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사 신이치 고지라 조형 사진집 출간

조형사 와카사 신이치의 고지라 관련 조형 자료를 묶은 사진집이 최근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고지라의 공방: 와카사 신이치 조형 사진집]
ゴジラの工房 若狭新一造形写真集


저자: 와카사 신이치
발매일: 2017년 10월 7일
가격: 4,800엔 (소비세 8% 제외 가격)
규격: A4 / 280쪽
ISBN: 9784800313430
출판사: 요센샤

조형업체 ‘몬스터즈’를 운영하고 있는 와카사는 헤이세이 및 밀레니엄 고지라 시리즈에서 괴수 조형을 담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날카로운 이미지가 인상적인 밀레니엄 고지라는 그의 대표작으로, 현재 전 세계의 팬들에게 가장 친숙한 고지라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밖에 헤이세이 가메라 시리즈, 헤이세이 모스라 시리즈 등에도 참여했고, 실사영화판 <얏타맨>, <간츠>에서는 특수분장을 담당했다. 한국 특촬 히어로 TV 시리즈 <이레자이온>의 수트 제작을 맡기도 했다.

이번 조형 사진집은 와카사가 참여한 작품의 기록 사진을 1,000점 이상 담았다고 한다. 수록 작품은 다음과 같다.

<고지라 VS 메카고지라> (1993)
<야마토타케루> (1994)
<고지라 VS 스페이스고지라> (1994)
<고지라 VS 디스트로이어> (1995)
<모스라> (1996)
<모스라 2: 해저의 대결전> (1997)
<모스라 3: 킹기도라 내습> (1998)
<고지라 2000: 밀레니엄> (1999)
<고지라 X 메가기라스: G소멸작전> (2000)
<고지라 X 메카고지라> (2002)
<고지라 X 모스라 X 메카고지라 토쿄 SOS> (2003)
<고지라: 파이널 워즈> (2004)
츠부라야 프로덕션과 기타 작품

저자: 와카사 신이치 (若狭新一)

1960년 3월 2일 토쿄도 출신. 조형공방 몬스터즈 대표취체역. 고교 졸업 후 코스모스 프로덕션을 거쳐 1980년 몬스터즈를 설립, <울트라맨 80>의 괴수 조형을 담당한다. 1985년 <아귀혼>을 시작으로 일본영화계 특수분장의 개척자로서 활약. <고지라 VS 메카고지라>(1993)부터 토호 특촬영화에 참가. <모스라 3: 킹기도라 내습>(1998) 이후 조형 프로듀서로 작품 내 괴수 조형을 총괄. <고지라 2000: 밀레니엄>(1999)부터 고지라 조형을 담당. 근래에도 광고나 각지의 이벤트, 라이브 쇼 등의 조형물을 제작하고 있다.

출처: 요센샤 공식 웹사이트

[하빈저 다운] (2015)

(C) Dark Dunes Productions, Studio ADI
(C) Dark Dunes Productions, Studio ADI

<하빈저 다운>(Harbinger Down)은 저명한 특수효과 / 특수분장 스탭 알렉 길리스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길리스는 파트너 톰 우드러프 주니어와 함께 <에일리언>과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시리즈에서 인상적인 화면을 만들어 냈다. 두 사람이 설립한 특수효과 / 특수분장 전문 업체 어맬거메이티드 다이나믹(ADI)은 지난 30여 년 동안 <레비아탄>, <불가사리>, <죽어야 사는 여자>, <주만지>, <스타쉽 트루퍼스>, <스카이라인>, <엔더의 게임> 등 수많은 작품에 참여하여 관객을 매료시켜 왔다. 길리스와 우드러프는 톰 사비니, 스탠 윈스턴, 스티브 존슨, KNB EFX 그룹의 로버트 커츠먼, 그렉 니코테로, 하워드 버거 등과 더불어 80-90년대 전성기를 누린 헐리우드의 ‘SFX 스타’로 꼽힌다.

ADI의 작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실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이 대세가 된 현재 영화 제작 환경에서 그동안 ADI가 해 온 실물 특수효과 위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긴 상당히 어렵게 됐다. 아마도 길리스는 그럴 기회를 직접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이 영화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조달했다). <에일리언 2>와 <에일리언 3>에서 잊을 수 없는 연기를 보여 준 베테랑 장르영화 배우 랜스 헨릭슨이 주연을 맡았는데, 영화가 시작되면 헨릭슨도 길리스가 꾸미려는 실물 특수효과 한마당의 요소임이 금세 명확해진다.

유감스럽지만 <하빈저 다운>은 몹시도 따분하고 진부한 설정으로 가득하다. 길리스가 이야기를 빚는 솜씨는 아름답고 환상적이면서도 징그럽고 정교한 특수효과를 연출하는 솜씨에 한참 뒤떨어진다. 헨릭슨을 빼면 배우들 대부분도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하며, 그저 돌연변이 물곰의 좋은 먹잇감으로 기능할 따름이다.

