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 제작 과정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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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독자가 영화를 보았다고 상정한 것이므로, 스포일러에 민감하다면 읽지 않는 편이 좋겠다.

– 고지라의 사체를 발견하는 도입부 장면은 당초 시베리아의 빙원에서 고지라와 다른 괴수가 싸우던 모습 그대로 얼음에 파묻힌 채 발견된다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극지에서 크립톤 행성의 우주선을 발견하는 장면이 포함된 <맨 오브 스틸>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필리핀으로 변경되었다. 또한, 실루엣으로 고지라와 다른 괴수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시각적인 고려도 있었다.

* <고지라>와 <맨 오브 스틸>은 모두 워너 브라더스와 레전더리 픽처스가 제작한 영화이며, 제작진도 일부 공유하였다.

** 역대 고지라 시리즈에서 비슷한 예를 들어 보면, 고지라는 제2편 <고지라의 역습>(1955)에서 얼음에 파묻힌 뒤 다음 편인 <킹콩 대 고지라>(1962)에서 베링해로 떠내려온 빙산을 부수고 깨어난다. 두 작품은 시공계열의 연결이 모호하지만 <킹콩 대 고지라>가 전작을 의식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고지라: 파이널 워즈>(2004)에도 고지라를 남극의 빙산을 무너뜨려 파묻었다가, X성인에 의해 조종당한 괴수들이 세계 각국을 습격하자 이를 격퇴하기 위해 다시 깨운다는 전개가 있다.

– 개렛 에드워즈 감독은 레전더리 픽처스로부터 <고지라> 연출 제의 연락을 받았을 때, 1954년 오리지널을 막 감상하려던 참이었다. 레전더리 측이 자기들의 제안이 “마음에 들어요?” 라고 묻자, 에드워즈 감독은 탁자 위에 놓인 <고지라> 홈 비디오 타이틀을 바라보며 “네, 지금 그걸 보고 있는 중이에요.” 라고 대답했다.

–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 의한 다이이치 원자력 발전소 누출 사고가 발생하자, 제작진은 영화의 내용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것을 우려하여 도입부를 일본이 아닌 미국이나 한국에서 시작하는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전 누출 사고는 영화의 주제를 더욱 더 유의미한 것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판단과 이야기의 발단은 고지라의 고향에서 시작해야만 한다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원안 그대로 일본으로 설정되었다.

만일 제작진이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잔지라의 원자력 발전소 장면은 미국이나 한국을 무대로 그려졌을지도 모르는 일이겠다. 한국이라면 어디였을까? 고리 원자력 발전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인데, 그 상상과 직결된 과오를 현실의 한국 정부가 저지르고 있으니…

– 이 책에 실린 설정에 따르면, 무토는 혼자서 고지라를 죽일 수 없으나 집단으로는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방사능을 함유한 고지라의 사체에 포자를 퍼뜨려 번식한다.

– 사운드 디자이너 에릭 아달은 고지라의 울음소리를 만들기 위해 1954년 오리지널 제작 당시 그랬듯이 느슨하게 푼 콘트라베이스 줄을 송진 장갑으로 문질러 보았다. 하지만 그때와 같은 뜻밖의 행운으로 ‘이거다!’ 싶은 소리는 얻을 수 없었다고. 완성된 울음소리의 주요 재료가 된 것은 드라이아이스로 과냉각된 금속이 수축, 진동하면서 발생하는 날카로운 비명 또는 고함 같은 소음이다.

– 개렛 에드워즈 감독은 호놀루루 공항에서 고지라와 무토가 대면하기 직전, 공항 로비의 탑승객들이 거대한 창문 너머로 괴수들과 폭발하는 여객기를 목격하며 경악하는 장대한 파노라마 샷을 커다란 수족관에 비유했다. 그러나 수족관에서는 수조 속의 상어와 관람객들이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안전하게 격리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다르겠다.

– 철교 시퀀스는 당초 밴쿠버에서 찾은 실제 철교에서 촬영할 계획이었으나, 120피트 높이의 다리 위에 150명의 인원이 올라갈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우려가 있어 스튜디오 촬영으로 대체되었다. 스튜디오에는 철교를 그대로 재현한 세트가 마련되었다.

– 핵미사일을 노리는 수컷 무토와 고지라의 해상 격투 장면이 스토리보드로 그려졌으나 완성되지는 못했다. 극중 시점으로는 수컷 무토가 핵미사일을 빼앗아 샌프란시스코에 상륙하기 직전에 해당한다.

