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 (2015)

(C) Universal Pictures
(C) Universal Pictures

스티븐 스필버그는 22년 전 <쥐라기 공원>을 만들면서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 소설을 절반쯤 이루고 있었던 장광설을 몽땅 걷어냈다. 이 대담한 가지치기는 비슷한 방법을 택했던 <조스>보다 한층 더 길고 예리한 가위로 이루어졌다. 그러고 나서 스필버그는 ‘인간은 자신이 신이라도 된 양 자연을 갖고 놀지 말지어다’ 라는 교훈 정도만을 남긴 채, 남은 빈 공간을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스릴과 노련한 액션으로 가득 가득 채웠다. 그 결과는 스필버그의 비범한 영상 감각이 빛을 발한, 영화사상 가장 오싹한 테마 파크 모험담이었다.

<쥬라기 월드>(Jurassic World)에서 그 시절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육중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을 처음으로 드러내던 순간의 경이로움이나, 티라노사우루스와 벨로키랍토르 습격 시퀀스의 모골이 송연한 공포가 고스란히 되살아나길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게다가 이것은 무려 22년이 지나 듣게 된, 두 번째도 아니고 네 번째 모험담이다. 올해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라는 대단히 예외적인 제4편이 등장하긴 했으나 그건 말 그대로 대단한 예외일 뿐이며,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작품이다.

그러니 당연히도, <쥬라기 월드>는 앞선 작품들이 닦아 놓은 길을 그대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공원’은 ‘세계’로 규모가 늘어나면서 정식 개장했고, 그곳에 온 사람들도 소수의 학자나 (피를 빠는) 변호사, 사냥꾼들이 아니라 2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다. 하지만 인젠은 여전히 DNA로 장난을 치고 있고, 모기업의 우두머리와 하수인들은 그 결과물을 돈과 명예로 바꾸려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한 통제 아래 놓여있다고 착각하면서. 한 술 더 떠 인젠과 탐욕스러운 과학이 작당한 또 다른 음모(어처구니없는 그 내막을 보면 역시 어디선가 다룬 듯한 설정이다)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가끔씩 비틀대고 휘청거린다.

그럼에도 콜린 트레보로우는 스필버그를 넘어서겠다는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대신(그것은 존 해먼드가 꿈꾸었던 완벽한 벼룩 서커스와도 같다), 속편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는 등장인물인 오언을 내세워 상당 부분의 매너리즘을 솜씨 좋게 걷어낸다. 인디애나 존스와 한 솔로를 합쳐 놓은 듯한 오언은 벨로키랍토르 무리와 함께 네 번째 모험담에서 느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두근거림을 전해 준다. 그는 인도미누스 렉스나 모사사우루스 같은 새로운 공룡 및 고생물들이 T-렉스라든가 벨로키랍토르, 트리케라톱스와 같은 기존 공룡들에 비해 떨어지는 존재감으로 어쩔 수 없이 드러내는 빈틈을 잘 가려 준다.

더 나아가 트레보로우는 22년 전의 설정을 적재적소에 끌어다 놓으며 여기에 얽힌 관객의 추억을 자극하는 한편, 나중을 위한 도약대를 차곡차곡 쌓아 간다. 이 모든 것들이 클라이맥스의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하는 전개와 어우러져 깜짝 놀랄 만한 순간들을 연달아 터뜨리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의외로 진중한 여운이 남고, 들인 시간과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쥬라기 월드>의 좋은 점이다.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기대했던 정도보다 조금씩만 더 채워 주는 것.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그것들이 쌓이면서 이루는 무언가는 맨 처음 품었던 기대감을 훨씬 넘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즐거움이다. <쥬라기 월드>는 자기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영화이며, 그 목표를 위해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내 주고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해치운다.

원제: Jurassic World
감독: 콜린 트레보로우
주연: 크리스 프랫,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타이 심킨스, 닉 로빈슨, 빈센트 도노프리오
북미 개봉: 2015년 6월 12일
한국 개봉: 2015년 6월 11일

[스타 워즈: 클론 전쟁] (2008)

(C) Lucasfilm
(C) Lucasfilm

<스타 워즈: 클론 전쟁>(Star Wars: The Clone Wars)은 <스타 워즈 에피소드 III: 시스의 복수> 이후 3년 만에 극장에 걸리는 관련 작품인 동시에, 오는 10월부터 미국 카툰 네트워크와 TNT 채널에서 방영될 동명 애니메이션 TV 시리즈의 파일럿에 해당한다. <클론 전쟁>은 소설, 만화, 게임, 완구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개되어 온 <스타 워즈>의 확장 세계(Expanded Universe)에 속하는 작품이지만, 조지 루카스가 직접 구상한 내용을 다루는 데다 이 내용이 정전(canon)인 영화 6부작의 시간대에 포함되어 있어, 다른 확장 세계 작품보다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클론 전쟁은 <스타 워즈 에피소드 II: 클론의 공격> 말미에 시작되어 <에피소드 III>까지 이어지는 3년 동안의 전쟁을 일컫는다. 이번 극장판과 TV 시리즈는 이 기간 동안의 사건을 그리게 되는데, 분량 상 상당한 시간을 건너뛰거나 특정 등장인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전제조건에서 해방되어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에피소드를 그릴 수 있고, 더 많은 등장인물을 선보인다는 점이 특징이라 하겠다.

