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리비언>(Oblivion)의 무대는 2077년의 지구이다. 60년 전, ‘스캡’이라는 호전적인 외계 세력의 침공으로 핵전쟁이 벌어진다. 인류는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지만, 지구는 전쟁의 영향으로 사람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황폐한 별이 되고 만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인류는 복구 시설과 감시용 로봇(드론)을 관리하기 위한 소수의 기술자 및 관리자들만 남긴 채 모두 우주로 떠나 있다. 그러나 스캡의 잔당은 지구에 남아 계속 저항을 이어 간다.
옛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척박한 지구를 무대로 한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아름다운 화면 위에서 펼쳐진다. 인류 문명이 번성했던 자리는 아직 꽤 많은 상처가 남아 있음에도, 자연의 재생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는 흔적을 보여 주는 듯하다. 고층 빌딩과 그곳을 채웠던 사람들이 사라진 지구는 마치 태고와도 같은 모습인데, 그 위에 주인공의 추억과 상념이 덧씌워져 아련하게 그리운 정서를 이끌어 낸다. 그렇게 기억이 서려 있는 공간에 자그마하게 자리잡은 주인공과 동거인의 거주-통제 시설은 곡면과 직선이 이상적으로 어우러진 미니멀한 디자인과 최첨단 기능이 탑재된 미래 그 자체이다. 이 절묘한 시각적 엇갈림은 끊임없이 화면을 채우는 M83의 음악으로 화룡점정, 보는 이의 관심을 한껏 잡아 끄는 페이스 좋은 전개와 함께 꽤나 훌륭한 전반부를 엮어 낸다.
여기서 제시되는 주제는 ‘기억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이미 원시 상태보다도 못한 폐허가 되어 버렸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는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되살려 낼 수 있다. 주인공 잭에게는 (어째서인지) 전쟁 이전의 기억이 남아 있어 좋았던 옛 시절,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었던 과거를 끊임없이 그리워한다. 이렇게 이끌려 나온 정서는 (동반자가 있음에도) 고독한 잭의 심리와 우리의 시선을 비교적 잘 묶어 놓는다. 물론 이야기의 트릭도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유감스럽게도 이야기는 중반을 벗어나 본디의 목적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급격히 향기를 잃는다. 근사하게 내놓았던 서두의 모든 의문점은 하나같이 어디서 본 듯한 진부한 설정과 전개로 풀려나간다. 사실 그 자체가 진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허겁지겁 마무리 짓는 모습은 마치 훨씬 못 만든 다른 영화를 떼어다 붙여 놓은 것처럼 허술하다. 중, 후반부가 제대로 연출되었다면 눈시울을 적실 수 있었을 법한 마지막 장면을 보라. 따뜻한 목소리로 영화의 주제를 살짝 에두른 이야기로 전하는 대신, 강의 노트를 무감각하게 읽는 딱딱한 목소리로 ‘주제는 이렇습니다, 여러분’이라며 부자연스럽게 주입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은 만족도 실망도 아닌 애매함이다. 흥미로운 소재로 어떤 부분은 아주 맛깔스럽게, 어떤 부분은 하품과 실소가 나오도록 빚어 냈는데, 그 격차가 굉장히 큰데도 전체를 놓고 보면 그게 또 그렇게 거슬리지만은 않는 것이다. 아름다운 화면과 정교하고 풍성한 음향, 인상적인 음악, 엔드 크레딧을 장식하는 멋진 주제가(영화 제목과 같다), 그리고 안드레아 라이즈보로가 영화를 본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운을 남기는 걸 보니, 결론적으로는 비록 애매하긴 애매하지만 그리 싫진 않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적어도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다음 작품을 보고 싶을 만큼은 말이다.
원제: Oblivion
감독: 조셉 코신스키
주연: 톰 크루즈, 모건 프리먼, 올가 쿠릴렌코,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니콜라이 코스테르 발다우
북미 개봉: 2013년 4월 19일
한국 개봉: 2013년 4월 11일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The Dark Knight Rises)를 제작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좀 더 표면적인 단계에서, 저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프랜차이즈의 세 번째 영화 가운데 사람들이 제목을 댈 수 있는 것이 과연 몇 편이나 될까?”
과연 그렇다. 보통의 경우 어떤 영화가 성공하면 한 편 정도는 속편이 나올 수도 있지만, 세 번째 편까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더 낮아질 것이다. 설령 만들어진다 해도, 그 가운데 우리가 즐겨 되새길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지 떠올려 보자. 내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스타 워즈 에피소드 VI: 제다이의 귀환>이 그렇고,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그렇다. 이 두 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성공적인 제3편이다. <백 투 더 퓨처 III>나 <리썰 웨폰 3>도 나쁘지 않았다. <대부 III>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상당히 볼 만하고 가치도 있는 영화이다. <스타 트렉 III: 스팍을 찾아서>나 <이클립스>도 괜찮은 제3편들이다.
