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니클] (2012)

(C) 20th Century Fox
(C) 20th Century Fox

<크로니클>(Chronicle)이 흥미로운 까닭은 다른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했던(또는 다루지 않았던) 주제, 그러니까 초능력을 도덕성이나 책임감으로 통제한다는 개념이 없어져 버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과감히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것은 기껏해야 일장연설이나 그에 가까운 무언가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길로 빠지기엔 너무나도 팔팔하다. 젊고 생명력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빼면 삶의 모든 면에서 울퉁불퉁한 길을 끝도 없이 달리는 것만 같은 사춘기라는 시기. 초능력(그 근원과 정체는 극중에서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은 그 시기의 불안정한 마음의 빈틈에 재빨리 파고든다. 남은 것은 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는 것 뿐. 엄청난 힘을 손에 넣은 세 사람이 하나같이 수퍼히어로가 된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스파이더맨> 같은 영화는 가짜가 아닐까라는 불경스러운(?) 생각마저 잠시 든다.

<크로니클>을 보면서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소재로 한 <캐리>나 <미러, 미러>,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존재들을 그린 <아키라>, <스캐너즈> 같은 장르영화/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한 관점에서라면 <크로니클>도 그다지 새로운 작품은 아니고,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의 재활용에 불과할 수도 있다. 캠코더와 CCTV 등의 시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발견된 영상’ 연출 기법도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크로니클>은 결코 낡지 않았다. 그 속에는 폭발하듯 강렬하고 생생한, 때때로 보는 이의 마음을 할퀴곤 하는 감정으로 가득하고, 다소 전형적이지만 성실한 연기로 표현되어 동정심과 관심을 기울일 만한 등장인물이 있으며, 어두운 동굴 속을 거침없이 달려가는 연출이 있다. 이야기 두루마리가 놀라운 속도로 풀리면서 그 핵심으로 집중해 가는 전개는 압도적이다. 피로감마저 느껴질 법한 수퍼히어로 영화의 홍수 속에서, 이 정도로 힘 있고 균형 잡힌 작품을 찾는 건 의외로 쉽지 않다.

마지막 장면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장면이 흘러가는 동안 관찰자인 나, 보는 이와 기록자인 카메라의 시점이 주인공의 시점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주인공의 눈이 되어, 아니 주인공 그 자신이 되어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럼으로써 나는 주인공이 꿈꾸었던 피안이 무엇이었는지를, 그가 왜 멈추지 못했는지를, 비극 속에서도 그의 모습이 왜 그토록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웠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얄밉게도 바로 그 순간 영화는 끝난다. 궁금증을 몹시도 자극하는 미스테리 몇 가지가 남는데, 그것은 속편에서 밝혀질지도 모르겠다. 엔드 크레딧을 천천히 넘겨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 연대기(chronicle)의 다음 장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힘’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원제: Chronicle
감독: 조쉬 트랭크
주연: 데인 드한, 알렉스 러셀, 마이클 B. 조던, 마이클 켈리, 애쉴리 힌쇼
북미 개봉: 2012년 2월 3일
한국 개봉: 2012년 3월 15일

[클로버필드] (2008)

(C) Paramount Pictures, Bad Robot
(C) Paramount Pictures, Bad Robot

<클로버필드>(Cloverfield)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괴수영화가 아닐지 몰라도, 가장 현실감 있는 괴수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다른 장르영화가 그렇듯 괴수영화 역시 단순한 형식을 큰 변화 없이 오랜 세월동안 활용하여 왔다. 인간이 보유한 물리력과 지력을 압도하는 생물이 인간 문명의 상징(주로 대도시)을 습격하여 미증유의 파괴를 초래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괴수영화를 이루는 형식이다. 그것은 이제 전혀 새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고리타분하고 유치하다는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클로버필드>는 소재의 식상함을 스타일로 극복했다. 심지어는 관객의 넋을 잠시 나가게까지 한다.

이 영화가 취한 스타일은 이야기를 철저히 인간의 시점 속에 가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화를 이루는 모든 장면은 주인공 일행이 가진 단 한 대의 캠코더로 촬영되었다고 설정되었다.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와 비슷한 형식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미 녹화한 내용을 새로 촬영한 내용이 덮어쓸 수 있다는 캠코더 특유의 장점으로 영리하게 해결했다. 여기에 치밀한 계획에 의한 가상의 우발적 상황이라는 연출이 덧붙여져 강력한 화학작용이 발생했다. 또한, 카메라의 단일 시점은 화면 속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제한하여 관객이 영화 속 상황에 대해 더욱 능동적인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주인공이 군인이나 과학자 등 괴수 퇴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반인이라는 점도 괴수영화로서는 흔치 않은 경우이다. 휴대전화가 중요한 소도구로 등장한다는 점과 함께, 이는 괴수영화 종주국이 아닌 나라에서 만들어졌으면서도 오히려 그 때문에 장르의 클리셰에 함몰되지 않았던 이색작 <괴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화학약품이나 폭탄보다 캠코더와 휴대전화가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클로버필드>를 21세기라는 시대에 최적화된 괴수영화 – 농담 삼아 ‘UCC 괴수영화’ – 라 부를 수도 있겠다.

덕택에 관객은 순서대로 찍어 편집을 거치지 않은 캠코더 영상만으로도 등장인물과 금세 친숙해지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굉음과 함께 평범한 일상이 찢어진다. 이미 등장인물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점까지 공유하게 된 관객은 아비규환의 연속을 거치며 점차 그들과 하나가 된다. <클로버필드>에서 관객은 더 이상 괴수영화를 관람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경험한다.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으로 담은 기존 괴수영화의 영상에 익숙한 골수팬들은 캠코더 한 대로 대체 뭘 보여줄 수 있겠냐는 우려를 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교묘한 동선 배분을 통해 스펙터클은 물론 충분한 리얼리티도 확보하였다. 일개 시민이 고층건물을 닥치는 대로 무너뜨리면서 전진하는 거대한 괴수의 전신을 어떻게 촬영할 수 있었겠는가? <클로버필드>는 <우주전쟁> 이후 시각적으로 가장 뛰어난 괴수영화이기도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괴수가 가져온 정서적 반응이 마치 그 몸에서 무수히 떨어진 징그러운 기생생물처럼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극 중의 괴수는 정체를 알 수도 없으며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핵실험이나 환경파괴 등의 분명한 탄생 원인이 있었던 다른 괴수들과 달리 관객은 이 괴물이 무엇이었는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어쩌면 <클로버필드>의 괴수는 징후와 실체를 파악할 수 없으며 그 종결 시점조차 알 수 없는, 현재 이 세상에 상존하는 불안과 공포를 대변하는 존재가 아닐까. 마음속에 아직도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앉아 있는 것만 같다.

<클로버필드>는 고난이도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처럼 하늘과 땅이 잠시 자리를 바꾼 것 같은 아찔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지나친 비밀 위주의 홍보가 유발한 거부감과 불안감을 뛰어넘는 저돌적인 힘을 지닌 이 괴수는 두 발이든 네 발이든, 제 스스로 단단히 땅을 딛고 일어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원제: Cloverfield
감독: 매트 리브스
주연: 마이클 스탈 데이비드, T. J. 밀러, 오데트 유스트먼, 제시카 루카스, 리지 캐플런
미국 개봉: 2008년 1월 18일
한국 개봉: 2008년 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