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본 특촬영화의 명배우, [고지라]의 타카라다 아키라

타카라다 아키라 (사진 제공: 타카라다 기획)

1954년 공개된 괴수영화의 기념비적인 걸작이자, 킹콩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괴수 캐릭터를 세상에 내놓았던 작품이 바로 <고지라>(ゴジラ)이다. 이 영화가 ‘특촬(特撮)’이라는 일본의 독특한 영상 장르를 부흥시키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흐름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타카라다 아키라(宝田明) 씨는 <고지라>와 거의 동시기에 데뷔하여 2016년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배우이다. 그는 나루세 미키오, 이나가키 히로시, 오즈 야스지로, 이타미 쥬조, 키타노 타케시 등 당대의 유명 감독들과 작업하였으며, TV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2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였다.

또한 특촬 괴수영화의 팬들에게는 영원한 고전 <고지라>의 주연이자, 이후 일세를 풍미한 토호 특촬영화의 간판 스타로도 친숙하다. <모스라 대 고지라>, <세계대전쟁>, <괴수대전쟁>, <킹콩의 역습>, <위도 제로 대작전>, <고지라 VS 모스라>, <고지라: 파이널 워즈> 등 출연작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팬들은 그의 명성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 타카라다 씨가 최근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2015년 12월 20일부터 오는 3월 6일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감독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을 위해서이다. 아울러 타카라다 씨는 지난 2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자신의 출연작 세 편을 한국 관객들에게 직접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위해 특별 상영작인 <고지라>, <세계대전쟁>, <두 아들>을 직접 고르기도 했다.

괴수보호구역은 일본 특촬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명배우 타카라다 아키라 씨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아래는 그 기록이다.

 

괴수보호구역/ 먼저, 어제(*1 한국 관객들과 두 차례에 걸쳐 만남을 가지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1: 이 인터뷰는 2월 21일 이루어졌다. 타카라다 씨와 한국 관객들의 첫 만남인 <딸, 아내, 엄마>와 <방랑기> 상영 및 토크 이벤트는 전날인 2월 20일이었다.

 

타카라다 아키라/ 관객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루세 감독님의 작품 두 편을 다 보신 분들도 계셨고, 작품은 물론 감독님에 대해서도 매우 상세히 알고 계셨습니다. 나루세 감독님께서 생존해 계셨다면, 당신의 작품이 이렇게 한국에서 상영되며 관객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기뻐하셨을 겁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괴수보호구역/ 이번 영화제 특별 상영작으로 <고지라>와 <세계대전쟁>을 비롯한 세 편의 영화를 직접 고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카라다 아키라/ 이왕 특별전에 참여하는 김에, 나루세 감독님 작품 뿐만 아니라 저의 대표작인 <고지라>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62년 전인 1954년 토호에서 제작되었는데, 제게는 세 번째 출연작이자 첫 주연작이기도 하지요. 이후로도 50년 동안 시리즈로 이어지며 토호의 달러 박스로서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지라 자신도 이렇게 히어로로서 지지를 받게 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회가 새로워지는 작품이로군요.

 

괴수보호구역/ <고지라>에서 함께 연기하셨던 코우치 모모코 씨와 히라타 아키히코 씨와는 다른 여러 작품에서도 공연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리운 이름이 되신 이 두 분과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지요?

 

타카라다 아키라/ 코우치 모모코 씨는 1953년 토호 뉴 페이스 동기생이었습니다. 토호 뉴 페이스는 1기생 미후네 토시로 씨로 시작되어 여러 대스타를 배출했던 시스템이지요. 코우치 씨와는 6기생으로 함께 입사하여 촬영소에서 1년 동안 연기 연구생 동료로 지냈습니다. <고지라>를 같이 하게 되어 매우 편안한 마음으로 촬영할 수 있었어요. 히라타 아키히코 씨는 한 기수 선배님이셨는데, 최고 학부를 졸업하신 우수한 분으로서 영화의 길을 택하신 경우입니다. 출연자 대부분이 가깝게 지냈던 분들이라 마음 편히 촬영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무엇보다도 기뻤던 것은 <7인의 사무라이>에 출연하셨던 시무라 타카시 씨(<고지라>에서는 야마네 쿄헤이 박사 역)와 함께 연기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과 함께했던 작품이 <고지라>였습니다.

