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 시리즈 새 북미판 블루레이 정보

고지라 탄생 60주년과 헐리우드 리메이크 개봉을 맞아, 본고장 일본의 토호와 마찬가지로 북미에서도 고지라 시리즈 블루레이 디스크가 여러 편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제1편인 1954년판 <고지라>가 개봉 2년 뒤인 1956년 재편집판 <괴수왕 고지라>로 공개되어 대성공을 거둔 이래, 북미에서는 극장, TV, 홈 비디오 등을 통해 시리즈 전 28편이 모두 소개되었다. 따라서 지금도 거의 전편을 DVD로 구입할 수 있거나 케이블 TV 등으로도 종종 볼 수 있는 환경은 내심 부럽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블루레이의 경우 아직까지는 출시가 활발하지 못하여 <고지라>(1954), <괴수총진격>(1968) 그리고 <고지라 VS 비오란테>(1989) 3편만이 나와 있었다. 일본에서도 시리즈의 절반 정도가 블루레이로 나온 뒤 약 4년 정도 공백기간이 있었는데, 이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는 올해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4월 이후 첫선을 보일 고지라 시리즈 북미판 블루레이 신작 및 출시 일정은 다음과 같다.

4월 1일
<킹콩 대 고지라> (유니버설)
* 고지라 시리즈는 아니지만, 같은 토호 특촬영화인 <킹콩의 역습>도 동시 출시.

5월 6일
<고지라 에비라 모스라 남해의 대결투>
<고지라 대 헤도라>
<지구공격명령 고지라 대 가이강> (이상 크라켄 릴리징)
<고지라 VS 킹기도라> + <고지라 VS 모스라> 합본
<고지라 VS 메카고지라> + <고지라 VS 스페이스고지라> 합본
<고지라 VS 디스트로이어> + <고지라 X 메가기라스: G소멸작전> 합본
<고지라 X 모스라 X 메카고지라 토쿄 SOS> + <고지라: 파이널 워즈> 합본 (이상 소니 픽처스)

7월 22일
<괴수총진격>
<고지라 대 메가로> (이상 미디어 블래스터즈)

이들 타이틀은 모두 앞서 DVD로 출시된 바 있고, 이번에 블루레이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그런데 7월에 출시될 미디어 블래스터즈의 <괴수총진격>은 이미 나와 있다고 언급하지 않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루기로 하고, 우선 각 타이틀의 자세한 사양부터 확인해 보자. 북미판 타이틀은 부록이 매우 적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적지 않고, 작품에 따라서는 오리지널 일본 공개판이 아닌 북미 공개판이 실리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일본판 블루레이보다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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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대 고지라> (1962)

* 1962년 오리지널 일본판이 아닌 1963년 북미 공개판만을 수록. 미국인 배우들이 출연한 장면이 삽입되는 등 전면적으로 재편집되었으며, 영어로 더빙되어 있다.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2.3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음성: 영어 DTS-HD MA 모노
자막: 영어(청각장애인용), 프랑스어
상영시간: 91분
부록: 없음
출시일: 2014년 4월 1일
출시사: 유니버설 스튜디오 홈 엔터테인먼트
정가: 19달러 98센트

아울러, 고지라 시리즈는 아니지만 같은 토호 특촬영화이며 상당수의 제작진을 공유하는 <킹콩의 역습>도 유니버설에서 함께 선보인다. 참고 삼아 보시라.

<킹콩의 역습> (1967)

