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녀한] 부천영화제 상영 (+[괴시] 유튜브 공개 중)

(C) (주) 우진 필림

강범구 감독의 공포영화 <몽녀한>(1984)이 다음 달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 8일-18일)에서 상영된다.

<몽녀한>은 영화제 프로그램 가운데 스트레인지 오마쥬에 선정되어, 7월 10일 오전 11시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가 일반 공개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서 한국의 희귀 공포영화를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현역에 있는 동안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던 강범구 감독은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로 손꼽히는 <괴시>(1980)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대만 합작영화인 <몽녀한>은 도시기담, 멜로드라마 그리고 80년대 초반 한국영화로는 특기할 만한 크리처 공포영화의 요소가 포함되었다. 당시 해외에서 유행했던 장르 코드를 한국영화에 도입한 강범구 감독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 하겠다.

<괴시>는 지난 5월부터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 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 공개 중이니, <몽녀한>과 함께 감상하면 좋겠다.

또한, 괴수보호구역은 2016년 5월 강범구 감독과 만나 <몽녀한>, <괴시>를 비롯하여 감독이 관여한 합작영화에 대해 인터뷰한 바 있다. 아울러 참고하기를 권한다.

인터뷰/ [괴시], [몽녀한]의 강범구 감독 (2016년 6월 20일)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웹사이트

인터뷰/ [괴시], [몽녀한]의 강범구 감독

강범구 감독 (촬영: 홍기훈)
강범구 감독 (촬영: 홍기훈)

강범구 감독은 1950년대 촬영 스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래 <지옥화>(1958), <비정>(1959), <지평선>(1961), <슬픔은 없다>(1961), <현상 붙은 사나이>(1961) 등 10여 편의 작품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했고, 1962년 <북극성>으로 감독 데뷔하였다. 이후 1988년 <칠소여복성>까지 26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기획, 각색 등의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대만, 홍콩과의 합작영화를 다수 만들었던 인연으로 중국어권 영화의 수입 업무에도 오랫동안 종사한 바 있다.

강범구 감독의 작품은 멜로드라마, 음악, 첩보, 액션, 공포, 권격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특히 한국 최초의 본격 좀비영화로 회자되는 <괴시>(1980)와 크리처-공포영화라는, 한국에선 드문 하위 장르에 속하는 <몽녀한>(1983),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의 대역을 맡았던 당룡이 주연하고 황정리가 공연한 권격영화 <사망탑>(1980) 등이 장르영화 팬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만남에서는 감독의 이력에 얽힌 여러 가지 일화와 함께 위 세 편의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만났던 자리의 상황에 의하여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감독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 형식으로 정리하였다. 이 인터뷰는 지난 5월 17일 서울에서 이루어졌다.

 

영화에 대한 생각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감독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 스스로 뒤떨어진다고 여겨 남들을 따라가려고, 남보다 앞서려고 노력과 공부를 많이 했고 파격도 감행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잃기도 했고… <여자 베트콩 18호>(1967) 때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했으므로 우리 영화를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잃지 않았다.

 

옛 충무로의 일화들

– 옛날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감독 계약을 하게 되면 네거티브 필름 몇 자 쓰느냐를 두고 영화사 사장과 타협부터 해야 했다. 보통 2~3만자를 썼다. 필름을 아끼느라 카메라에 장착할 때 저절로 감기는 부분도 2~3프레임씩이나마 되감아 악착같이 절약했다. 그러니 NG가 최대의 공포였다. 도중에 제작비가 떨어져 찍은 분량만으로 마무리할 때도 있었고… 당연히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다.

– 해외 수출 때는 원본 네거티브 필름으로부터 복사본(듀프 네거)을 만들어 그걸 보내야 한다. 하지만 필름 복사 비용이 너무 비싸서 원본 필름을 빌려주거나 그냥 보냈다. 그러다가 돌려받지 못할 때도 많았고… 그렇게 유실된 작품이 많다. 설사 복사본을 만든다 해도 원본을 보관할 여력이 없었다.

