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타지] (2014)

(C) Open Road Films
(C) Open Road Films

데이비드 아이어 감독 특유의 거칠고 현장감 있는 액션 연출이 가미된 하드 액션영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얼개를 따온 듯한 미스터리-스릴러, 정계 은퇴 이후 대표작이 간절히 필요했던 아놀드 슈워츠네거의 이해관계가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 작품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까.

하드 액션영화로서는 제 역할을 그럭저럭 해낸다. 전작들만큼 박력 있다고 하긴 어렵지만, 보는 이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으려는 궁리는 꽤 잘 되어 있다. 가차없이 머리를 날려 피와 뇌수와 뼈 조각을 흩뿌리는 묘사에도 상당한 공이 들어갔다. R등급 폭력뽕을 맞고 싶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

미스터리-스릴러로서는 빵점이다. 극중 미스터리라는 것이 별달리 설득력 있지 않은 데다가 ‘설마 그렇게 쉬운 해답이겠어?’의 설마 그대로. 이것은 보는 이의 기대를 배신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다.

슈워츠네거는 영화계 복귀 이후 가장 진지하고 연기력이 필요한 배역을 매우 힘들여 해냈는데, 그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양해’가 되어 있는지라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다던가 하는 연출은 좀…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많았겠지만 그 틀은 확실히 좁았을 것이다. 사실 나는 거기까지도 양해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미스터리 축과 슈워츠네거의 연기 축이 잘 어우러졌다면 이야기를 훨씬 더 기름지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절반쯤만 버무려진 채 끝나고 말았다는 점이다. 결말에 이르면 이야기는 말 그대로 붕괴해 버린다.

나머지 배역들을 위해 괜찮은 배우를 여럿 모아놓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다. 욕설과 마초 묘사의 연속. 솔직히 말해 진부하고, 하나같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고 있다. 샘 워딩턴과 올리비아 윌리엄스를 보는 건 즐거웠지만.

아이어와 슈워츠네거라는 기본 조합은 몹시 흥미로웠으나, 양쪽 다 혼란스러운 헛발질로 기회의 절반씩을 날려 버렸다.

원제: Sabotage
감독: 데이비드 아이어
주연: 아놀드 슈워츠네거, 샘 워딩턴, 미레이유 에노스, 올리비아 윌리엄스, 테렌스 하워드
북미 개봉: 2014년 3월 28일
한국 개봉: 2014년 7월 23일

[타이탄] (2010)

(C) Warner Bros. Pictures
(C) Warner Bros. Pictures

<타이탄>(Clash of the Titans)은 그리스 신화 가운데 페르세우스의 모험담을 각색한 1981년 영화 <타이탄족의 멸망>을 다시 만든 작품이다. 81년판 오리지널의 각본과 연출에는 그다지 특징이 없었지만 로렌스 올리비에, 매기 스미스, 버제스 메레디스 등 베테랑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가 극에 어느 정도 활력을 불어넣긴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리지널 영화를 유명하게 한 사람은 스톱 모션 시각효과의 대가 레이 해리하우젠이었다. 그가 스크린 위에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되살려낸 크라켄, 메두사, 페가수스 등 다양한 환수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타이탄족의 멸망>은 신화의 모험담과 환상적인 볼거리에 집중한다는 본분에 충실한 오락 대작이었다.

2010년판 <타이탄> 역시 그러하다. 떠오르는 액션 스타 샘 워딩턴이 주인공 페르세우스를 연기하였고 리암 니슨이나 레이프 파인즈, 피트 포슬스웨이트 같은 중견 배우들이 무게중심을 부담하였다. <트랜스포터>, <더 독>, <인크레더블 헐크>를 연출했던 루이 르테리에 감독은 오리지널의 열렬한 팬임을 공언하며 웅장한 세트와 정교한 의상, 보기만 해도 신화적 흥취가 물씬 풍기는 엄선된 야외 촬영으로 꾸민 화려한 무대에 현재의 첨단 영상 기술을 마음껏 활용한 액션을 가득 채워 넣었다. 페르세우스 일행이 거대 전갈들과 싸움을 벌이는 대목과 클라이맥스에서 크라켄이 출현하는 대목은 속도감과 중량감을 고루 살려낸 명장면이다.

요즘 오락영화 추세와 관객 입맛에 맞추어 영상의 톤을 조금 어둡게 하고 페르세우스가 반신반인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갈등한다는 설정으로 양념을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캐릭터 묘사가 얄팍하고 전개가 가끔 들쑥날쑥하지만 이 영화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한다면 그다지 거슬리지 않는다. 적어도 환상적인 이야기에 푹 빠지려는 순간 느끼는 가슴속 두근거림은 81년판과 다를 것이 없다. 그래도 메두사 시퀀스가 좀 아쉽긴 하다. 오리지널에서는 조마조마한 긴장감이 일품이었는데, 이번에는 CG 메두사가 퍽 볼만했음에도 연출이 장면의 분위기를 잘 살리지 못했다.

하지만, <타이탄>의 진짜 문제는 3D이다. 이 영화는 성급하고 무리한 3D 변환이 영화 관람을 어떻게 망칠 수 있는지를, 3D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아바타>가 나온 지 불과 넉 달도 안 된 시점에서 여실히 보여 주었다. 사실 <타이탄>은 3D 오락영화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지녔다. 원전인 신화 자체가 스릴 넘치는 대목으로 가득한 흥미진진한 이야기 아닌가. 21세기의 기술로 부활한 신화를 3D 영상으로 감상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공동 제작사인 워너 브라더스와 레전더리 픽처스는 3D 상영이라는 결과에만 집착한 나머지 애초에 2D로 촬영한 영상을 후반작업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에야 3D로 전환한다며 뒤늦게 유행에 편승했다. 처음부터 3D 영화로 기획했고 10년이 넘는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아바타>에 비하면 그야말로 거저 먹으려는 상술이다.

개봉일을 1주일 미루긴 했지만 불과 10주만에 뚝딱 만들어 낸 <타이탄>의 3D 영상은 결국 우려했던 대로 조잡한 수준이었다. 영상이 관객의 눈에 어떻게 보여질 지 제대로 연구하지 않은 채 2D를 그대로 변환한 탓에 화면은 깊이가 없고 지극히 평면적이다. 액션 장면에서는 컷을 잘게 나누어 빠르게 전환하는 데다가 카메라를 흔들어서 촬영했기 때문에 관객이 화면의 입체감을 지각하기도 전에 상황이 끝나 버리기 일쑤다. 단지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야기 속으로의 몰입을 끊임없이 방해받으며, 영화가 끝나고 남는 것은 어지러움과 쓰라린 눈 뿐이다.

나는 이러한 난관 속에서도 영화를 제법 즐겼기에 조만간 다시 한 번 볼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일반 상영관에서 2D로 감상할 것이다. <타이탄>은 더 비싼 입장료를 내고 3D로 볼 가치가 없는 영화이다.

원제: Clash of the Titans
감독: 루이 르테리에
주연: 샘 워딩턴, 리암 니슨, 레이프 파인즈, 젬마 아터튼, 매즈 미켈슨, 피트 포슬스웨이트
북미 개봉: 2010년 4월 2일
한국 개봉: 2010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