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 2] 일본어 더빙 완전판 블루레이, 8월 발매

(C) 20th Century Fox
(C) 20th Century Fox

20세기 폭스 일본은 제임스 캐머론 감독의 <에일리언 2>(Aliens) 공개 30주년을 기념하여, 현존하는 일본어 더빙 음성을 모두 수록한 블루레이 디스크 특별판을 발매한다. 발매 예정일은 8월 30일.

이 특별판은 더빙의 매력을 알리면서 자사의 더빙 수록 타이틀을 홍보하는 20세기 폭스 일본의 ‘더빙의 제왕(吹替の帝王)’ 사이트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2013년 4월부터 지금까지 총 11편의 타이틀이 나와 있다. 전편 <에일리언>은 2014년 11월 더빙의 제왕 제7탄으로 발매된 바 있다.

제13탄이 되는 <에일리언 2> 더빙의 제왕 블루레이 특별판에 수록되는 더빙 음성은 총 6종이다.

극장공개판
1. TBS판 (1988년 1월 2일 신춘 특별 로드쇼 방영)/ 리플리 역 스즈키 히로코
2. TV 아사히판 (1989년 10월 29일 일요 양화극장 방영)/ 리플리 역 토다 케이코
3. TV 아사히판 (2004년 2월 8일 일요 양화극장 방영)/ 리플리 역 야마가타 카오리
4. 블루레이, DVD판/ 리플리 역 코다 나오코

특별판
1. TV 아사히판 (1993년 10월 3일 일요 양화극장 방영)/ 리플리 역 야나가 카즈코
2. DVD, VHS판/ 리플리 역 코다 나오코
3. 블루레이, DVD판/ 리플리 역 코다 나오코 (극장공개판, 즉 위 4번과 같은 음성)

종합해 보면 리플리를 연기한 성우가 무려 5명임을 알 수 있는데, 설령 같은 성우이더라도 판본에 따라 대사 번역과 그에 따른 연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더빙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더빙의 제왕 시리즈 명물 특전인 복각, 축쇄 대본은 아래 3종이 동봉된다.

1. 2003년 블루레이, DVD판 (위 극장공개판 4번 음성)
2. 1989년 TV 아사히판 (위 극장공개판 2번 음성)
3. 1993년 TV 아사히판 (위 특별판 1번 음성)

또 하나의 특전인 더빙의 제왕 인터뷰집에는 TBS판 리플리로 분했던 성우 스즈키 히로코와 TV 아사히판 2종에서 힉스로 분했던 타나카 히데유키의 인터뷰가 실린다.

디스크의 부록 등 다른 기본 사양은 현재 나와 있는 타이틀과 같다. 정가는 8,000엔.

참고로, 아래는 더빙의 제왕 특별판 블루레이 전체 목록이다. 한정 수량 생산되므로 지금은 절판된 것도 있다.

제1탄 <코만도> (2013년 4월 18일 발매)
제2탄 <다이 하드>, <다이 하드 2>, <다이 하드 3> (2013년 7월 3일 발매)
제3탄 <프레데터> (2013년 12월 20일 발매)
제4탄 <로보캅>(1987) (2014년 3월 5일 발매)
제5탄 <스피드> (2014년 4월 25일 발매)
제6탄 <혹성 탈출>(1968) (2014년 9월 3일 발매)
제7탄 <에일리언> (2014년 11월 5일 발매)
제8탄 <코만도> 제작 30주년 기념판 (2015년 4월 24일 발매)
제9탄 <터미네이터> (2015년 6월 24일 발매)
제10탄 <나 홀로 집에> (2015년 11월 25일 발매)
제11탄 <다이 하드: 굿 데이 투 다이> (2015년 12월 18일 발매)
제12탄 <인디펜던스 데이> (2016년 6월 3일 발매 예정)
제13탄 <에일리언 2> (2016년 8월 30일 발매 예정)

출처: 20세기 폭스 홈 엔터테인먼트 일본 공식 페이스북, 영화 나탈리

[대괴수 용가리] 미국판 비디오 광고

지금은 사라진 오라이온 픽처스의 1989년도 홈 비디오 광고 영상. 일단 감상해 보시라.