– 동아수출공사 기획실장으로 있던 70년대 일인데, 당시 친했던 정소영 감독이 <애수의 샌프란시스코>(1975)라는 대본을 가져와서 미국 현지 촬영을 하게 되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허가제였고 외화 관리도 엄격하여 제작비로 2만 달러만 갖고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조수 하나 두고 촬영을 진행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런데 도중에 회사에서 기왕 어렵사리 해외에 나간 김에 영화 한 편을 더 찍어 오라길래, 김기영 감독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새 대본을 받아 왔다. 사실 대본의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줄거리만 적힌 것이었다. 그래서 대강의 스토리만 어찌어찌 담아 귀국 후 연결하여 완성했다.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 사정은 또 달랐으니까. 그 영화가 <황혼의 만하탄>(1974)이었다.

강범구 감독은 과거 해외 출장 시 맥도널드에 익숙해져, 이번 만남도 맥도널드에서 가졌다. (촬영: 박상규)
강범구 감독은 과거 해외 출장 시 맥도널드에 익숙해져, 이번 만남도 맥도널드에서 가졌다. (촬영: 박상규)

– <황혼의 만하탄> 때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올라가 촬영을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도중에 갈아타야 할 정도로 높았다. 전망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다, 갑자기 빌딩 관계자가 불러세워 가슴이 철렁했다. 뭐 압수라도 당하나 싶었던 거다. 그런데 입장권을 다 내놓으라길래 줬더니 오히려 입장료를 돌려 줘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영화 촬영으로 뉴욕 관광에 도움을 줘서 입장료를 면제해 준 거였다. 공식적으로는 이 영화의 촬영감독이 이성춘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은 감독 겸 기획자였던 내가 직접 촬영하였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 연출작 가운데 지금 원본을 볼 수 없는 것으로는 <유랑극장>(1963)이 제일 아쉽다. 영화를 위해 노래를 9~10곡 정도 지었는데 박춘석 작곡가 작품이다. “바닷가에서” 같은 노래는 상당히 유행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조긍하 감독의 <아까시아 꽃잎 필 때>(1963)와 경쟁했다. 그땐 조긍하 감독 작품이 더 유명했다. 극장을 잡고 개봉일에 맞추느라 며칠 밤을 새며 만들었는데, 노래 부르는 긴 장면은 편집을 제대로 못 한 것이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순수하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해서 애착이 많다. 내 영화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소만국경>(1964), 합작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때로선 감각이 상당히 앞섰던 작품으로 자평하는 <국제암살단>(1971)도 기억에 남는다. <칼맑스의 제자들>(1968) 같은 것은 중급 이상의 규모였는데, 강가에 폭탄을 묻어 놓고 진짜로 폭파시켜 가며 찍었다. 그때 조감독이었던 정진우 감독이 총을 잘 쏘는 걸로 유명했다. 알다시피 당시엔 영화 촬영에도 실탄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 배우들 중에서는 황해와 가장 가까웠고 작업도 많이 했다.

 

합작영화로 시작된 중화권과의 인연

– 60년대에는 첫 합작영화에 참여했기 때문인지 대만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우리 영화 정책 목표에 외화 확보가 포함되기도 했고, 영화인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주려고 애썼다. 우리는 우리 대로 어떻게든 일을 따내어 먹고살아야 했으므로 해외 합작은 좋은 기회였다. 우리 배우나 감독들이 초청 받아 대만에 갔고, 나유 감독(이소룡이 주연한 <당산대형>, <정무문>으로 유명) 등 그쪽 인맥을 알게 되었다. 고인하 씨 같은 경우 <탈출명령>(1966) 합작을 계기로 만났는데 지금도 돈독한 관계다.

– 대만은 국민당이 직접 경영하는 중앙영화사가 있는 국영 체제였는데, <오리를 기르는 집> 같은 수작을 다수 만들어 냈다. 그들도 흥행이 잘되는 한국에 신세를 진 셈이다. 어디서든 진실하게 사업을 하면 아무 탈이 없다. 욕심을 더 부리거나 잔꾀를 부리니까 곤란해지는 거다.