<하빈저 다운>은 기본적으로 실물 특수효과가 아직 멀쩡히 살아 있음을 역설하는 쇼케이스이다. 화면 속에서 날뛰는 괴물의 모습과 그 독특한 존재감(괴물은 화면 속 그 자리에 말 그대로 ‘있다’)은 영화의 다른 단점을 잠깐씩 잊게 할 만큼 훌륭하다. 그것은 컴퓨터 그래픽 영상이 실물 특수효과를 아직 완전히 따라잡지 못한 지점이고, 그렇게 길리스는 내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최소한 그런 의미에서, <하빈저 다운>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원제: Harbinger Down
감독: 알렉 길리스
주연: 랜스 헨릭슨, 카미유 발사모, 매트 윈스턴
북미 개봉: 2015년 8월 7일
한국 개봉: 2015년 12월 3일

[터보 키드] (2015)

(C) EMA Films, Epic Pictures Group, Timpson Films
(C) EMA Films, Epic Pictures Group, Timpson Films

<터보 키드>(Turbo Kid)는 멸망한 세계의 폐허를 뒤지며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 가는 이름 모를 소년 이야기이다. 그런데 극중 현재 시점으로 설정된 해는 1997년. 현실에서는 이미 과거가 된 지 오래인 이 해는 파스티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즉, <터보 키드>는 2015년에 만들어진 1980년대 SF-액션영화라는 것이다. 본편이 시작하기 전 스크린에 뜨는 제작사 로고 중 하나에는 ‘업계를 선도하는 레이저디스크 회사’ 운운하는 홍보 문구가 곁들어져 있다. 비애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던 순간이다.

<터보 키드>가 베낀(좋게 말해 ‘오마주한’) SF나 액션 장르영화가 뭔지는 금세 알 수 있다. 한두 편이 아닌 데다 워낙 뻔하게 드러나니까. 음악, 촬영, 실물 특수분장과 특수효과도 다들 너무나 80년대 풍이어서, 극장에서가 아니라 내 방에서 그동안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극적으로 발굴된 80년대 장르영화를 비디오카세트로 감상하는 기분이다. 뭐, 비디오카세트보다 화질이 우수한 레이저디스크여도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영화를 만든 이들은 이 뻔뻔한 파스티셰가 구리거나 지루하지 않게 보일 만한 지점을 잘 찾아냈다. 탄식이 나올 만큼 진부한 이야기일지언정, 그 안에는 달콤하고 아련한 향수와 지나간 시절의 장르영화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빚어낸 자기들의 손맛이 듬뿍 깃들어 있다. 게다가 마이클 아이언사이드가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인데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는가? (아이언사이드는 늘 그렇듯이 노련했지만, 사실 <터보 키드>의 진짜 발견은 헤로인 ‘애플’로 분한 로렌스 라버프이다.) 여하간 엄청 재미있고 사랑스러운 영화다.

원제: Turbo Kid
감독: 프랑스와 시마르, 아누크 휘셀, 요안 칼 휘셀
주연: 먼로 체임버즈, 로렌스 라버프, 마이클 아이언사이드, 에드윈 라이트, 애런 제프리
북미 개봉: 2015년 8월 28일
국내 미개봉작 / 2015년 7월 18일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감상

존 카펜터의 [괴물](1982) 블루레이 신판 9월 발매

(C) Universal Pictures
(C) Universal Pictures

존 카펜터 감독의 1982년작 공포영화 <괴물>(The Thing)의 새로운 블루레이 디스크가 9월 20일 북미에서 발매된다.

<괴물> 블루레이 디스크는 2008년 9월 유니버설에서 처음 나와 공포영화 팬들의 필수 타이틀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번 신판은 유니버설로부터 판권을 임대한 샤우트! 팩토리의 공포/컬트영화 레이블 스크림 팩토리에서 나온다. 스크림 팩토리의 신판은 인터포지티브 필름에서 2K 해상도로 스캔한 새 마스터로 제작된 본편 영상(촬영감독 딘 컨디 감수)과 오리지널 70mm 6트랙 돌비 스테레오 사운드트랙에서 얻은 4.1 음성을 DTS-HD MA 5.1로 변환한 본편 음성, 그리고 여러 가지 새 부록을 추가한 2디스크 사양이다.

부록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새 부록) 촬영감독 딘 컨디의 음성해설

– (새 부록) 31기지의 남자들/ 배우 키스 데이비드(차일즈 역), 토머스 웨이츠(윈도우즈 역), 피터 멀로니(베닝스 역) 등의 인터뷰

– (새 부록) 흡수 과정의 조합/ 편집자 토드 램지 인터뷰


– (새 부록) 카멜레온 뒤에서/ 시각효과 담당 피터 큐런과 수전 터너, 특수분장 담당 로브 버먼과 브라이언 웨이드 등의 인터뷰


– (새 부록) 혹한의 소리/ 음향 편집 총괄 데이비드 루이스 유덜, 특수 음향효과 디자이너 앨런 하워스 인터뷰


– (새 부록) 행과 행 사이/ 소설판 작가 앨런 딘 포스터 인터뷰


– (새 부록) 네트워크 TV 방영판 본편 (92분 / SD)

– 감독 존 카펜터, 주연 배우 커트 러셀의 음성해설

– 존 카펜터의 괴물: 형태를 갖추는 공포/ 제작 과정 다큐멘터리. 감독 존 카펜터, 주연 배우 커트 러셀, 특수효과분장 담당 로브 보틴, 매트 페인팅 아티스트 앨버트 위틀락 등 제작진과 출연진 인터뷰 수록 (80분 / SD)

