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멘: 퍼스트 클래스] (2011)

(C) 20th Century Fox, Marvel Entertainment
(C) 20th Century Fox, Marvel Entertainment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X-멘>과 그 속편 <X2>가 그토록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다름’을 ‘틀림’으로 오인하는 인간의 편견과 그것으로부터 가지를 친 차별과 소외, 억압 그리고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수퍼히어로 영화라는 틀에 요령 있게 녹여냄으로써, 대중영화/장르영화의 참신한 전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싱어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힘을 지녔다는 이유로 고통 받아야 했던 뮤턴트들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찾아나서는 여정을 섬세하고 현실적으로 묘사하여, 오락은 물론 주제 의식도 탄탄하게 갖춘 수퍼히어로 영화를 빚어냈다. 내가 보기에 이들 두 편의 영화, 특히 제1편 <X-멘>은 수퍼히어로 영화 붐의 결정적인 촉발점이 된 <스파이더맨> 이전에 이미 21세기 수퍼히어로 영화의 나아갈 방향을 성공적으로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관객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키는 분명한 주제 의식, 현실의 물리법칙을 최대한 준수하면서도 수퍼히어로의 신화적 매력을 결코 등한시하지 않은 세밀하고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은 <X-멘>의 뒤를 이었던 수많은 수퍼히어로 영화 가운데 불과 몇 편만이 제대로 이뤄냈을 뿐이다.

싱어는 이 프리퀄 <X-멘: 퍼스트 클래스>(이하 ‘퍼스트 클래스’)에서 제작자로 물러났고, 이번에는 <킥애스>로 재기발랄한 연출력을 뽐냈던 매튜 본이 감독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 싱어가 <X-멘>과 <X2>에서 유지했던 핵심은 <퍼스트 클래스>에서도 그 빛을 전혀 잃지 않았다. ‘그리 머지 않은 미래’로 시대 배경을 다소 느슨하게 제시했던 전편과는 달리 약 50여년 전의 이야기를 그린 <퍼스트 클래스>는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 60년대 인권운동이나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의 현대사와 X-멘의 결성이라는 수퍼히어로 세계의 신화를 과감히 연결한다. 이야기의 시공간은 더욱 구체적으로 설정되고, 전편에서 불거졌던 갈등의 원인과 숨겨졌던 이야기들이 밝혀지면서 X-멘의 영화 세계는 한층 더 복잡해지고 생동감을 띤다. <퍼스트 클래스>는 단순히 X-멘 영화 시리즈 여기저기에 뚫린 이야기의 공백을 메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 임무를 아주 훌륭히 수행하는 것은 물론, X-멘 영화 세계를 의미 있게 확장한다.

<퍼스트 클래스>의 연출이 완전무결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전편보다 등장인물이 두세 배는 늘어났고 그 대부분은 뮤턴트다. 아마도 그들의 초능력을 하나씩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상영시간의 절반은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X-멘 결성이라는 중요한 플롯 포인트를 엮어야 하고, 제목이 뜻하는 바에 맞춰 뮤턴트들이 훈련할 시간도 필요하다. 프리퀄이니만큼 X교수, 매그니토, 미스틱 등 주요 등장인물 각각의 이야기를 발굴, 발전시키되 전편과 무리 없이 연결시켜야 하고, 조단역급 뮤턴트들도 다루어야 한다. 원작 및 전편 팬들을 즐겁게 해 줄 인용과 서비스도 군데군데 뿌려 두어야 한다(그 중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것들도 몇 가지 있다).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 참전작이니 액션과 시각효과도 잘 짜 넣어야 한다. 장면이 매우 빠르게 바뀌어 가고, 그때마다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와 새로운 초능력을 선보이거나 이야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는 등 계속해서 못 보던 무엇인가를 한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정보량이 아무튼 굉장히 많다. 집중해서 보아야 하고, 가능하면 두어 번 다시 보기를 권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구성상의 난이도를 고려하면, <퍼스트 클래스>는 기적적으로 균형을 잡고 있다. 100%는 아니지만, 98% 이상이라고 할까. 단 한 장면도 낭비되지 않았고, 묘사는 간결하며 군살이 없다. 어쩌면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은 감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거슬릴 만큼은 아니다. 보고 나면 이야기와 주제가 깔끔히 정리된다. 무엇보다도 <X-멘>과 <X2>의 유전자를 한 톨도 흐트러트리지 않은 채 계승하고 있어 그 매력과 향기를 한껏 느낄 수 있으니 기쁘다. 배우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등장인물을 살아 숨쉬도록 연기했지만, 특히 제임스 매커보이와 마이클 파스벤더는 뛰어나다. 케빈 베이컨도 제법 위협적인 악역을 잘 소화했다. 그야말로 발군의 만듦새. 전편의 완성도에 버금가는 것은 물론, <아이언 맨>이나 <스파이더맨> 1, 2편을 잇는 ‘최고의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던 <X-멘: 최후의 전쟁>과 <X-멘 탄생: 울버린>에 실망했던 팬이라면, <퍼스트 클래스>는 가뭄 끝에 단비와도 같은 작품이다. 사실 이것은 보통 단비가 아니다. <퍼스트 클래스>는 멋진 X-멘 영화에 목말라 있었던 팬들을 촉촉하고 따뜻하게 적셔 주고, 그들의 가슴을 힘차게 뛰게 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바라 왔던 바로 그 X-멘 영화, 아니, 분명히 그 이상이다.

