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고, 이 발언은 카라의 발표에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 산재해 있는 야마토의 영향은 팬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그가 50주년 기념 프로젝트를 몸소 이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상영회 이외에도 출판과 전시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데, 신작이 발표됨으로써 안노 감독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진의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자신을 만든 작품의 선대 창작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한편, 자신의 재해석을 덧붙인 작품군을 후대에 전한다는 것이다. 그가 근년 들어 만들어 온 <신 고지라>, <신 울트라맨>, <신 가면 라이더>도 이러한 진의를 담은 작품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알려진 50주년 기념 프로젝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상영회 직후 추가 발표된 내용도 포함).

<우주전함 야마토> 방송 50주년 기념 상영회
일시: 2024년 10월 6일 오후 7시 30분
장소: 토쿄 신주쿠 피카딜리 극장 (일본 내 42개 극장에서 라이브 뷰잉 상영)
상영작
• <우주전함 야마토> 제1화
• 8mm 필름판 <우주전함 야마토> 전 3부 (극장 최초 상영)
• 자막 없는 여는 영상과 닫는 영상

TV 시리즈 제1~5화 유튜브 공개
공개 기간: 2024년 10월 7일 0시~18일 18시
공개 채널: BS 10 스타 채널 공식 유튜브 채널 (한국에서도 시청 가능)

우주전함 야마토 전시회 (가칭)
2025년 3월 개최 예정

50주년 기념 출판 기획
• [우주전함 야마토 화집] (가제) / 무라카와 미치오 저
• [우주전함 야마토 디자인 화집] (가제) / 타마모리 준이치로 저
• [우주전함 야마토 (1974) 전기록집] 50주년 기념판 (가제) / 올 컬러 A4 2권, 주식회사 카라 발행
• 만화판 [우주전함 야마토] (가제) / 히지리 유키 저, 주식회사 카라 발행

50주년 기념 셀렉션 상영회
일시: 2024년 12월 27일~2025년 1월 16일
장소: 토쿄 신주쿠 피카딜리 극장 등 전국 극장 개최
상영작
• 제1주차 (12월 27일~1월 2일): 제2, 3, 7화
• 제2주차 (1월 3일~9일): 제16, 18, 22화
• 제3주차 (1월 10일~16일): 제23, 24, 26화
※ 매주 1회 상영 후 토크 쇼도 개최

출처: 주식회사 카라, <우주전함 야마토> 방송 50주년 기념 웹사이트, 시네마 투데이

 

[고지라-1.0], [신 고지라: 오르토] 디스크 열어 보기

지난 5월 1일 일본에서 동시 출시된 고지라 시리즈 최신작 <고지라-1.0>(ゴジラ-1.0 / 고지라 마이너스 원)과 <신 고지라> 흑백판 <신 고지라: 오르토>(シン・ゴジラ:オルソ)의 디스크가 도착하여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고지라-1.0> 블루레이 호화판 4K 울트라 HD 블루레이 동봉 4디스크

앞서 전했던 대로 <고지라-1.0>의 디스크는 총 6가지가 출시되었는데, 나는 이 가운데 본편 4K 디스크가 동봉된 4디스크 박스 세트를 골랐다.

패키지는 두툼하고 견고한 겉 박스로서 흰색 배경에 박스의 5면을 둘러싼 고지라의 섬뜩한 정면 얼굴 이미지와 제목 로고가 배치되었다. 그 위로 금색 띠지가 앞, 뒤, 왼쪽을 감싸고 있다.

띠지 앞면에서는 고지라 70주년 기념작이자, 시리즈 최초의 아카데미상 수상작임을 자랑하는 문구가 눈에 띈다. 뒷면은 고지라를 배경으로 출연진, 제작진과 디스크 사양이 배치되었다.



겉 박스의 3면 사진. 고지라의 이미지는 박스 위, 아래로도 이어진다.

패키지의 내용물을 늘어놓아 보았다. 겉 박스 오른쪽은 디스크가 수납된 디지팩이고, 그 아래로는 왼쪽부터 해설 책자, 영화의 소품을 축쇄 재현한 ‘특설 재해 대책 자료철’, 소형 전단지 3종(겹쳐져 있음)이 놓였다.