– 편집된 장면 (5분 / SD)

– 공개 당시 EPK/ 감독 존 카펜터, 주연 배우 커트 러셀, 특수효과분장 담당 로브 보틴 인터뷰 수록 (12분 / SD)

– 공개 당시 단편 다큐멘터리/ 섬뜩한 이야기 만들기, <괴물> 제작 과정 (14분 / SD)

– 공개 당시 홍보 영상/ 본편 편집 영상과 완성본에 실리지 않은 추가 장면 (19분 / SD)

– 공개 당시 제작 과정 영상 (2분 / SD)

– 주석이 덧붙여진 제작 관련 자료/ 프로덕션 아트워크, 스토리보드, 촬영 장소 물색, 특수분장효과, 후반작업 (48분 / SD)

– 티저 예고편과 본예고편 (북미판 및 독일판 예고편)

– TV 및 라디오 광고

– 스틸 갤러리 (제작 과정 사진, 포스터, 로비 카드)

이것만으로도 굉장한 분량인데, 스크림 팩토리는 앞으로 추가 부록이 있을 거라고 예고하였다. 이에 대한 내용은 발표되는 대로 전하겠다.

블루레이 패키지 그림은 폴 쉬퍼의 작품이며, 기존 스크림 팩토리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뒷면에 오리지널 포스터를 인쇄한 리버시블 슬리브가 될 전망이다. 정가는 34달러 93센트.

<괴물>은 존 W. 캠벨의 과학소설 “거기 누구냐?(Who Goes There?)”와 이를 각색한 1951년작 <다른 세계에서 온 괴물>(The Thing from Another World)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남극 미국 기지를 무대로 인간이나 동물의 외형을 똑같이 복제하는 외계생물의 공격과 이에 대처하는 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2011년에는 프리퀄 <더 씽>(원제는 1982년작과 동일)이 공개되었다.

출처: 스크림 팩토리 공식 페이스북

1976년판 [킹콩] 지상파 방영

<킹콩>(King Kong) 1976년판 리메이크가 오랜만에 지상파 TV에서 방영된다. 채널은 EBS, 방영일시는 11월 15일 일요일 낮 2시 15분 <일요 시네마> 시간이다.

<블루 맥스>, <레마겐의 철교>, <타워링>과 함께, 지난 9월 타계한 존 길러민 감독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는 70년대 재난영화 붐을 타고 만들어진 블록버스터이다. 제프 브리지스, 제시카 랭, 찰스 그로딘 주연.

헐리우드 특수분장의 대가 릭 베이커가 직접 킹콩 수트를 입고 열연한 것으로 유명하며, 카를로 람발디가 담당한 킹콩의 표정, 손동작 등의 정교한 특수효과와 실물 크기 모형도 훌륭한 볼거리였다. 10년 뒤인 1986년에는 속편 <킹콩 2>가 공개되었다.

2017년 봄 공개 예정인 새로운 킹콩 영화 <콩: 해골섬>, 2020년 고지라와의 격돌을 그릴 크로스오버 <고지라 대 콩>이 발표되면서 이 거대 고릴라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이때, 킹콩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리메이크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본작의 EBS 첫 방영은 2011년 3월. 이후 2012년 8월, 2013년 12월 각각 재방영된 바 있다.

(C) Dino De Laurentiis Company
(C) Dino De Laurentiis Company

출처: EBS 영화 공식 웹사이트

[토라카게 대혈전] (2015)

(C) 「虎影」製作委員会
(C) 「虎影」製作委員会

<토쿄 잔혹 경찰>, <V 소녀 대 F 소녀>, <헬 드라이버>, <ABC 오브 데스> 등의 연출작으로 고어 마니아와 B급영화 팬들을 즐겁게 했던 니시무라 요시히로 감독이 이번에는 닌자영화에 손을 댔다. 아니나 다를까 첫 장면부터 분수처럼 치솟는 핏줄기를 퍼부으며, 영화는 맹렬히 질주하기 시작한다. 겉포장은 닌자 활극이지만 이야기가 흐르면서 서부극, 일본 칼부림 시대극과 기담, 뮤지컬, 심지어는 수퍼히어로와 쇼와 특촬, 파친코까지 엮어 넣은 장르 짬뽕의 진수가 펼쳐진다.

니시무라 감독은 특수분장과 특수촬영의 베테랑답게 아날로그/실물 표현을 중시하는 한편, 의도적인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인지 모를(아마도 둘 다이리라 생각하지만) 시대착오적 퀄리티의 디지털 합성을 뒤섞어 부조리한 SFX 시퀀스를 선보인다. 여기에 원전 작품을 안다면 꽤나 즐길 수 있는 인용과 패러디, 장르 자체에 대한 자조적인 농담이 곁들여져 니시무라판 닌자 대혈전이 완성된다.

감독의 전작에 여러 차례 출연했던 시이나 에이히(키리키리키리!)도 우스꽝스러운 악역으로 돌아왔고, 타이틀 롤은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로 잘 알려진 사이토 타쿠미가 맡았다. 하가 유리아, 츠다 칸지, 니시나 타카시, 이타오 이츠지 등 특촬 작품으로 인상적인 배우들이 포진해 있어, 팬이라면 그들을 확인하는 재미도 각별하겠다. 여하튼 긴장을 풀고, 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신나게 보기만 하면 된다.