 

괴수보호구역/ 앞서 배우 중심으로 <고지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작품을 연출하신 혼다 이시로 감독님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고지라> 이외에도 다수의 작품을 함께 만드셨는데, 타카라다 선생님께서 보신 혼다 감독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는 그다지 잘 알려진 감독님이 아니기도 하셔서(이 대목에서 타카라다 씨는 ‘음, 과연 그렇겠군요.’ 라고 말했다), 이분에 대한 선생님의 추억도 들어 보고 싶습니다.

 

타카라다 아키라/ 혼다 감독님께서 토호에 입사하셨을 당시, 동기생으로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님이 계셨지요. 저는 혼다 감독님과 괴수영화 말고도 <내 가슴속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다> 등을 함께했습니다만, <고지라>를 맡으셨을 때는 그분도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책임감도 굉장히 무거웠을 테고요. 혼다 감독님께도 괴수영화는 처음 경험하는 거라서 말이죠. 토호라는 회사 입장에서도 과연 이 영화가 히트할 것이냐, 그렇지 못할 것이냐 예측하기 어려운 도박이었을 겁니다. 영화 산업 자체에 그런 측면이 있긴 합니다만, 첫 번째 작품이 성공하지 못 했다면 두 번째는 만들어지지 않았겠지요.

<고지라>가 개봉했던 1954년 당시 일본 총인구는 8천 8백만 명이었습니다(지금은 1억 3천만이 넘지요). 그 가운데 961만 명이라는, 지금도 상상하기 힘든 숫자의 관객을 동원하였습니다. 그것은 역시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핵의 위협으로 수십 만 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된 피폭국으로서의 경험과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또한 1954년 일본에서는 경기가 회복되면서 전후 재건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수소폭탄 실험이 실시되었죠. 이때 비키니 환초에서 조업 중이던 시즈오카 야이즈항 소속 어선인 제5 후쿠류마루가 피폭 당하면서, 일본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이후 9년 만에 세 번째로 핵의 위협에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토호는 전 세계를 향해 핵 폐기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발신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고지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오락적 괴수영화에 머무르지 않는, 커다란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었던 것이죠. 혼다 감독님도 전쟁터에서 생사가 오가는 경험을 하기도 하셨고, 전쟁에 대해 강한 비판 의식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감독님께선 <고지라>를 처음 맡으시면서 ‘이왕 만들 거라면 일본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영화로 하자.’ 라고 결심하셨습니다.

츠부라야 에이지 감독님은 특수촬영을, 혼다 감독님은 저희 드라마 부분을 따로따로 촬영하게 되었는데, 영상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저희 드라마 쪽에선 지금 나타난 고지라가 거대한 전신을 모두 드러낸 상태인지, 옆쪽을 바라보고 있는지, 뒤쪽을 바라보며 그리로 향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꽤나 애먹었지요. 혼다 감독님께 ‘어떤 리액션을 보여 주면 좋을까요?’ 라고 여쭤 보아도, 감독님 역시 ‘으음… 그러게 말이야. 두 가지로 찍어 보면 어떨까? 고지라가 앞을 보고 있는 경우와 뒤를 보고 있는 경우를 둘 다 찍어 놓으면, 어느 쪽인가는 들어맞지 않을까?’ 이런 방법으로 촬영을 해 나갔습니다. 종종 츠부라야 감독님께서 그림 콘티를 들고 저희 쪽 현장에 오시는 날이면, 출연자도 스탭들도 모두 머리를 맞대고 ‘아, 고지라는 이쪽을 보고 있구나!’ 라며 서로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그림 콘티를 애타게 기다리며 연기를 하던 상황도 있었습니다. 제1편을 만들 당시엔 그런 고생담이 많았어요.

