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하드 4.0>은 아주 괜찮은 액션영화 속편이다. 이번 4편은 규모만 늘려대느라 다이 하드다움을 간과했던 3편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디지털 테러로 국가 인프라가 마비된 극한 상황의 서스펜스를 그럴 듯하게 연출했다.
그러면서도 존 맥클레인은 우리가 1988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전기로 악당의 화를 슬슬 돋우는 모습 그대로다. 1편의 환기구와 엘리베이터 시퀀스를 멋지게 변주한 장면이나 ‘또 존슨이야?’ 라는 대사처럼 오랜 팬들을 즐겁게 하는 순간도 적지 않다. 아들뻘 되는 새로운 동료와 아내보다 훨씬 더 당차고 예쁜 딸도 반갑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맥클레인이 제대로 고생하면서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아날로그 퇴물이 21세기 약삭빠른 해커들을 정면승부로 박살내는 순간, <다이 하드 4.0>은 속편의 매너리즘도 함께 해치워버린다.
원제: Live Free or Die Hard
감독: 렌 와이즈먼
주연: 브루스 윌리스, 저스틴 롱,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티모시 올리펀트, 클리프 커티스
미국 개봉: 2007년 6월 27일
한국 개봉: 2007년 7월 17일
<블레이드> 시리즈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주인공의 카리스마를 능가하는 강력한 악역들이다. 1편의 프로스트는 스티븐 도프의 뺀질거리는 반항아적 이미지를 잘 살려낸 연기 덕에 무뚝뚝한 살인 기계에 가까웠던 블레이드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고, 선과 악(적어도 이 시리즈의 세계에서 흡혈귀는 영원한 악의 상징이다)의 뚜렷한 대비를 보여주면서 클라이맥스의 검술 대결 시퀀스를 기억할 만한 대목으로 만들었다.
2편에 등장한 리퍼는 근래 들어 가장 흉악한 괴물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줌으로써 2000년대 최고의 무비 몬스터 가운데 하나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문자 그대로 악마의 아가리 그 자체인 끔찍한 모양으로 갈라지는 턱, 햇빛 이외에는 절대로 죽일 수 없는 끈질긴 생명력은 물론, 인간과 흡혈귀 모두에게 위협적인 존재라는 강렬한 캐릭터는 ‘사신(死神)’이라는 이름값을 해내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블레이드> 시리즈는 주인공 블레이드가 악을 처단하는 과정이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의 싸움에 끝이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불길하고 암울한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블레이드가 있으니 문제 없어!’라는 명제가 개입되는 순간, 지금까지 지탱해왔던 시리즈의 매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시리즈의 완결편인 <블레이드: 트리니티>는 바로 그러한 입장에서 주인공을 바라본다. 뉴 라인 시네마의 로고가 사라지자마자, 우리는 한니발 킹의 확 깨는 내레이션을 듣게 된다. 내용 자체는 1편에서 블레이드가 했던 대사와 그리 다르지 않지만 킹의 쾌활한 말투는 영화의 방향을 시작부터 틀어 놓기에 충분했다. 뒤이은 첫 시퀀스는 관객의 흥미를 돋구기는커녕, 이미 작품 전체에 퍼지기 시작한 싸구려 액션 바이러스 때문에 대충대충 기워 놓은 수준에 머문다.
<블레이드 : 트리니티>는 견딜 수 없는 싸구려 투성이다. 최강의 적이라는 뱀파이어의 시조 드레이크는 오직 떡대만 들이밀고 있으며, 새로 등장한 아군 한니발 킹은 f자로 시작되는 욕설로 대사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이미 2편에서 바보 캐릭터로 전락해버린 위슬러는 어이없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세계는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설정으로 밀어붙인 조잡한 시퀀스들은 1편의 흡혈귀 회의 장면 하나 만큼의 정서적 울림도 주지 못한다.