원제: 虎影
감독: 니시무라 요시히로
주연: 사이토 타쿠미, 하가 유리아, 시이나 에이히, 미모토 마사노리, 세이노 나나
일본 개봉: 2015년 6월 20일

* 2015년 7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탈로그 게재용으로 기고한 글이다.

킹콩 – 위대한 고릴라 제왕의 연대기

※ 읽기 전에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 국내 개봉을 맞아 영화 주간지 [씨네 21] 532호(2005년 12월 13일자)에 기획 기사 형식으로 기고한 글이다.

모든 킹콩 영화의 원조가 된 1933년판 <킹콩>부터 그 아류작까지 70여 년에 이르는 역사를 작품 중심으로 정리했고, 기획 단계에서 좌절된 미완성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도 간략하게 실었다. 10년 전에 쓴 글이므로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에 유의하시라.

이 글의 저작권은 나와 [씨네 21]이 갖고 있으므로 무단 인용이나 게재는 허락하지 않는다.

(C) Universal Pictures
(C) Universal Pictures

12월 14일, 피터 잭슨 감독의 신작 <킹콩>이 한국의 극장가를 찾는다. 잭슨이 어린 시절 오리지널 작품을 본 뒤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일화처럼 <킹콩>은 1933년 세상에 나온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왔고, 그들 가운데 영화라는 길을 걷게 된 사람들 역시 셀 수 없을 정도다. 아울러 70여 년에 이르는 킹콩의 기나긴 역사는 다양한 속편과 관련작, 아류작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그 자체가 시각효과와 장르영화의 발전사와도 일맥상통한다. 2005년 새롭게 탄생한 <킹콩>을 보러 가기 전에 이 거대한 고릴라가 만들어 온 연대기를 한 번 되짚어 보는 것은 한층 흥미로운 관람을 위한 좋은 준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혹시 아는가. 오늘 옆 자리에서 같이 영화를 본 그 사람이 훗날 유명한 감독이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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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King Kong (1933)
감독 : 메리언 C. 쿠퍼, 어니스트 B. 쇼드색
출연 : 페이 레이, 로버트 암스트롱, 브루스 캐봇
흑백 / 100분

(C) RKO Radio Pictures
(C) RKO Radio Pictures

<킹콩>은 탐험가 기질을 타고난 제작자 겸 감독 메리언 C. 쿠퍼가 창조한 작품이다. 일찍이 거친 탐험과 야생동물(특히 고릴라)에 깊은 흥미를 가졌던 그는 대공황의 절정에 직면해 있던 1930년대 초의 대중을 현실 세계로부터 잠시나마 도피시켜 줄 오락 영화의 결정판을 만들고자 했다. 동료인 어니스트 B. 쇼드색과 함께 세계 각국 오지의 생생한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유명해진 쿠퍼는 <킹콩>에서 자신을 매료시켰던 모든 요소들을 펼쳐 보인다. 해골섬으로 대표되는 미지의 땅으로의 모험담, 야수 콩이 상징하는 자연과 칼 데넘이 상징하는 문명과의 대립각, 콩과 금발의 미녀 앤 대로우가 연출하는 고전적인 미녀와 야수 플롯… 이 모든 것을 영상에 담아낸 작품은 당시로서는 거의 전례가 없었다.

또한 시각효과의 역사에 있어 <킹콩>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다. <킹콩>이야말로 시각효과가 스토리를 이끌어간 거의 최초의 영화이자, 동시에 그것이 가장 완전한 형태로 구현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앤 대로우도 킹콩 자신도 아닌, 털가죽과 점토로 뒤덮인 철골 인형을 영상 속에서 날뛰는 거대 고릴라로 재탄생시킨 시각효과인 것이다. 이는 1925년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을 각색한 <잃어버린 세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솜씨. 그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과 배면 투사, 매트 페인팅 등 당시에 가능했던 모든 기술효과를 총동원해 만들어 낸 <킹콩>의 환상적인 영상은 투박한 흑백 화면을 벗어나 관객의 상상력과 경외감을 자극하는 놀라운 박력으로 가득하다. 특히 킹콩과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벌이는 격투 장면, 긴장감과 공포가 생생한 외나무다리 시퀀스, 성이 나 원주민 마을을 잔혹하게 파괴하는 콩의 묘사 그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의 장렬한 라스트 등은 그 하나하나가 고전이 되어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에서 인용 및 재생산되었다.

<킹콩>은 거대 괴수 영화의 시조로서도 가치가 높다. 공룡을 포함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거대 괴수가 등장하는 영화는 물론 그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킹콩은 그들과는 차별된 독자적인 캐릭터를 가졌으며 괴수 캐릭터가 영화를 대표하는 역할을 처음으로 완수함으로써 이후 레이 해리하우젠의 창조물들이나 일본의 고지라와 가메라 등으로 대표되는 거대 괴수 장르의 맹아가 된다. 약 2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1933년 3월 2일 공개된 <킹콩>은 흥행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작품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1991년에는 미국 국회 도서관의 영구 보존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98년에는 미국 영화 연구소가 뽑은 역대 최고의 미국 영화 100편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킹콩>은 70여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한 시절을 풍미한 영화로부터 시각효과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고전이자, 거대 괴수 영화의 출발점을 거쳐 당당한 문화적 아이콘의 반열에까지 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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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의 아들> Son of Kong (1933)
감독 : 어니스트 B. 쇼드색
출연 : 로버트 암스트롱, 헬렌 맥, 프랭크 라이커
흑백 / 70분