* <킹콩 대 고지라>와 마찬가지로, 1967년 오리지널 일본판이 아닌 1968년 북미 공개판만을 수록. 그렇지만 이 영화의 경우 영어 더빙만 되어 있는 정도여서 내용상 차이는 없다.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2.3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음성: 영어 DTS-HD MA 모노
자막: 영어(청각장애인용), 프랑스어
상영시간: 96분
부록: 없음
출시일: 2014년 4월 1일
출시사: 유니버설 스튜디오 홈 엔터테인먼트
정가: 19달러 98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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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에비라 모스라 남해의 대결투> (1966)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2.3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음성: 일본어 및 영어 DTS-HD MA 모노
자막: 영어
상영시간: 87분
부록: 예고편
출시일: 2014년 5월 6일
출시사: 크라켄 릴리징
정가: 14달러 98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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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대 헤도라> (1971)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2.3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음성: 일본어 및 영어 DTS-HD MA 모노
자막: 영어
상영시간: 85분
부록: 예고편
출시일: 2014년 5월 6일
출시사: 크라켄 릴리징
정가: 14달러 98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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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공격명령 고지라 대 가이강> (1972)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2.3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음성: 일본어 및 영어 DTS-HD MA 모노
자막: 영어
상영시간: 89분
부록: 예고편
출시일: 2014년 5월 6일
출시사: 크라켄 릴리징
정가: 14달러 98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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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VS 킹기도라>(1991) + <고지라 VS 모스라>(1992) 합본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1.8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음성: 일본어 및 영어 DTS-HD MA 2.0
자막: 영어, 영어(청각장애인용), 프랑스어
상영시간: 101분 (VS 킹기도라) / 102분 (VS 모스라)
부록: 예고편
출시일: 2014년 5월 6일
출시사: 소니 픽처스 홈 엔터테인먼트
정가: 19달러 99센트
* 본편의 울트라바이올렛 HD 디지털 카피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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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VS 메카고지라>(1993) + <고지라 VS 스페이스고지라>(1994) 합본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1.8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음성: 일본어 DTS-HD MA 5.1, 영어 DTS-HD MA 2.0 (VS 메카고지라) / 일본어 및 영어 DTS-HD MA 5.1 (VS 스페이스고지라)
자막: 영어, 영어(청각장애인용), 프랑스어
상영시간: 108분 (VS 메카고지라) / 108분 (VS 스페이스고지라)
부록: 예고편
출시일: 2014년 5월 6일
출시사: 소니 픽처스 홈 엔터테인먼트
정가: 19달러 99센트
* 본편의 울트라바이올렛 HD 디지털 카피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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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VS 디스트로이어>(1995) + <고지라 X 메가기라스: G소멸작전>(2000) 합본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1.8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VS 디스트로이어), 2.3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X 메가기라스)
음성: 일본어 및 영어 DTS-HD MA 2.0 (VS 디스트로이어) / 일본어 및 영어 DTS-HD MA 5.1 (X 메가기라스)
자막: 영어, 영어(청각장애인용), 프랑스어
상영시간: 102분 (VS 디스트로이어) / 106분 (X 메가기라스)
부록: 예고편
출시일: 2014년 5월 6일
출시사: 소니 픽처스 홈 엔터테인먼트
정가: 19달러 99센트
* 본편의 울트라바이올렛 HD 디지털 카피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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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X 모스라 X 메카고지라 토쿄 SOS>(2003) + <고지라: 파이널 워즈>(2004) 합본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2.3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토쿄 SOS), 2.40: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파이널 워즈)
음성: 일본어 및 영어 DTS-HD MA 5.1 (2편 공통)
자막: 영어, 영어(청각장애인용), 프랑스어
상영시간: 91분 (토쿄 SOS) / 125분 (파이널 워즈)
부록: 예고편, 제작 과정 (2편 공통)
출시일: 2014년 5월 6일
출시사: 소니 픽처스 홈 엔터테인먼트
정가: 19달러 99센트
* 본편의 울트라바이올렛 HD 디지털 카피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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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총진격> (1968)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2.3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음성: 일본어 5.1 및 2.0, 영어 2.0
자막: 영어
상영시간: 89분
부록: 없음
출시일: 2014년 7월 22일
출시사: 미디어 블래스터즈
정가: 19달러 99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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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대 메가로> (1973)

(C) Toho Co., Ltd.
(C) Toho Co., Ltd.

영상: 2.35: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음성: 일본어 5.1 및 2.0, 영어 2.0
자막: 영어
상영시간: 80분
부록: 없음
출시일: 2014년 7월 22일
출시사: 미디어 블래스터즈
정가: 19달러 99센트

미디어 블래스터즈에서 출시하는 두 편의 고지라 시리즈, <괴수총진격>과 <고지라 대 메가로>에 대해서는 사연이 있다.