유일하게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캐릭터는 블레이드 뿐. 그저 3편 내내 말없이 흡혈귀들을 찢어발겨 왔기에 그리 보일 따름이다. 그나마 위슬러의 숨겨진 딸이라는 애비게일이 불어넣은 신선한 활력이 아니었다면 영화를 끝까지 보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팟에 채워 넣은 mp3를 들으면서 흡혈귀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호쾌한 모습은 블레이드를 처음 보던 순간을 연상시키는 멋진 이미지였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로서는 원래부터 얄팍했던 데이비드 S. 고이어의 각본을 그 자신이 직접 연출하다 보니 똑같이 얄팍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1, 2편의 각본도 그저 그랬긴 마찬가지지만, 영상을 능숙하게 다루는 감독들이 보기 좋은 결과물을 냈음을 상기한다면 이 가설이 뜬금없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정말로 좋아하는 연작물이 망가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모든 팬들이 두려워하는 바일 터. 아아, 블레이드. 어쩌다가 그렇게 싸구려가 되어버렸나요?
원제: Blade: Trinity
감독: 데이비드 S. 고이어
주연: 웨슬리 스나입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제시카 빌, 라이언 레이놀즈, 파커 포시
북미 개봉: 2004년 12월 8일
한국 개봉: 2004년 12월 15일
여전히 좋았지만, 조금 과했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진이 빠질 정도다. 결말에 다다를 때쯤이면, ‘자, 베놈하고 샌드맨 보냈으니 그 다음은 얼른 내려가서 해리, 그 다음은 결혼 반지…’ 이렇게 벌여 놓은 사건들을 수습하기에 바쁘다.
놀라운 점은 그것들이 어떻게든 모두 수습된다는 것이며, 주제와의 연관성이나 에피소드 사이의 짜임새의 파탄도 잘 막아 놔서 작품의 전체적인 질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과 에피소드가 얽혔으니 잘못하면 <배트맨 & 로빈> 같은 꼴이 될 수도 있었지만, 작가들과 감독은 최선을 다 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역시 샌드맨과 뉴 고블린만으로 만들어야 했어, 싶지만 베놈이 없었다면 영화가 이만큼 화제를 모을 수 있었을까. 놈의 등장을 암시하는 정도로 끝냈다면 더 좋았겠지만, 팬들의 인내심은 3편을 넘기지 못했을 테니까.
액션 장면에 대해선 정말 할 말이 없다. 압도적이다. <스파이더맨 3>는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 그 자체이다. 또한, 플린트 마르코가 샌드맨으로 부활하는 대목은 <배트맨 리턴즈> 이후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악당을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이미 4편 제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지만, 피터 파커의 성장담은 이쯤에서 완결을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원제: Spider-Man 3
감독: 샘 레이미
주연: 토비 맥과이어, 키어스틴 던스트, 제임스 프랭코, 토머스 헤이든 처치, 토퍼 그레이스
북미 개봉: 2007년 5월 4일
한국 개봉: 2007년 5월 1일
물론 만화 [데스 노트]가 없었다면 영화 <데스 노트>도 없었겠지만, 대체로 실사판 각색물을 선호하는 나에게 이 두 편의 영화는 훌륭한 선물이었다.
원작의 라이토는 단행본 9권쯤 ‘빨리 죽어 버려!’ 라고 생각했을 만큼 정이 안 갔던 캐릭터. 구제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실사판 라이토는 잘못된 신념으로 행동하는 나쁜 놈이 분명했음에도 어딘가 착잡함을 느끼게 했다. 역시 나는 ‘살아 움직이는 것’을 봐야 제대로 납득하는 유형인 모양이다.
그리고 L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 스포일러랄 것도 없지만, 이 실사판에서도 L은 죽는다. 그렇지만 이 버전의 L은 죽는 순간까지도 멋있었다.
어물쩡 넘어가려는 부분이 몇 군데 있기는 했지만 이번 속편은 전편보다 3배 쯤 더 낫고, 끝나고 나면 그런 단점들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거의 장엄하기까지한 결말은 원작을 가볍게 능가한다. 이것만으로도 만화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어진다.