디지팩의 앞뒷면.


디지팩을 펼치면 바깥쪽과 안쪽 모두 홍보에 많이 쓰인 고지라의 이미지 2종이 인쇄되어 있다. 안쪽에는 각기 다른 고지라 이미지가 인쇄된 디스크 4장이 나란히 수납되어 있다. 왼쪽부터 본편 4K UHD 블루레이, 본편 블루레이, 흑백판 <고지라-1.0/C> 본편 블루레이, 부록 블루레이.


동봉 특전을 늘어놓아 보았다. 왼쪽 위는 해설 책자와 ‘특설 재해 대책 자료철’, 왼쪽 아래는 소형 전단지 3종, 오른쪽은 조기 구입 특전인 명대사 스티커(A5 사이즈, 왼쪽)와 구입처 HMV 한정 특전인 캔 배지.

<신 고지라: 오르토> 블루레이

<신 고지라>는 이미 여러 종류의 타이틀이 나와 있으므로, 이번 흑백판은 1디스크 블루레이와 DVD 2종만 출시되었다. 일반 아마레이 케이스에 소형 전단지 2장이 동봉된 간소한 사양이다. 자세한 디스크 사양은 이쪽에서 확인하시라.

흑백판답게 온통 검고 희기만 하고 이미지도 앞면의 고지라 얼굴뿐이어서, 사진을 일부러 흑백으로 변환해 보았다. 컬러로 인쇄된 전단지조차 원래 흑백이었던 양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다.




두 편 모두 감상을 마쳤고, 곧 리뷰를 올릴 예정이다.

[고지라-1.0], [신 고지라: 오르토] 5월 3일 스트리밍 공개

<고지라-1.0>(ゴジラ-1.0 / 고지라 마이너스 원)<신 고지라: 오르토>(シン・ゴジラ:オルソ)가 5월 3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에서 독점 스트리밍 공개된다. <고지라-1.0>은 흑백판 <고지라-1.0/C>도 선택 감상할 수 있다.

아쉽게도 일본 국내 한정 공개이므로 한국에서는 감상할 수 없다. 영화의 한국 개봉 여부가 불투명한 현재 상황에서는 스트리밍 이틀 전인 5월 1일 발매되는 디스크를 구입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겠다.

<고지라-1.0> / <신 고지라: 오르토> 디스크 정보

<고지라-1.0>은 일본에서 골든 위크까지는 계속 상영될 예정이니, 디스크 발매 또는 스트리밍 공개 전 일본에 갈 수 있다면 현지 극장 관람도 해 볼 만하다.

지난해 11월 3일 개봉한 <고지라-1.0>은 전반적인 호평과 함께 4월 14일 현재 73억 엔의 흥행 수입을 거두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12월 1일에는 북미에서 개봉하여 5,642만 달러(약 87억 엔)라는 기대 이상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이는 역대 북미 개봉 일본 실사영화 1위 기록. 로튼 토마토가 집계한 평단의 반응도 98%라는 압도적인 호평이다.

또한, 지난달 열린 제9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는 시각효과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고지라 시리즈 최초의 아카데미상 수상이자, 아시아영화 최초의 시각효과상 수상 기록이다. 이렇게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을 거둔 <고지라-1.0>은 70주년 기념작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하게 해냈다.

<신 고지라: 오르토>는 <신 고지라>의 흑백판으로서 지난해 10월 일본 일부 극장에서 한정 상영되었다. 가장 근년에 공개된 실사 고지라 영화 2편이 연달아 흑백판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C) Toho Co., Ltd.

출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일본 공식 트위터, 주식회사 카라 공식 트위터

[신 고지라] 흑백판, 5월 1일 디스크 출시

<신 고지라>(シン・ゴジラ)의 흑백판 <신 고지라: 오르토>(シン・ゴジラ:オルソ)가 5월 1일 디스크로 출시된다. 앞서 발표된 <고지라-1.0> 디스크와 같은 날이다.