(C) RKO Radio Pictures
(C) RKO Radio Pictures

<킹콩>의 대성공 직후, RKO는 쿠퍼에게 ‘연말 시즌을 목표로 가능한 한 빨리 속편을 만들라’고 요청했다. 쿠퍼 역시 킹콩의 유명세가 식으면서 아류작이 난립하기 전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8개월 만에 신속히 만든 속편이 바로 <콩의 아들>이다. 칼 데넘 일행이 보물을 찾기 위해 해골 섬에 돌아가 킹콩의 아들 키코와 만나게 된다는 내용을 다룬 이 속편은 흥행에도 성공했고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스톱 모션 시각 효과도 여전히 훌륭했다.

그러나 작품의 전체적인 완성도는 전편과 비교할 수 없이 떨어진 것으로 평가 받았다. 그 이유로는 위화감이 들 정도로 강조된 코미디와 연결이 엉성하고 부자연스러운 스토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무자비한 야성의 상징이었던 킹콩과는 달리 키코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온순하고 충성스러운 고릴라인데, 애교 있고 귀엽기는 하지만 전편에서 압도적인 박력을 내뿜었던 아버지만은 못했다. 킹콩을 이용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인 데넘이 또 다시 자신의 이윤을 위해 섬에 돌아온다는 설정과 결말에서 키코가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내용도 그리 유쾌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 같은 퀄리티 저하는 속편을 거의 동시에 기획하여 전편 이상으로 물량 공세를 퍼붓는 현재와는 달리 촉박한 스케줄과 절반으로 깎인 예산이라는 당시의 제작 환경에 기인한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이와 같은 작품 내외적 한계 때문에 <콩의 아들>은 킹콩의 정사(正史)에 틀림없이 속함에도,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했던 비운의 작품이 되고 말았다. 또한 이 같은 시행착오는 반세기 뒤 데 라우렌티스판 리메이크의 속편인 <킹콩 2>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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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티 조 영> Mighty Joe Young (1949)
감독 : 어니스트 B. 쇼드색
출연 : 테리 무어, 벤 존슨, 로버트 암스트롱
흑백 / 94분

<마이티 조 영> Mighty Joe Young (1998)
감독 : 론 언더우드
출연 : 빌 팩스턴, 샬리즈 테론, 레이드 세베드지야
컬러 / 114분

(C) Argosy Pictures
(C) Argosy Pictures

<마이티 조 영>은 <킹콩> 시리즈가 아니지만 메리언 C. 쿠퍼(제작), 어니스트 B. 쇼드색(감독), 윌리스 오브라이언(시각효과) 등 <킹콩>을 만들었던 여러 재능들이 다시 한 번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아울러 야성과 문명이 충돌한다는 주제 역시 <킹콩>의 변주에 해당하기 때문에 항상 함께 언급되곤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아프리카에서 ‘조셉 영’이라는 이름의 고릴라와 함께 자란 소녀 질(테리 무어 분). 이 영화에서 그들은 칼 데넘처럼 탐욕스러운 흥행사 맥스 오하라(다름 아닌 데넘 역의 로버트 암스트롱이 연기했다)에게 발탁되어 헐리우드의 호화 나이트클럽에서 서커스를 공연하지만 결국 탈출하여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킹콩>과 다른 점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해피 엔딩. 드라마와 액션의 조화가 뛰어나며 무엇보다도 훨씬 발전된 시각효과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실사 캐릭터와 스톱 모션 캐릭터가 동작을 주고받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 아프리카에서 카우보이들이 벌이는 조의 포획 작전, 조가 10명의 장사와 줄다리기를 벌이는 장면 등에서 이러한 효과가 두드러진다. 그리고 사람이 손수 모델의 자세를 바꿔야 하는 스톱 모션의 특성 상 프레임마다 털의 모양이 달라졌던 <킹콩>과는 달리, <마이티 조 영>의 조는 표면에 고무를 입히는 등의 개선이 이루어졌고 털의 재질감도 훨씬 리얼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오브라이언의 거듭된 실험의 결과로 한층 동작 묘사가 부드러워진 스톱 모션도 영상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이 영화는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조수로 참여하여 약 80%에 이르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소화해 낸 레이 해리하우젠의 재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도 스톱 모션의 역사에 있어 의미가 깊다.

1998년에 제작된 리메이크는 배경을 현대로 옮겼고 동물 보호론자로 설정이 바뀐 질이 조와 함께 밀렵꾼들의 위협에 맞서는 내용을 그렸다. <불가사리>로 시각효과 영화를 체험했던 론 언더우드 감독이 안정된 연출력을 선보였으며, 1976년판 <킹콩>과 <그레이스토크 타잔> <정글 속의 고릴라> 등을 통해 1급 특수분장 전문가로 인정받은 릭 베이커가 수트메이션과 모델을 담당했다. 여기에 적절히 사용된 CG가 조화된 영상은 유인원 시각효과의 한 정점을 기록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테리 무어와 해리하우젠이 남녀 주인공을 보며 ‘처음 만났을 때의 당신 모습이라오’ 라고 말하는 카메오 장면도 인상 깊다.