원제: デスノート the Last name
감독: 카네코 슈스케
주연: 후지와라 타츠야, 마츠야마 켄이치, 토다 에리카, 카가 타케시, 나카무라 시도
일본 개봉: 2006년 11월 3일
한국 개봉: 2007년 1월 10일
– 오프닝 크레딧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존 윌리엄스의 그 메인 타이틀 음악, 푸른 빛의 궤적을 남기며 우주를 날아다니는 그 크레딧 자막까지 똑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수퍼맨도 크리스토퍼 리브가 브랜든 라우스로 바뀌었을 뿐, 그 구도 그대로 재현했다. 게다가 엔드 크레딧에 리브와 부인에게 바치는 헌사까지. <수퍼맨 리턴즈>는 리처드 도너의 1978년작 <수퍼맨>을 영상과 주요 설정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클 것이다.
– 새로운 수퍼맨 브랜든 라우스는 조금 딱딱하다. 그렇지만 모범적인 수퍼히어로 역에는 오히려 잘 어울린다. 격렬한 감정이 필요한 장면까지 딱딱한 것이 다른 영화에서라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수퍼맨이기 때문에 용인할 만하다.
–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점은 ‘수퍼맨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이 변했다.’ 이다. 지금까지 수퍼맨은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모범생 캐릭터라 친근감이 떨어지고, 변화 가능성이 적으며 재미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한 세평을 의식한 듯 <수퍼맨 리턴즈>에는 크립톤 행성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온 수퍼맨이 느끼는 망향의 감정, 로이스 레인의 결혼과 출산에 의한 실연이라는 설정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수퍼맨의 초인적인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강력한 감정적 장애물로서, 그가 이에 반응하여 갈등을 겪다가 해결책을 찾아 가는 과정은 영화에서 가장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수퍼맨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로이스의 주위를 계속 겉돈다. 단지 약속이 있다며 데이트 신청을 거절한 로이스가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투시력으로 쫓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수퍼맨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른 안경과 수트를 벗고 옥상으로 날아가, 로이스에게 인터뷰 신청을 하고 함께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다. 약간은 진부하지만 방법은 맞았고, 결과적으로 보는 이도 동화된다. 마침내 수퍼맨은 새로운 고향인 지구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게 된다.
– 액션 시퀀스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실사와 CG와의 구별을 거의 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게 만들어졌으며 압도적인 박진감을 담아냈다. 셋 다 1978년작을 기초로 업데이트한 것들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예를 들어 <수퍼맨>에서는 로이스 레인을 헬리콥터에서 구조했다면 <리턴즈>에서는 비행기에서 구조한다는 식이다. 상황 종료 후 ‘그래도 비행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랍니다’ 라고 말하는 것까지. 하지만 총탄이 수퍼맨의 안구에 맞고 튕겨나가는 컷처럼 그때보다는 지금 더 어색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 삽입됨으로써 데자뷔를 상당히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 오히려 <수퍼맨 리턴즈>에서 가장 밋밋한 건 렉스 루터의 음모다. 물론 케빈 스페이시의 루터는 예상대로 훌륭했다. 스페이시는 진 해크먼보다 덜 우스꽝스럽지만, 그보다 훨씬 더 뻔뻔하고 사악하다. 사이드킥인 파커 포시도 의외로 재미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루터는 1978년작과 똑같은 수법으로 위기감을 조성한다. 30년 전에 비해 별다른 발전이 없는 것이다.
– 구름을 뚫고 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향해 비상하는 수퍼맨. 로이스를 안고 메트로폴리스의 마천루 사이를 조용히 비행하는 수퍼맨. <수퍼맨 리턴즈>는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이루어진 수퍼히어로 영화일 것이다.
– 팬들을 즐겁게 할 다양한 인용과 변주도 (당연히) 잔뜩 들어 있다.
