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크레더블 헐크] (2008)

(C) Universal Pictures, Marvel Enterprises
(C) Universal Pictures, Marvel Enterprises

마블은 전편에 해당하는 이안의 <헐크>에서 기대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 불운한 영화는 지루하고 뭔가 뻥 하고 터져 주는 것이 부족하다는 혹평에 시달려야만 했다. 어떤 영화를 5년 만에 다시 만드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하지만, 마블 수퍼히어로 중에서도 헐크는 한 번의 실패로 묻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캐릭터이고, 추진 중인 <어벤저스> 프로젝트도 있으니 무리를 해서라도 되살려야만 했다. 그리하여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는 속편 아닌 속편이 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편과의 거리두기에 몰두한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전개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지루할 법한 부분은 과감하게 골라내고, 남은 자리를 액션으로 채워넣는 것이다.

문제는 골라내기가 좀 지나쳤다는 점이다. 각본이 명확하게 방향을 잡지 못해 어느 부분에서 힘을 주어야 하는지 헛갈린다. 에드워드 노튼과 제작사 사이에 알력이 있었다는 의혹이 공식적으로는 부인되었지만, 완성까지 겪었을 진통이 어느 정도 짐작되기는 한다. 그만큼 캐릭터를 공들여 묘사하지 못했기에 배너와 로스 부녀 사이의 갈등 구조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중요한 악역이 될 수도 있었던 블론스키는 단순한 싸움광에 머물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전개 상 여러 군데 맥이 끊기는 건 물론이며 때때로 동기를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도 눈에 띈다. 전편보다 유머도 늘어났지만 절반, 잘 봐줘서 3분의 1 정도는 먹히지 않는다.

영상 역시 지극히 평면적이다. 헐크는 좀 더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전편 이상으로 질감 표현이 훌륭한 대목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과의 편차가 의외로 크다. 만화의 페이지를 그대로 옮긴 듯한 영상과 과감한 편집 기법을 도입한 전편이 그리워지는 이유가 뭘까. 시각적인 참신함 면에서 이 영화는 오히려 퇴보해 있는 것이다. 그나마 액션 장면은 괴력과 괴력이 격돌하는 느낌을 비교적 잘 살렸고, 템포도 매우 빨라 보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즐겁다. 클라이맥스에서 조금 더 강하게 나갔더라면 좋았겠지만, 이번에는 헐크의 영웅성도 좀 더 명확히 드러내야 하기에 결정적인 순간에 억지로 자제한 듯한 느낌이다. 카메오는 <어벤저스> 프로젝트와 연관된 인물들도 있고, 예상 대로의 인물이 의외의 역할을 맡기도 한다.

결국 <인크레더블 헐크>는 2%도 아니고 20%쯤 부족한 영화이다. 전편의 실패를 만회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이해할 수 있고, 떡밥 영화로서의 사명감도 수긍할 수 있고, 속편답게 화끈한 대결을 보여주고자 작정한 의도도 좋았지만 이 모든 것이 헐크의 단단한 근육만큼 잘 뭉쳐지지는 못했다.

원제: The Incredible Hulk
감독: 루이 르테리에
주연: 에드워드 노튼, 리브 타일러, 윌리엄 허트, 팀 로스, 팀 블레이크 넬슨
북미 개봉: 2008년 6월 13일
한국 개봉: 2008년 6월 12일

[아이언 맨] (2008)

(C) Marvel Studios
(C) Marvel Studios

<아이언 맨>(Iron Man)을 보고 나서 느낀 것은 2002년 <스파이더맨>을 처음 본 뒤의 감동 그대로였다. 이야기와 캐릭터, 액션과 유머, 주제와 표현이 조화를 이룬 제대로 된 수퍼히어로 영화를 정말이지 너무나 오랜만에 만났다는. 그러나 <스파이더맨> 이후 마블 영화는 부침이 심했다. <헐크>는 지나치게 진지했고(물론, 나는 그런 접근 방식도 좋아했지만), <데어데블>과 <엘렉트라>, <판타스틱 포>는 너무 얄팍했다. < X-멘 > 시리즈는 3편에서 1, 2편의 아우라를 잃었다. <스파이더맨 3>마저 찬반양론이 분분했다. 이대로 가다간 마블 영화에 질려버릴 것만 같았던 바로 그때, 이 철갑 사나이가 나타난 것이다.