– 대만과 가까운 홍콩과도 합작을 했다. 쇼 브라더스의 런 런 쇼도 한국을 좋아했다. 이한상 감독(대표작 1960년판 <천녀유혼>, <강산미인>, <양산박과 축영대> 등)과는 합동영화사와 합작할 때 알게 되었는데, 나중에 연출작인 <서태후>(1981)의 수입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동남아권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본영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기였지만, 아무래도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권에서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나쁜 편이었다. 한국영화가 진출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 홍콩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신상옥 감독 납북 당시에도 홍콩에 체류 중이었다. 최은희 씨는 내가 정창화 감독, 신위균 씨, 남석훈 씨 등과 함께 대접 약속을 했는데, 식사가 차려지고 나서도 나타나지 않아 이상했다. 알고 보니 북한에 납치된 것이었다. 참 섬뜩한 이야기다.

(촬영: 박상규)
(촬영: 박상규)

 

연출 중단 후 이야기

– 영화 만드는 일을 중단한 계기는 자신이 없어져서였다. 외국에 자주 나가다 보니 이렇게 만들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랫동안 공백기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영화 수입에 종사하면서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돌아다니는 등 열심히 활동했다. 영화 수입 일로 한 달에 절반은 홍콩에서 보내곤 했다. 동아수출공사, 우진 필림, 황기성사단 등과 가까웠는데 동아수출공사의 경우 홍콩 골든 하베스트와 돈독한 관계여서 많은 작품을 들여왔다. 계기는 내가 이소룡의 <정무문>(1972)을 본 뒤, 그 다음 작품인 <맹룡과강>(1972)을 국내에 소개하면서이다. 그 일로 동아수출공사와 골든 하베스트가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수입 일은 영화계에 대기업이 진출한 15년쯤 전까지 계속했다.

– 요즘 한국영화를 다 보진 못 하지만 종종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볼 기회가 있다. 최근에 본 작품은 <귀향>(2015)이다. 아끼는 후배가 따로 있진 않다. 다들 잘 만드니까. 여러 여건이 잘 맞기도 하지만 우리 때보다 확실히 영화를 잘 만든다. 비용도 더 많이 들이고.

 

<괴시>에 대하여

– 홍콩에서 이탈리아영화(주: <잠든 시체를 그대로 두어라> Let Sleeping Corpses Lie / 1974년 공개된 이탈리아-스페인 합작 좀비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한국 상황을 반영하여 만든 작품이다. 국제 저작권 협약이 적용되지 않았던 당시의 관행이었다지만 남의 것을 갖다 한 건 맞고, 내가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안개 낀 거리>(1963)도 일본 작품을 참고한 것이다. 당시엔 홈 비디오도 없었고 기록 수단도 부족하다 보니 극장에서 참고할 만한 영화를 보면서 커트 분할이나 대사 같은 것들을 받아 적거나 아예 외우기도 했다.

– 이 영화의 주제는 과학의 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인간에 대한 해악이다. 각색 과정에서 병충해 방지를 위해 초음파를 사용한다는 등 한국의 실정에 맞는 설정으로 바꾸었다. 검열이 심해 유혈 장면을 여럿 삭제해야 했다.

– 합작영화 제작 경험을 살려 중국 배우들을 일부 캐스팅하였다.

– 야외 촬영은 대부분 광릉에서 이루어졌다. 수풀이 우거진 곳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광릉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주: 극중 배경은 강원도). 실내 촬영은 어디서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미아리, 신설동 등 서울 여러 곳에 세트장이 있었다.

– 흥행은 잘 되지 않았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도 않았고, 여러 모로 극장에 걸기 쉬운 영화는 아니었다.

<괴시> (컬러 / 85분 / 1980년 4월 10일 공개)
주연: 유광옥, 강명, 박암, 왕옥환, 홍윤정

(C) 한림영화 (주)
(C) 한림영화 (주)

강원도 산골에서 병충해를 막기 위한 초음파 방출 실험이 실시된다. 그러나 실험의 부작용으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들이 되살아나 닥치는 대로 마을 사람들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세미나 참석차 한국에 온 중국인 강명, 그와 우연히 만난 수지, 그리고 수지의 자매 부부 등이 사건에 휘말리고, 희생자는 점점 늘어만 간다.

흔히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로 손꼽히는데, 이에 대한 검증은 잠시 미루어 두고 작품 자체만 본다면 조지 A. 로메로가 창시한 현대 좀비영화의 작법을 충실히 답습한 현지화 버전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가 나왔던 80년대 초반에는 특수효과의 발달로 경천동지할 유혈 묘사가 경쟁적으로 터져나왔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해외의 상황. 대신 <괴시>에는 검열의 제한을 피하여 유혈묘사 대신 분위기와 극중 상황으로 공포와 불안감을 조성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좀 더 스타일리쉬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정통 좀비영화의 흥취를 머금은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여전히 그 매력을 잃지 않는 작품이다.