(C) RKO Pictures, Walt Disney Pictures
(C) RKO Pictures, Walt Disney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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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대 고지라> キングコング対ゴジラ (1962)
감독 : 혼다 이시로
출연 : 타카시마 타다오, 사하라 켄지, 아리시마 이치로
컬러 / 98분

(C) Toho Co., Ltd.
(C) Toho Co., Ltd.

거대 괴수의 제왕 킹콩과 일본을 대표하는 괴수 고지라의 대결을 그려 큰 화제를 모았던 오락대작. 일본에서만 1,200만 명의 관객을 동원, 고지라 시리즈 사상 최대의 흥행 기록을 세웠으며 세계적으로도 고지라 시리즈의 대표작으로서 높은 지명도를 가진 작품이다. 시각효과 면에서는 오리지널 <킹콩>의 스톱 모션 대신 일본 특유의 수트메이션(배우가 괴수 옷을 입고 연기하는 기법)과 미니어처 특촬을 활용한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러나 못생긴 얼굴로 대표되는 킹콩 수트의 조악한 조형과 극중 킹콩이 고압전선을 씹어 대전체질로 변한다는 묘사, 신장 50m의 고지라에 맞추기 위해 터무니없이 거대화된 킹콩의 설정 등은 골수 킹콩 팬들로부터 혹평을 받기도 했다.

킹콩의 역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 영화의 기원은 다름 아닌 윌리스 오브라이언.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가 재기를 준비하면서 기획했던 작품은 킹콩이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증손자가 만든 합성괴수 깅코와 대결을 벌인다는 내용의 <킹콩 대 프로메테우스>였다. 오브라이언은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의 프로듀서 존 벡과 함께 제작을 추진했으나, 우여곡절을 거쳐 오브라이언은 배제된 채 작품의 아이디어만 일본의 토호 영화사까지 흘러가게 된 것. 결국 고지라 시리즈 3번째 작품으로 발표된 <킹콩 대 고지라>는 오브라이언의 의도와는 너무나 많이 달라진 작품이 되었고, 죽기 얼마 전에야 자신의 아이디어가 엉뚱한 방향으로 빗나갔음을 뒤늦게 알게 된 오브라이언의 상심은 대단히 컸다고 전해진다.

인간 드라마 부분에서는 괴수 대결 영화와 함께 당시 일본에서 고도성장기의 애환을 그려 인기를 모았던 셀러리맨 영화의 플롯을 차용한 것이 특징이다. 캐릭터 묘사에 능한 혼다 이시로 감독의 연출과 세키자와 신이치 작가의 각본에 의해 두 장르가 자연스럽게 결합된 수작으로 인정받았다. 츠부라야 에이지가 담당한 킹콩과 고지라의 코믹하면서도 박력 넘치는 대결 장면도 훌륭한 볼거리인 <킹콩 대 고지라>는 나름대로 현지화에 성공한 킹콩 영화의 방계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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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쇼> The King Kong Show (1966)
제작 : 아서 랜킨 주니어, 줄스 배스
출연 : 빌리 메이 리처즈, 칼 배너즈, 수전 콘웨이
컬러 / 전 26화(편당 각 6분)

(C) Rankin/Bass Productions, Videocraft International
(C) Rankin/Bass Productions, Videocraft International

미국 ABC 채널을 통해 방영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몬도 섬에서 연구 활동 중인 과학자 본드 교수 가족이 킹콩과 함께 다양한 모험을 체험한다는 내용으로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모았으며, 한 번만 들어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멜로디의 주제가가 인상적이다. 일본의 토에이 동화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기준에서는 다소 어설프고 조악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단순한 스토리와 친근감 있는 캐릭터들은 모든 연령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서의 본령에 충실하다. 제작자 랜킨과 배스의 대표작으로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단골로 방영되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루돌프 사슴코>(1964)가 있는데, 이 작품은 2030세대들이라면 TV로 한 번씩은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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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의 역습> キングコングの逆襲 (1967)
감독 : 혼다 이시로
출연 : 타카라다 아키라, 로즈 리즌, 아마모토 히데요
컬러 / 104분

(C) Toho Co., Ltd.
(C) Toho Co., Ltd.

토호 창립 35주년 기념작. 킹콩의 새로운 실사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킹콩 쇼>의 랜킨-배스 프로덕션과 <킹콩 대 고지라>의 대성공으로 고무된 토호의 의향이 접점을 이룬 작품이다. 원래 토호는 킹콩과 괴수 에비라가 대결한다는 내용의 <로빈슨 크루소 작전 킹콩 대 에비라>라는 각본을 제출했으나 기각되었고, <킹콩 쇼>의 캐릭터와 설정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각본이 채택되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킹콩의 역습>이다. 본드 가족 대신 UN의 다국적 연구원들이 주인공이며, <킹콩 쇼>에 나왔던 악당 닥터 후와 그가 만든 로봇 고릴라인 메카니콩도 실사로 등장한다. <킹콩 대 고지라>와 마찬가지로 수트메이션과 미니어처 특촬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영화 초반부 킹콩과 T-렉스형 괴수 고로사우루스가 싸움을 벌이는 시퀀스는 특촬감독 츠부라야 에이지가 오리지널 킹콩에 대한 존경을 표한 명장면이다.