– <수퍼맨 리턴즈>는 캐릭터나 설정의 근간을 뒤흔들어 완전히 다른 방향을 모색한 작품이 아니다. 영화적으로는 1978년작 <수퍼맨>을 2006년의 상황에 맞춰 새로이 만든 작품으로 봄이 타당하다. 기본에 충실하고 원전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으로 가득하다. 시각효과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지만, 스토리텔링은 시대착오적이 아닐까 할 만큼 눈높이다. 그럼에도 진부하지 않고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브라이언 싱어는 <X-멘>을 만들 때 그랬듯이, <수퍼맨 리턴즈>를 가장 수퍼맨다운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또 한 편의 걸작 수퍼 히어로 영화로 승화시켰다.
원제: Superman Returns
감독: 브라이언 싱어
주연: 브랜든 라우스, 케이트 보스워스, 케빈 스페이시, 제임스 마스든, 프랭크 랜젤라
북미 개봉: 2006년 6월 28일
한국 개봉: 2006년 6월 28일
가장 아쉬운 점은 1, 2편의 장점이었던 ‘사려 깊음’이 사라졌다는 것. 브렛 래트너의 연출은 브라이언 싱어만큼 섬세하지 못했다. 뮤턴트 치료제를 맞고 보통 인간이 되어버린 미스틱을 버리고 떠나는 매그니토는 내가 알고 있던 그가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감정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갑자기 끼어든 피닉스에 대한 설정도 불편했다. 2편의 결말에서 진 그레이가 부활하리라는 암시가 있긴 했지만, 정작 부활 과정에서 ‘왜’와 ‘어떻게’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X-멘> 정도의 프랜차이즈라면 원작 만화의 골수팬들만으로도 충분히 장사가 되겠지만, 영화판은 그 범위를 넘어 ‘보통 관객들’까지 고려한 매체다. ‘원작을 읽어’ 라는 말 한마디로 영화의 완성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만드는 사람들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로그-바비 드레이크-키티 프라이드의 삼각관계 역시, 결말에서 로그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설명하기엔 부족했다(소설판에서는 반대의 전개라고 한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 서브플롯은 2편에서 비참할 정도로 비중이 줄어들었던 로그를 결국 확인사살하고 만다. 이는 사이클롭스도 마찬가지이다.
액션은 3부작 가운데 최고다. 새로운 뮤턴트의 등장과 그들 고유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장면의 연속. 클라이맥스는 1편부터 이어져 온 로건과 진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서도 충분히 기능했다.
20년 전을 묘사한 도입부는 외전의 예고편일까. 엔젤은 마지막 장면의 그림 만들기를 위한 필수 요소였나. 3부작의 결말을 어떻게 내긴 했지만, 몇몇 치명적인 실수를 비롯한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원제: X-Men: The Last Stand
감독: 브렛 래트너
주연: 휴 잭먼, 할리 베리, 패트릭 스튜어트, 이언 맥켈런, 팜케 얀센
북미 개봉: 2006년 5월 26일
한국 개봉: 2006년 6월 15일
영화 <울트라맨>을 구성하는 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파일럿 마키 슌이치의 이야기로,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아들 츠구무를 비행기에 태워주겠다는 약속을 지켜 가는 과정이다. 다른 하나는 외계에서 온 괴물에게 연인 우도 타카후미를 빼앗긴 자위대원 미즈하라 사라의 이야기. 미즈하라는 괴물로 변해버린 연인을 처치해야 한다는 감정의 혼란을 이겨내고 임무를 성공시켜야만 한다.