오라이온 픽처스라면 <터미네이터>라든지 <로보캅>, <플래툰>, <아마데우스>, <양들의 침묵> 등으로 80-90년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영화사. 이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시작에 앞서 우주공간을 배경으로 별들이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다가 알파벳 ‘O’자를 만드는 로고 영상을 기억할 것이다.

이 오라이온이 1989년 갑자기 아시아 괴수영화 몇 편을 비디오카세트로 출시했는데, 그 목록은 <고지라 대 헤도라>(1971), <우주대괴수 기라라>(1967), <대거수 갓파>(1967) 그리고… <대괴수 용가리>(1967)였다. 그렇다. 꽤 많은 괴수 팬들이 알고 있거나 직접 감상했던 바로 그 미국판 <대괴수 용가리> 비디오카세트인 것이다. 내가 사설 상영회에서 이 영화를 처음으로 감상했던 판본도 이것이었고, 199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된 판본 역시 이것이었다. 2007년 충무로국제영화제를 통해 불완전한 상태로나마 한국어 원본 프린트가 공개되기 전까지 <대괴수 용가리>는 ‘유실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고, 그때까지는 이 미국판 <대괴수 용가리> 비디오카세트가 온전한 본편을 감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금은 미국에서도 새로 DVD가 나와 있고(물론 영어 더빙판), 여기서는 한국영상자료원 VOD로 언제든지 감상할 수 있게 된 데다 재작년에는 지상파 TV 방영까지 했기 때문에 이 오라이온 비디오카세트의 가치는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그렇지만 이 타이틀이 30대 이상의 한국 괴수영화 팬들에게 한때 나름대로 각별했었음은 틀림없으리라 생각한다.

(C) 극동흥업
(C) 극동흥업

오라이온이 출시했던 이 4편의 괴수영화는 모두 당시의 브라운관 TV 화면에 맞춘 4:3 스탠다드 화면비에 영어로 더빙된 미국 공개판이었고, 제목도 자기네들 구미에 맞도록 바꾸었는데 몇몇은 원제나 작품의 내용과 매우 동떨어진 것이었다.

<고지라 대 헤도라> -> Godzilla vs. The Smog Monster (고지라 대 스모그 괴수)
<우주대괴수 기라라> -> The X from Outer Space (우주에서 온 X)
<대거수 갓파> -> Monster from a Prehistoric Planet (원시 행성에서 온 괴수)
<대괴수 용가리> -> Yongary, Monster from the Deep (대양에서 온 괴수 용가리)

(C) 東宝 / 松竹 / 日活
(C) 東宝 / 松竹 / 日活

이들 가운데 <고지라 대 헤도라>를 제외한 3편은 나름대로 재미있는 인연이 있는 작품들이다. 이 영화들이 공개된 해는 모두 1967년으로, <우주대괴수 기라라>와 <대거수 갓파>는 당시 일본의 제1차 괴수 붐에 편승하여 쇼치쿠와 닛카츠가 경쟁적으로 제작한 괴수영화였다. 그리고 그 붐이 한국에 살짝 영향을 미쳤던 결과로 나온 작품이 바로 <대괴수 용가리>였다. 비록 우리나라가 아니었긴 하지만, 이렇게 공통점을 지닌 괴수영화들이 한꺼번에 비디오카세트로 소개되었다는 점은 나름대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이 4편은 <고지라 대 헤도라>와 <대거수 갓파>, <우주대괴수 기라라>와 <대괴수 용가리> 이렇게 2편씩 짝을 지어 레이저디스크(LD) 합본으로도 출시가 되었다. DVD는 판권이 다른 업체로 넘어갔기 때문에 <고지라 대 헤도라>가 소니 픽처스, <대괴수 용가리>가 MGM, <우주대괴수 기라라>가 크라이테리언 컬렉션, <대거수 갓파>가 토쿄 쇼크에서 각각 출시되었다.