<아이언 맨>은 균형잡힌 수퍼히어로 영화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명확한 캐릭터, 완급이 잘 조절된 이야기 연출, 충분한 볼거리 등 성공적인 오락영화의 3박자가 맞아 떨어진다. 각본에 전혀 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작품 전체에 스며든 활기가 거슬리지 않게 가려 준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는 캐스팅이 빛을 발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귀네스 팰트로우의 궁합은 환상적이다. 특히 다우니 주니어의 토니 스타크는 예측불허의 사고뭉치가 수퍼히어로로 변모하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묘사했다. 돈이 너무 많고 머리도 지나치게 좋은 그는 타락의 가능성도 아슬아슬하게 보여 주는데, 이에 대해서는 속편에서 더 상세히 다루어질 것 같다. <아이언 맨>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는 관객은 결론을 섣불리 내리지 말 것이다.

원제: Iron Man
감독: 존 파브로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귀네스 팰트로우, 테렌스 하워드, 제프 브리지스, 클라크 그렉
북미 개봉: 2008년 5월 2일
한국 개봉: 2008년 4월 30일

 

[블레이드: 트리니티] (2004)

(C) New Line Cinema
(C) New Line Cinema

<블레이드> 시리즈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주인공의 카리스마를 능가하는 강력한 악역들이다. 1편의 프로스트는 스티븐 도프의 뺀질거리는 반항아적 이미지를 잘 살려낸 연기 덕에 무뚝뚝한 살인 기계에 가까웠던 블레이드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고, 선과 악(적어도 이 시리즈의 세계에서 흡혈귀는 영원한 악의 상징이다)의 뚜렷한 대비를 보여주면서 클라이맥스의 검술 대결 시퀀스를 기억할 만한 대목으로 만들었다.

2편에 등장한 리퍼는 근래 들어 가장 흉악한 괴물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줌으로써 2000년대 최고의 무비 몬스터 가운데 하나로 일찌감치 자리잡았다. 문자 그대로 악마의 아가리 그 자체인 끔찍한 모양으로 갈라지는 턱, 햇빛 이외에는 절대로 죽일 수 없는 끈질긴 생명력은 물론, 인간과 흡혈귀 모두에게 위협적인 존재라는 강렬한 캐릭터는 ‘사신(死神)’이라는 이름값을 해내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블레이드> 시리즈는 주인공 블레이드가 악을 처단하는 과정이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그의 싸움에 끝이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불길하고 암울한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 ‘블레이드가 있으니 문제 없어!’라는 명제가 개입되는 순간, 지금까지 지탱해왔던 시리즈의 매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시리즈의 완결편인 <블레이드: 트리니티>는 바로 그러한 입장에서 주인공을 바라본다. 뉴 라인 시네마의 로고가 사라지자마자, 우리는 한니발 킹의 확 깨는 내레이션을 듣게 된다. 내용 자체는 1편에서 블레이드가 했던 대사와 그리 다르지 않지만 킹의 쾌활한 말투는 영화의 방향을 시작부터 틀어 놓기에 충분했다. 뒤이은 첫 시퀀스는 관객의 흥미를 돋구기는커녕, 이미 작품 전체에 퍼지기 시작한 싸구려 액션 바이러스 때문에 대충대충 기워 놓은 수준에 머문다.

<블레이드 : 트리니티>는 견딜 수 없는 싸구려 투성이다. 최강의 적이라는 뱀파이어의 시조 드레이크는 오직 떡대만 들이밀고 있으며, 새로 등장한 아군 한니발 킹은 f자로 시작되는 욕설로 대사를 채우기에 급급하다. 이미 2편에서 바보 캐릭터로 전락해버린 위슬러는 어이없이 화면에서 사라지고, ‘세계는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설정으로 밀어붙인 조잡한 시퀀스들은 1편의 흡혈귀 회의 장면 하나 만큼의 정서적 울림도 주지 못한다.

유일하게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 캐릭터는 블레이드 뿐. 그저 3편 내내 말없이 흡혈귀들을 찢어발겨 왔기에 그리 보일 따름이다. 그나마 위슬러의 숨겨진 딸이라는 애비게일이 불어넣은 신선한 활력이 아니었다면 영화를 끝까지 보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팟에 채워 넣은 mp3를 들으면서 흡혈귀의 엉덩이를 걷어차는 호쾌한 모습은 블레이드를 처음 보던 순간을 연상시키는 멋진 이미지였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로서는 원래부터 얄팍했던 데이비드 S. 고이어의 각본을 그 자신이 직접 연출하다 보니 똑같이 얄팍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1, 2편의 각본도 그저 그랬긴 마찬가지지만, 영상을 능숙하게 다루는 감독들이 보기 좋은 결과물을 냈음을 상기한다면 이 가설이 뜬금없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정말로 좋아하는 연작물이 망가지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모든 팬들이 두려워하는 바일 터. 아아, 블레이드. 어쩌다가 그렇게 싸구려가 되어버렸나요?