이렇게 꼽아 보아도 열 편이 채 못 된다. 첫 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두 번째 편에서 그것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변주하는 데까지는 꽤 흥미롭다. 그런데 세 번째쯤 되면 그것도 슬슬 질리게 된다. 그리고 헐리우드의 경우에는, 많은 3편들이 1편의 설정이나 성공 요소로 되돌아갈 때가 많다. ‘이 1편으로의 회귀’는 헐리우드 3부작의 주요 특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맥이 빠지고, 결과적으로 보는 이의 마음에 남을 만한 영화가 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제3편의 실패담은 아마도 헐리우드에서 가장 빈번히 반복되는 실패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토퍼 놀런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수퍼히어로 영화 연작인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잇는 세 번째 배트맨 이야기,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는 과연 어떨까? 3부작의 징크스를 깨지 못한 범작(심지어는 졸작!)일까, 아니면 놀런이 의도했던 ‘사람들이 이름을 댈 수 있을 만한’ 세 번째 영화일까? 단언컨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는 3부작의 장엄하고 감동적인 결말이며, 거의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수퍼히어로 영화이다. 1편으로 돌아간다는 헐리우드 3부작의 클리셰를 따르는 듯하면서도, 진부함이 파고들 틈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여져 있고 놀라움과 의표를 찌르는 대목으로 가득하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시작되어 숱한 오르내림을 거쳤던 브루스 웨인의 담대한 여정은 이 3부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깔끔하고 뿌듯하게 막을 내리는 것이다.
전편 <다크 나이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을 배트맨이 가섬 시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 이야기로 이해했다. 처음 방랑을 떠나면서 했던, 가섬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며 자신의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배트맨은 스스로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는 그 어둠이야말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의 도입부에서 놀런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과연 어둠 속에서 배트맨은, 그리고 브루스 웨인은 서서히 마모되어 가고 있었다. 가섬 시에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진실을 아는 자의 마음 속에 평화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이는 경찰청장 제임스 고든도 마찬가지였다). 8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거짓 평화의 끝이 다가온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것을 산산조각낸 폭풍은 과거로부터 불어왔다.
놀런은 3부작의 마지막 편 두루마리를 풀어가면서 배트맨과 그와 같은 방향을 봐 왔던 선한 자들을 극단적인 절망과 고난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마치 거짓 평화를 연출했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듯이, 그들은 추락하고 쓰러져 좌절한다. 이 모든 고통의 행진을 용의주도하게 지휘하는 자가 바로 최강의 적, 베인이다. 베인은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는 달리 확고한 목적을 지니고 행동하는 테러리스트이다(이 역시 1편으로의 회귀이다). 그에게는 조커 못지 않은 천재적인 두뇌와 배트맨을 세 명쯤 합친 것 같은 가공할 만한 육체적 힘이 있고, 이를 이용하여 가섬 시의 소외되고 차별 당하는 하층계급을 수하에 둔다. 즉, 베인이 노린 것은 계급갈등을 불씨로 한 폭동이자 가섬 시의 철두철미한 파멸이었던 것이다. 베인이 일으킨 칼바람은 예상 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몰아친다. 모두가 휘말려 쓰러진다. 특히 배트맨에게는 한층 더 쓰라리다. 그는 숨겨져 있던 과거의 진실이 잇달아 드러나면서 처참하게 얻어맞는다. 이윽고 그가 믿고 있었던 이상적인 세상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배트맨은 속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한 그를, 베인은 철저히 짓밟아 어두운 동굴 속에 던져넣는다.
여기서 과거와 연결되는 또 하나의 고리. “우리가 왜 넘어지는 줄 아니, 브루스?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머스는 어린 시절 우물에 떨어졌던 그를 구조한 뒤 그렇게 말했다. 되돌아 보면 놀런의 배트맨 시리즈는 쓰러지거나 떨어져 다친 웨인이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들이었다. <배트맨 비긴즈>는 웨인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이었고,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이 된 웨인이 설사 어둠 속일지언정 그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는 그가 어둠을 깨고 일어나 스스로 구원하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일 것이다. 웨인은, 그리고 배트맨은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혼자의 힘으로만 구현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스로를 모질게 소모해 왔던 것은 아닐까.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배트맨이 없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그동안 자신을 옥죄어 왔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만이 웨인이, 그리고 가섬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 아닐까.
놀런은 보는 이들을 그 길로 안내하면서 앞선 두 편을 통해 구축된 설정을 발전시키는 한편,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던 수많은 복선들을 끌어모아 정리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드러내 보인다. 그의 연출은 마치 수천 조각의 퍼즐을 빠른 속도로 리드미컬하게 끼워 맞춰 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가 새로운 이야기이면서도 3부작의 일부라는 점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그는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아예 처음부터 붙잡은 채, 이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도록 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우직하게 따라간다. 등장인물이 더 많아진 데다 다소 복잡한 플롯을 전개할 동력을 얻기 위해 초반부는 조금 산만하게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일단 동력을 충전한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 지축을 울리며 진격하기 시작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이후 가장 훌륭한 3부작의 완결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의 매듭짓기가 <다크 나이트>의 정서적 충격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에 버금가는 파급력을 지닐 수 있는 영화가 많다는 게 이상하다(우리는 때때로 기적을 당연지사로 여길 때가 있다)! 놀런은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에서도 전편의 장점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이다. 정교한 플롯과 현실적인 물리법칙의 엄정하면서도 파격적인 적용, 모범적인 연기, 압도적인 스펙터클로 관객의 감정에 호소하는 연출은 ‘절정’이라는 이야기의 특성에 힘입어 그 효과가 배가된다. 이를 통해 놀런이 빚어낸 세 편의 배트맨 신화는 완벽한 구조를 이루며, 하나의 탄탄하고 독창적인 배트맨 세계로 승화된다.
원제: The Dark Knight Rises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주연: 크리스천 베일, 마이클 케인, 게리 올드먼, 앤 해서웨이, 톰 하디, 조셉 고든 레빗, 마리옹 꼬띠아르, 모건 프리먼
북미 개봉: 2012년 7월 20일
한국 개봉: 2012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