(C) 東宝 / (C) 日活
(C) 東宝 / (C) 日活
(C) 松竹 / (C) 극동흥업
(C) 松竹 / (C) 극동흥업

위 광고 영상은 일반 소비자보다는 비디오 판매점 관계자들을 위한 것으로서, 후반부에 타이틀의 홍보 계획 등을 거창하게 소개하고 있는 대목이 있어 이채롭다. 그 자체로 상당히 보기 드문 영상인데다, 개인적으로는 여기 나온 홍보용 포스터나 브로셔를 수집하고 싶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욕구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조금은 위험한 영상이기도 하다.

이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CTHimes’이라는 유저는 이외에도 아시아 괴수/SF영화의 영어판 예고편이나 TV 광고 등 귀중한 관련 영상을 다수 소개하고 있다. 흥미가 있다면 유저의 유튜브페이지를 방문해 보시라.

https://www.youtube.com/user/CTHimes01

사진 출처: 스톰프 토쿄, 레이저디스크 데이터베이스

[건헤드] (1989)

(C) 東宝 / サンライズ / バンダイ / 角川書店 / IMAGICA / 東宝映画
(C) 東宝 / サンライズ / バンダイ / 角川書店 / IMAGICA / 東宝映画

<건헤드>(ガンヘッド)라는 영화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중학교 1학년 때였던 1989년, 영화잡지 [로드쇼] 9월호에 실린 기사였다. 일본문화가 개방되지 않았던 당시 금단의 영역이었던 일본 SF영화가 컬러 사진과 함께 소개된 데다가, 실물 크기의 로봇이 등장한다는 기사 내용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사정상 보고 싶어도 볼 방법을 몰랐으므로 관심은 그 다음 행동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대학 재학 중이던 1997년, 의외로 없는 것이 없는 국내 출시판 비디오의 세계를 통해 <건헤드>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그때도 일본 문화 개방 이전이었으나 영어 더빙이 된 인터내셔널 버전을 수입한 것 같았다. 하지만, 보고 나니 유감스럽게도 작품에 대한 환상이 무참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지루한 전개, 엉성한 플롯, 설정과 따로 노는 등장인물, 나쁜 대사, 무엇보다도 기대 이하의 특수촬영(실물 크기 로봇은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게다가 비디오의 화질도 굉장히 나빴다. 그때만 해도 특촬영화를 진지하게 보지 않던 시기였고 지극히 일반적인 의미에서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던 내게 이 영화는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짐작이 가지 않는다면, 인터내셔널 버전의 감독이 ‘앨런 스미시’로 표기되어 있었다는 점을 말해 둔다.

그럼에도 <건헤드>가 DVD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토호 특촬영화 가운데 한 편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2000년 이후 특촬영화를 진지하게 보기 시작한 나로서는 언젠가 한 번은 거쳐야 할 작품이 된 것이다. 어쩌면 DVD가 재평가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조금은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제작사는 <기동전사 건담>으로 유명한 선라이즈였다. 그 점도 흥미를 다시 한 번 일으키는 데 한몫했다.

DVD로 다시 본 <건헤드>는…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그냥 못 만든 토호 특촬영화’였다. 1997년 첫 만남을 통해 기대감과 환상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시각이랍시고 애써 지루함을 참아가면서 봤음에도 ‘그냥 못 만든 토호 특촬영화’라는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높이 4m짜리 사이봇 고지라를 만들어 대대적으로 광고했지만 막상 본편에서는 몇 커트 나오지도 않았던 1984년판 <고지라>처럼, <건헤드> 역시 로봇의 실물 크기 모델보다는 미니어처 모델이 화면에 더 자주 비쳤다. 게다가 로봇은 걷는 대신 바퀴로 굴러다녔으며, 카와키타 특기감독의 작품답게 육탄전 대신 빔과 탄약이 난무하는 총격전 커트가 반복되는 전투 장면에서는 솔직히 한숨이 나왔다(‘이 양반 버릇은 어딜 가나 그대로구먼.’). 1997년의 첫 감상을 거슬리게 했던 영화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지금 보아도 그대로였다.

