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 (2011)

(C) Marvel Studios
(C) Marvel Studios

캡틴 아메리카, 또는 스티브 로저스라는 캐릭터를 떠올릴 때 느끼는 이미지는 강직함과 따뜻함, 이 두 가지다. 그는 굽히느니 부러지겠다는 각오로 불의와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고, 포기라는 것을 모르며,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는 것을 끝까지 싸우다 쓰러지는 것보다 굴욕적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약한 자와 동료에게 누구보다도 헌신하는 사람이다. 태어난 이후 꽤 오랫동안 강하다는 것, 남을 압도하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모르고 자라왔기에 그는 약한 자의 어려움을 잘 안다. 친구와 동료를 뜨겁게 사랑하기에, 어린 시절부터 알아왔던 친우를 잃은 슬픔은 그를 두고두고 괴롭히기도 한다.

이런 성격을 지닌 사람은 자칫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해 가까운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고, 스스로를 문제에 빠뜨릴 수도 있다. 때때로 그러한 문제들은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가 사랑하는 다른 이들의 것까지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나중 일일 테고,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의 탄생을 그린 영화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 이하 ‘퍼스트 어벤저’)에서 기대하거나 깊이 다룰 만한 주제는 아니다. 우리는 그저 1940년대 2차대전 중에 탄생한 애국주의 수퍼히어로가 70년의 시차를 건너뛰어 어떻게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할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퍼스트 어벤저>는 대단히 성공적인 탄생/부활기이다.

다른 훌륭한 수퍼히어로 영화와 마찬가지로, <퍼스트 어벤저>는 대번에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를 선보인다. 비록 몸은 허약하지만 마음 속 심지만은 굳건한 청년이라는 로저스의 각본상 캐릭터 설정과 묘사가 탄탄하고, 다소 경박한 이미지 탓에 캐스팅 당시 나의 기대감을 깎기도 했던 크리스 에반스는 로저스의 강직함과 따뜻함, 긍정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정의관을 성실히 표현했다. 따라서 로저스가 완벽한 신체조건을 지닌 초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충분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에반스가 캡틴 아메리카 수트를 입은 모습은 또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멋진가. 이제 크리스 에반스는 캡틴 아메리카이다.