혼다 감독님께선 항상 진지한 태도로 연출에 임하셨고, 저희는 그런 감독님의 인품에 탄복하여 경의를 품고 그분의 연출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괴수보호구역/ 매우 신사적인 분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타카라다 아키라/ (강하게 동의하며) 네, 그렇습니다! 참 조용하고 차분한 분이셨고, 현장에서 큰소리 한 번 내시거나 야단을 치거나 하신 적도 전혀 없었지요. 늘 진지하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해 보면 어떨까 의논을 많이 하셨고, 저 역시 은사님을 뵙고 상담할 때처럼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코우치 씨도, 히라타 씨도 모두 마찬가지였죠.

 

괴수보호구역/ 지금까지 말씀을 듣고 보니 <고지라>와 <세계대전쟁>은 소재도 그렇고, 선생님의 극중 배역도 둘 다 해운과 관계되어 있다 보니 마치 형제와도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이 두 작품을 특별히 고르신 뜻을 알 것 같습니다.

 

타카라다 아키라/ 맞습니다. 두 영화 모두 핵의 위협에 대한 이야기이고, 당시가 냉전시대이기도 하여 피폭국인 일본은 핵의 절멸을 외치는 메시지를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게 던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가상의 존재인 고지라를 등장시키기도 했지만, <세계대전쟁>의 경우 일반 서민의 보편적인 가정을 다루었지요. 그들의 부자관계나 부부관계, 제 배역 입장에서는 그 가족의 딸과 맺고 있던 연인 관계 등이 핵의 위협에 따른 고민과 근심으로 변해 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지라>와 <세계대전쟁>은 공통점을 지닌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괴수보호구역/ 앞서 전쟁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여러 곳을 다니시며 반전 강연 활동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연기 활동을 통해 느끼신 바도 있겠습니다만, 격동의 시대에 속했던 성장기 경험도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강연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와 이를 통해 강조하고 싶으신 바는 무엇인지요?

 

타카라다 아키라/ 저는 올해 82세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쯤 환갑을 맞았을 때 뭔가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구 만주국 하얼빈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전쟁으로 일본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얼빈에 소련군이 들어왔을 때는 총에 맞기도 했고, 부녀자들이 유린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에 대한 염증을 느끼며 고향에 돌아왔지요. 저는 군대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런 체험을 통해 전쟁에 대해 항상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그렇게 환갑이 될 때까지 일 쪽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인지, 내 삶을 통해 다음 세대와 어린이들에게 우리 세대가 어떤 메시지를 남겨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전쟁 반대와 핵 폐기를 위해 낼 수 있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결심으로 이어져, 일본 각지의 반전 집회나 헌법 구조 지키기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히로시마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에 참가하여 강연을 하고 반전가를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에 예술 활동 이외에도 반전 운동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지만, 타카라다 씨에게는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타카라다 아키라/ 음… 저는 고지라를 제 동급생, 클래스메이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동급생은 아득히 먼 저 하늘 위의 존재와도 같은, 전 세계적인 초 유명인사가 되어 버렸군요(웃음).

<고지라> 제1편이 완성된 후 촬영소에서 100여 명의 스탭과 관계자들이 모인 완성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마지막에 고지라가 백골이 되어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인간의 업이란 얼마나 강한 것인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지라는 바닷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생물(물론 가공의 것입니다만)일 따름이었지만 바다 위에서, 땅 위에서 일삼던 수폭실험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고지라의 울음소리를 듣노라면 슬픔, 더 나아가 페이소스마저 느끼곤 합니다. 시사실에서 그런 고지라를 보던 저는 참으로 불쌍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단순한 디스트로이어(destroyer), 즉 파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점, 얼핏 악한 존재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캐릭터라는 점이 고지라가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아 온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또 한 가지. 62년 전은 컴퓨터 그래픽(CG)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고지라>는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아날로그 작품입니다. 요즘에야 막대한 시간과 예산을 투입하여 전부 CG로 만들어 버립니다만, 그런 영상을 보면 어딘가 텅 비고 가짜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고지라>의 존재감 있는 흑백 영상이야말로, 인간이 올린 특수촬영의 개가가 아닐까요.