그래도 이 영화를 예전처럼 내칠 수 없는 까닭은 당시 토호에서 가능했던 아날로그 특촬의 거의 모든 것을 투입한 야심작임을 이제야 인정했기 때문이다. 비록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 2>를 합쳐놓은 것 같은 어디서 많이 본 스타일의 영상이지만, 그것을 80년대가 채 지나가기 전에 자체적으로 재현했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건헤드>와 <고지라 VS 비오란테>가 같은 해에 같은 특기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와키타 특촬반은 <건헤드>에서 로봇을 소재로 메카닉의 질감과 존재감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고, <고지라 VS 비오란테>에서는 괴수의 생물감과 중량감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 로봇과 괴수라는 대조적인 소재를 동시에 다루면서 각각에 적합한 방식으로 영상화가 가능했다는 사실은 당시 카와키타 특촬반과 토호가 두 작품에 대해 지녔던 의욕을 짐작케 한다.

원제: ガンヘッド
감독: 하라다 마사토
특기감독: 카와키타 코이치
주연: 타카시마 마사히로, 브렌다 배키, 엔죠지 아야, 미즈시마 카오리, 하라다 유진
일본 개봉: 1989년 7월 22일
국내 비디오카세트 출시

[포화 속으로] (2010)

(주) 태원 엔터테인먼트
(주) 태원 엔터테인먼트

<포화 속으로>는 한국전쟁 초기였던 1950년 8월, 포항에서 71명의 학도병이 중과부적을 무릅쓰고 괴뢰군에 맞섰던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다. 한국전쟁과 그것이 야기한 분단 상황은 한국영화의 주된 소재인데, 올해는 전쟁 발발 60주년인 이기도 하여 <포화 속으로>와 같은 영화의 공개는 그 상징성과 의미를 더한다. 앞서 2월에 개봉한 <의형제>가 첩보물-드라마의 장르를 빌려 지금의 분단 상황을 다소 부드럽게 다루었던 것에 비해, 6월 25일 바로 그날을 가까이 둔 이달에 선보이는 <포화 속으로>는 전쟁 한복판에 카메라를 들이대어 그 비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두 편 모두 전쟁 60주년을 맞이한 해를 장식할 만한 굵직한 작품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외형일 뿐, 영화 자체를 두고 본다면 <의형제>와 <포화 속으로>는 크게 엇갈린다. <의형제>는 탄탄한 드라마와 인물 구성, 안정된 연출로 평단과 관객 모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렇다면 <포화 속으로>는 어떤가? 네 명의 배우가 이끄는 영화의 특성을 감안하여 그들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포화 속으로>의 주인공은 학도병 중대장 오장범(최승현/T.O.P 분)이다. 그는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이 총알받이로 무참하게 쓰러져 가는 싸움터에서 공포에 사로잡힌 채 총 한 발 제대로 쏘지 못한다. 그러던 장범에게 70명의 학도병을 이끌어야 할 중책이 주어지고, 이내 그들은 머릿수와 화력 면에서 월등한 괴뢰군의 진격을 막아야 하는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처음에는 숫기가 없어 침묵하거나 우왕좌왕하던 장범은 크고작은 전투를 거치면서 점차 리더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간다. 장범으로 분한 최승현은 주요 출연진 가운데 연기 경력이 가장 짧음에도 가장 중요한 배역을 맡았다. 극은 대부분 장범의 시선을 통해 전개되고, 캐릭터의 배경 설정도 플래쉬백으로 종종 설명된다. 이것이 배우로서는 미숙하다고 할 수 있는 최승현에게는 오히려 호재가 되었다. 연기 경력이 일천한 자연인 최승현의 이미지가 영문도 모른 채 전쟁터로 끌려나가야 했던 학도병 장범과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것이다. 그가 병사들에게 탄약을 전하기 위해 시가전의 치열한 포격 속을 헤매는 도입부의 모습은 특히 더 그렇다.

