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 (2014)

(C) Cinema One Originals, Quiapost Productions
(C) Cinema One Originals, Quiapost Productions

강력한 태풍이 마닐라를 뒤덮기 시작하자, 도시 곳곳에서 기괴한 사건들이 속출한다. 마치 세계 종말의 서막이 오르기라도 한 듯한 불길하고 음울한 공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어둠과 공포로 채워 가는 가운데, 난동을 부려 체포된 소년이 폭우와 홍수로 발이 묶인 경찰서에 도착한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턴가, 경찰서에 갇힌 사람들 사이에서 이 소년이야말로 모든 재난의 근원이 아닐까, 더 나아가 악마 그 자신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어떤 계기를 통해 인간에게 내재된 악마적 속성이 발현될 때 생기는 일들을 탐구하는 것은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주제일 텐데, 이를 독특한 각도에서 접근한 흥미로운 아시아 호러이다. 명료한 플롯보다는 산발적인 에피소드들이 강조되어 있지만 그 하나하나가 매우 인상적인 전체를 이룬다는 점이 뛰어나다.

아트 필름의 아우라와 B급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거침없이 오가는 독특한 시선, 스크린 밖으로 습하고 후덥지근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공간의 분위기를 잘 담아낸 프로덕션 디자인, 숨통을 조이는 폐쇄공간의 이미지를 예리하게 포착한 카메라,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 등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 적지 않다. 감독 도도 다야오는 필리핀에서 영화평론가, 광고 감독 등으로 활동한 바 있고, 이 영화로 장편 데뷔를 완수했다.

원제: Violator
감독: 도도 다야오
주연: 빅터 네리, 앤소니 팰콘, RK 바갓싱, 티모시 마발롯, 조얼 라망간
필리핀 개봉: 2014년 11월 10일

* 2015년 7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탈로그 게재용으로 기고한 글이다.

[페이션트 X] (2009)

(C) GMA Films, Viva Films, RGUTZ Productions
(C) GMA Films, Viva Films, RGUTZ Productions

필리핀의 설화에 등장하는 악귀 아스왕(Aswang)을 소재로 한 이색 공포영화이다. 아스왕에는 다양한 기원이나 묘사가 있지만, 시체나 태아를 뜯어먹고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주된 특징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뱀파이어와 좀비의 특성을 조금씩 합쳐 놓은 듯한 모습이며,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는 현대적인 설정도 가미되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의사인 루카스. 어린 시절 자신의 보모인 구아다의 가족에 의해 형을 비롯한 일가를 잃은 그는 어느 날 용의자로 붙잡힌 구아다를 다시 만나 사건에 얽힌 충격적인 내막을 알게 된다. 구아다는 물론 그의 가족이 모두 아스왕이었던 것. 구아다는 루카스의 가족을 직접 살해하지는 않았지만 원인을 제공한 데 대한 죄의식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원망에 불타던 루카스는 구아다의 남편 마커스가 이끄는 호전적인 아스왕 일행의 습격을 받고, 전기충격으로도 불로도 총으로도 죽일 수 없는 아스왕의 퇴치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구아다임을 깨닫게 된다.

자국의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의도는 훌륭하지만, 이야기가 본궤도에 오르기까지의 예열 시간이 더디 흐르고 유혈이나 액션 묘사의 알싸한 맛이 좀 부족한 것이 흠이다. 감독, 제작, 촬영감독 등을 겸한 얌 라라나스는 호평을 받았던 2004년 공포영화 <에코>와 이를 직접 다시 만든 같은 제목의 영어판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원제: Patient X
감독: 얌 라라나스
주연: 리처드 구티에레즈, 크리스틴 레이예스, TJ 트리니다드, 미리암 퀴암바오, 난딩 조셉
필리핀 개봉: 2009년 10월 28일

* 2010년 7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탈로그 게재용으로 기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