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에서 신(神)을 빼면 ‘지라’가 된다.

jira그렇다.

‘고질라’가 아닌, 그렇다고 ‘고지라’도 아닌 ‘지라’다.

내 손바닥 위에 올라가 있는 이 녀석은 1998년 영화 <고질라>에 등장했던 거대 이구아나 괴수의 인형이다. 당시, 이태 전인 1996년 <인디펜던스 데이>가 대박 나면서 일약 헐리우드의 흥행 감독으로 떠올랐던 롤랜드 에머릭이 일본의 대표적인 괴수영화 <고지라>를 리메이크한답시고 나선 적이 있었는데, 그 영화에 주인공(뭐? 주연은 매튜 브로데릭이라고? 누가 그래?)으로 나온 바로 그 녀석이다.

하지만 그 영화에 고지라는 없었다. 그렇다고 ‘고질라’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실 <고질라>는 그냥 거대 이구아나가 나오는 영화였지만, 부득부득 자기가 <고지라>의 리메이크라고 우겨댔더랬다. 영화의 악평과 함께 이 이름 없는 거대 이구아나는 본고장 미국(일본이 아니다!)에서 ‘GINO(Godzilla In Name Only: 이름만 고지라)’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비아냥거리가 되었다. 뭐, 영화 자체는 고지라 영화임을 따지지 않고 본다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만…

그런데, 2004년 진짜 본고장 일본에서 신작 <고지라: 파이널 워즈>가 공개되면서 이 거대 이구아나의 애매했던 위치가 바로잡혔다. 헐리우드로부터 캐릭터의 저작권을 인수한 고지라 시리즈의 제작사 토호가 <고지라: 파이널 워즈>에 이 녀석을 등장시키면서 이름을 ‘지라’라고 정식으로 지어 주었기 때문이다. ‘고지라’의 영어 표기인 ‘Godzilla’에서 ‘God’을 뺀 것이니(녀석은 괴수의 신으로부터도 버림 받은 것이다) 모양도 의미도 GINO 못지않게 참으로 후줄근한 이름인데, 그나마 <파이널 워즈> 본편에서의 비참하기 짝이 없는 역할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 이후로 이 거대 이구아나는 ‘지라’가 되었다.

사진에 담긴 인형은 1998년 <고질라>가 개봉했을 당시 일본의 반다이가 출시했던 식완 ‘하이퍼 고지라’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당시 가격은 300엔으로 저렴한 데다, 크기가 작으면서도 조형이 훌륭하여 이것 말고도 꽤 여러 종류를 모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볼 때마다 어딘가 미묘한 위화감을 느끼곤 했다. 그게 뭐였는지 지금까지는 알 수가 없었는데, 이제서야 그걸 말로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녀석의 포즈 때문이다.

<고질라> 극중에서 지라는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처럼 상체를 꼬리와 거의 일직선을 이루도록 숙인 채 걷거나 뛰어다녔다. 그런데 인형은 상체를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들어올리고 양쪽 앞발을 세우고 있다. 나는 이것이 지라가 마치 자기가 고지라인 척, 고지라의 대표적인 포즈를 흉내낸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볼 때마다 좀 아니꼬웠고 어색하기도 했던 것 같다.

게다가 고지라는 이렇게 서 있을 때면 꼬리를 땅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리는데, 이 인형은 꼬리를 공중으로 치켜올리고 있다. 거의 직립 상태로 단단하게 땅을 딛고 서는 고지라와는 달리, 팔을 들어올리고 이중 관절의 긴 다리로 엉거주춤 선 모양새라 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리도록 조형했다면 인형의 무게중심이 앞쪽으로 쏠려 제대로 설 수 없었을 거다. 꼬리를 올린 건 균형을 맞추기 위한 꼼수인 셈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포즈의 위화감은 한층 더해진다.

흥행 상의 이유로 인형이 되어서도 자기와 하나도 닮지 않은 고지라를 흉내내려고 했던 거대 이구아나. 어쩌면 그래서 더 아니꼬우면서도 어떨 때는 조금은 가련하게 느껴지는 녀석이 바로 ‘지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