원제: Blade: Trinity
감독: 데이비드 S. 고이어
주연: 웨슬리 스나입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제시카 빌, 라이언 레이놀즈, 파커 포시
북미 개봉: 2004년 12월 8일
한국 개봉: 2004년 12월 15일

[데스 노트: 라스트 네임] (2006)

(C) 「DEATH NOTE」 FILM PARTNERS
(C) 「DEATH NOTE」 FILM PARTNERS

영화를 보고 난 뒤, 이제 원작을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만화 [데스 노트]가 없었다면 영화 <데스 노트>도 없었겠지만, 대체로 실사판 각색물을 선호하는 나에게 이 두 편의 영화는 훌륭한 선물이었다.

원작의 라이토는 단행본 9권쯤 ‘빨리 죽어 버려!’ 라고 생각했을 만큼 정이 안 갔던 캐릭터. 구제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실사판 라이토는 잘못된 신념으로 행동하는 나쁜 놈이 분명했음에도 어딘가 착잡함을 느끼게 했다. 역시 나는 ‘살아 움직이는 것’을 봐야 제대로 납득하는 유형인 모양이다.

그리고 L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최고였다. 스포일러랄 것도 없지만, 이 실사판에서도 L은 죽는다. 그렇지만 이 버전의 L은 죽는 순간까지도 멋있었다.

어물쩡 넘어가려는 부분이 몇 군데 있기는 했지만 이번 속편은 전편보다 3배 쯤 더 낫고, 끝나고 나면 그런 단점들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거의 장엄하기까지한 결말은 원작을 가볍게 능가한다. 이것만으로도 만화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어진다.

원제: デスノート the Last name
감독: 카네코 슈스케
주연: 후지와라 타츠야, 마츠야마 켄이치, 토다 에리카, 카가 타케시, 나카무라 시도
일본 개봉: 2006년 11월 3일
한국 개봉: 2007년 1월 10일

[수퍼맨 리턴즈] (2006)

(C) Warner Bros. Pictures
(C) Warner Bros. Pictures

두서없이 떠오르는 여러 가지 감상들.

– 오프닝 크레딧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존 윌리엄스의 그 메인 타이틀 음악, 푸른 빛의 궤적을 남기며 우주를 날아다니는 그 크레딧 자막까지 똑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수퍼맨도 크리스토퍼 리브가 브랜든 라우스로 바뀌었을 뿐, 그 구도 그대로 재현했다. 게다가 엔드 크레딧에 리브와 부인에게 바치는 헌사까지. <수퍼맨 리턴즈>는 리처드 도너의 1978년작 <수퍼맨>을 영상과 주요 설정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클 것이다.

– 새로운 수퍼맨 브랜든 라우스는 조금 딱딱하다. 그렇지만 모범적인 수퍼히어로 역에는 오히려 잘 어울린다. 격렬한 감정이 필요한 장면까지 딱딱한 것이 다른 영화에서라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수퍼맨이기 때문에 용인할 만하다.

–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점은 ‘수퍼맨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이 변했다.’ 이다. 지금까지 수퍼맨은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모범생 캐릭터라 친근감이 떨어지고, 변화 가능성이 적으며 재미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한 세평을 의식한 듯 <수퍼맨 리턴즈>에는 크립톤 행성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온 수퍼맨이 느끼는 망향의 감정, 로이스 레인의 결혼과 출산에 의한 실연이라는 설정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수퍼맨의 초인적인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강력한 감정적 장애물로서, 그가 이에 반응하여 갈등을 겪다가 해결책을 찾아 가는 과정은 영화에서 가장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수퍼맨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로이스의 주위를 계속 겉돈다. 단지 약속이 있다며 데이트 신청을 거절한 로이스가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투시력으로 쫓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수퍼맨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른 안경과 수트를 벗고 옥상으로 날아가, 로이스에게 인터뷰 신청을 하고 함께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다. 약간은 진부하지만 방법은 맞았고, 결과적으로 보는 이도 동화된다. 마침내 수퍼맨은 새로운 고향인 지구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게 된다.