 

인터뷰를 도와 주신 분들

조영호 씨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연지미 씨 (동시통역사)
이와사키 히로아키 씨 (타카라다 기획)
홍기훈 씨 (빅 몬스터 클럽)

[토라카게 대혈전] (2015)

(C) 「虎影」製作委員会
(C) 「虎影」製作委員会

<토쿄 잔혹 경찰>, <V 소녀 대 F 소녀>, <헬 드라이버>, <ABC 오브 데스> 등의 연출작으로 고어 마니아와 B급영화 팬들을 즐겁게 했던 니시무라 요시히로 감독이 이번에는 닌자영화에 손을 댔다. 아니나 다를까 첫 장면부터 분수처럼 치솟는 핏줄기를 퍼부으며, 영화는 맹렬히 질주하기 시작한다. 겉포장은 닌자 활극이지만 이야기가 흐르면서 서부극, 일본 칼부림 시대극과 기담, 뮤지컬, 심지어는 수퍼히어로와 쇼와 특촬, 파친코까지 엮어 넣은 장르 짬뽕의 진수가 펼쳐진다.

니시무라 감독은 특수분장과 특수촬영의 베테랑답게 아날로그/실물 표현을 중시하는 한편, 의도적인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모를(아마도 둘 다이리라 생각하지만) 시대착오적 퀄리티의 디지털 합성을 뒤섞어 부조리한 SFX 시퀀스를 선보인다. 여기에 원전 작품을 안다면 꽤나 즐길 수 있는 인용과 패러디, 장르 자체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이 곁들여져 니시무라판 닌자 대혈전이 완성된다.

감독의 전작에 여러 차례 출연했던 시이나 에이히(키리키리키리!)도 우스꽝스러운 악역으로 돌아왔고, 타이틀 롤은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잘 알려진 사이토 타쿠미가 맡았다. 하가 유리아, 츠다 칸지, 니시나 타카시, 이타오 이츠지 등 특촬 작품으로 인상적인 배우들이 포진해 있어, 팬이라면 그들을 확인하는 재미도 각별하겠다. 여하튼 긴장을 풀고, 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신나게 보기만 하면 된다.

원제: 虎影
감독: 니시무라 요시히로
주연: 사이토 타쿠미, 하가 유리아, 시이나 에이히, 미모토 마사노리, 세이노 나나
일본 개봉: 2015년 6월 20일

* 2015년 7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탈로그 게재용으로 기고한 글이다.

‘고지라’라는 괴수

(C) Toho Co., Ltd.
(C) Toho Co., Ltd.

고지라의 별명은 ‘괴수의 왕’이다. 그와 지명도를 양분하는 또 다른 괴수인 킹콩에 비해 21년이나 늦게 태어났지만, 이른바 ‘스펙’만 본다면 고지라는 킹콩을 압도하는 사상 최강의 괴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관총 세례를 맞고 숨을 거둔, 몸집만 빼면 평범한 고릴라와 다르지 않았던 콩과는 달리 고지라는 체내에 방사능을 축적한 거대한 고대생물의 돌연변이이다. 그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고 끈질기며, 사실상 불사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단시간에 토쿄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만큼 막대한 파괴력도 지녔다. 인간의 군대는 그의 간식거리도 안 되는 상대가 된 지 오래이고 수도 없이 밀려드는 적 괴수와 싸워 대부분 승리했으며, 심지어는 우주괴수들과도 호각으로 맞선다. 지구상에서, 아니, 우주의 꽤 넓은 범위 안에서 고지라를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1954년 스크린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고지라는 대표적인 시리즈 영화 주인공으로 손꼽히는 제임스 본드보다 많은 28편의 영화에 나왔고, 헐리우드에서는 두 번째 리메이크가 만들어지고 있으며(2014년 여름 개봉), 이외에도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중매체에 이식되었다. 완구를 비롯한 수천 종의 관련상품도 끊임없이 생산되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팬들의 지갑을 꾸준히 털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고지라가 영화 속뿐만 아니라 그 밖에 있는 현실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괴수의 왕임을, 당신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고지라는 2차대전 당시 일제의 홍보용 영화에 동원되었던 특수촬영 기술이 전후 영화산업의 환경에 맞춰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던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토호 영화사의 프로듀서 타나카 토모유키는 50년대 초반 일본에서 재개봉한 1933년판 <킹콩>을 보고, 괴수가 등장하는 특수촬영 영화에 대한 수요가 있음을 감지했다. 일본을 습격하는 거대 괴수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한 타나카는 이를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정교한 특수촬영 기법으로 유명했던 츠부라야 에이지,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이후 그의 조감독으로도 활약하게 되는 혼다 이시로 감독과 힘을 합쳤다. 마침내 1954년 11월 일본에서 공개된 <고지라>는 9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히트, 이후 괴수영화를 중심으로 SF, 호러, 스릴러 등의 하위 장르로 분화되는 ‘특촬’이라는 일본 특유의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1956년에는 미국인 배우를 등장시킨 장면을 삽입하여 재편집한 미국 개봉판 <괴수왕 고지라>가 공개되어 역시 흥행에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서양에도 일본 특촬영화가 꾸준히 소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고지라는 점차 인간에게 친숙해졌고, 때로는 스스로 인간의 편에 서는 캐릭터로 변모해 갔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유행의 변화와 영화계의 흥망성쇠에 좌우되는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 때문이다. 가상의 캐릭터에게 어른의 사정이란 방사능이나 재해보다 더 강력하고 두려운 것이었을 터. 고지라가 대중에게 ‘B급’이나 ‘싸구려’로 인식된 것도 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조악한 영어 더빙과 화질로 선보였던 해외 공개용 재편집판들도 작품의 제대로 된 면모를 파악하기 어렵게 해 왔다. 물론 정말로 값싸게 서둘러 만들어진 엉성한 영화들도 분명히 있지만, 대다수의 고지라 시리즈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작비가 투입되며 골든 위크나 여름방학, 정월 연휴철 등에 맞춰 관객들과 만나는 블록버스터이다.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60년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시리즈가 이어졌다는 사실은 고지라가 일본은 물론 세계 대중문화의 아이콘임을 증명한다.

