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리비언] (2013)

(C) Universal Pictures
(C) Universal Pictures

<오블리비언>(Oblivion)의 무대는 2077년의 지구이다. 60년 전, ‘스캡’이라는 호전적인 외계 세력의 침공으로 핵전쟁이 벌어진다. 인류는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지만, 지구는 전쟁의 영향으로 사람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황폐한 별이 되고 만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인류는 복구 시설과 감시용 로봇(드론)을 관리하기 위한 소수의 기술자 및 관리자들만 남긴 채 모두 우주로 떠나 있다. 그러나 스캡의 잔당은 지구에 남아 계속 저항을 이어 간다.

옛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척박한 지구를 무대로 한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아름다운 화면 위에서 펼쳐진다. 인류 문명이 번성했던 자리는 아직 꽤 많은 상처가 남아 있음에도, 자연의 재생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는 흔적을 보여 주는 듯하다. 고층 빌딩과 그곳을 채웠던 사람들이 사라진 지구는 마치 태고와도 같은 모습인데, 그 위에 주인공의 추억과 상념이 덧씌워져 아련하게 그리운 정서를 이끌어 낸다. 그렇게 기억이 서려 있는 공간에 자그마하게 자리잡은 주인공과 동거인의 거주-통제 시설은 곡면과 직선이 이상적으로 어우러진 미니멀한 디자인과 최첨단 기능이 탑재된 미래 그 자체이다. 이 절묘한 시각적 엇갈림은 끊임없이 화면을 채우는 M83의 음악으로 화룡점정, 보는 이의 관심을 한껏 잡아 끄는 페이스 좋은 전개와 함께 꽤나 훌륭한 전반부를 엮어 낸다.

여기서 제시되는 주제는 ‘기억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이미 원시 상태보다도 못한 폐허가 되어 버렸기에,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는 사람들의 기억으로만 되살려 낼 수 있다. 주인공 잭에게는 (어째서인지) 전쟁 이전의 기억이 남아 있어 좋았던 옛 시절,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있었던 과거를 끊임없이 그리워한다. 이렇게 이끌려 나온 정서는 (동반자가 있음에도) 고독한 잭의 심리와 우리의 시선을 비교적 잘 묶어 놓는다. 물론 이야기의 트릭도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유감스럽게도 이야기는 중반을 벗어나 본디의 목적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급격히 향기를 잃는다. 근사하게 내놓았던 서두의 모든 의문점은 하나같이 어디서 본 듯한 진부한 설정과 전개로 풀려나간다. 사실 그 자체가 진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을 사용하여 이야기를 허겁지겁 마무리 짓는 모습은 마치 훨씬 못 만든 다른 영화를 떼어다 붙여 놓은 것처럼 허술하다. 중, 후반부가 제대로 연출되었다면 눈시울을 적실 수 있었을 법한 마지막 장면을 보라. 따뜻한 목소리로 영화의 주제를 살짝 에두른 이야기로 전하는 대신, 강의 노트를 무감각하게 읽는 딱딱한 목소리로 ‘주제는 이렇습니다, 여러분’이라며 부자연스럽게 주입하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은 만족도 실망도 아닌 애매함이다. 흥미로운 소재로 어떤 부분은 아주 맛깔스럽게, 어떤 부분은 하품과 실소가 나오도록 빚어 냈는데, 그 격차가 굉장히 큰데도 전체를 놓고 보면 그게 또 그렇게 거슬리지만은 않는 것이다. 아름다운 화면과 정교하고 풍성한 음향, 인상적인 음악, 엔드 크레딧을 장식하는 멋진 주제가(영화 제목과 같다), 그리고 안드레아 라이즈보로가 영화를 본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운을 남기는 걸 보니, 결론적으로는 비록 애매하긴 애매하지만 그리 싫진 않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적어도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다음 작품을 보고 싶을 만큼은 말이다.