먼저, <괴수총진격>은 지난 2011년 10월 북미판 블루레이 디스크와 DVD가 풍성한 부록과 함께 출시된 바 있다. 그러나 토호가 부록 가운데 일부 내용에 문제를 제기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가 중단되고 말았다. 자세한 사항은 불명이지만, 미디어 블래스터즈가 토호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은 부록을 일부 실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바로 다음 달(2011년 11월)에 나올 예정되었던 <고지라 대 메가로>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원래는 <고지라 대 메가로>도 여러 가지 부록이 실릴 예정으로 이미 제작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괴수총진격>에 얽힌 문제로 부록의 모든 내용을 토호가 점검하고 승인해야 했다. 이 과정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미디어 블래스터즈는 공백이 길어지는 것을 막고자 2012년 8월, <고지라 대 메가로> DVD를 부록 없이 본편만 달랑 담아 출시하였다. 그나마 오리지널 일본공개판과 일본어 원음, 무삭제 영어 더빙이 실린 최초의 정식 판본이었다. 블루레이는 나중에 부록이 모두 승인된 이후 내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와중에 또 사건이 터졌다. 2012년 9월에 풀린 <고지라 대 메가로> DVD 재판 가운데 일부 디스크가 착오로 인해 부록까지 담긴 초기 데이터로 제작된 것이었다! 이 디스크들은 실제로 아마존 등을 통해 유통되어 팬들을 혼란시켰다. 미디어 블래스터즈는 즉시 조치를 취하였으나 토호와는 또 한 번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실수로 유출된 ‘특별판’ DVD의 수는 500장에서 1,000장 정도로 추산. 예상 대로 경매 등지에서 상당한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절판된 <괴수총진격>의 블루레이/DVD 초도 출시분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로 두 작품의 북미판 블루레이/DVD 재출시는 당분간 요원한 것으로 보였는데, 최근 양사 합의의 결과로 다시 빛을 보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괴수총진격>과 <고지라 대 메가로> 모두 재출시를 허락 받는 대신 부록을 일절 싣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재출시판은 부록이 없다. 혹시라도 운 좋게 <괴수총진격> 초판이나 <고지라 대 메가로> 유출판(!)을 갖고 있는 팬이라면 소중히 간직하시라.

이 <괴수총진격>과 <고지라 대 메가로> 북미판 블루레이/DVD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은 미국의 아시아 장르영화 전문 블로그 ‘사이파이 저팬’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흥미가 있다면 읽어 보시라(아래 링크, 영문).

The Great GODZILLA VS MEGALON Mix-Up Mystery (사이파이 저팬 2012년 10월 22일자 기사)

다음 번에는 한국에 출시된 고지라 시리즈 홈 비디오 타이틀에 대해 써 보도록 하겠다.

출처: 사이파이 저팬 (SciFi Japan)

크레이그 본드의 매력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 이 글에는 <카지노 로얄>을 비롯한 크레이그 본드 시리즈의 내용 서술이 포함되어 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다면 주의하시라.

007 제임스 본드가 돌아왔다.

올해 2012년은 제임스 본드가 은막에 처음으로 등장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작가 이언 플레밍이 1953년 발표한 소설 [카지노 로얄]을 통해 첫선을 보였던 가공의 첩보원 본드는 이후 여러 편의 속편 소설들과 라디오 드라마, TV용 영화, 만화 등의 주인공으로 활약했고, 1962년부터는 <살인 번호>를 시작으로 대중문화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장편영화 시리즈도 스물 세 편이나 만들어졌다(번외편까지 합치면 스물 다섯 편).

제임스 본드 영화는 역사상 가장 많은 편수가 만들어진 시리즈는 아니지만,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은 시리즈 가운데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5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세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변치 않는 인기를 누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대중을 본드 시리즈로 끌어당겼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게 마련이다.