이외에도 정교한 실사와 모델의 합성, 킹콩의 강력한 힘을 중량감 있는 영상에 담은 촬영 기법 등 전반적인 특촬의 질은 <킹콩 대 고지라>에 비해 훨씬 발전되어 있다. 닥터 후로 분한 성격 배우 아마모토 히데요, 마담 피라냐 역의 하마 미에(007 <두 번 산다>의 본드 걸) 등 배우들의 개성 있는 연기도 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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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King Kong (1976)
감독 : 존 길러민
출연 : 제프 브리지스, 제시카 랭, 찰스 그로딘
컬러 / 134분

<킹콩 2> King Kong Lives (1986)
감독 : 존 길러민
출연 : 린다 해밀턴, 브라이언 커윈, 존 애쉬튼
컬러 / 105분

(C) Dino De Laurentiis Company
(C) Dino De Laurentiis Company

<킹콩>의 대규모 리메이크 계획은 1976년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으나, <포세이돈 어드벤처>나 <타워링> 등 재난영화가 한 때의 붐을 이뤘던 당시야말로 뉴욕에 나타난 거대한 고릴라의 난동을 다시 한 번 연출할 가장 적합한 시기였을 것이다. 여기에 두둑한 배짱이라면 메리언 C. 쿠퍼에 지지 않을 명 프로듀서 디노 데 라우렌티스가 나서면서 결국 1933년작 이후 첫 공식 리메이크인 1976년판 <킹콩>이 태어나게 된다.

미국에서는 파라마운트가 배급했던 이 리메이크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화화 판권을 사이에 둔 유니버설과의 혈투로 이미 상당한 이목을 끌었으며, 실물 크기의 ‘로봇 킹콩’이 등장한다는 홍보는 그 이상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부분의 리메이크가 그렇듯 오리지널에 비해 신선함과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점은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밋밋하게 늘어난 스토리에 2시간 14분이라는 상영시간은 너무 길었고, 시각효과는 오리지널보다 존재감이 훨씬 뚜렷했지만 그만큼 영상 표현의 자유도가 제한되었다. 실제 로봇 대신 릭 베이커가 고릴라 수트를 입고 연기한 장면이 더 많이 나온다는 부분은 특히 혹평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기계 장치를 통해 연출된 킹콩의 다양하고 리얼한 표정들과 실물 크기로 만들어진 인조 킹콩 팔의 완성도는 이 영화와 함께 쏟아졌던 숱한 아류작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났다. ‘내게 있어 오리지널 <킹콩>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라는 존 길러민 감독의 말처럼 킹콩에 대한 재해석도 돋보이는데, 오리지널에서의 잔인무도한 야성 그 자체였던 킹콩이 보다 감정에 민감한 동물로 묘사된 부분은 이 작품만이 가진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존 배리의 서정적인 음악과 리처드 클라인의 촬영 등 당시나 지금이나 일급이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은 즐길 거리도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오리지널인 1933년판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한국에서는 이 영화를 통해 킹콩의 이미지가 각인된 팬들이 많다.

한편 <킹콩>의 속편인 <킹콩 2>에서는 전편에서 죽었다고 여겨졌던 킹콩이 10년 후 심장 이식 수술을 통해 부활한다. 여기에는 1982년 첫 개발에 성공한 인공심장이라는 과학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다. 암컷 고릴라 ‘레이디 콩’이 등장하고 킹콩과 레이디 콩의 로맨스(!)를 도입한 방식은 1933년 당시 <킹콩>과 <콩의 아들>과의 관계를 연상시키고, 마지막 장면에서 두 고릴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그렇다. 시각효과 기법은 전편에서 사용된 방식을 대부분 재활용하고 있으나, 형편없이 깎인 예산 때문에 수트와 미니어처의 질은 상당히 떨어져 있다. 10년 전의 감각 그대로 작품을 이끌어 간 존 길러민 감독의 연출은 엉성한 각본과 함께 부작용을 일으켜 결국 전편만큼의 중량감도, 시각적 쾌감도 이끌어내지 못한 결과물이 되고 말았다. 많은 킹콩 팬들에게 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으로 기억된다.

(C) De Laurentiis Entertainment Group
(C) De Laurentiis Entertainment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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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의 대역습> A*P*E (1976)
감독 : 폴 레더
출연 : 로드 애런츠, 조애나 컨스, 이낙훈
컬러 / 87분