고지라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나왔던 이름 모를 괴물과 몇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미군이 한강에 방류한 화학약품에 의해 태어난 ‘괴물’처럼, 고지라는 원래 심해에서 잠자고 있던 고대생물이었다(그것이 당시의 고생물학 기준으로 표현된 티라노사우루스형 직립 공룡이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핵실험의 방사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깨어난 고대생물은 이에 복수라도 하듯이 인간 문명을 파괴하는 거대 괴수 고지라로 거듭난다. 인간, 특히 일본인의 관점에서 고지라는 원폭과 방사능에 대한 공포의 실체화이다. 시리즈 첫 편인 <고지라>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공개되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한, 고지라는 일본에 자주 일어나는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 가운데 하나로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일본인에게 그는 깊은 애증의 대상이자 사람이 아닌 것으로서 기묘한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존재이다.

괴수 특촬 장르의 퇴조로 인해 고지라 시리즈는 2004년 제28편 <고지라: 파이널 워즈>가 개봉한 뒤 일단 종료했다. 그러나 ‘최후의 전쟁’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가 되는 2014년, 헐리우드 리메이크의 결과에 따라 향방은 달라질 수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방사능과 원자력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역설적으로 오리지널 고지라의 부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절멸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것이 그의 역할이자 운명이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 두려움은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와서도 힘차게 고동치는 고지라의 심장, 그것에 깃든 불사의 생명력이 그렇듯이.

* 이 글은 2012년 문화 웹진 리딩툰(현재 운영 종료)에 썼던 무비 몬스터 소개글 ‘몬스터 유한회사’ 가운데 고지라 부분을 발췌하여 가필, 수정한 것이다.

[고지라] 코믹콘 관련 소식

샌디에고 코믹콘의 개막과 함께 <고지라>(Godzilla) 헐리우드 리메이크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도 온/오프라인을 통해 차례차례 공개되고 있다. 지금까지 선보인 <고지라> 코믹콘 관련 주요 소식을 정리해 보았다.

1. 새 티저 포스터

앞서 공개된 코믹콘 티저 포스터에 이어, 이번에는 새로운 티저 포스터가 첫선을 보였다. 뿌연 안개 속에 놓인 고지라의 꼬리 부분을 담은 상당히 인상적인 이미지이다. 공중에 떠 있는 헬리콥터가 고지라의 거대함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꼬리의 모습이 ‘고지라답다’는 점이다. 적어도 형태 면에서, 이번 고지라는 1998년 롤랜드 에머릭 감독의 <고질라>에 등장했던 이구아나 괴수에 비해 훨씬 더 원조에 가깝게 그려질 것 같다.

