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맨 리턴즈] (2006)

(C) Warner Bros. Pictures
(C) Warner Bros. Pictures

두서없이 떠오르는 여러 가지 감상들.

– 오프닝 크레딧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존 윌리엄스의 그 메인 타이틀 음악, 푸른 빛의 궤적을 남기며 우주를 날아다니는 그 크레딧 자막까지 똑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수퍼맨도 크리스토퍼 리브가 브랜든 라우스로 바뀌었을 뿐, 그 구도 그대로 재현했다. 게다가 엔드 크레딧에 리브와 부인에게 바치는 헌사까지. <수퍼맨 리턴즈>는 리처드 도너의 1978년작 <수퍼맨>을 영상과 주요 설정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클 것이다.

– 새로운 수퍼맨 브랜든 라우스는 조금 딱딱하다. 그렇지만 모범적인 수퍼히어로 역에는 오히려 잘 어울린다. 격렬한 감정이 필요한 장면까지 딱딱한 것이 다른 영화에서라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수퍼맨이기 때문에 용인할 만하다.

–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점은 ‘수퍼맨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이 변했다.’ 이다. 지금까지 수퍼맨은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모범생 캐릭터라 친근감이 떨어지고, 변화 가능성이 적으며 재미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한 세평을 의식한 듯 <수퍼맨 리턴즈>에는 크립톤 행성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온 수퍼맨이 느끼는 망향의 감정, 로이스 레인의 결혼과 출산에 의한 실연이라는 설정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수퍼맨의 초인적인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강력한 감정적 장애물로서, 그가 이에 반응하여 갈등을 겪다가 해결책을 찾아 가는 과정은 영화에서 가장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수퍼맨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로이스의 주위를 계속 겉돈다. 단지 약속이 있다며 데이트 신청을 거절한 로이스가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투시력으로 쫓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수퍼맨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른 안경과 수트를 벗고 옥상으로 날아가, 로이스에게 인터뷰 신청을 하고 함께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다. 약간은 진부하지만 방법은 맞았고, 결과적으로 보는 이도 동화된다. 마침내 수퍼맨은 새로운 고향인 지구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게 된다.

– 액션 시퀀스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실사와 CG와의 구별을 거의 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게 만들어졌으며 압도적인 박진감을 담아냈다. 셋 다 1978년작을 기초로 업데이트한 것들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예를 들어 <수퍼맨>에서는 로이스 레인을 헬리콥터에서 구조했다면 <리턴즈>에서는 비행기에서 구조한다는 식이다. 상황 종료 후 ‘그래도 비행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랍니다’ 라고 말하는 것까지. 하지만 총탄이 수퍼맨의 안구에 맞고 튕겨나가는 컷처럼 그때보다는 지금 더 어색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 삽입됨으로써 데자뷔를 상당히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 오히려 <수퍼맨 리턴즈>에서 가장 밋밋한 건 렉스 루터의 음모다. 물론 케빈 스페이시의 루터는 예상대로 훌륭했다. 스페이시는 진 해크먼보다 덜 우스꽝스럽지만, 그보다 훨씬 더 뻔뻔하고 사악하다. 사이드킥인 파커 포시도 의외로 재미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루터는 1978년작과 똑같은 수법으로 위기감을 조성한다. 30년 전에 비해 별다른 발전이 없는 것이다.

– 구름을 뚫고 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향해 비상하는 수퍼맨. 로이스를 안고 메트로폴리스의 마천루 사이를 조용히 비행하는 수퍼맨. <수퍼맨 리턴즈>는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이루어진 수퍼히어로 영화일 것이다.

– 팬들을 즐겁게 할 다양한 인용과 변주도 (당연히) 잔뜩 들어 있다.

– <수퍼맨 리턴즈>는 캐릭터나 설정의 근간을 뒤흔들어 완전히 다른 방향을 모색한 작품이 아니다. 영화적으로는 1978년작 <수퍼맨>을 2006년의 상황에 맞춰 새로이 만든 작품으로 봄이 타당하다. 기본에 충실하고 원전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으로 가득하다. 시각효과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지만, 스토리텔링은 시대착오적이 아닐까 할 만큼 눈높이다. 그럼에도 진부하지 않고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브라이언 싱어는 <X-멘>을 만들 때 그랬듯이, <수퍼맨 리턴즈>를 가장 수퍼맨다운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또 한 편의 걸작 수퍼 히어로 영화로 승화시켰다.