(C) Lee Ming Film Co., 국제영화흥업주식회사
(C) Lee Ming Film Co., 국제영화흥업주식회사

<킹콩>의 아류작들 가운데 거의 최하급 퀄리티를 자랑하는 문제작(?). 제목부터 데 라우렌티스의 <킹콩> 리메이크로 조성된 ‘킹콩 붐’에 편승하려는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미 합작으로 제작되어 이낙훈, 우연정, 조춘 등의 한국 배우들이 출연한 것은 물론, 대부분의 장면이 한국에서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1960년대 이후 근근이 이어져 온 한국 괴수영화의 계보에도 포함시키는 것이 가능하나, 아쉽게도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논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스톱 모션을 활용하는 대신 배우가 괴수 수트를 입는 수트메이션 기법을 채택했는데, 조악하기 짝이 없는 수트는 관객들이 고릴라로 감정이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으며, 상어 시체를 물에 헹구는 것을 대결 장면이라고 찍어놓은 꼴이나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날리는 고릴라의 황당한 모습 등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3-D 입체 영화로 제작되어 카메라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병사의 커트와 같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Z급 영화만을 즐기는 팬들이라면 환호성을 지를 만한 요소들로 가득하지만, 평범한 관객들까지 굳이 찾아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중에게 ‘킹콩은 유치한 괴수 영화’라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준 데는 이런 터무니없는 영화들의 잘못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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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콩> Queen Kong (1976)
감독 : 프랭크 애그러머
출연 : 로빈 애스크윗, 룰라 랜스카, 밸러리 리온
컬러 / 87분

(C) Cine-Art München, Dexter Film London
(C) Cine-Art München, Dexter Film London

제목 그대로 ‘<킹콩>의 여성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주요 캐릭터의 성을 오리지널과 정반대로 바꿔버린 것이 특징이다. 유방이 달린 암컷 거대 고릴라가 남성 캐릭터를 납치하며, 그 남성 캐릭터는 여성 감독의 구애를 뿌리치고 갖은 고생 끝에 고릴라와 행복하게 잘 산다는 줄거리. 이 쯤 되면 여성 버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패러디에 가까운 수준인데, 여기에 실로 조잡하기 짝이 없는 뮤지컬 장면이 이따금씩 삽입되어 황당함은 점차 더해간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의 설득으로 런던 시내(그렇다, 이번에는 고릴라가 빅 벤에 매달린다!)의 모든 여성들이 ‘여성 해방’ 등의 푯말을 들고 고릴라를 응원하는 것으로 끝난다.

액션보다는 코미디와 개그에 치중하는 등 ‘한 번 놀아 보자’는 제작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저예산도 아니고 ‘무예산’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조악한 영상과 허술한 연기, 뮤지컬이라고 말하기도 힘든 최악의 노래 등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끝까지 버티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작품을 심히 불쾌하게 여겼던 디노 데 라우렌티스는 법원 명령을 통해 개봉을 막았으며 2001년이 되어서야 해금, 일본에서 최초로 극장 공개되었다. 미국에서는 2003년에 DVD로 곧장 출시되었다. 킹콩의 야사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이런 것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로 넘어가는 것이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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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왕> 猩猩王 (1977)
감독 : 하몽화
출연 : 에벌린 크래프트, 이수현, 곡봉
컬러 / 87분

(C) Shaw Brothers
(C) Shaw Brothers

홍콩 쇼 브라더스 최초의 본격 괴수 영화. 역시 70년대 ‘킹콩 붐’에 영향 받은 작품이기는 하나 다른 아류작들과는 달리 거대 ‘고릴라’가 아닌 거대 ‘북경원인’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채롭다. 인도 로케를 통해 현지의 이국적인 풍물과 코끼리, 호랑이, 코브라 등 맹수들의 활약을 화면에 담았으며 한국 관객들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배우인 이수현이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등 여타의 킹콩 관련작들과는 확실히 차별되는 분위기다.

특촬은 츠부라야 에이지로부터 사사받은 아리카와 사다마사가 담당하였으며 훗날 헤이세이 고지라 시리즈의 특촬감독이 된 카와키타 코이치 등 일본 특촬계의 중진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홍콩영화의 특징적인 빠른 장면 전환과 과장된 상황 연출, 의외의 잔혹한 유혈 묘사 등으로 인해 컬트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극중 북경원인의 친구인 야생의 미소녀 에벌린 크래프트의 요염한 자태는 관객은 물론 촬영 스탭들까지도 침 흘리게 했다는 후문. 2004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 국내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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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 – 불발된 프로젝트들

워낙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답게 ‘킹콩’이라는 이름을 달고 영화계를 떠돌았던 미완성 프로젝트들도 수없이 많았다. 킹콩의 아버지인 쿠퍼와 쇼드색조차 <콩의 아들>의 속편 <킹콩의 새로운 모험>을 기획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1편의 시점에서 데넘 일행이 킹콩을 뉴욕으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룰 예정이었다. 쿠퍼는 자신이 개발한 시네라마 기술을 활용한 킹콩 영화를 구상하기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킹콩의 명성을 함부로 망치지 못하도록 ‘노 리메이크’ 선언을 했다. 이 때문에 1973년 그가 죽기 전까지 많은 기획안들이 무산되었다. 영국 공포영화의 명가 해머에서는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등 유니버설 몬스터의 리메이크에 이은 <킹콩>의 리메이크를 제안했고, 1970년대 초 스톱 모션 애니메이터 짐 댄포스는 당시 퍼블릭 도메인이었던 <킹콩> 소설판의 영화화를 추진했으나 RKO의 이의 제기로 무산되었다. B급영화의 대부로 잘 알려진 로저 코먼도 1976년작 리메이크의 판권을 둘러싼 북새통을 틈타 한몫 챙기려 했고, 1990년대 초반에는 토호가 <킹콩 대 고지라>의 리메이크를 검토하기도 했다. 리메이크의 배턴이 피터 잭슨에게 넘어가기 전 거론된 감독으로는 존 랜디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