 

<몽녀한>에 대하여

– 소재가 괜찮아 보여 만들게 된 영화이다. 마침 괴기영화가 유행이기도 하여, 흥행성이 있거나 적은 제작비로 만들 수 있는 소재라면 기꺼이 선택했다. 한 편이라도 더 팔아야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

– 촬영은 한국과 대만에서 골고루 진행되었다.

– 각색은 주동운 작가가 맡았는데, 현대를 무대로 고전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기조는 중국 측에서 낸 아이디어이다.

– 괴수 수트는 중국에서 제작했다. 수트 액터는 상황에 따라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 기용했다.

– 합작 영화라는 특성 상 한국과 대만 양국 배우들은 각자 서로의 언어로 대사를 했다. 이를 나중에 한국어로 더빙한 것이다.

<몽녀한> (컬러 / 90분 / 1984년 8월 18일 공개)
주연: 문태선, 첸리윈, 국정숙, 추이소핑, 문미봉

(C) (주) 우진 필림
(C) (주) 우진 필림

잔혹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여 도시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는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들리는 기묘한 피리 소리, 그리고 그때마다 사라지는 기자 이옥정. 옥정과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 고강영은 이 두 가지 정황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공포영화의 전성기였던 80년대 초반 선보인 <몽녀한>은 한국과 대만의 합작영화. 멜로드라마를 가미한 크리처-공포영화로서도 흥미롭고, 도회를 무대로 한 기담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뱀 괴물의 모습은 그야말로 특촬 수트를 보는 듯하지만, 당시의 관점으로는 꽤나 존재감 있는 크리처로서 인상을 남기지 않았나 싶다.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분야를 탐색했던 작품이다.

 

<사망탑>에 대하여

– 액션 장르에서 한국영화와 홍콩영화의 차이라면, 한국영화는 6. 25의 영향이 있어서인지 총격, 권격 위주로 좀 더 현대적인 인상이다. 반면, 홍콩영화는 쇼 브라더스의 왕우가 나오는 칼싸움 액션영화의 예로 알 수 있듯 고전적인 인상이다.

– 극중 공작새를 부리는 장면이나 사자가 나오는 사파리 장면 등은 홍콩에서 촬영했다. 홍콩 측의 오서원 감독이 그런 볼거리를 동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리 잘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망탑> (컬러 / 75분 / 1980년 3월 1일 공개)
주연: 당룡, 황정리, 원화평, 진요림, 원진위

(C) 동아수출공사
(C) 동아수출공사

사형 진길용을 방문하려던 무도가 김태중은 길용이 불귀의 객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장례 도중 어떤 세력이 길용의 시신을 훔쳐가자 태중은 그 뒤를 쫓아 길용의 죽음과 관련된 음모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주연 당룡은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 이소룡의 대역으로 출연한 바 있고, 이어 <사망유희>의 속편격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도 대역 겸 이소룡의 동생 역을 맡았다. 국가 별로 다수의 편집본이 존재해서인지 이 한국 공개판도 컨티뉴이티가 엉성하고 완성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 이소룡식 권격영화의 개성 없는 아류작에 속하지만, 한국 액션영화의 계보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한번쯤 짚고 넘어갈 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마치며

1924년생인 강범구 감독은 올해 93세의 고령이지만 못 해도 20년 이상은 젊어 보일 만큼 매우 정정하였다. 시종일관 진솔하고 겸손하였고 지금은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딱 부러지게 인정하는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과거 잦은 해외 출장으로 익숙해진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놓고 활기 있게 이야기를 이어 가는 90대 노감독의 모습은 쉽게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일종의 예고편이다. 강범구 감독과 만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으므로… 읽으면서 특히 <괴시>와 <몽녀한>에 대한 내용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다면, 조만간 다른 지면을 통해 강범구 감독과 다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기회에 대해서는 따로 알리도록 하겠다.