본드 시리즈의 인기 요인을 꼽자면 흥미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이야기, 세계 각국에서 담아 온 다채로운 배경(특히 해외여행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과거에는 더욱 더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박력 넘치도록 연출된 액션, 때로는 아기자기하고 때로는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멋진 특수차량과 비밀무기들, 본드 걸,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부른 주제가와 훌륭한 작곡가들이 만든 사운드트랙, 호쾌하고 현실도피적인 욕구를 채워 주는 모험담… 만일 이러한 인기 요인이 만질 수 있는 물건이라면 양 손에 다 담기에도 벅찰 만큼일 것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본드 시리즈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이자 매력이라면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 자신일 것이다. 특히 영화 속 본드는 거의 초인에 가까운 임무 수행 능력과 남성적 매력이 극대화된 인물로 묘사된다. 스파이 중의 스파이, 남자 중의 남자인 것이다. 이렇게 완벽한 인물이 온갖 난관을 넘어 임무를 완수하고 아름다운 본드 걸과 함께 망중한을 즐기는 결말로 이루어진 영화가 관객을 매료시키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본드를 지난 50년 동안 여섯 명의 배우들이 연기해 왔다. 제1대 숀 코너리(출연작 수 번외편 제외 6편), 제2대 조지 레젠비(1편), 제3대 로저 무어(7편), 제4대 티모시 달튼(2편), 제5대 피어스 브로스넌(4편) 그리고 현역인 제6대 대니얼 크레이그(현재까지 3편)가 그들이다. 이들은 각자 본드로 살아 숨쉬었던 스물 세 편의 영화를 각기 다른 이유로 빛나게 했고, 관객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각기 다른 배우들에게, 또는 그들 모두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줌으로써 보답했다. 워낙 오랫동안 많은 편수가 제작된 영화 시리즈인데다가, 같은 가상 인물을 여러 명의 배우들이 연기했기 때문에 본드는 동일인물임에도 편마다 여러 가지 매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관객들이 특정한 배우가 분한 본드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본드를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나의 베스트 본드는 대니얼 크레이그이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라 내 경험에 한정된 바이지만, 흔히들 제1대 본드였던 숀 코너리를 최고의 본드로 꼽는 경우가 많은 듯 싶다. 조지 레젠비는 떡대 말고는 별달리 내세울 것이 없었고, 로저 무어는 좀 느끼했으며, 티모시 달튼은 좀 뻣뻣했고, 피어스 브로스넌은 그냥 무난했고, 그러니 코너리가 짱! 이라는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걸까. 뭐 다 좋다. 내 경우는 무어의 출연작인 <나를 사랑한 스파이>로 본드 시리즈를 처음 접했고, 아무래도 첫 체험이어서인지 그 후로도 여러 편의 시리즈를 보았지만, 몇 년 전까지는 이 영화가 시리즈 가운데 가장 좋았다(칼리 사이먼의 주제가 “Nobody Does It Better”는 지금 들어도 살살 녹는다). 무어에 대해 말하자면, 본드의 플레이보이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배우였다. 적어도 내게는.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2006년 대니얼 크레이그의 첫 본드 출연작이자 시리즈의 리부트인 <카지노 로얄>을 감상하게 되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여기는 그럴 만한 자리가 아니므로 그 영화의 장점을 일일이 나열하진 않겠지만, 분명히 말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카지노 로얄>이 ‘혁신’이었다는 점이다. 스무 편이 넘는 장기 시리즈를 이어가다 보면 매너리즘과 피로감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그야말로 철두철미하게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감독인 마틴 캠벨은 본드를 90년대에 훌륭히 적응시킨 수작 <골든아이>(1995)를 연출한 인물이었는데, <카지노 로얄>로 같은 목적을 다른 시대에서 더 훌륭하게 이룬 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니얼 크레이그가 있다. 2005년 그가 본드 역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던 비아냥 어린 목소리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금발이라 원래 설정에 맞지 않는다느니(플레밍의 소설 속 본드는 흑발이다), 너무 투박한 마스크라느니, 성적 매력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얘기들. 하지만 외모나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크레이그 본드는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중요한 건 배우의 머리카락 색깔이나 얼굴이 아니라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이 어떻게 행동하고 표현되는가이다. 어떻게 보면 선배들과는 달랐던 크레이그의 다소 무색무취한 이미지가 제작진이 의욕적으로 모색하고 있었던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성에 적합했던 것이 아니었나 한다. 마치 스케치북을 가득 채운 백지처럼 말이다.