원제: X-Men: First Class
감독: 매튜 본
주연: 제임스 매커보이, 마이클 파스벤더, 제니퍼 로렌스, 케빈 베이컨, 니콜라스 홀트
북미 개봉: 2011년 6월 3일
한국 개봉: 2011년 6월 2일

[아이언 맨] (2008)

(C) Marvel Studios
(C) Marvel Studios

<아이언 맨>(Iron Man)을 보고 나서 느낀 것은 2002년 <스파이더맨>을 처음 본 뒤의 감동 그대로였다. 이야기와 캐릭터, 액션과 유머, 주제와 표현이 조화를 이룬 제대로 된 수퍼히어로 영화를 정말이지 너무나 오랜만에 만났다는. 그러나 <스파이더맨> 이후 마블 영화는 부침이 심했다. <헐크>는 지나치게 진지했고(물론, 나는 그런 접근 방식도 좋아했지만), <데어데블>과 <엘렉트라>, <판타스틱 포>는 너무 얄팍했다. < X-멘 > 시리즈는 3편에서 1, 2편의 아우라를 잃었다. <스파이더맨 3>마저 찬반양론이 분분했다. 이대로 가다간 마블 영화에 질려버릴 것만 같았던 바로 그때, 이 철갑 사나이가 나타난 것이다.

<아이언 맨>은 균형잡힌 수퍼히어로 영화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명확한 캐릭터, 완급이 잘 조절된 이야기 연출, 충분한 볼거리 등 성공적인 오락영화의 3박자가 맞아 떨어진다. 각본에 전혀 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작품 전체에 스며든 활기가 거슬리지 않게 가려 준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에서는 캐스팅이 빛을 발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귀네스 팰트로우의 궁합은 환상적이다. 특히 다우니 주니어의 토니 스타크는 예측불허의 사고뭉치가 수퍼히어로로 변모하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묘사했다. 돈이 너무 많고 머리도 지나치게 좋은 그는 타락의 가능성도 아슬아슬하게 보여 주는데, 이에 대해서는 속편에서 더 상세히 다루어질 것 같다. <아이언 맨>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하는 관객은 결론을 섣불리 내리지 말 것이다.

원제: Iron Man
감독: 존 파브로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귀네스 팰트로우, 테렌스 하워드, 제프 브리지스, 클라크 그렉
북미 개봉: 2008년 5월 2일
한국 개봉: 2008년 4월 30일

 

[수퍼맨 리턴즈] (2006)

(C) Warner Bros. Pictures
(C) Warner Bros. Pictures

두서없이 떠오르는 여러 가지 감상들.

– 오프닝 크레딧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존 윌리엄스의 그 메인 타이틀 음악, 푸른 빛의 궤적을 남기며 우주를 날아다니는 그 크레딧 자막까지 똑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수퍼맨도 크리스토퍼 리브가 브랜든 라우스로 바뀌었을 뿐, 그 구도 그대로 재현했다. 게다가 엔드 크레딧에 리브와 부인에게 바치는 헌사까지. <수퍼맨 리턴즈>는 리처드 도너의 1978년작 <수퍼맨>을 영상과 주요 설정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클 것이다.

– 새로운 수퍼맨 브랜든 라우스는 조금 딱딱하다. 그렇지만 모범적인 수퍼히어로 역에는 오히려 잘 어울린다. 격렬한 감정이 필요한 장면까지 딱딱한 것이 다른 영화에서라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수퍼맨이기 때문에 용인할 만하다.

–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점은 ‘수퍼맨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이 변했다.’ 이다. 지금까지 수퍼맨은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모범생 캐릭터라 친근감이 떨어지고, 변화 가능성이 적으며 재미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한 세평을 의식한 듯 <수퍼맨 리턴즈>에는 크립톤 행성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온 수퍼맨이 느끼는 망향의 감정, 로이스 레인의 결혼과 출산에 의한 실연이라는 설정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수퍼맨의 초인적인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강력한 감정적 장애물로서, 그가 이에 반응하여 갈등을 겪다가 해결책을 찾아 가는 과정은 영화에서 가장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수퍼맨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로이스의 주위를 계속 겉돈다. 단지 약속이 있다며 데이트 신청을 거절한 로이스가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투시력으로 쫓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수퍼맨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른 안경과 수트를 벗고 옥상으로 날아가, 로이스에게 인터뷰 신청을 하고 함께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다. 약간은 진부하지만 방법은 맞았고, 결과적으로 보는 이도 동화된다. 마침내 수퍼맨은 새로운 고향인 지구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게 된다.