<신 고지라: 오르토>는 안노 히데아키 총감독의 제안으로 히구치 신지 감독과 오노우에 카츠로 준감독이 감수하여 제작한 <신 고지라>의 새로운 판본이다. 제목의 ‘오르토’는 흑백 필름의 한 종류인 ‘오르토크로마틱’을 뜻한다. 적색 계통이 감광되지 않아 현재 흑백 필름의 주류인 판크로마틱보다 페이스 톤이 무겁게 나오는 것이 특징. <신 고지라: 오르토>는 바로 이러한 질감을 목표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안노 총감독이 흑백판을 기획하게 된 것은 지난해 9-10월 4회에 걸쳐 개최된 ‘<고지라-1.0> 공개 기념 야마자키 타카시 셀렉션 고지라 상영회’의 게스트 참석 요청에서 비롯되었다. 야마자키 감독이 직접 고른 고지라 영화 4편을 상영하고, 매회 다른 게스트와 함께 진행하는 토크 쇼로 구성된 이벤트였다(9월 행사 정보 / 10월 행사 정보). 안노 총감독은 10월 27일 토쿄 이케부쿠로 휴맥스 시네마즈에서 열린 4회차에 참석하여 <신 고지라: 오르토>를 최초 공개했다. 이어 10월 28-29일에는 7개 극장에서 <신 고지라: 오르토>가 특별 상영되었다.

안노 총감독과 야마자키 감독의 토크 쇼는 개최 당일 휴맥스 시네마즈를 비롯한 일본 내 7개 극장에서 생중계되었는데, 녹화 영상이 유튜브에 한정 기간 공개되었고 <신 고지라: 오르토>와 <고지라-1.0> 디스크의 부록으로도 실릴 예정이다.

<신 고지라: 오르토> 디스크의 사양은 아래와 같다.

블루레이 디스크
가격: 4,000엔 / 제품번호: TBR34175D

(C) Toho Co., Ltd.

상영시간: 120분
디스크: 단면 듀얼 레이어 (BD50)
영상: 16:9 시네마스코프 사이즈 (1,080p)
음성: (1) 일본어 DTS-HD 마스터 오디오 3.1 (2) 일본어 DTS-HD 마스터 오디오 2.0
자막: 배리어 프리 일본어

부록
– 제작 공정 해설 영상
– 야마자키 타카시 셀렉션 고지라 상영회 제4회 토크 쇼 (2023년 10월 27일 / 게스트: 안노 히데아키)
– 본예고편 (오르토판)

DVD
가격: 3,000엔 / 제품번호: TDV34176D

(C) Toho Co., Ltd.

상영시간: 120분
디스크: 단면 듀얼 레이어
영상: 16:9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
음성: (1) 일본어 돌비 디지털 3.1 (2) 일본어 돌비 디지털 2.0
자막: 배리어 프리 일본어

부록
– 제작 공정 해설 영상
– 야마자키 타카시 셀렉션 고지라 상영회 제4회 토크 쇼 (2023년 10월 27일 / 게스트: 안노 히데아키)
– 본예고편 (오르토판)

출처: 주식회사 카라 공식 웹사이트, <신 고지라: 오르토> 공식 웹사이트, 시네마 투데이

[몽녀한] 부천영화제 상영 (+[괴시] 유튜브 공개 중)

(C) (주) 우진 필림

강범구 감독의 공포영화 <몽녀한>(1984)이 다음 달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 8일-18일)에서 상영된다.

<몽녀한>은 영화제 프로그램 가운데 스트레인지 오마쥬에 선정되어, 7월 10일 오전 11시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가 일반 공개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서 한국의 희귀 공포영화를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현역에 있는 동안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던 강범구 감독은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로 손꼽히는 <괴시>(1980)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대만 합작영화인 <몽녀한>은 도시기담, 멜로드라마 그리고 80년대 초반 한국영화로는 특기할 만한 크리처 공포영화의 요소가 포함되었다. 당시 해외에서 유행했던 장르 코드를 한국영화에 도입한 강범구 감독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 하겠다.