인터뷰를 도와 주신 분들
박지환 씨
홍기훈 씨 (빅 몬스터 클럽)
박상규 씨 (빅 몬스터 클럽)

김기덕 감독 특별전 4월 개최 – [대괴수 용가리]도 상영

(C) 극동흥업
(C) 극동흥업

1960~70년대에 걸쳐 한국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한국 최초의 본격 거대 괴수영화 <대괴수 용가리>를 연출하기도 한 김기덕 감독. 그의 작품 세계를 되돌아보는 특별전이 다음 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다.

영원한 영화청년, 장르영화의 장인 김기덕 감독전
일시: 2016년 4월 14일~24일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1, 2관

상영작
<5인의 해병> (1961년, 118분)
<맨발의 청춘> (1964년, 116분)
<남과 북> (1965년, 114분)
<내 주먹을 사라> (1965년, 112분)
<말띠 신부> (1966년, 92분)
<오늘은 왕> (1966년, 100분)
<친정어머니> (1966년, 105분)
<대괴수 용가리> (1967년, 79분)
<섬마을 선생> (1967년, 102분)
<아네모네 마담> (1968년, 94분)
<늦어도 그날까지> (1969년, 96분)
<꽃상여> (1974년, 102분)
<가수왕> (1975년, 109분)
<영광의 9회말> (1977년, 106분)

* 모든 상영작은 35mm 필름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개막식 및 리셉션
일시: 4월 14일 오후 5시 / 시네마테크 KOFA 1관
상영작: 특별전 개막 영상 및 <5인의 해병>
리셉션: <5인의 해병> 종영 후 오후 7시 30분부터

관객과의 대화 1
일시: 4월 16일 오후 2시 / 시네마테크 KOFA 1관 <남과 북> 상영 후
참석자: 김기덕 감독, 김홍준 감독

관객과의 대화 2
일시: 4월 23일 오후 2시 / 시네마테크 KOFA <맨발의 청춘> 상영 후
참석자: 김기덕 감독, 김홍준 감독

이번 특별전은 <대괴수 용가리>를 비롯한 감독의 대표작을 큰 스크린에서 35mm 필름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감독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큰 행사이다. 자세한 상영 일정과 입장권 발권 방법 등은 한국영상자료원 공식 웹사이트를 참조하시라.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공식 웹사이트

[의리 없는 전쟁] (1973)

(C) Toei
(C) Toei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혼란에 빠져 있던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극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인 히로시마 야쿠자 항쟁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후카사쿠 킨지 감독은 핸드헬드 카메라로 포착한 거칠고 동적인 화면과 마치 다큐멘터리와도 같은 현장감을 자아내는 편집, 주인공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맞추는 대신 등장인물 전체를 아우르는 군상의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한 연출 등으로 기존 범죄영화의 틀을 과감히 부수고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극중의 야쿠자들은 과거 임협영화에 등장했던, 의리를 중시하는 낭만적인 반영웅이 아니라 이권을 위해서라면 같은 조직의 부하를 팔아먹거나, 동료의 등에 칼 꽂기를 서슴지않는 냉혹하고 치졸한 욕망의 화신이다. 그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돈과 복수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순간의 비릿함은 실로 압권. 전후 일본 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을 생생히 담아낸 드라마로서도, 주먹과 권총, 칼이 빗발치듯 화면을 가로지르는 폭력 활극으로서도 부족한 데가 없는 걸작이다.

2000년대까지 여러 편의 후속작으로 이어지며 이른바 ‘실록 영화’ 붐을 일으켰고 키타노 타케시, 미이케 타카시, 소노 시온, 윌리엄 프리드킨, 쿠엔틴 타란티노 등 일본 안팎의 후대 창작자들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끼친 일본영화의 유산. 이번 영화제에서는 35mm 필름으로부터 새로이 리마스터한 복원판을 상영한다.

원제: 仁義なき戦い
감독: 후카사쿠 킨지
주연: 스가와라 분타, 마츠카타 히로키, 카네코 노부오, 타나카 쿠니에, 이부키 고로
일본 개봉: 1973년 1월 13일

* 2015년 7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탈로그 게재용으로 기고한 글이다.

부천영화제 ‘고지라 60주년 특별전’ 상영!

(C) Toho Co., Ltd.
(C) Toho Co., Ltd.