극장판 <클론 전쟁>에서는 TV 시리즈로 이어지는 중요한 새 인물로 아소카 타노가 첫선을 보인다. 애너킨 스카이워커의 파다완이 되는 그는 본편에서 가장 비중 있게 묘사된다. 완벽한 이론을 숙지하고 있지만 특유의 앞뒤 안 가리는 성격 탓에 실수 연발이고 스승인 애너킨과 충돌하기도 하지만, 그는 갖은 모험을 겪으며 파다완으로서 실전에 대응하는 능력과 스승에 대한 충성심에 관해 어렴풋이나마 교훈을 얻는다. 애너킨도 제자를 둔 오비원 케노비의 입장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는 기회를 갖기는 하지만, 사실상 이 극장판은 아소카를 소개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 솔로와 그 주변 인물들, 또는 <에피소드 II>의 애너킨과 오비원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아소카와 애너킨의 티격태격은 <클론 전쟁>에서 가장 볼 만한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애니메이션 스타일에서 눈에 띄는 점은 2003년판 <클론 전쟁>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기반으로 하되, 새로운 접근법을 취한 캐릭터 디자인과 실사를 방불케 하는 연출이다. 캐릭터 디자인은 실사와 인형의 기묘한 경계에 있어 이채로운데, 제작진도 인정을 했듯이 CG이면서도 인형극 <선더버드>에 나오는 인형처럼 딱딱한 고체에 채색을 한 듯한 질감을 살린 점이 특히 재미있다(심지어는 붓자국 같은 흔적도 보인다). 비판적인 평을 받기도 했던 캐릭터의 뻑뻑하고 각진 움직임도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새롭지 않을까. 대규모 전투 시퀀스의 카메라워크나 실사영화와 거의 동일한 편집 방식도 극장용 작품에 걸맞은 박진감을 이끌어낸다. 아울러 메카닉 묘사는 프리퀄 영화 3부작에서 이미 대다수가 CG로 구현된 바 있어 이번 극장판에서는 위화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러나 <클론 전쟁>의 단점 역시 연출에 있다. 장면 하나하나는 나쁘지 않지만, 그것들을 한 편의 영화로 연결할 때 무리한 부분이 종종 눈에 띈다. 당초 TV판으로만 기획했던 작품임을 감안하면 진위 여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극장판은 TV 시리즈 제1화를 비롯한 2~3화 분량을 장편 길이로 엮은 결과물일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조각난 시퀀스들을 약간 뒤섞인 시간 순서에 따라 느슨하게 연결한 듯한 모습이다. 페이스가 갑자기 빨라졌다 느려지고, 시간을 채우기 위해 잘라냈어야 할 끄트머리를 그대로 둔 티가 역력하다. <스타 워즈>에 어느 정도 익숙한 관객이라면 쉽게 적응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야기 한복판에서 갑자기 시작하여 쉴 새 없이 내달리는 전개와 계속 추가되는 새로운 정보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10대 이하의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관객층을 발굴하려는 의도도 당연히 있겠지만, 결국 <클론 전쟁>도 기존 <스타 워즈> 팬의 애정과 충성도에 호소하는 작품이다. 다른 영화 같으면 치명적인 단점이 될 만한 부분도 너그러이 넘어갈 수 있는 건 내가 올해로 20년 된 (덧붙여 설정에 별로 신경 안 쓰는) <스타 워즈> 팬이기 때문이다. 많은 관객을 당혹스럽게 했던 ‘오프닝 크롤’의 삭제도 전쟁 드라마라는 <클론 전쟁>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스타쉽 트루퍼스>의 모병 광고(과장된 자막이 없을 뿐)나 전쟁 관련 보도를 연상케 하는 도입부를 넣으려는 의도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하면 전혀 납득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클론 전쟁>에 대한 악평은 <스타 워즈> 시리즈의 전통과 파격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는 과도기적 작품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일 뿐이라는 대단히 ‘주관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더욱이 <클론 전쟁>은 이 극장판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TV 시리즈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질 이 새로운 은하 서사시를 나는 매우 흥미롭게(with great interest) 지켜볼 것이다.

원제: Star Wars: The Clone Wars
감독: 데이브 필로니
주연: 매트 랜터, 제임스 아놀드 테일러, 애쉴리 엑스타인, 톰 케인, 크리스토퍼 리, 새뮤얼 L. 잭슨
북미 개봉: 2008년 8월 15일
한국 개봉: 2008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