원제: Superman Returns
감독: 브라이언 싱어
주연: 브랜든 라우스, 케이트 보스워스, 케빈 스페이시, 제임스 마스든, 프랭크 랜젤라
북미 개봉: 2006년 6월 28일
한국 개봉: 2006년 6월 28일

[X-멘: 최후의 전쟁] (2006)

(C) 20th Century Fox
(C) 20th Century Fox

가장 아쉬운 점은 1, 2편의 장점이었던 ‘사려 깊음’이 사라졌다는 것. 브렛 래트너의 연출은 브라이언 싱어만큼 섬세하지 못했다. 뮤턴트 치료제를 맞고 보통 인간이 되어버린 미스틱을 버리고 떠나는 매그니토는 내가 알고 있던 그가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감정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갑자기 끼어든 피닉스에 대한 설정도 불편했다. 2편의 결말에서 진 그레이가 부활하리라는 암시가 있긴 했지만, 정작 부활 과정에서 ‘왜’와 ‘어떻게’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X-멘> 정도의 프랜차이즈라면 원작 만화의 골수팬들만으로도 충분히 장사가 되겠지만, 영화판은 그 범위를 넘어 ‘보통 관객들’까지 고려한 매체다. ‘원작을 읽어’ 라는 말 한마디로 영화의 완성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만드는 사람들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로그-바비 드레이크-키티 프라이드의 삼각관계 역시, 결말에서 로그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설명하기엔 부족했다(소설판에서는 반대의 전개라고 한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 서브플롯은 2편에서 비참할 정도로 비중이 줄어들었던 로그를 결국 확인사살하고 만다. 이는 사이클롭스도 마찬가지이다.

액션은 3부작 가운데 최고다. 새로운 뮤턴트의 등장과 그들 고유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장면의 연속. 클라이맥스는 1편부터 이어져 온 로건과 진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서도 충분히 기능했다.

20년 전을 묘사한 도입부는 외전의 예고편일까. 엔젤은 마지막 장면의 그림 만들기를 위한 필수 요소였나. 3부작의 결말을 어떻게 내긴 했지만, 몇몇 치명적인 실수를 비롯한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원제: X-Men: The Last Stand
감독: 브렛 래트너
주연: 휴 잭먼, 할리 베리, 패트릭 스튜어트, 이언 맥켈런, 팜케 얀센
북미 개봉: 2006년 5월 26일
한국 개봉: 2006년 6월 15일

[울트라맨] (2004)

(C) ULTRAMAN 製作委員会
(C) ULTRAMAN 製作委員会

영화 <울트라맨>을 구성하는 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파일럿 마키 슌이치의 이야기로,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아들 츠구무를 비행기에 태워주겠다는 약속을 지켜 가는 과정이다. 다른 하나는 외계에서 온 괴물에게 연인 우도 타카후미를 빼앗긴 자위대원 미즈하라 사라의 이야기. 미즈하라는 괴물로 변해버린 연인을 처치해야 한다는 감정의 혼란을 이겨내고 임무를 성공시켜야만 한다.

이 두 이야기는 마키가 비행 도중 정체불명의 붉은 발광체와 충돌하는 순간 하나로 합쳐지게 되는데, 이 발광체는 앞서 언급한 외계 괴물, 즉 ‘비스트 더 원’을 물리치기 위해 나타난 빛의 거인 ‘울트라맨 더 넥스트’로서 지구에서 활동하려면 마키와 일심동체로 융합해야 한다. 하지만 마키는 푸른 발광체와 융합하여 괴물이 된 우도처럼 적으로 오해 받아, 미즈하라가 소속된 자위대 대 바이오 테러조직에 의해 구속당하고 아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어버리는데…

찬반양론 속에 종영한 TV 시리즈 <울트라맨 넥서스>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울트라맨>은 ‘울트라맨의 새로운 부활’을 모토로 어른들과 그 자녀 세대 모두를 아우를 작품을 만든다는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노선을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히 제시한다. 이 영화는 결국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 마키는 어린 시절 하늘을 나는 전투기를 우연히 본 것을 계기로 파일럿의 꿈을 이루었으며, 역시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아들 츠구무에게도 비행이라는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꿈과 이상.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이룰 수는 없다.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 의지를 통해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법. 단순하고 쉬운 내용이지만, 이렇게 직선적으로 돌파하며 보여주는 것, 그리고 이렇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의 좋은 점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축인 미즈하라와 우도의 이야기는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마키 쪽이 꿈을 성취하는 과정을 그린 밝은 이야기라면, 미즈하라의 이야기는 가슴 아픈 상실과 내면의 갈등을 그린 어두운 쪽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축 사이에서 적절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작품의 집중도도 반감되고 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어둡지도 않은 어정쩡한 정서가 나왔다. 비스트 더 원의 폭주 과정을 좀 더 명확하게 그렸더라면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그러기엔 가족 영화라는 태생적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물론 이러한 암흑면은 후속작인 <울트라맨 넥서스>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독자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긴 한다. 클라이맥스에서 울트라맨의 필살광선 에볼레이 슈트롬을 맞고 무수한 빛의 입자로 분해되어 버리는 비스트 더 원의 모습을 보노라면, 적을 물리쳤다는 통쾌함보다는 진짜 재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불길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넥서스>를 먼저 봐서일 테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의 미즈하라 축이 남긴 어둠의 뒷맛은 비스트 더 원의 최후와 미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세상이 밝은 부분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진리를 실감케 한다.