국내 최초의 고지라 특별전 / 부대행사도 기획

괴수/특촬영화, 특히 고지라 시리즈의 팬들에게 기쁘고 의미 깊은 소식이다.

다음 달 열릴 제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에 올해 60주년을 맞은 고지라 시리즈를 기념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포함되었다. 괴수대백과: 고지라 60주년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특별전에서는 괴수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1954년작 오리지널 <고지라>를 비롯하여 <괴수대전쟁>(1965), <괴수총진격>(1968), <고지라 대 헤도라>(1971), <메카고지라의 역습>(1975), <고지라 VS 비오란테>(1989), <고지라: 파이널 워즈>(2004) 등 모두 7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쇼와 시리즈에서 5편, 헤이세이와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각각 1편씩을 뽑은 구성이다.

한국에서 고지라 시리즈를 위한 상영 프로그램이 기획된 것은 이번이 처음. 6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시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실로 귀중한 이벤트이다. 상영작들 역시 2003년 국내에서 처음 상영되었던** 1954년판 <고지라>를 빼면 모두 국내 미공개작. 어느 영화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특히 스펙터클이 강조된 괴수영화는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터. 일본 괴수영화의 진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아래는 각 상영작의 간략한 소개 및 상영 정보.

<고지라> (ゴジラ, 1954)
감독: 혼다 이시로 / 주연: 타카라다 아키라, 코우치 모모코, 히라타 아키히코, 시무라 타카시
포맷: 35mm 필름 / 오리지널 일본어 음성 / 한국어 자막

고지라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제1편이자 영화사에 남을 괴수영화의 걸작. 핵실험으로 인해 방사능을 축적한 고대생물이 일본을 습격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반전 · 반핵 메시지를 전달한다. 혼다 감독의 탄탄한 연출과 ‘특촬의 신’ 츠부라야 에이지 특기감독의 정교하고 박력 있는 특수효과는 ‘특촬’이라는 일본 특유의 장르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킹콩과 함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문화적 상징으로 정착한 고지라라는 괴수 캐릭터를 세상에 알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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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대전쟁> (怪獣大戦争, 1965)
감독: 혼다 이시로 / 주연: 타카라다 아키라, 닉 애덤즈, 미즈노 쿠미, 쿠보 아키라, 츠치야 요시오
포맷: 35mm 필름 / 영어 더빙 / 한국어 자막

토호 특촬영화의 2대 노선이었던 괴수영화와 SF영화를 본격적으로 조합한 시리즈 제6편. 고지라가 우주에서 활약한 첫 번째 작품이며, 당시 유행하던 개그 ‘셰!’를 몸소 선보이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구를 정복하려는 X성인과 킹기도라의 음모에 맞서 고지라와 라돈, 그리고 인류가 힘을 합쳐 싸운다는 호쾌하고 템포 빠른 활극적 연출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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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총진격> (怪獣総進撃, 1968)
감독: 혼다 이시로 / 주연: 쿠보 아키라, 코바야시 유키코, 아이 쿄코, 타자키 쥰
포맷: 35mm 필름 / 영어 더빙 / 한국어 자막

고지라 시리즈 제9편. 우주에서 온 광물생명체 키라크성인이 괴수들과 UN 과학위원회 구성원들을 조종하여 세계 각지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에 키라크성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대원들은 최첨단 메카닉 문라이트 SY-3의 힘을 빌려 사악한 계획을 분쇄하고자 반격을 전개한다. 당시 영화산업의 위축, 대중 취향의 변화 등의 이유로 인해 완결편으로서 기획. 그러나 예상 이상의 흥행 성적으로 시리즈가 계속 만들어지게 되었다. 고지라를 비롯하여 그때까지 토호 특촬영화에 등장했던 유명 괴수 11마리가 집결한 화려한 스펙터클이 볼거리. 괴수들을 고립된 섬에 모아 놓은 괴수랜드라는 설정은 공룡 테마 파크를 내세웠던 [쥐라기 공원]보다 20년 이상 앞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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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대 헤도라> (ゴジラ対ヘドラ, 1971)
감독: 반노 요시미츠 / 주연: 야마노우치 아키라, 카와세 히로유키, 키무라 토시에, 마리 케이코, 시바 토시오
포맷: 35mm 필름 / 영어 더빙 / 한국어 자막