더 큰 포스터를 내려받고 싶다면 <고지라> 공식 페이스북으로 가시라.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2. 컨셉트 아트워크

괴수 정보 사이트인 SKREEONK!에 투고된 영화의 컨셉트 아트워크(더 크게 보려면 이쪽으로). ‘고지라 접촉’ 이벤트 애플리케이션을 뒤져내어 조합한 것이라고 한다. 영화의 규모를 엿볼 수 있는 멋진 이미지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바다를 가르고 솟아오른 고지라의 등지느러미 세 줄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역시 고지라 시리즈 정평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어, 이번 리메이크가 원전을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고 있다.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3. 고지라 접촉 이벤트 개막

앞서 소식을 전했던 코믹콘의 ‘고지라 접촉(Godzilla Encounter)’ 이벤트가 지난 17일 막을 올렸다. 고지라 접촉 이벤트는 코믹콘 회장 안에 설치한 홍보 부스로서, 고지라 시리즈나 고지라 자체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여러 가지 볼거리가 설치 및 전시되어 있다. 레전더리 픽처스가 공개한 동영상과 공식 사진, 그리고 다른 웹사이트에서 게재된 사진 등을 묶어 정리했다.

(1) 부스 외벽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 링크. 배경 음향은 방사능을 측정하는 가이거 계측기가 내는 소리이다. 역시 고지라 시리즈를 상징하는 음향 가운데 하나.

http://staging.vivoom.co/video/MqEj1gbA

(2) 레전더리의 공식 사진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부스 입구로 보이는 곳. ‘토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일본어(입구 위쪽)와 영어(계단)로 적혀 있다.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타나카 전기’라는 이름의 옛날 전파사를 재현한 모습. ‘타나카’라는 이름은 고지라 시리즈의 프로듀서인 타나카 토모유키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특촬의 신’으로 불렸던 일본 특수촬영의 대부 츠부라야 에이지의 모습을 담은 벽화가 있다. 벽화 위의 ‘谷マスタ’라는 글자는 위쪽 입구 사진 왼쪽 위에 있는 ‘スターの怪’와 서체가 같은 걸 보니 아무래도 이어지는 것 같다. 이를 합치면 ‘谷マスターの怪’가 되는데, 고지라 팬이라면 이 문구가 ‘円谷マスターの怪獣(츠부라야 마스터의 괴수)’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아래 링크 참조)을 확인한 결과 실은 ‘円谷マスターの怪獣達(츠부라야 마스터의 괴수들)’이었다.

(3) 해외 정보 사이트의 사진

우선 75장의 꽤 많은 사진을 올린 콜라이더를 통해 이벤트 현장의 모습을 대략적이나마 살펴보자. 분량 때문에 링크로 대체하는 것이 아쉬운데, 재미있는 것들을 제법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올려 조목조목 분석해 볼까 한다.

http://collider.com/godzilla-encounter-comic-con-pictures/

4. 핫 토픽의 <고지라> 티셔츠

코믹콘 개막에 맞춰 영화의 타이틀 로고를 담은 티셔츠가 핫 토픽에서 독점 판매되고 있다. 정가는 20달러 50센트.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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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고르고] 블루레이 디스크 북미 발매

(C) King Brothers Productions
(C) King Brothers Productions

영국산 거대 괴수영화 <고르고>(Gorgo)가 3월 19일 북미 지역에서 블루레이 디스크로 출시된다.

<고르고>는 괴수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심해에서 온 괴물>, <심해괴수 비히모스> 등을 연출한 유진 루리 감독의 작품으로 1961년 공개되었다. 아일랜드 근해에서 발견된 괴수가 포획되어 서커스의 구경거리가 되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더 거대한 괴수의 새끼였음이 밝혀진다. 곧이어 어미가 새끼를 구하고자 런던에 상륙하면서 재난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 일본 괴수영화처럼 수트메이션과 미니어처 특수촬영으로 구현된 보기 드문 영국산 작품으로 유명하다.