주변 인물들의 묘사에도 공이 들어가 있다. 토미 리 존스의 체스터 필립스 대령, 헤일리 애트웰의 페기 카터, 스탠리 투치의 에이브러햄 어스카인, 도미닉 쿠퍼의 하워드 스타크는 특히 뛰어나다. 이들이 로저스와 맺는 관계와 화학작용은 다채롭고 생동감이 있다. 세바스찬 스탠의 버키 반즈와 덤 덤 두건을 비롯한 하울링 코만도, 리처드 아미티지의 히드라 암살자 하인츠 크루거, 토비 존스의 히드라 매드 사이언티스트 아르님 졸라 등 웬만한 조역들까지도 골고루,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보는 이가 정을 느낄 수 있도록 그려졌다. 이들이 펼쳐내는 이야기는 매끄럽고 경쾌하게 흐르는 수퍼히어로 영화의 왕도가 되고, ‘힘은 올바른 정신과 결합했을 때 의미를 지닌다’는 주제를 훌륭히 전달한다. 로저스와 카터의 은근한 로맨스도 기분 좋다.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수퍼 솔저가 된 로저스가 당초의 바람과는 달리 실전에 투입되지 못하고, 전쟁채권 및 모병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일련의 장면들이다. 캡틴의 원작 복장을 마음껏 희화화하기 때문에 만화의 오랜 팬들을 거슬리게 할 위험도 있는 대목이기도 한데, 굉장히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데다 오래된 수퍼히어로 캐릭터에 쌓인 먼지를 과감하게 털어내고, 새로운 탄생을 위한 과도기를 거치게 한다는 연출의도가 분명했기 때문에 오히려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또한 원작 만화 초기의 프로파간다적 성격과 전쟁/수퍼히어로 영화 장르에 대한 가벼운 패러디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유감스러웠던 부분이 없지는 않다. 악역 레드 스컬 / 요한 슈미트가 그렇다. 때때로 아주 위협적인 모습을 노련하게 풀어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존재감이 약했다. 레드 스컬은 캡틴 아메리카를 탄생시킨 것과 같은 혈청으로 초인적인 힘을 얻었지만, 악한 마음도 함께 증폭되었다는 설정의 캐릭터로서 이를테면 <스타 워즈>에서 포스의 어두운 면을 대표하는 다스 베이더와 닮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루크 스카이워커의 자리에 대입할 수 있는 캡틴 아메리카와 테제-안티테제 관계를 좀 더 탐구해 보았더라면 이야기도 더 풍부해졌을 것이고, 레드 스컬이라는 캐릭터의 존재감도 훨씬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 아쉽게도 이 영화에서 레드 스컬은 으름장만 놓다 주인공에게 얻어터지는 단순한 구식 악당을 벗어나지 못한다. 근래 수퍼히어로 영화, 특히 마블 영화에서 악당이 주인공 영웅에 비해 약하게 그려지는 경향이 두드러졌음을 떠올린다면 이것도 이제 하나의 전통이 된 것 같다. 그래도 휴고 위빙이 다소 어색한 독일식 액센트로 대사를 뱉어내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는 즐거웠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구식’이라서 마음에 든다. 2차대전, 나치, 히틀러의 초자연 현상에 대한 집착, 비밀조직, 스파이, 역사적으로 그 당시에 있을 수 없었던 오버 테크놀로지(여기서는 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기는 하지만), 영웅의 통쾌한 활약, 복고 취향을 자극하는 세트와 같은 여러 가지 볼거리와 음악, …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잃어버린 성궤의 추적자들>(레이더스) 같은 과거의 고풍스러운 영웅 이야기에서 이미 멋지게 써먹었던 요소들 아닌가. 또 <퍼스트 어벤저>의 감독 조 존스튼은 비슷한 요소를 듬뿍 집어넣은 또 다른 히어로 영화 <로케티어>를, 정확히 20년 전에 내놓지 않았던가.

더 나아가, <잃어버린 성궤의 추적자들>도 <로케티어>도 20세기 초반, 딱 <퍼스트 어벤저>의 극중 시대배경이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연속활극(시리얼)에서 멋지게 써먹었던 것들에 또 빚을 지고 있고. 그렇게 보면 <퍼스트 어벤저>는 영롱히 빛나는 연속활극 역사의 일부분이기도, 동시에 그 연속활극에 대한 애정 어린 헌정이기도 하다. 게다가 <퍼스트 어벤저>의, 아까 언급했던 ‘홍보대사 시퀀스’에 캡틴이 출연한 연속활극 장면이 나오기도 했으니 – 당연히 흑백으로 – 이 얼마나 재미있는 양파껍질 벗기기 놀이인가! <퍼스트 어벤저>는 내가 그러한 영화들을 보면서 자랐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그 영화들이 나에게 선사했던 즐거움과 흥분감을 고스란히 되살려 주었다. 비록 어떤 파격을 감행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나는 이 영화의 왕도적이고 온건한 보수성에 호감을 갖지 말아야 할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이제, <어벤저스>에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가까워졌다.

원제: 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
감독: 조 존스튼
주연: 크리스 에반스, 헤일리 애트웰, 토미 리 존스, 휴고 위빙, 도미닉 쿠퍼
북미 개봉: 2011년 7월 22일
한국 개봉: 2011년 7월 28일

[가디언의 전설] (2010)

(C) Warner Bros. Pictures
(C) Warner Bros. Pictures

‘영상은 좋지만, 이야기가 약하다.’ 광고나 뮤직 비디오 업계에서 영화로 건너온 감독들의 작품을 평할 때 관용구처럼 쓰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짧은 시간 안에 이미지와 그 속의 메시지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이들 매체와 좀 더 긴 호흡으로 이끌어야 하는 영화 사이의 큰 차이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사용되어 왔지만, 때로는 이 분야 출신 감독들이 ‘이야기를 다룰 줄 모른다’는 편견이 개입되어 종종 남용되기도 했다. 물론 그러한 편견에 값하는 영화들도 있기는 했다.