마키의 갈등이 후반부 츠구무의 어른스러운 대사로 인해 너무 쉽게 해결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는데, 오히려 영악스러울 정도로 똑똑한 요즘 아이다운 모습을 잘 보여주었고, 상투적으로 흐를 수 있는 장면의 함정을 피해갔다는 점을 사고 싶다.

시각효과는 전통적인 특촬과 CG가 매력 있게 조화되어 있다. 대부분 CG로 표현된 공중전 시퀀스의 경우 ‘그려진’ 흔적이 종종 역력히 드러나기는 하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다는 결의와 참신함도 느껴졌다. ‘내가… 하늘을 날고 있다!’ 라는 마키의 대사를 그대로 실감할 수 있는 울트라맨의 비상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미니어처 대신 울트라맨과 괴수를 실제 신쥬쿠 도심 촬영 커트와 합성하여 만들어낸 격투 장면이나 속도감 넘치는 공중전 장면도 훌륭했다. DVD의 5.1 채널 사운드가 장면의 박력을 더욱 높여주기는 했지만, 역시 극장에서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각본과 연출 상 미진한 부분이 있음에도 <울트라맨>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순수한 이상주의와 하늘을 하는 환상이 공존하는 이 영화는 아직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달콤하고 이따금씩 무서운 꿈과도 같다. 헤이세이 울트라맨 극장판 중에서도 기억에 오래 남을 쾌작이다.

원제: ULTRAMAN
감독: 코나카 카즈야
주연: 벳쇼 테츠야, 토야마 쿄오코, 오스미 켄야, 유키 나에, 히로타 료헤이
일본 개봉: 2004년 12월 18일
한국 미공개 작품

[우주전쟁] (2005)

(C) Paramount Pictures, DreamWorks SKG, Amblin Entertainment, Cruise/Wagner Productions
(C) Paramount Pictures, DreamWorks SKG, Amblin Entertainment, Cruise/Wagner Productions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공포영화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그는 어떤 공포영화 감독보다도 스크린 속 공포를 잘 다룬다. 동시에 그가 다루는 공포는 매우 정형화되어 있어 이제는 그 수법이 뻔히 보일 정도가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우주전쟁>의 도입부에서 벌어지는 외계인의 첫 습격 장면은 보는 이의 얼을 빼놓는다. 스필버그의 테러 묘사는 ‘공포를 다루는 법’이라는 가상 해설서의 황금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참신한 시각적 요소가 추가되어 매번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우주전쟁>은 역대 최고의 재난영화이며, 시각적으로 가장 뛰어난 괴수영화이다.

스필버그 영화의 원점은 그가 유년기에 매료되었던 문화 요소들이다. 그가 오슨 웰즈의 라디오 드라마 대본 원본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듯이, <우주전쟁> 역시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장르영화의 연속선 위에서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창작자가 당대의 현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명제를 굳이 들이밀지 않더라도, 이 영화에 9. 11 테러가 스필버그를 때리면서 남긴 충격과 분노의 흔적이 녹아있음은 너무나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외계인에 의해 무차별 파괴되는 시가지와 도망치는 군중의 묘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세부는 9. 11 당시 우리가 실재함을 확인했던 것들이다.

묘하게도 <우주전쟁>은 그가 한 손에 블록버스터를, 다른 한 손에 진지하고 심각한 드라마를 들고 나오곤 했던 전력을 상기시킨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그 둘을 합친 작품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우주전쟁>은 <대결>이나 <조스>와 같은 스필버그 초기 걸작의 아우라를 느끼게 한다. 단순한 이야기에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이미지로 중첩된 장르영화의 거칠고 음산한 질감은 마치 1970년대로부터 2005년으로 곧장 건너뛴 듯 생생하고 힘이 넘친다.