제작진이 선택한 시리즈의 중심적 변화 가운데 하나는 본드를 예전보다 훨씬 더 인간적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 시작에 해당하는 <카지노 로얄>은 기존 시리즈의 리부트로서 본드의 초기 임무와 성장담(!)을 그린 이야기라는 점, 섬세한 심리 묘사에 집중한 훌륭한 각본, 크레이그를 비롯한 주요 배우들의 호연 등으로 참신한 본드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 21세기 본드 시리즈에서 크레이그는 여전히 초인적인 첩보원이지만(그것이 본드의 본질이자 시리즈의 전통이므로), 그럼에도 좀 더 상처 받기 쉽고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 본드의 모습을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었다. 완벽한 인물로 알고 있던 그가 실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결점 투성이이기도 합니다, 라는데 어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을까.

본드의 인간적 매력이 가장 풍부하게 드러나는 시점은 그가 운명의 여인 베스퍼 린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이다. 임무를 위해 여자와 살을 섞곤 했던 본드는 린드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면서 첩보원이라는 직업마저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극 후반부 린드가 이중첩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어 비참한 죽음을 맞으면서 본드의 절망감은 극에 달한다. 본드 최대의 위기가 부비 트랩이 아닌 사랑했던 여인의 배신이라니! <카지노 로얄>의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살인면허> 이후 본드의 감정이 가장 격정적으로 드러난 대목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시련을 겪으면서 첩보원으로서의 본드는 더욱 단단해지고 한 단계의 성장을 이룬다. 그것이 냉혹한 이 세계의 생존 법칙. 본드에게 그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존재가 바로 직속상관 M이다. 고아가 된 본드를 거두어 MI6 최고의 첩보원으로 키운 M은 그에게 마치 양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처럼 묘사된다(본드가 M을 호칭할 때 쓰는 ‘ma’am’이라는 표현은 영국식 발음 때문에 때로는 ‘mom’처럼 들린다. M이라는 이니셜은 또 어떤가). 본드 역시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M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조직의 이익과 본드 개인의 의지가 충돌할 때면, M은 여지없이 조직의 편을 든다(물론 그 역시 로봇은 아니므로 고심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본드와 M의 애증관계 역시 크레이그 본드 시리즈를 흥미롭게 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본드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극적 장치로 훌륭하게 기능한다.

그리고 이렇게 편을 거듭하면서 축적해 왔던 모든 것이 신작 <스카이폴>에서 한꺼번에 폭발한다. 본드는 도입부에서 상징적인 ‘죽음’을 맞고, 혹독한 ‘부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배후에는 M이 범할 수밖에 없었던 ‘원죄’가 있고 본드 역시 그 손아귀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에 맞서기 위해, 부활한 본드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어떤 지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대단원이 연출되는 것이다. <스카이폴>은 21세기라는 지금 이 순간, 제임스 본드가 왜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5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견뎌 온 이 시리즈가 어떻게 미래를 도모할 것인지를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게 보여준 영화이다. 크레이그는 <스카이폴>에서 자신만의 본드 이미지를 집대성한다. 투박한 얼굴에 금발인 제임스 본드. 상처 받고 절망하지만, 결국은 다시 단단해져 적을 찢어발기고 포효하는 수컷. 크레이그의 본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응축된 채 동시에 한 인물을 관통하는 어떤 흐름 그 자체가 된다. <스카이폴>이 끝나고 엔드 크레딧이 오르기 전, 007 테마곡이 극장 안을 가득 채우면서 50주년 기념 로고와 함께 ‘James Bond Will Return(제임스 본드는 돌아올 것이다)’이라는 약속의 메시지가 뜨는 순간, 그 순간의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크레이그 본드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 (2003)

(C) 「あずみ」制作委員会
(C) 「あずみ」制作委員会

일본 장르영화의 현재

25일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あずみ / 키타무라 류헤이 감독, 이하 <아즈미>)은 일본 장르영화의 현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란으로 신음하고 있는 전국시대의 일본.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더 이상의 비극을 막고자 반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을 미리 처단하기 위한 정예 살수 집단을 비밀리에 양성한다. 그 구성원은 전란으로 부모를 잃은 소녀 아즈미를 비롯한 10명의 고아들. 혹독한 훈련의 마지막 날, 둘씩 짝을 지어 서로를 베어야 하는 처절한 관문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5명은 오직 정적의 처단만을 위한 기나긴 여정에 나서게 된다.