극이 진행되면서 최승현은 군데군데 어색한 시선처리와 표정, 발성 등을 보여주지만 전체적으로는 초짜 배우의 어리숙함과 성실함을 캐릭터에 자연스럽게(때로는 너무나 벅차게) 녹여 가며 제법 깊은 인상을 남겼다. 캐릭터 고유의 특성과 배우로서의 경험 면에서 상대역인 권상우에게 어쩔 수 없이 밀릴 때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살펴보도록 하자. 어쨌든 최승현은 113억 원짜리 대작 전쟁영화의 주인공으로서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해 냈다. 그러나 이것이 <터미네이터>에서 근육질 몸과 딱딱한 대사 처리 탓에 오히려 완벽한 사이보그가 될 수 있었던 아놀드 슈워츠네거와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최승현이 배우로서 경력을 계속 쌓아가고 싶다면 아직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도 이 영화에서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 태원 엔터테인먼트
(주) 태원 엔터테인먼트

다음은 권상우. 그는 학생복만 입었을 뿐 실상은 깡패인 구갑조 역을 맡았다. 갑조는 괴뢰군에 대해 강한 증오심을 품고 있고, 특유의 괄괄한 성격으로 내성적인 장범과 사사건건 대립한다. 권상우는 주인공이 아님에도 사실상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혜자이다. 데뷔 초기 어색한 표정과 혀짤배기 발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그였지만, 10여 년의 경력을 쌓는 동안 상당한 노련미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그의 노련미는 화려하게 빛났다. 또한 갑조라는 캐릭터는 권상우 특유의 껄렁껄렁하면서도 어딘지 미워할 수 없는 악동 이미지에 너무나 잘 들어맞았다. 갑조는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관객의 시선을 끌며, 엄연한 주인공인 최승현의 장범을 여러 차례 압도한다. 권상우는 적역을 만났다.

반면 악역인 괴뢰군 지휘관 박무랑 역 차승원은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잘못된 캐스팅이다. 여러 편의 영화에서 호연을 보여 준 그에게 내가 가져 왔던 호감을 생각하면 이는 커다란 실망이 아닐 수 없다. 박무랑은 이른바 원칙주의자인 것 같다. 그는 현장 경험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전형적인 야전형 군인인 것 같고, 전쟁은 전쟁터에서 군인하고만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 설령 적이라 할지라도, 남측 학도병들은 그에게 1차적인 장애물이자 제거 대상은 아닌 것 같다. 지프를 타고 당당하게 학도병의 본거지로 들어가 ‘너희를 죽이고 싶지 않으니 항복하라’고 말할 정도이니까. 이 특정한 행동의 이유로서 전쟁에서 희생된 혈육(아마도 아들이나 형제인 듯한)이 있다는 뒷설정이 있는 것도 같지만, 영화에서는 사진 한 장을 잠시 바라보는 것으로 지극히 간략하게 묘사되었기에 상세한 배경은 알 길이 없다. 요컨대 박무랑은 투철한 군인정신을 지닌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인 것 같고, 악역으로서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설정된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만 문장을 ‘~ㄴ 것 같다’로 끝내고 있을까.

이는 차승원과 박무랑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며, 캐릭터가 허약했기 때문이다. 카리스마가 전혀 없는 사람이 넘치는 카리스마를 요구하는 배역을 맡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같은 북한 사람인데 <국경의 남쪽>에서의 차승원과 <포화 속으로>의 차승원은 왜 그렇게 다른 걸까. 전자가 코믹한 이미지로 각인된 차승원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다면, 후자에서 그는 너무 꼭 끼는 군복을 입은 채 어색한 함경도 사투리를 읊어댄다. 박무랑은 2010년 현재의 차승원에게는 너무 무거우며(좀 더 시간이 흐른 뒤라면 어떨지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동기가 모호한 캐릭터이다. 앞서 내가 박무랑에 대해 분명하게 서술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극중 그가 행하는 모든 행위의 동기가 제대로 설명된 적이 거의 없어 성격을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이것은 배우와 배역 사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연출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주) 태원 엔터테인먼트
(주) 태원 엔터테인먼트