<가디언의 전설>(Legend of the Guardians: The Owls of Ga’Hoole)을 연출한 잭 스나이더 감독도 광고를 통해 유명세를 얻으며 영화계로 넘어왔다. 그렇지만 스나이더는 영상과 이야기를 독특한 감각으로 결합한 작품을 선보이면서 오히려 주목을 받아왔다. 데뷔작인 <새벽의 저주>부터 바로 전 작품인 <워치멘>까지, 스나이더는 폭발하고 질주하는 듯한 이미지를 살린 인상적인 장르영화를 만들었다. 관람 전까지 그 높은 기대치만큼이나 나를 불안하게 했던 <워치멘>만 해도, 스나이더는 복잡한 플롯과 강렬한 정치적, 시대적 메시지에 전혀 주눅들지 않은 채 그래픽 노블보다 더 그래픽 노블다운 영화, 이미지가 내러티브이고 내러티브가 이미지인 영화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3D 애니메이션 <가디언의 전설>도 영상의 질 만큼은 독보적인 수준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 영화의 화면은 3D 영화의 새로운 경지에 ‘거의’ 근접했다. 올빼미들은 문자 그대로 얼이 빠질 만큼 사실적이다. 공들여 작업한 흔적이 너무나도 확연히 드러나는 올빼미들의 컴퓨터 그래픽은 정교한 3D 효과와 결합하여 경이로운 실재감을 창출해 낸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저렇게 인간과 똑같은 수준의 지능과 감정을 가졌고, 갑옷과 무기를 만들 줄 알며, 마법과 신화와 역사가 혼재된 시간을 사는 특별한 올빼미들이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덧붙여 3D 입체영상이라는 마술은 관객이 올빼미와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여기에 아이맥스 대형 화면이 곁들여진다면 그 효과는 다섯 배쯤 더 난다). 3D 비행 장면 연출에 한 획을 그었던 <드래곤 길들이기>의 박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유감스럽게도 <가디언의 전설>에서 스나이더의 연출은 나사가 빠져 있다. 이야기의 큰 틀은 그럭저럭 유지되지만, 군데군데 필요하다 싶은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때로는 마땅히 A에서 B를 거쳐 C로 넘어가야 할 대목을 A에서 C로 어물쩍 뛰어넘어 버린다. 어떤 장면들은 연결이 퍽 어색하고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이야기는 압도적인 박력을 선보인 영상과 제대로 융합하지 못한 채 계속 겉돈다. 그렇다고 흥미롭거나 좀 튀는 캐릭터가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렇고 그런 족속뿐이다. 그런 캐릭터들이 이미 앞일이 빤히 내다 보이는 정해진 길을 따라 가면 모든 일이 너무나 쉽게 해결되어 버리니, 마음 속에 남는 여운이 옅을 수밖에 없다.

각색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세 권 분량의 원작을 한 시간 반이 조금 넘는 영화로 줄이자니 가지치기가 상당히 많았으리라.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살이 다 발려지고 뼈만 남은 꼴이 되었다.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임을 감안하더라도, <가디언의 전설>은 얼개만 간신히 남은 영웅신화이다. 그리고 ‘영상은 좋지만, 이야기가 약하다’는 평을 들을 만한 영화이다. 본편 상영 전에 선보였던 ‘로드 러너’ 단편이 똑같이 단순한 이야기임에도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원제: Legend of the Guardians: The Owls of Ga’Hoole
감독: 잭 스나이더
주연: 짐 스터지스, 휴고 위빙, 에밀리 바클레이, 애비 코니쉬, 라이언 콴튼
북미 개봉: 2010년 9월 24일
한국 개봉: 2010년 10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