<아즈미>는 기본적으로 전국시대라는 역사적 배경을 취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어떤 일본 시대극보다도 판타지 성격이 강하다. CG와 특수촬영이 잔뜩 사용된 화면과 시대가 뒤섞인 듯한 기괴한 스타일의 의상, 너무나 현대적인 대사를 읊는 아이돌 스타의 대거 기용 등 이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는 고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상상력의 산물이며, 가장 일본적인 소재를 사용했으면서도 전혀 일본적이지 않은 영화의 성격을 반영한다. ‘<아즈미>는 일본의 <킬 빌>’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사용될 만큼, 이 영화는 세계 어느 곳의 관객과 만나도 무난한 반응을 이끌어 내도록 계산적으로 만들어졌다. 더욱이, 소위 ‘컬트’ 코드로 영화판에 뛰어든 키타무라 류헤이 감독은 가뜩이나 과장된 설정의 이 판타지 시대극을 마치 <매트릭스>나 <이퀼리브리엄> 같은 감각으로 찍어 내어, 영화를 보고 나면 온몸에 과다 분비되고 남은 아드레날린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정도이다. 아즈미와 200명이 넘는 무사들이 맞붙는 클라이맥스의 대결전에서 수직으로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워크, 한 장면에서 액션의 속도가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등의 연출은 보통 일본식 칼부림 영화와는 확실히 차별된 이미지를 구현한다.

코야마 유의 동명 만화를 각색한 <아즈미>는 ‘오리지널 시나리오 보다는 안전한 원작을 택한다’는 현재 일본 상업/장르영화계의 두드러진 경향을 보여 준다. 창의적이고 신선하지만 상업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소재보다는 이미 인기가 검증된 만화나 소설, TV 드라마를 실사화/장편화함으로써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이러한 제작 풍토는 사실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동시에 일본 만큼 다양한 장르의 컨텐츠가 다른 형태의 미디어로 확대/재생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나라도 드물다. 작년에는 인기 드라마의 극장판 <춤추는 대수사선 2: 레인보우 브리지를 봉쇄하라!>나 <키사라즈 캐츠아이: 일본 시리즈> 등이 관객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올해에도 <캐산>, <큐티 하니>, <우미자루>, <데빌맨>, <시모츠마 이야기>, <철인 28호> 등 매스컴과 관객들의 주목을 받는 작품들은 대부분 원작의 각색물이며, 현재도 많은 만화와 소설, 애니메이션, 드라마가 실사화를 기다리고 있거나 그 과정에 있는 상태이다.