– 액션 시퀀스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실사와 CG와의 구별을 거의 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게 만들어졌으며 압도적인 박진감을 담아냈다. 셋 다 1978년작을 기초로 업데이트한 것들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예를 들어 <수퍼맨>에서는 로이스 레인을 헬리콥터에서 구조했다면 <리턴즈>에서는 비행기에서 구조한다는 식이다. 상황 종료 후 ‘그래도 비행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랍니다’ 라고 말하는 것까지. 하지만 총탄이 수퍼맨의 안구에 맞고 튕겨나가는 컷처럼 그때보다는 지금 더 어색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 삽입됨으로써 데자뷔를 상당히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 오히려 <수퍼맨 리턴즈>에서 가장 밋밋한 건 렉스 루터의 음모다. 물론 케빈 스페이시의 루터는 예상대로 훌륭했다. 스페이시는 진 해크먼보다 덜 우스꽝스럽지만, 그보다 훨씬 더 뻔뻔하고 사악하다. 사이드킥인 파커 포시도 의외로 재미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루터는 1978년작과 똑같은 수법으로 위기감을 조성한다. 30년 전에 비해 별다른 발전이 없는 것이다.

– 구름을 뚫고 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향해 비상하는 수퍼맨. 로이스를 안고 메트로폴리스의 마천루 사이를 조용히 비행하는 수퍼맨. <수퍼맨 리턴즈>는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이루어진 수퍼히어로 영화일 것이다.

– 팬들을 즐겁게 할 다양한 인용과 변주도 (당연히) 잔뜩 들어 있다.

– <수퍼맨 리턴즈>는 캐릭터나 설정의 근간을 뒤흔들어 완전히 다른 방향을 모색한 작품이 아니다. 영화적으로는 1978년작 <수퍼맨>을 2006년의 상황에 맞춰 새로이 만든 작품으로 봄이 타당하다. 기본에 충실하고 원전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으로 가득하다. 시각효과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지만, 스토리텔링은 시대착오적이 아닐까 할 만큼 눈높이다. 그럼에도 진부하지 않고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브라이언 싱어는 <X-멘>을 만들 때 그랬듯이, <수퍼맨 리턴즈>를 가장 수퍼맨다운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또 한 편의 걸작 수퍼 히어로 영화로 승화시켰다.

원제: Superman Returns
감독: 브라이언 싱어
주연: 브랜든 라우스, 케이트 보스워스, 케빈 스페이시, 제임스 마스든, 프랭크 랜젤라
북미 개봉: 2006년 6월 28일
한국 개봉: 2006년 6월 28일

[X-멘: 최후의 전쟁] (2006)

(C) 20th Century Fox
(C) 20th Century Fox

가장 아쉬운 점은 1, 2편의 장점이었던 ‘사려 깊음’이 사라졌다는 것. 브렛 래트너의 연출은 브라이언 싱어만큼 섬세하지 못했다. 뮤턴트 치료제를 맞고 보통 인간이 되어버린 미스틱을 버리고 떠나는 매그니토는 내가 알고 있던 그가 아니었다. 논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감정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갑자기 끼어든 피닉스에 대한 설정도 불편했다. 2편의 결말에서 진 그레이가 부활하리라는 암시가 있긴 했지만, 정작 부활 과정에서 ‘왜’와 ‘어떻게’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다. <X-멘> 정도의 프랜차이즈라면 원작 만화의 골수팬들만으로도 충분히 장사가 되겠지만, 영화판은 그 범위를 넘어 ‘보통 관객들’까지 고려한 매체다. ‘원작을 읽어’ 라는 말 한마디로 영화의 완성도를 포기한다는 것은 만드는 사람들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로그-바비 드레이크-키티 프라이드의 삼각관계 역시, 결말에서 로그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설명하기엔 부족했다(소설판에서는 반대의 전개라고 한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이 서브플롯은 2편에서 비참할 정도로 비중이 줄어들었던 로그를 결국 확인사살하고 만다. 이는 사이클롭스도 마찬가지이다.

액션은 3부작 가운데 최고다. 새로운 뮤턴트의 등장과 그들 고유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장면의 연속. 클라이맥스는 1편부터 이어져 온 로건과 진의 관계를 마무리하는 방법으로서도 충분히 기능했다.

20년 전을 묘사한 도입부는 외전의 예고편일까. 엔젤은 마지막 장면의 그림 만들기를 위한 필수 요소였나. 3부작의 결말을 어떻게 내긴 했지만, 몇몇 치명적인 실수를 비롯한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원제: X-Men: The Last Stand
감독: 브렛 래트너
주연: 휴 잭먼, 할리 베리, 패트릭 스튜어트, 이언 맥켈런, 팜케 얀센
북미 개봉: 2006년 5월 26일
한국 개봉: 2006년 6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