고지라 시리즈 제11편으로, 전 28편에 이르는 시리즈 중에서도 유난히 튀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지라와 싸웠던 헤도라는 당시 일본의 큰 사회문제였던 환경오염에서 힌트를 얻은 공해괴수. 헤도라가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며 인류에게 기괴하고 잔혹한 죽음을 선사하는 묘사, 방종하고 종말론적 행태를 보이는 청년층의 모습과 사이키델릭 유행의 반영, 애니메이션의 삽입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고지라가 처음으로 날아다닌(!) 장면으로도 유명. 어떻게 보아도 컬트영화의 요소를 두루 갖춘 이색작이다. 반노 감독은 2014년판 <고지라> 리메이크에 기획자로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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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고지라의 역습> (メカゴジラの逆襲, 1975)
감독: 혼다 이시로 / 주연: 사사키 카츠히코, 아이 토모코, 히라타 아키히코, 무츠미 고로, 우치다 카츠마사
포맷: 35mm 필름 / 영어 더빙 / 한국어 자막

고지라 시리즈 제15편이자 쇼와 고지라 시리즈의 최종작. 혼다 감독, 타나카 토모유키 프로듀서, 이후쿠베 아키라 작곡가의 ‘원년 멤버’들이 모여 만든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메카고지라가 처음 등장하여 경쾌한 활극을 연출한 전작 <고지라 대 메카고지라>(1974)와는 달리, 54년판 오리지널을 연상케 하는 진지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특징. 전편에서 파괴된 메카고지라의 잔해를 회수하여 지구 정복을 노리는 외계 세력과 학계에서 퇴출당해 세상에 앙심을 품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손을 잡는다. 이들이 야기하는 재난을 막고자 과학자 이치노세와 인터폴, 그리고 고지라가 분투한다. 관객 동원수는 역대 최악인 97만 명. 이후 고지라 시리즈는 1984년 부활까지 9년에 걸친 동면에 들어가게 된다.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54년판 오리지널의 구성이나 주제를 변주한 점과 원전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 등을 높이 평가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여성 각본가(타카야마 유키코)가 단독으로 크레딧에 오른 유일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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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VS 비오란테> (ゴジラVSビオランテ, 1989)
감독: 오모리 카즈키 / 주연: 미타무라 쿠니히코, 타나카 쿄코, 타카시마 마사노부, 오다카 메구미, 미네기시 토루
포맷: 35mm 필름 / 영어 더빙 / 한국어 자막

1989년부터 1995년까지 총 6작품이 제작된 헤이세이 고지라 시리즈의 제1편이자, 전 시리즈 통산 제17편. 쇼와 시리즈에 특촬 스탭으로 참여해 온 카와키타 코이치가 처음으로 특기감독을 맡은 고지라 영화이다. 1984년 <고지라>로 일단 부활한 이후 5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난산 끝에 나온 작품으로서,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제작진의 의욕과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괴수영화라는 틀 안에서 첩보영화, SF영화, 산업 스파이 플롯, 로맨스영화 등 여러 가지 장르 요소가 뒤섞여 불협화음을 동반한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핵과 방사능이라는 고지라 시리즈 전통의 소재를 바탕으로 54년판 오리지널의 주제를 당대의 시선으로 훌륭하게 재해석하였다. 속도감 있는 드라마 연출과 중량감 넘치는 특촬도 작품의 높은 완성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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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파이널 워즈> (ゴジラ FINAL WARS, 2004)
감독: 키타무라 류헤이 / 주연: 마츠오카 마사히로, 키쿠치 레이, 돈 프라이, 키타무라 카즈키, 미즈노 마키, 쿠니무라 쥰
포맷: 35mm 필름 / 오리지널 일본어 음성 / 한국어 자막

2004년 고지라 탄생 50주년 기념작으로 공개된 역대 최대 규모의 시리즈 제28편. 현재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마지막 오리지널 시리즈 작품이다. 이야기의 기본 틀은 <괴수총진격>을 답습하고 있고, 60년대 SF영화를 21세기의 영상 기술로 구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기념작에 걸맞게 역대 출연 배우들과 괴수, 메카닉, 초병기 등이 대거 등장하여 하나의 떠들썩한 축제 같은 영화가 되었다. 여기에 키타무라 감독 특유의 액션 연출에 대한 집착이 덧붙여져 인간과 괴수 모두가 출전한 격투 토너먼트로서의 성격도 지녔다. 영화의 백미는 악역인 X성인 통제관으로 분한 키타무라 카즈키의 괴이한 연기.