이렇게 안전 위주의 제작 방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장기 불황에 허덕이는 정체된 일본 사회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사회의 활력 저하는 새로움과 모험의 추구 보다는 안주와 향수를 자극하게 되고, 이러한 영향이 크리에이터로 하여금 복고적이고 친숙한 작품을 생산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70년대에 주도적인 영상매체로서의 자리를 TV에게 완전히 빼앗겼고, 80년대 이후에는 헐리우드 외화의 초강세와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작가군의 부진으로 몸살을 앓아온 일본 영화계의 고질적인 문제도 한몫을 했다. 물론 키타노 타케시와 같이 해외 평단에서 호평을 받거나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감독과 작품들은 꾸준히 있어왔지만, 정작 자국인 일본에서는 대중들의 외면을 받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실사화’의 열풍은 다양한 장르 속에 엄청난 양의 컨텐츠를 채워 넣은 일본의 대중문화라는 창고에 신제품을 만들어 쌓아놓기 보다는 현재 보유한 재고를 계속 꺼내 쓰고 있는 상황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 부진에 빠진 일본 장르영화의 미래는 과연 어둠 뿐일까?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단정적으로 어두운 전망만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도권과 인디펜던트가 명확히 구분된 일본 영화계의 이중적인 구조가 뛰어난 장르영화를 생산할 수 있는 기초 토양을 구축하고 있다. 일본에는 어느 장르든 제도권 이외의 시장과 팬층이 든든히 존재하는데, 당연히 이들을 위한 컨텐츠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많은 영화인들과 집단도 있다. 이러한 인디펜던트의 인력들이 제도권에 편입되어 상업영화계의 젖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링>의 헐리우드 리메이크 이후, 현재 일본영화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장르인 공포영화야말로 이러한 ‘비주류의 저력’을 멋지게 증명하고 있는 경우이겠다. 최근 <주온>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헐리우드 진출까지 이루어 낸 시미즈 타카시 감독도 원래는 <주온>을 극장용이 아닌 비디오용 소프트로 출시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며, 항상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미이케 타카시, 이미 거장이 된 쿠로사와 키요시 등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러 공포영화 감독들도 독립영화계에서 경험과 내공을 쌓은 뒤 제도권으로 진출한 인물들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장르영화를 무기로 나타난 <아즈미>의 키타무라 감독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상업영화의 최고봉이 되어 헐리우드로 건너가겠다는 야심을 공공연히 밝혔을 정도로 관객에게 철저히 서비스한다는 작품관을 갖고 있다. 장르영화의 핵심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키타무라 감독의 시각은 팔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철저한 경쟁의 세계에서 직접 몸을 부대끼고 터득한 지혜인 것이다. 초창기의 날카로움이 어느 정도 무뎌지기는 했지만, <아즈미>에서도 그의 재기 넘치는 연출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이는 그다지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소재로부터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이미지를 뽑아낸다(핏빛 장미를 물고 우아하게 일본도를 휘두르는 백의의 비죠마루!). 키타무라 감독의 독특한 영상 감각과 메이저 영화사의 자본이 행복하게 만난 결과로, 제도권 바깥과 상보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영화계의 이중구조가 가져다 준 혜택이기도 하다.

일본의 장르영화는 간단하게 요약할 수만은 없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과 변수가 존재하는 분야이다. 그러나 다양한 장르를 소비하는 다양한 취향의 관객층과 이들을 만족시키는 데 충분할 만큼 축적된 컨텐츠, 그리고 그 확대/재생산을 진두지휘하는 감독들의 존재가 일본 장르영화의 현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즈미>는 그러한 일본 장르영화의 특성이 하나의 작품에 모두 응축된 예이다.

키타무라 류헤이 (北村龍平)

1969년 오사카에서 출생. 17세 때 호주로 건너가 시드니 영상예술학교 영화과에 입학. 졸업 작품인 단편 <엑시트>가 연간 최우수 감독상과 코닥 어워드를 수상. 일본으로 돌아간 뒤 영화집단 네이팜 필름을 설립. 단 30만 엔의 제작비로 10일만에 완성한 액션 호러영화 <다운 투 헬>로 제1회 인디즈 무비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 이후 느와르 <히트 애프터 다크>를 거쳐 장편영화 데뷔작 <버서스>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음.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은 그의 최대 흥행작이며,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괴수영화 고지라 시리즈의 50주년 기념작 <고지라: 파이널 워즈>를 작업하고 있음. 이외에도 <지옥갑자원>(야마구치 유다이 감독)을 제작하였으며, TV 드라마 <스카이 하이>, 인기 비디오 게임 <메탈 기어 솔리드: 트윈 스네이크>의 데모 영상을 연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 중.

작품목록
<다운 투 헬> (1997)
<히트 애프터 다크> (1999)
<버서스> (2000)
<얼라이브> (2002)
<잼 필름즈> (2002 / <메신저> 에피소드 연출)
<아라가미> (2002)
<소녀검객 아즈미 대혈전> (2003)
<스카이 하이: 극장판> (2003)
<고지라: 파이널 워즈> (2004년 12월 공개 예정 / 현재 촬영중)

– 브레이크뉴스에 실은 글. 게재된 날은 2004년 6월 26일이다. 현재의 상황과 맞지 않는 내용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