<괴시>는 지난 5월부터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 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 공개 중이니, <몽녀한>과 함께 감상하면 좋겠다.

또한, 괴수보호구역은 2016년 5월 강범구 감독과 만나 <몽녀한>, <괴시>를 비롯하여 감독이 관여한 합작영화에 대해 인터뷰한 바 있다. 아울러 참고하기를 권한다.

인터뷰/ [괴시], [몽녀한]의 강범구 감독 (2016년 6월 20일)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웹사이트

인터뷰/ [괴시], [몽녀한]의 강범구 감독

강범구 감독 (촬영: 홍기훈)
강범구 감독 (촬영: 홍기훈)

강범구 감독은 1950년대 촬영 스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래 <지옥화>(1958), <비정>(1959), <지평선>(1961), <슬픔은 없다>(1961), <현상 붙은 사나이>(1961) 등 10여 편의 작품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했고, 1962년 <북극성>으로 감독 데뷔하였다. 이후 1988년 <칠소여복성>까지 26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기획, 각색 등의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대만, 홍콩과의 합작영화를 다수 만들었던 인연으로 중국어권 영화의 수입 업무에도 오랫동안 종사한 바 있다.

강범구 감독의 작품은 멜로드라마, 음악, 첩보, 액션, 공포, 권격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특히 한국 최초의 본격 좀비영화로 회자되는 <괴시>(1980)와 크리처-공포영화라는, 한국에선 드문 하위 장르에 속하는 <몽녀한>(1983),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의 대역을 맡았던 당룡이 주연하고 황정리가 공연한 권격영화 <사망탑>(1980) 등이 장르영화 팬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만남에서는 감독의 이력에 얽힌 여러 가지 일화와 함께 위 세 편의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만났던 자리의 상황에 의하여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감독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 형식으로 정리하였다. 이 인터뷰는 지난 5월 17일 서울에서 이루어졌다.

 

영화에 대한 생각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감독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 스스로 뒤떨어진다고 여겨 남들을 따라가려고, 남보다 앞서려고 노력과 공부를 많이 했고 파격도 감행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잃기도 했고… <여자 베트콩 18호>(1967) 때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했으므로 우리 영화를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잃지 않았다.

 

옛 충무로의 일화들

– 옛날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감독 계약을 하게 되면 네거티브 필름 몇 자 쓰느냐를 두고 영화사 사장과 타협부터 해야 했다. 보통 2~3만자를 썼다. 필름을 아끼느라 카메라에 장착할 때 저절로 감기는 부분도 2~3프레임씩이나마 되감아 악착같이 절약했다. 그러니 NG가 최대의 공포였다. 도중에 제작비가 떨어져 찍은 분량만으로 마무리할 때도 있었고… 당연히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다.

– 해외 수출 때는 원본 네거티브 필름으로부터 복사본(듀프 네거)을 만들어 그걸 보내야 한다. 하지만 필름 복사 비용이 너무 비싸서 원본 필름을 빌려주거나 그냥 보냈다. 그러다가 돌려받지 못할 때도 많았고… 그렇게 유실된 작품이 많다. 설사 복사본을 만든다 해도 원본을 보관할 여력이 없었다.

– 동아수출공사 기획실장으로 있던 70년대 일인데, 당시 친했던 정소영 감독이 <애수의 샌프란시스코>(1975)라는 대본을 가져와서 미국 현지 촬영을 하게 되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허가제였고 외화 관리도 엄격하여 제작비로 2만 달러만 갖고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조수 하나 두고 촬영을 진행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런데 도중에 회사에서 기왕 어렵사리 해외에 나간 김에 영화 한 편을 더 찍어 오라길래, 김기영 감독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새 대본을 받아 왔다. 사실 대본의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줄거리만 적힌 것이었다. 그래서 대강의 스토리만 어찌어찌 담아 귀국 후 연결하여 완성했다.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 사정은 또 달랐으니까. 그 영화가 <황혼의 만하탄>(1974)이었다.