– 액션 시퀀스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실사와 CG와의 구별을 거의 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게 만들어졌으며 압도적인 박진감을 담아냈다. 셋 다 1978년작을 기초로 업데이트한 것들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예를 들어 <수퍼맨>에서는 로이스 레인을 헬리콥터에서 구조했다면 <리턴즈>에서는 비행기에서 구조한다는 식이다. 상황 종료 후 ‘그래도 비행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랍니다’ 라고 말하는 것까지. 하지만 총탄이 수퍼맨의 안구에 맞고 튕겨나가는 컷처럼 그때보다는 지금 더 어색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 삽입됨으로써 데자뷔를 상당히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 오히려 <수퍼맨 리턴즈>에서 가장 밋밋한 건 렉스 루터의 음모다. 물론 케빈 스페이시의 루터는 예상대로 훌륭했다. 스페이시는 진 해크먼보다 덜 우스꽝스럽지만, 그보다 훨씬 더 뻔뻔하고 사악하다. 사이드킥인 파커 포시도 의외로 재미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루터는 1978년작과 똑같은 수법으로 위기감을 조성한다. 30년 전에 비해 별다른 발전이 없는 것이다.

– 구름을 뚫고 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향해 비상하는 수퍼맨. 로이스를 안고 메트로폴리스의 마천루 사이를 조용히 비행하는 수퍼맨. <수퍼맨 리턴즈>는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이루어진 수퍼히어로 영화일 것이다.

– 팬들을 즐겁게 할 다양한 인용과 변주도 (당연히) 잔뜩 들어 있다.

– <수퍼맨 리턴즈>는 캐릭터나 설정의 근간을 뒤흔들어 완전히 다른 방향을 모색한 작품이 아니다. 영화적으로는 1978년작 <수퍼맨>을 2006년의 상황에 맞춰 새로이 만든 작품으로 봄이 타당하다. 기본에 충실하고 원전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으로 가득하다. 시각효과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지만, 스토리텔링은 시대착오적이 아닐까 할 만큼 눈높이다. 그럼에도 진부하지 않고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브라이언 싱어는 <X-멘>을 만들 때 그랬듯이, <수퍼맨 리턴즈>를 가장 수퍼맨다운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또 한 편의 걸작 수퍼 히어로 영화로 승화시켰다.

원제: Superman Returns
감독: 브라이언 싱어
주연: 브랜든 라우스, 케이트 보스워스, 케빈 스페이시, 제임스 마스든, 프랭크 랜젤라
북미 개봉: 2006년 6월 28일
한국 개봉: 2006년 6월 28일

[X-멘: 최후의 전쟁] (2006)

(C) 20th Century Fox
(C) 20th Century Fox

가장 아쉬운 점은 1, 2편의 장점이었던 ‘사려 깊음’이 사라졌다는 것. 브렛 래트너의 연출은 브라이언 싱어만큼 섬세하지 못했다. 뮤턴트 치료제를 맞고 보통 인간이 되어버린 미스틱을 버리고 떠나는 매그니토는 내가 알고 있던 그가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감정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갑자기 끼어든 피닉스에 대한 설정도 불편했다. 2편의 결말에서 진 그레이가 부활하리라는 암시가 있긴 했지만, 정작 부활 과정에서 ‘왜’와 ‘어떻게’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X-멘> 정도의 프랜차이즈라면 원작 만화의 골수팬들만으로도 충분히 장사가 되겠지만, 영화판은 그 범위를 넘어 ‘보통 관객들’까지 고려한 매체다. ‘원작을 읽어’ 라는 말 한마디로 영화의 완성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만드는 사람들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로그-바비 드레이크-키티 프라이드의 삼각관계 역시, 결말에서 로그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설명하기엔 부족했다(소설판에서는 반대의 전개라고 한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 서브플롯은 2편에서 비참할 정도로 비중이 줄어들었던 로그를 결국 확인사살하고 만다. 이는 사이클롭스도 마찬가지이다.

액션은 3부작 가운데 최고다. 새로운 뮤턴트의 등장과 그들 고유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장면의 연속. 클라이맥스는 1편부터 이어져 온 로건과 진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서도 충분히 기능했다.

20년 전을 묘사한 도입부는 외전의 예고편일까. 엔젤은 마지막 장면의 그림 만들기를 위한 필수 요소였나. 3부작의 결말을 어떻게 내긴 했지만, 몇몇 치명적인 실수를 비롯한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원제: X-Men: The Last Stand
감독: 브렛 래트너
주연: 휴 잭먼, 할리 베리, 패트릭 스튜어트, 이언 맥켈런, 팜케 얀센
북미 개봉: 2006년 5월 26일
한국 개봉: 2006년 6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