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세계: 쥬라기 공원> (The Lost World: Jurassic Park, 1997)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이슬라 소르나에 상륙한 인젠 포획 팀이 떼지어 달아나는 공룡들을 뒤쫓는 장면들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 센스가 당대 최고 수준을 구가했던 ILM의 시각효과와 멋지게 융합했던 이 시퀀스에서, 실사와 CG는 편집 없이 한 컷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실사 피사체가 CG로 자연스럽게 바뀌거나 그 역이 구현되면서 보는 이를 감탄케 했다.


이 시퀀스의 인간 측 주인공은 피트 포슬스웨이트가 분한 사냥꾼 롤랜드 템보, 공룡 측 주인공은 파키케팔로사우루스와 파라사우롤로푸스일 텐데((모터사이클을 탄 사냥꾼이 마멘키사우루스의 다리 사이를 지나 질주하는 장면도 멋지지만, 아주 잠깐이었기에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특히 파라사우롤로푸스의 포획 장면은 개체의 거대함과 역동감을 훌륭하게 표현함으로써 깊은 인상을 주었다. 물론 이 장면에 담긴 내용은 안타깝기 그지없으나, 시각효과의 뛰어남이 존재감을 배가시켜 보는 이가 느끼는 안타까움을 더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장면의 주인공인 파라사우롤로푸스의 액션 피겨를 영화가 나온 지 25년 만에 손에 넣었다.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된 완구 회사 케너 제품이다.
최근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이 공개되면서 마텔이 내고 있는 완구 시리즈의 파라사우롤로푸스를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케너의 <잃어버린 세계> 라인으로 나왔던 이 구판이 눈에 들어와 버렸다. 마텔의 프리미엄 라인 해먼드 컬렉션으로 신판이 나와 있으나 영화 속 모습의 재현도는 단연 케너의 구판이 더 충실하다.



각부의 형태와 비례가 영화 속 모습에 가깝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목덜미에서 시작하여 등을 거쳐 꼬리 끝까지 이어지는 유려한 곡선과 대퇴부의 풍부한 양감이야말로 구판만의 매력이다. 가동 부위가 더 많고 세부 조형이 우수한 신판도 이것만은 구판에 미치지 못한다. 구판의 피부 질감 조형도 만들어진 시기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




아래 사진은 스탠 윈스턴 스튜디오가 <잃어버린 세계> 제작 당시 만든 검토용 모형 (매켓). 케너의 액션 피겨가 이 검토용 모형을 바탕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2020년 크로니클 컬렉티블이 검토용 모형을 정밀하게 재현한 입상을 제품화하기도 했다.

이번에 들여온 파라사우롤로푸스는 당연히 중고. 미개봉품은 매물을 찾기도 어렵고 프리미엄도 엄청날 터이니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래도 25년 묵은 것치고는 상태가 좋은 편이다. 둔부의 버튼을 누르면 다리를 움직이며 울음소리를 내는 기믹도 건재한데, 갖고 놀기보다는 전시 및 감상이 목적이므로 건전지를 빼 놓았다. 그러기 전에 작동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겨 보았다.
케너의 <쥬라기 공원> 계열 피겨들과 함께. 딜로포사우루스는 1993년부터 지금까지 보관해 왔는데 원래 사촌동생이 갖고 놀던 것이다. 벨로키랍토르는 당시에 내가 동네 문방구에서 산 적이 있지만 몇 년 뒤 유실했고, 2015년 <쥬라기 월드> 공개 후 향수에 사로잡혀 새로 구한 것이다.

그에 비해 파라사우롤로푸스는 순전히 제품 자체의 조형미에 이끌려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잃어버린 세계>가 공개되었을 때는 나온 줄도 모른 채 지나갔던 이 제품이 눈에 띈 것은 그야말로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현재 완구 상품권을 갖고 있는 마텔은 레거시 컬렉션이나 해먼드 컬렉션 등의 라인으로 과거 <쥬라기 공원> 3부작의 제품들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하지만 이 파라사우롤로푸스는 케너 구판의 아름다움이 발군이다.
여러 모로 퍽 마음에 드는 제품이다. 다만 작동 기믹 때문에 다리가 항상 엇갈려 있어 세워 놓기 힘든 것이 옥에 티다. 양발을 나란히 하여 잠시 세울 수는 있으나, 아마도 몸통 내부에 있을 스프링의 탄성력 때문에 오랫동안 두긴 어렵겠다.

극중에서 롤랜드는 휘하의 사냥꾼들에게 파라사우롤로푸스 포획을 지시하려 하지만, 공룡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 그러다가 머리의 볏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올백머리를 닮았다며 즉석에서 ‘엘비스’로 명명해 버린다. 그 둘은 그다지 비슷해 보이지 않지만, 롤랜드가 다급한 나머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그러려니 못할 것도 없다.
실소를 자아내는 과정을 거쳐 엘비스가 된 개체는 목과 다리에 밧줄이 걸린 채 쓰러져 붙잡히고 만다. 처음 이 장면을 보았을 때 나는 엘비스가 안타깝게도 목이 부러져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쥬라기 시리즈의 위키 등을 보면, 엘비스는 얼마 후 닉과 새라가 풀어 준 다른 공룡들과 함께 무사히 도망쳤다고 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지.((캡처 이미지의 엘비스는 포획당할 때보다 눈에 띄게 작아 보인다. 포획 장면에서는 ‘그림을 위해서’ 크게 돋보이도록 연출했던 것일까? 스필버그 감독이라면 그럴 수 있었으리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