북미판 블루레이 디스크의 출시사는 VCI 엔터테인먼트인데 이 회사는 앞서 이 영화의 DVD를 발매한 바 있으며, 이번 블루레이 출시와 함께 그에 준한 사양으로 업그레이드된 새 DVD를 내놓을 예정이다. 블루레이 디스크의 사양은 다음과 같다.

영상: 1.78:1 / 1,080p HD 와이드스크린
음성: 리니어 PCM / 돌비 디지털 5.1 (영어, 프랑스어)
자막: 영어
부록
– <세계 제9의 불가사의: 고르고 제작 과정> (대니얼 그리피스가 연출한 새 다큐멘터리)
– 고르고 비디오 만화책과 만화판 표지 갤러리
– 로비 카드 및 포스터 갤러리
– 포토 갤러리
– 고르고 완구 및 수집품 갤러리
– 프로덕션 노트
– 예고편
– 보도자료 갤러리
– 스타 시네 코스모스 (프랑스어판 만화)
– 복원 영상 (복원 전과 후 비교)

부록 구성은 신판 DVD도 같다. 정가는 블루레이 디스크가 19달러 99센트, DVD가 14달러 99센트이다. 현재 발매 중인 VCI의 구판 DVD 정보는 이쪽에서 확인하시라.

출처: VCI 엔터테인먼트 공식 웹사이트

SF 인형극 [선더버드] 리부트 제작

(C) ITC Entertainment
(C) ITC Entertainment

1960년대를 풍미했던 영국의 SF 인형극 TV 시리즈 <선더버드>(Thunderbirds)가 리부트된다. 오리지널 시리즈를 방영했던 영국 ITV 채널의 방계사 ITV 스튜디오는 뉴질랜드의 푸케코 픽처스, 그리고 피터 잭슨 감독 등이 공동 설립한 웨타 디지털과 손잡고 새로운 <선더버드> TV 시리즈인 <선더버드 출동!>(Thunderbirds Are Go!)을 제작하기로 했다.

<선더버드>는 1965년 프로듀서 제리 앤더슨과 실비아 앤더슨 부부가 자신들의 제작사인 AP 필름즈를 통해 제작한 32부작 TV 시리즈이다. 국제구조대(International Recsue)라는 조직을 이끄는 제프 트레이시와 그의 다섯 아들이 조종하는 ‘선더버드’라는 첨단 메카닉이 세계 각지의 재해와 사고로부터 인명을 구조하고 범죄자들에 맞선다는 호쾌한 이야기였는데, 등장인물로는 배우 대신 인형을 출연시켰고 저예산 제작 환경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얻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특수촬영이 박력 넘치는 영상을 창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 같은 성과로 두 편의 극장판이 제작되기도 했으며, 2004년에는 <스타 트렉: 차세대>의 배우 겸 감독 조너선 프레이크스가 연출하고 빌 팩스턴 등 배우들이 출연한 리메이크 영화가 개봉한 바 있다(흥행과 비평에서 실패). 이후 앤더슨 부부는 <스팅레이>, <캡틴 스칼렛과 미스테론>, <조 90>, < UFO >, <우주대모험 1999> 등 다양한 실사 특수촬영 시리즈를 만들면서 당대 및 후대 업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례로 <사우스 파크> 제작진의 인형극 <팀 아메리카: 세계 경찰>은 바로 이 <선더버드>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유감스럽게도 <선더버드>의 창조자 제리 앤더슨은 지난해 12월 26일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 만들어질 리부트 <선더버드 출동!>은 CG 애니메이션과 실사 모형을 활용한 특수촬영을 합성하는 방식이 사용될 계획인데, 제작진은 원작의 향기를 살리고 그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연출에도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원작의 트레이시 부자 그대로이며 브레인즈, 키라노, 레이디 페넬로피 등 다른 조연 등장인물들도 합류할 전망이다. 편당 30분짜리 에피소드 26편이 제작되어 2015년 ITV와 CITV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C) ITC Entertainment
(C) ITC Entertainment

출처: 데드라인

[건헤드] (1989)