원제: Oblivion
감독: 조셉 코신스키
주연: 톰 크루즈, 모건 프리먼, 올가 쿠릴렌코,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니콜라이 코스테르 발다우
북미 개봉: 2013년 4월 19일
한국 개봉: 2013년 4월 11일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2011)

(C) Paramount Pictures
(C) Paramount Pictures

오리지널 TV 시리즈의 팬들에게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은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팀의 리더인 짐 펠프스는 추악한 배신자였고, 그의 음모로 인해 팀이 전멸하면서 크루즈가 분한 영화 오리지널 캐릭터 이선 헌트의 ‘원맨쇼’로 파격적인(관점에 따라서는 파괴적인) 세대교체를 해 버린 것이다. 적절한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1990년대 중반 <수사반장>이 극장판으로 만들어지면서 최불암이 배신자로 드러나고 그의 음모로 김상순과 조경환을 비롯한 수사팀이 몽땅 전멸하자, 당시 뜨는 배우였던 배용준이나 송승헌이 새로운 수사반장이 된다는 이야기로 바뀌었다고 가정하면 그 충격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을까.

온갖 것들을 뒤집어 엎고 비틀고 해체하고 재구성하고 때로는 부정하기까지 했던 90년대(적어도 그 시기에 사춘기와 20대 초반을 보냈던 내게는 그런 10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의 산물이라고는 해도, 주연이자 프로듀서까지 겸했던 크루즈의 입김이 너무나도 강했던 탓에, 영화판 <미션 임파서블>(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테마 음악 정도를 빼면 원작의 향기는 커녕 그 흔적도 간신히 찾을까말까한 전혀 다른 작품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제5전선>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TV에 소개된 원작을 보고 자란 세대는 아니고, 그 속편인 <돌아온 제5전선> 세대에 속한다. 이 시리즈가 나에게 <맥가이버>나 <A-특공대>, <전격 Z작전>, <출동! 에어울프> 같은 고전으로 남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작품의 핵심이 팀워크에 기반한 교묘한 두뇌 싸움이라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지만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은 이러한 원작의 핵심보다는 그의 독자적인 활약에 더 집중한 영화였다. 물론 그와 함께하는 몇몇 등장인물이 있기는 했지만, 동료라기보다는 부하 같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고 각각의 개성도 루터 스티켈(빙 레임스 분) 정도를 빼면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편마다 구성원들이 바뀌었던 것도 한몫했을 터이다. 2000년에 나온 속편 <미션 임파서블 II>(오우삼 감독)에서는 크루즈의 원맨쇼가 더욱 더 극단으로 치달았고, 2006년의 <미션 임파서블 III>(J. J. 에이브럼스 감독)에 가서야 팀워크다운 구성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한, 이 3편은 헌트를 비롯한 각 등장인물의 묘사가 비교적 훌륭했고 악역의 비중도 높았으며, 맥거핀의 낚시질도 상당한 수준으로서 시리즈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환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이제 4편이 나왔다. 단언컨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Mission: Impossible – Ghost Protocol)은 영화판 시리즈 가운데 가장 뛰어나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일련의 애니메이션(아이언 자이언트, 인크레더블, 라따뚜이 등 하나같이 훌륭한 작품들이다)에서 보여주었던 솜씨를 첫 실사영화인 <고스트 프로토콜>에서도 고스란히 풀어냈다. 크루즈는 언제나처럼 동분서주하지만 그 바탕에는 확실한 팀워크가 자리잡고 있고, 각각의 팀원에게도 분명한 성격과 감정이입할 여지가 고루 분배되어 있다(IMF 자체가 붕괴해 버렸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액션과 트릭도 화려함과 긴박감이 넘친다. 부르즈 할리파 시퀀스와 모래폭풍 시퀀스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명장면이 될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집중된 연출은 장기 시리즈의 매너리즘이 끼어들 여지를 조금도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플롯이 전편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매 편이 리부트 같은 느낌을 주는 대신, 보는 이가 정을 붙일 수 있는 ‘친근하고,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로서 자리잡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빙 레임스와 미셸 모나한의 비중이 카메오로 줄어들어 몹시 아쉬웠지만, 다음 이야기를 어쩔 수 없이 기대하게 하는 연출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4편 이상 나온 시리즈 영화 가운데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 편을 열망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였지만, <고스트 프로토콜>은 ‘임무 완수!’를 기운차게 외치면서 해냈다. 맥거핀이 토끼발만 못했고 악역의 존재감이 상당히 약했으며, 마음만 먹으면 그러한 단점을 몇 가지 더 끄집어 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영화와 함께 달리고 또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주 상쾌한 질주였다.