이 연출의 문제로 박무랑 만큼이나 피해를 입은 캐릭터는 김승우가 분한 국군 장교 강석대이다. 김승우는 선이 굵고 남성다운 매력이 넘치는 배우로서 군인 역에 아주 잘 어울린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는 단지 겉모습만 그럴 뿐, 캐릭터다운 캐릭터를 만들지 못했다. 석대는 인원과 무장 등 모든 면에서 열세인 학도병들을 돕고자 전투 속에서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며, 홀어머니를 두고 징집된 장범에게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캐릭터의 기능적인 면만 간신히 보여줄 정도로 출연 분량이 적기 때문에 이렇다할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딱 한 군데,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긴 했다. 장범에게 학도병들을 맡기고 낙동강 전선으로 떠나기 직전, 석대는 장범에게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를 준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이후 시계를 매개로 한 두 사람의 교류가 그려진다거나 이를 바탕으로 캐릭터를 발전 또는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장면이 없다. 원래 있었는데 상영시간을 이유로 편집했는지, 아니면 아예 없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는다.

그러므로 <포화 속으로>의 최종적인 문제는 연출과 각본이다. 이렇게 흥미로운 캐스팅과 이렇게 엄청난 물량(몇 년 전부터 한국영화에서 ‘때깔’을 논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을 투입한 영화가 딱히 감동을 주지도,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의 잠재력을 충분히 일깨우지 못한 연출과 엉성한 각본 탓이다. 결과적으로 <포화 속으로>의 네 주연 배우들은 얄팍한 캐릭터 탓에 운신의 폭이 좁아져, 만족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스케치 정도로 묘사되는 동료 학도병들이 오히려 더 활기 있게 움직였고 보는 이가 더욱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캐릭터 뿐만 아니라 이야기도 생략이 많고 연결이 자주 끊어진다. 그러다 보니 전쟁의 비극을 보여준다는 주제의식조차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나마 배경 설정에 공을 들였던 주인공 장범은 편지 내용을 내레이션으로 처리하여,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전쟁을 겪으며 파괴되는 인간성에 대한 고뇌를 동시에 보여주려고 한다. 의도는 좋았다. 아쉽게도 완성된 영화는 단지 설정만 툭 던져 놓았을 뿐 그것을 관객에게 충분히 와닿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도중에 흐지부지 해 버리고 만다. 장범의 내레이션과 과거 회상은 그 자체로도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요한 장치임에도, 영화에서는 겉핥기 식으로 다루어지며 그것도 나오다가 만다. 일례로, 총상을 입은 괴뢰군이 ‘오마니’를 부르며 죽어가던 모습을 본 장범은 어머니께 ‘예전에는 괴뢰군이 진짜 괴물인 줄 알았는데, 같은 인간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편지를 쓴다. 이 역시 극의 주제와 직결되는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그렇게 첫 살인을 저지른 후, 장범은 그에 대한 고민은 내던져 버린 듯 명사수로 변신한다. 그는 더 이상 그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것이다. 어떠한 설명도 동기도 보여주지 않은 채. 왜 그러한 내용을 영화의 나머지 분량에서 더 다루지 않았는지도 미스터리로 남는다.

최고 수준의 특수시각효과와 특수분장, 아름답기까지 한 촬영, 고증에 충실한 의상, 잘 설계된 음향 등 기술적인 면에서 <포화 속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이다. 이 영화는 초반에 영화의 얼개를 잠시 보여주고는, 나머지 시간 내내 별다른 고민 없이 전투만 줄기차게 보여주고 끝난다. 부족한 드라마를 보강하기 위해서인지 음악은 감정과 분량 모두 과잉으로 쓰였다. 겉치장은 넘치되 속은 빈곤하다. 얼마든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음에도 그것을 애써(?) 아끼고 말았다. 그 이유 역시, 미스터리이다.

감독: 이한
주연: 최승현, 권상우, 차승원, 김승우, 김혜성
한국 개봉: 2010년 6월 16일

[혹성 탈출] – 오리지널과 리메이크 비교

<혹성 탈출> 1968 vs. 2001: 인간은 언제까지 지구를 지배할까?