강범구 감독은 과거 해외 출장 시 맥도널드에 익숙해져, 이번 만남도 맥도널드에서 가졌다. (촬영: 박상규)
강범구 감독은 과거 해외 출장 시 맥도널드에 익숙해져, 이번 만남도 맥도널드에서 가졌다. (촬영: 박상규)

– <황혼의 만하탄> 때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올라가 촬영을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도중에 갈아타야 할 정도로 높았다. 전망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다, 갑자기 빌딩 관계자가 불러세워 가슴이 철렁했다. 뭐 압수라도 당하나 싶었던 거다. 그런데 입장권을 다 내놓으라길래 줬더니 오히려 입장료를 돌려 줘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영화 촬영으로 뉴욕 관광에 도움을 줘서 입장료를 면제해 준 거였다. 공식적으로는 이 영화의 촬영감독이 이성춘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은 감독 겸 기획자였던 내가 직접 촬영하였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 연출작 가운데 지금 원본을 볼 수 없는 것으로는 <유랑극장>(1963)이 제일 아쉽다. 영화를 위해 노래를 9~10곡 정도 지었는데 박춘석 작곡가 작품이다. “바닷가에서” 같은 노래는 상당히 유행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조긍하 감독의 <아까시아 꽃잎 필 때>(1963)와 경쟁했다. 그땐 조긍하 감독 작품이 더 유명했다. 극장을 잡고 개봉일에 맞추느라 며칠 밤을 새며 만들었는데, 노래 부르는 긴 장면은 편집을 제대로 못 한 것이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순수하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해서 애착이 많다. 내 영화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소만국경>(1964), 합작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때로선 감각이 상당히 앞섰던 작품으로 자평하는 <국제암살단>(1971)도 기억에 남는다. <칼맑스의 제자들>(1968) 같은 것은 중급 이상의 규모였는데, 강가에 폭탄을 묻어 놓고 진짜로 폭파시켜 가며 찍었다. 그때 조감독이었던 정진우 감독이 총을 잘 쏘는 걸로 유명했다. 알다시피 당시엔 영화 촬영에도 실탄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 배우들 중에서는 황해와 가장 가까웠고 작업도 많이 했다.

 

합작영화로 시작된 중화권과의 인연

– 60년대에는 첫 합작영화에 참여했기 때문인지 대만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우리 영화 정책 목표에 외화 확보가 포함되기도 했고, 영화인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주려고 애썼다. 우리는 우리 대로 어떻게든 일을 따내어 먹고살아야 했으므로 해외 합작은 좋은 기회였다. 우리 배우나 감독들이 초청 받아 대만에 갔고, 나유 감독(이소룡이 주연한 <당산대형>, <정무문>으로 유명) 등 그쪽 인맥을 알게 되었다. 고인하 씨 같은 경우 <탈출명령>(1966) 합작을 계기로 만났는데 지금도 돈독한 관계다.

– 대만은 국민당이 직접 경영하는 중앙영화사가 있는 국영 체제였는데, <오리를 기르는 집> 같은 수작을 다수 만들어 냈다. 그들도 흥행이 잘되는 한국에 신세를 진 셈이다. 어디서든 진실하게 사업을 하면 아무 탈이 없다. 욕심을 더 부리거나 잔꾀를 부리니까 곤란해지는 거다.

– 대만과 가까운 홍콩과도 합작을 했다. 쇼 브라더스의 런 런 쇼도 한국을 좋아했다. 이한상 감독(대표작 1960년판 <천녀유혼>, <강산미인>, <양산박과 축영대> 등)과는 합동영화사와 합작할 때 알게 되었는데, 나중에 연출작인 <서태후>(1981)의 수입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동남아권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본영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기였지만, 아무래도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권에서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나쁜 편이었다. 한국영화가 진출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 홍콩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신상옥 감독 납북 당시에도 홍콩에 체류 중이었다. 최은희 씨는 내가 정창화 감독, 신위균 씨, 남석훈 씨 등과 함께 대접 약속을 했는데, 식사가 차려지고 나서도 나타나지 않아 이상했다. 알고 보니 북한에 납치된 것이었다. 참 섬뜩한 이야기다.