원제: Mission: Impossible – Ghost Protocol
감독: 브래드 버드
주연: 톰 크루즈, 제레미 레너, 사이먼 펙, 폴라 패튼, 미카엘 뉘크비스트, 레아 세두
북미 개봉: 2011년 12월 16일
한국 개봉: 2011년 12월 13일

[우주전쟁] (2005)

(C) Paramount Pictures, DreamWorks SKG, Amblin Entertainment, Cruise/Wagner Productions
(C) Paramount Pictures, DreamWorks SKG, Amblin Entertainment, Cruise/Wagner Productions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공포영화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그는 어떤 공포영화 감독보다도 스크린 속 공포를 잘 다룬다. 동시에 그가 다루는 공포는 매우 정형화되어 있어 이제는 그 수법이 뻔히 보일 정도가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우주전쟁>의 도입부에서 벌어지는 외계인의 첫 습격 장면은 보는 이의 얼을 빼놓는다. 스필버그의 테러 묘사는 ‘공포를 다루는 법’이라는 가상 해설서의 황금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참신한 시각적 요소가 추가되어 매번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우주전쟁>은 역대 최고의 재난영화이며, 시각적으로 가장 뛰어난 괴수영화이다.

스필버그 영화의 원점은 그가 유년기에 매료되었던 문화 요소들이다. 그가 오슨 웰즈의 라디오 드라마 대본 원본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듯이, <우주전쟁> 역시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장르영화의 연속선 위에서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창작자가 당대의 현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명제를 굳이 들이밀지 않더라도, 이 영화에 9. 11 테러가 스필버그를 때리면서 남긴 충격과 분노의 흔적이 녹아있음은 너무나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외계인에 의해 무차별 파괴되는 시가지와 도망치는 군중의 묘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세부는 9. 11 당시 우리가 실재함을 확인했던 것들이다.

묘하게도 <우주전쟁>은 그가 한 손에 블록버스터를, 다른 한 손에 진지하고 심각한 드라마를 들고 나오곤 했던 전력을 상기시킨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그 둘을 합친 작품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우주전쟁>은 <대결>이나 <조스>와 같은 스필버그 초기 걸작의 아우라를 느끼게 한다. 단순한 이야기에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이미지로 중첩된 장르영화의 거칠고 음산한 질감은 마치 1970년대로부터 2005년으로 곧장 건너뛴 듯 생생하고 힘이 넘친다.

스필버그 영화는 과연 진보적일까. 내가 쉽사리 판단할 수 있는 바가 아닐지라도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스필버그는 <우주전쟁>으로 퇴보하지도 추락하지도 않았다. 한국에서 그에 대한 찬반양론이 전례 없이 난무했던 이유는 <우주전쟁>이 불균질했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에게 ‘스필버그를 까야 쿨하게 보이거든’ 이라는 인식을 심는 평자와 논객들의 호들갑에 있다. <우주전쟁>에 대한 혹평 속에는 정작 영화에 대한 비판보다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헐리우드의 유대인 감독에 대한 반감이나, 이 영화에 들어맞지도 않는 미국 우월주의 운운만 있을 따름이다. 그자들은 바로 그 점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침을 튀겼지만,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영화의 결말이 불만스러운 관객이 많을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문화 현실이다. <우주전쟁>은 2005년 가장 확대해석된 영화들 가운데 한 편이었다.

원제: War of the Worlds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톰 크루즈, 다코타 패닝, 저스틴 채트윈, 팀 로빈스, 미란다 오토
북미 개봉: 2005년 6월 29일
한국 개봉: 2005년 7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