이 두 이야기는 마키가 비행 도중 정체불명의 붉은 발광체와 충돌하는 순간 하나로 합쳐지게 되는데, 이 발광체는 앞서 언급한 외계 괴물, 즉 ‘비스트 더 원’을 물리치기 위해 나타난 빛의 거인 ‘울트라맨 더 넥스트’로서 지구에서 활동하려면 마키와 일심동체로 융합해야 한다. 하지만 마키는 푸른 발광체와 융합하여 괴물이 된 우도처럼 적으로 오해 받아, 미즈하라가 소속된 자위대 대 바이오 테러조직에 의해 구속당하고 아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어버리는데…
찬반양론 속에 종영한 TV 시리즈 <울트라맨 넥서스>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울트라맨>은 ‘울트라맨의 새로운 부활’을 모토로 어른들과 그 자녀 세대 모두를 아우를 작품을 만든다는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노선을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히 제시한다. 이 영화는 결국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주인공 마키는 어린 시절 하늘을 나는 전투기를 우연히 본 것을 계기로 파일럿의 꿈을 이루었으며, 역시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아들 츠구무에게도 비행이라는 특별한 체험을 선사하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꿈과 이상.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이룰 수는 없다.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 의지를 통해 현실로 바꿀 수 있는 법. 단순하고 쉬운 내용이지만, 이렇게 직선적으로 돌파하며 보여주는 것, 그리고 이렇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의 좋은 점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축인 미즈하라와 우도의 이야기는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마키 쪽이 꿈을 성취하는 과정을 그린 밝은 이야기라면, 미즈하라의 이야기는 가슴 아픈 상실과 내면의 갈등을 그린 어두운 쪽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축 사이에서 적절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써 작품의 집중도도 반감되고 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밝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어둡지도 않은 어정쩡한 정서가 나왔다. 비스트 더 원의 폭주 과정을 좀 더 명확하게 그렸더라면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그러기엔 가족 영화라는 태생적 한계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물론 이러한 암흑면은 후속작인 <울트라맨 넥서스>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독자적인 흐름을 만들어내긴 한다. 클라이맥스에서 울트라맨의 필살광선 에볼레이 슈트롬을 맞고 무수한 빛의 입자로 분해되어 버리는 비스트 더 원의 모습을 보노라면, 적을 물리쳤다는 통쾌함보다는 진짜 재난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불길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넥서스>를 먼저 봐서일 테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이 영화의 미즈하라 축이 남긴 어둠의 뒷맛은 비스트 더 원의 최후와 미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세상이 밝은 부분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진리를 실감케 한다.
마키의 갈등이 후반부 츠구무의 어른스러운 대사로 인해 너무 쉽게 해결되어버리고 말았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는데, 오히려 영악스러울 정도로 똑똑한 요즘 아이다운 모습을 잘 보여주었고, 상투적으로 흐를 수 있는 장면의 함정을 피해갔다는 점을 사고 싶다.
시각효과는 전통적인 특촬과 CG가 매력 있게 조화되어 있다. 대부분 CG로 표현된 공중전 시퀀스의 경우 ‘그려진’ 흔적이 종종 역력히 드러나기는 하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다는 결의와 참신함도 느껴졌다. ‘내가… 하늘을 날고 있다!’ 라는 마키의 대사를 그대로 실감할 수 있는 울트라맨의 비상 장면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미니어처 대신 울트라맨과 괴수를 실제 신쥬쿠 도심 촬영 커트와 합성하여 만들어낸 격투 장면이나 속도감 넘치는 공중전 장면도 훌륭했다. DVD의 5.1 채널 사운드가 장면의 박력을 더욱 높여주기는 했지만, 역시 극장에서 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각본과 연출 상 미진한 부분이 있음에도 <울트라맨>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순수한 이상주의와 하늘을 하는 환상이 공존하는 이 영화는 아직 동심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달콤하고 이따금씩 무서운 꿈과도 같다. 헤이세이 울트라맨 극장판 중에서도 기억에 오래 남을 쾌작이다.
원제: ULTRAMAN
감독: 코나카 카즈야
주연: 벳쇼 테츠야, 토야마 쿄오코, 오스미 켄야, 유키 나에, 히로타 료헤이
일본 개봉: 2004년 12월 18일
한국 미공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