(C) 東宝 / サンライズ / バンダイ / 角川書店 / IMAGICA / 東宝映画
(C) 東宝 / サンライズ / バンダイ / 角川書店 / IMAGICA / 東宝映画

<건헤드>(ガンヘッド)라는 영화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중학교 1학년 때였던 1989년, 영화잡지 [로드쇼] 9월호에 실린 기사였다. 일본문화가 개방되지 않았던 당시 금단의 영역이었던 일본 SF영화가 컬러 사진과 함께 소개된 데다가, 실물 크기의 로봇이 등장한다는 기사 내용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사정상 보고 싶어도 볼 방법을 몰랐으므로 관심은 그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대학 재학 중이던 1997년, 의외로 없는 것이 없는 국내 출시판 비디오의 세계를 통해 <건헤드>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그때도 일본 문화 개방 이전이었으나 영어 더빙이 된 인터내셔널 버전을 수입한 것 같았다. 하지만, 보고 나니 유감스럽게도 작품에 대한 환상이 무참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지루한 전개, 엉성한 플롯, 설정과 따로 노는 등장인물, 나쁜 대사, 무엇보다도 기대 이하의 특수촬영(실물 크기 로봇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게다가 비디오의 화질도 굉장히 나빴다. 그때만 해도 특촬영화를 진지하게 보지 않던 시기였고 지극히 일반적인 의미에서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던 내게 이 영화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짐작이 가지 않는다면, 인터내셔널 버전의 감독이 ‘앨런 스미시’로 표기되어 있었다는 점을 말해 둔다.

그럼에도 <건헤드>가 DVD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토호 특촬영화 가운데 한 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2000년 이후 특촬영화를 진지하게 보기 시작한 나로서는 언젠가 한 번은 거쳐야 할 작품이 된 것이다. 어쩌면 DVD가 재평가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조금은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제작사는 <기동전사 건담>으로 유명한 선라이즈였다. 그 점도 흥미를 다시 한 번 일으키는 데 한몫했다.

DVD로 다시 본 <건헤드>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냥 못 만든 토호 특촬영화’였다. 1997년 첫 만남을 통해 기대감과 환상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시각이랍시고 애써 지루함을 참아가면서 봤음에도 ‘그냥 못 만든 토호 특촬영화’라는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높이 4m짜리 사이봇 고지라를 만들어 대대적으로 광고했지만 막상 본편에서는 몇 커트 나오지도 않았던 1984년판 <고지라>처럼, <건헤드> 역시 로봇의 실물 크기 모델보다는 미니어처 모델이 화면에 더 자주 비쳤다. 게다가 로봇은 걷는 대신 바퀴로 굴러다녔으며, 카와키타 특기감독의 작품답게 육탄전 대신 빔과 탄약이 난무하는 총격전 커트가 반복되는 전투 장면에서는 솔직히 한숨이 나왔다(‘이 양반 버릇은 어딜 가나 그대로구먼.’). 1997년의 첫 감상을 거슬리게 했던 영화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지금 보아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이 영화를 예전처럼 내칠 수 없는 까닭은 당시 토호에서 가능했던 아날로그 특촬의 거의 모든 것을 투입한 야심작임을 이제야 인정했기 때문이다. 비록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 2>를 합쳐놓은 것 같은 어디서 많이 본 스타일의 영상이지만, 그것을 80년대가 채 지나가기 전에 자체적으로 재현했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건헤드>와 <고지라 VS 비오란테>가 같은 해에 같은 특기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와키타 특촬반은 <건헤드>에서 로봇을 소재로 메카닉의 질감과 존재감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고, <고지라 VS 비오란테>에서는 괴수의 생물감과 중량감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로봇과 괴수라는 대조적인 소재를 동시에 다루면서 각각에 적합한 방식으로 영상화가 가능했다는 사실은 당시 카와키타 특촬반과 토호가 두 작품에 대해 지녔던 의욕을 짐작케 한다.

원제: ガンヘッド
감독: 하라다 마사토
특기감독: 카와키타 코이치
주연: 타카시마 마사히로, 브렌다 배키, 엔죠지 아야, 미즈시마 카오리, 하라다 유진
일본 개봉: 1989년 7월 22일
국내 비디오카세트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