(C) 20th Century Fox
(C) 20th Century Fox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1968년도 작품 <혹성 탈출>(Planet of the Apes, 유인원의 행성)은 과거 안방극장을 통해 여러 번 방영되어 우리나라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SF영화이다. 이 영화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주인공은 우주여행 도중 어떤 행성에 불시착하는데, 그곳은 지능을 가진 유인원이 인간을 노예처럼 지배하는 곳이었다. 결말에서 그 행성은 미래의 지구임이 밝혀진다. <혹성 탈출>은 개봉 당시 대단한 인기를 끌어 여러 편의 속편(총 5부작)은 물론, TV 시리즈까지 제작되어 명실공히 한 시대를 풍미한 작품이 되었다. 주연은 <벤허>로 잊을 수 없는 배우 찰튼 헤스턴.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작가 피에르 불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으로, 지금은 헐리우드가 남긴 대표적인 걸작 SF영화로 평가 받고 있다. 바로 이 <혹성 탈출>이 원작이 공개된 지 32년이 지난 올 여름, <배트맨>과 <슬리피 할로우>를 연출한 개성파 감독 팀 버튼에 의해 다시 만들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오리지널 <혹성 탈출>은 높은 지능을 가졌지만 자신과 다른 종인 인간을 야만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하는 유인원의 양면적인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이다. 이 뒤틀린 세계에서 인간은 유인원의 비참한 노예로 살아가야 하며, 반항하는 자들은 강제 뇌수술을 받고 사고 능력을 잃게 된다. 유인원은 고릴라가 이끄는 군부와 정치가인 오랑우탄, 지식인 침팬지로 구분되는데, 이들의 행태는 현대인의 군부와 정치인 그리고 지식인이 벌이는 모든 무능한 작태를 함축한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본 관객이 충격을 넘어선 절망에 가까운 감정에 휩싸이는 이유는 이야기의 무대가 지구라는 설정 때문이다. 다른 영화와는 달리 <혹성 탈출>에서는 결과적으로 탈출이 가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팀 버튼의 2001년 리메이크는 오리지널과 설정이 거의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다. 정치, 사회적 풍자 대신 유전공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몰고 올지도 모를 파국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단지 ‘컴퓨터’나 ‘기계’가 ‘유인원’이라는 탈을 썼을 뿐,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같은 다른 SF영화들과 비슷하다. 이것은 이미 너무나 진부한 설정이어서 강한 메시지를 담는 데 적합하지 않다. 오리지널은 대단히 건조한 스타일로 지구의 황량한 미래상을 보여주어 관객을 정서적으로 압도했다. 반면, 리메이크는 처음부터 시각적인 성찬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화려한 영상을 선보인다. 요즘 관객이라면 아무래도 리메이크에 쉬이 눈길이 가겠지만, 탄탄하고 힘있는 전개와 설득력 있는 인물 묘사 면에서는 오리지널이 분명 한 수 위다.

(C) 20th Century Fox
(C) 20th Century Fox

작품의 의의도 오리지널 쪽이 더 강하다. 끝까지 진중한 드라마를 고집하는 오리지널에 비해, 마치 <브레이브하트>를 연상케 하는 후반부의 대규모 전투 장면을 보노라면 이번 리메이크는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그냥 보고 즐겨라’라고 강요하는 것만 같다. 이야기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반전에서도, 오리지널은 그 이전까지 쌓아 온 영화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훌륭한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리메이크는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이야기를 뒤틀어놓기에 바쁘다.

두 작품 모두의 공통적인 장점이 있다면 배우들, 특히 유인원으로 분한 이들의 훌륭한 연기와 특수분장이다. 그들은 손이 많이 가는 복잡하고 답답한 분장을 하고도 감동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원작의 특수분장 담당인 존 체임버즈는 지금도 그다지 녹슬어 보이지 않는 유인원의 얼굴을 만들어 내어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았다. 리메이크의 경우 아카데미 분장상만 5번 수상했으며, 유인원 분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일급 특수분장사 릭 베이커가 발군의 솜씨를 보여 주었다.

이렇듯 두 편의 <혹성 탈출>은 각기 나름대로의 흡인력을 갖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는 오리지널이 더 우세하며,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리메이크가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 도대체 이토록 암울하고 절망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가 속편과 TV 시리즈는 물론이요, 30여 년 뒤 리메이크까지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 즉 ‘인간이라는 종이 과연 언제까지 지구의 지배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다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 우먼타임스 제25호(2001년 8월 3일-8월 16일자)에 실은 글. 내용 가운데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