<고지라>(1954)와 <고지라: 파이널 워즈>만 오리지널 일본어 음성판이고, 나머지 5편이 영어 더빙판으로 선보이게 된다는 점은 다소 유감. 그렇지만 과거 AFKN에서 영어로 더빙된 북미 공개판으로 고지라 시리즈를 접하기도 했던 국내 올드 팬들에게는 어쩌면 당시의 향수를 되살리는 감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별전을 위해 고지라에 관련된 부대행사도 별도 기획되었는데, 이에 대한 정보는 조만간 추가 발표될 예정으로 괴수보호구역에서도 그때그때 전하도록 하겠다.

제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7월 17일부터 27일까지 경기도 부천 일대에서 열린다. 개막작과 폐막작을 제외한 일반 상영작 예매는 7월 3일 오후 2시부터 영화제 공식 웹사이트(http://www.pifan.com)에서 시작될 예정.

그 높은 지명도와 작품 가치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말까지 이어졌던 전후 일본문화 금지로 인해 제때 소개되지 못했던 고지라 시리즈. 그 대표작을 공식적인 경로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인 이번 특별전에 괴수/특촬영화와 고지라를 사랑하는 팬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C)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C)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고지라>(1954)는 2003년 3월 20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열렸던 ‘일본영화 황금기 – 1950년대 거장 15인전’을 통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다. 관련 정보는 다음 링크 참조.

http://www.cinematheque.seoul.kr/rgboard/addon.php?file=programdb.php&md=read&no=46&start=585

오모리 카즈키 감독 회고전 개최

[고지라 VS 킹기도라] 포스터 (C) Toho Co., Ltd.
[고지라 VS 킹기도라] 포스터 (C) Toho Co., Ltd.
헤이세이 고지라 시리즈의 대표작 <고지라 VS 비오란테>와 <고지라 VS 킹기도라>를 연출한 오모리 카즈키 감독의 회고전이 다음 주부터 일본 토쿄에서 열린다.

3월 18일부터 30일까지 토쿄 국립근대미술관 필름 센터 대홀에서 열릴 ‘자선 시리즈 – 현대 일본의 영화감독 2: 오모리 카즈키’가 그것으로, 1980년대 이후 일본영화계를 이끌어 온 감독을 선정하여 그가 직접 고른 작품을 상영하는 기획전이다. 오모리 감독은 70년대부터 00년대에 걸쳐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오가면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왕성하게 만들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괴수영화 / 고지라 팬들에게는 시리즈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인 <고지라 VS 비오란테>(1989)의 감독 및 각본가로서 헤이세이 시리즈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진 동시에, 90년대 일본 괴수영화의 한 전범을 제시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그는 이 여세를 몰아 다음 편인 <고지라 VS 킹기도라>(1991)에서도 감독과 각본을, <고지라 VS 모스라>(1992)와 <고지라 VS 디스트로이어>(1995)에서는 각본을 맡으면서 헤이세이 시리즈를 지탱해 왔다. 2005년에는 오랜만에 토호 특촬로 돌아와 <극장판 초성함대 세이저 X: 싸워라! 별의 전사들>을 연출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상업영화 데뷔작인 <오렌지 로드 익스프레스>(1978)을 비롯하여 <히포크라테스들>(1980),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81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원작), <톳토 채널>(1987)등의 대표작이 상영되며, 초기 16mm 작품도 여러 편 관객과 만난다. 고지라 시리즈 중에서는 <고지라 VS 킹기도라>가 선정되어 35mm 필름으로 상영된다. 3월 23, 29, 30일에는 감독이 직접 참석하는 토크 이벤트도 열린다.

오모리 감독은 2007년 11월 제4회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에서 연출작 <사랑에 빠진 여자들>(1986)이 상영되어 한국을 찾은 바 있다.

회고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아래 출처 링크를 참조하시라.

출처: 토쿄 국립근대미술관 필름 센터 공식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