(촬영: 박상규)
(촬영: 박상규)

 

연출 중단 후 이야기

– 영화 만드는 일을 중단한 계기는 자신이 없어져서였다. 외국에 자주 나가다 보니 이렇게 만들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랫동안 공백기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영화 수입에 종사하면서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돌아다니는 등 열심히 활동했다. 영화 수입 일로 한 달에 절반은 홍콩에서 보내곤 했다. 동아수출공사, 우진 필림, 황기성사단 등과 가까웠는데 동아수출공사의 경우 홍콩 골든 하베스트와 돈독한 관계여서 많은 작품을 들여왔다. 계기는 내가 이소룡의 <정무문>(1972)을 본 뒤, 그 다음 작품인 <맹룡과강>(1972)을 국내에 소개하면서이다. 그 일로 동아수출공사와 골든 하베스트가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수입 일은 영화계에 대기업이 진출한 15년쯤 전까지 계속했다.

– 요즘 한국영화를 다 보진 못 하지만 종종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볼 기회가 있다. 최근에 본 작품은 <귀향>(2015)이다. 아끼는 후배가 따로 있진 않다. 다들 잘 만드니까. 여러 여건이 잘 맞기도 하지만 우리 때보다 확실히 영화를 잘 만든다. 비용도 더 많이 들이고.

 

<괴시>에 대하여

– 홍콩에서 이탈리아영화(주: <잠든 시체를 그대로 두어라> Let Sleeping Corpses Lie / 1974년 공개된 이탈리아-스페인 합작 좀비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한국 상황을 반영하여 만든 작품이다. 국제 저작권 협약이 적용되지 않았던 당시의 관행이었다지만 남의 것을 갖다 한 건 맞고, 내가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안개 낀 거리>(1963)도 일본 작품을 참고한 것이다. 당시엔 홈 비디오도 없었고 기록 수단도 부족하다 보니 극장에서 참고할 만한 영화를 보면서 커트 분할이나 대사 같은 것들을 받아 적거나 아예 외우기도 했다.

– 이 영화의 주제는 과학의 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인간에 대한 해악이다. 각색 과정에서 병충해 방지를 위해 초음파를 사용한다는 등 한국의 실정에 맞는 설정으로 바꾸었다. 검열이 심해 유혈 장면을 여럿 삭제해야 했다.

– 합작영화 제작 경험을 살려 중국 배우들을 일부 캐스팅하였다.

– 야외 촬영은 대부분 광릉에서 이루어졌다. 수풀이 우거진 곳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광릉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주: 극중 배경은 강원도). 실내 촬영은 어디서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미아리, 신설동 등 서울 여러 곳에 세트장이 있었다.

– 흥행은 잘 되지 않았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도 않았고, 여러 모로 극장에 걸기 쉬운 영화는 아니었다.

<괴시> (컬러 / 85분 / 1980년 4월 10일 공개)
주연: 유광옥, 강명, 박암, 왕옥환, 홍윤정

(C) 한림영화 (주)
(C) 한림영화 (주)

강원도 산골에서 병충해를 막기 위한 초음파 방출 실험이 실시된다. 그러나 실험의 부작용으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들이 되살아나 닥치는 대로 마을 사람들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세미나 참석차 한국에 온 중국인 강명, 그와 우연히 만난 수지, 그리고 수지의 자매 부부 등이 사건에 휘말리고, 희생자는 점점 늘어만 간다.

흔히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로 손꼽히는데, 이에 대한 검증은 잠시 미루어 두고 작품 자체만 본다면 조지 A. 로메로가 창시한 현대 좀비영화의 작법을 충실히 답습한 현지화 버전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가 나왔던 80년대 초반에는 특수효과의 발달로 경천동지할 유혈 묘사가 경쟁적으로 터져나왔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해외의 상황. 대신 <괴시>에는 검열의 제한을 피하여 유혈묘사 대신 분위기와 극중 상황으로 공포와 불안감을 조성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좀 더 스타일리쉬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정통 좀비영화의 흥취를 머금은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여전히 그 매력을 잃지 않는 작품이다.