스필버그 영화는 과연 진보적일까. 내가 쉽사리 판단할 수 있는 바가 아닐지라도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스필버그는 <우주전쟁>으로 퇴보하지도 추락하지도 않았다. 한국에서 그에 대한 찬반양론이 전례 없이 난무했던 이유는 <우주전쟁>이 불균질했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에게 ‘스필버그를 까야 쿨하게 보이거든’ 이라는 인식을 심는 평자와 논객들의 호들갑에 있다. <우주전쟁>에 대한 혹평 속에는 정작 영화에 대한 비판보다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헐리우드의 유대인 감독에 대한 반감이나, 이 영화에 들어맞지도 않는 미국 우월주의 운운만 있을 따름이다. 그자들은 바로 그 점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침을 튀겼지만,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영화의 결말이 불만스러운 관객이 많을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문화 현실이다. <우주전쟁>은 2005년 가장 확대해석된 영화들 가운데 한 편이었다.

원제: War of the Worlds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톰 크루즈, 다코타 패닝, 저스틴 채트윈, 팀 로빈스, 미란다 오토
북미 개봉: 2005년 6월 29일
한국 개봉: 2005년 7월 7일

[프라이트 나이트] (1985)

(C) Columbia Pictures
(C) Columbia Pictures

장르란, 관객이 특정한 종류의 영화를 꾸준히 찾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제작자가 비슷한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기 시작한 것에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장르는 영화의 종류를 구분하는 일종의 지표 역할을 하며, 관객에게 어떤 장르에 대한 일정 수준의 기대치를 갖게끔 한다. 이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비율은 장르가 발달함에 따라 점차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관객이 장르영화를 계속 봄에 따라 해당 장르의 구성 요소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만드는 쪽에서는 이미 식상해진 장르의 규칙 혹은 불문율을 어떤 방법으로 변형하고 참신하게 포장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프라이트 나이트>는 공포영화, 특히 흡혈귀 영화의 장르 특성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당대의 유행을 잘 조화시켜 식상함을 영리하게 피한 수작이다. 이 영화에는 고전 흡혈귀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인용은 물론, 80년대 당시의 록 음악이나 사춘기 청소년의 일상도 그럴 듯하게 버무려져 있다. 80년대는 흡혈귀 영화의 전성기가 아니었지만, 이 영화는 철저히 동시대의 눈높이에 맞춤으로써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심야 공포 TV 시리즈 <프라이트 나이트>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청년 찰리는 어느 날 옆집에 사는 두 남자가 흡혈귀와 그 하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최근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살인 사건에 이들이 연관되어 있음을 간파한 찰리는 경찰에 신고도 하고 홀어머니를 설득해 보기도 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자신이 의심 받고 있음을 알게 된 흡혈귀는 다음 목표물로 찰리를 선택하고, 궁지에 몰린 찰리는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바로 자칭 ‘흡혈귀 사냥꾼’인 <프라이트 나이트>의 주인공 피터 빈센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순간, 영화와 현실이 만나는 놀라운 마법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톰 홀랜드 감독의 연출은 때때로 멋진 장면을 선사한다. 나이트클럽 시퀀스와 찰리의 여자친구 에이미가 제리에게 물리는 장면은 감각적인 영상과 분위기로 에로티시즘과 공포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내가 <프라이트 나이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찰리의 친구 에드가 흡혈귀 제리에게 물리기 직전, 카메라가 에드를 갑자기 부감으로 잡는 대목이다. 카메라의 제3자 시점이 일순간 흡혈귀의 주관적 시점으로 바뀌면서 관객이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시각적 즐거움은 정교한 특수효과에도 만만찮게 빚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매력적인 한 편으로 만드는 요인은 주역을 맡은 두 배우, 크리스 새런든과 로디 맥도월이다. 제리를 연기한 새런든은 섹시하고 능글맞으며 유머가 풍부한 배역을 깜짝 놀랄 정도로 잘 소화해 냈다. 그의 변화무쌍한 표정과 전율할 만큼 강렬한 카리스마는 ‘이 정도라면 나도 한번쯤은 흡혈귀가…’ 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피터 빈센트 역의 맥도월은 피터 쿠싱을 흉내 낸 재미있는 액센트로 가끔은 우스꽝스러운 흡혈귀와의 대결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그가 출연한 텔레비전 속 흡혈귀 영화 클립은 정말 즐겁다). 새런든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부드럽게 넘어가는 연기를, 맥도월은 연륜에서 비롯된 관록으로 균형 잡힌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이 서로 다르지만, 이 멋진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프라이트 나이트>는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며, 전편을 지탱하는 두 축을 잃은 채 비참하게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장르에 대한 애정과 그것을 당대의 감각에 적절히 이식한 연출력 덕택에, <프라이트 나이트>는 80년대 흡혈귀 영화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되었다. 좋은 장르영화의 본보기이다.

원제: Fright Night
감독: 톰 홀랜드
주연: 크리스 새런든, 로디 맥도월, 윌리엄 랙즈데일, 어맨다 비어즈, 스티븐 제프리즈
북미 개봉: 1985년 8월 2일
한국 개봉: 1986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