 

<몽녀한>에 대하여

– 소재가 괜찮아 보여 만들게 된 영화이다. 마침 괴기영화가 유행이기도 하여, 흥행성이 있거나 적은 제작비로 만들 수 있는 소재라면 기꺼이 선택했다. 한 편이라도 더 팔아야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

– 촬영은 한국과 대만에서 골고루 진행되었다.

– 각색은 주동운 작가가 맡았는데, 현대를 무대로 고전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기조는 중국 측에서 낸 아이디어이다.

– 괴수 수트는 중국에서 제작했다. 수트 액터는 상황에 따라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 기용했다.

– 합작 영화라는 특성 상 한국과 대만 양국 배우들은 각자 서로의 언어로 대사를 했다. 이를 나중에 한국어로 더빙한 것이다.

<몽녀한> (컬러 / 90분 / 1984년 8월 18일 공개)
주연: 문태선, 첸리윈, 국정숙, 추이소핑, 문미봉

(C) (주) 우진 필림
(C) (주) 우진 필림

잔혹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여 도시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는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들리는 기묘한 피리 소리, 그리고 그때마다 사라지는 기자 이옥정. 옥정과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 고강영은 이 두 가지 정황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공포영화의 전성기였던 80년대 초반 선보인 <몽녀한>은 한국과 대만의 합작영화. 멜로드라마를 가미한 크리처-공포영화로서도 흥미롭고, 도회를 무대로 한 기담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뱀 괴물의 모습은 그야말로 특촬 수트를 보는 듯하지만, 당시의 관점으로는 꽤나 존재감 있는 크리처로서 인상을 남기지 않았나 싶다.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분야를 탐색했던 작품이다.

 

<사망탑>에 대하여

– 액션 장르에서 한국영화와 홍콩영화의 차이라면, 한국영화는 6. 25의 영향이 있어서인지 총격, 권격 위주로 좀 더 현대적인 인상이다. 반면, 홍콩영화는 쇼 브라더스의 왕우가 나오는 칼싸움 액션영화의 예로 알 수 있듯 고전적인 인상이다.

– 극중 공작새를 부리는 장면이나 사자가 나오는 사파리 장면 등은 홍콩에서 촬영했다. 홍콩 측의 오서원 감독이 그런 볼거리를 동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리 잘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망탑> (컬러 / 75분 / 1980년 3월 1일 공개)
주연: 당룡, 황정리, 원화평, 진요림, 원진위

(C) 동아수출공사
(C) 동아수출공사

사형 진길용을 방문하려던 무도가 김태중은 길용이 불귀의 객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장례 도중 어떤 세력이 길용의 시신을 훔쳐가자 태중은 그 뒤를 쫓아 길용의 죽음과 관련된 음모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주연 당룡은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 이소룡의 대역으로 출연한 바 있고, 이어 <사망유희>의 속편격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도 대역 겸 이소룡의 동생 역을 맡았다. 국가 별로 다수의 편집본이 존재해서인지 이 한국 공개판도 컨티뉴이티가 엉성하고 완성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 이소룡식 권격영화의 개성 없는 아류작에 속하지만, 한국 액션영화의 계보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한번쯤 짚고 넘어갈 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마치며

1924년생인 강범구 감독은 올해 93세의 고령이지만 못 해도 20년 이상은 젊어 보일 만큼 매우 정정하였다. 시종일관 진솔하고 겸손하였고 지금은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딱 부러지게 인정하는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과거 잦은 해외 출장으로 익숙해진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놓고 활기 있게 이야기를 이어 가는 90대 노감독의 모습은 쉽게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일종의 예고편이다. 강범구 감독과 만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으므로… 읽으면서 특히 <괴시>와 <몽녀한>에 대한 내용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다면, 조만간 다른 지면을 통해 강범구 감독과 다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기회에 대해서는 따로 알리도록 하겠다.

인터뷰를 도와 주신 분들
박지환 씨
홍기훈 씨 (빅 몬스터 클럽)
박상규 씨 (빅 몬스터 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