– <고지라>는 아리플렉스 알렉사 플러스 카메라로 디지털 촬영되었다. 촬영감독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디 아워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어톤먼트>, <노웨어 보이>, <케빈에 대하여>, <안나 까레니나>, <어벤저스> 등에 참여했던 시머스 맥가비. 지나칠 정도로 선명한 고해상도 디지털 영상을 조금 부드럽고 필름 느낌이 나도록 다듬기 위해 1950~60년대 쓰였던 오래된 애너모픽 렌즈를 사용하였다.

책을 마저 읽고 새로운 내용을 찾게 되면 따로 써 보겠다.

출처: [고지라: 파괴의 예술]

[수퍼맨 리턴즈] (2006)

(C) Warner Bros. Pictures
(C) Warner Bros. Pictures

두서없이 떠오르는 여러 가지 감상들.

– 오프닝 크레딧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존 윌리엄스의 그 메인 타이틀 음악, 푸른 빛의 궤적을 남기며 우주를 날아다니는 그 크레딧 자막까지 똑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구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수퍼맨도 크리스토퍼 리브가 브랜든 라우스로 바뀌었을 뿐, 그 구도 그대로 재현했다. 게다가 엔드 크레딧에 리브와 부인에게 바치는 헌사까지. <수퍼맨 리턴즈>는 리처드 도너의 1978년작 <수퍼맨>을 영상과 주요 설정의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클 것이다.

– 새로운 수퍼맨 브랜든 라우스는 조금 딱딱하다. 그렇지만 모범적인 수퍼히어로 역에는 오히려 잘 어울린다. 격렬한 감정이 필요한 장면까지 딱딱한 것이 다른 영화에서라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수퍼맨이기 때문에 용인할 만하다.

–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 점은 ‘수퍼맨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이 변했다.’ 이다. 지금까지 수퍼맨은 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모범생 캐릭터라 친근감이 떨어지고, 변화 가능성이 적으며 재미가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그러한 세평을 의식한 듯 <수퍼맨 리턴즈>에는 크립톤 행성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온 수퍼맨이 느끼는 망향의 감정, 로이스 레인의 결혼과 출산에 의한 실연이라는 설정이 도입되었다. 이것은 수퍼맨의 초인적인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강력한 감정적 장애물로서, 그가 이에 반응하여 갈등을 겪다가 해결책을 찾아 가는 과정은 영화에서 가장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이다. 수퍼맨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로이스의 주위를 계속 겉돈다. 단지 약속이 있다며 데이트 신청을 거절한 로이스가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투시력으로 쫓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수퍼맨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른 안경과 수트를 벗고 옥상으로 날아가, 로이스에게 인터뷰 신청을 하고 함께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다. 약간은 진부하지만 방법은 맞았고, 결과적으로 보는 이도 동화된다. 마침내 수퍼맨은 새로운 고향인 지구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게 된다.

– 액션 시퀀스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 실사와 CG와의 구별을 거의 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게 만들어졌으며 압도적인 박진감을 담아냈다. 셋 다 1978년작을 기초로 업데이트한 것들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예를 들어 <수퍼맨>에서는 로이스 레인을 헬리콥터에서 구조했다면 <리턴즈>에서는 비행기에서 구조한다는 식이다. 상황 종료 후 ‘그래도 비행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랍니다’ 라고 말하는 것까지. 하지만 총탄이 수퍼맨의 안구에 맞고 튕겨나가는 컷처럼 그때보다는 지금 더 어색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는 기법이 삽입됨으로써 데자뷔를 상당히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한다.

– 오히려 <수퍼맨 리턴즈>에서 가장 밋밋한 건 렉스 루터의 음모다. 물론 케빈 스페이시의 루터는 예상대로 훌륭했다. 스페이시는 진 해크먼보다 덜 우스꽝스럽지만, 그보다 훨씬 더 뻔뻔하고 사악하다. 사이드킥인 파커 포시도 의외로 재미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루터는 1978년작과 똑같은 수법으로 위기감을 조성한다. 30년 전에 비해 별다른 발전이 없는 것이다.

– 구름을 뚫고 찬란히 빛나는 태양을 향해 비상하는 수퍼맨. 로이스를 안고 메트로폴리스의 마천루 사이를 조용히 비행하는 수퍼맨. <수퍼맨 리턴즈>는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영상으로 이루어진 수퍼히어로 영화일 것이다.

– 팬들을 즐겁게 할 다양한 인용과 변주도 (당연히) 잔뜩 들어 있다.

– <수퍼맨 리턴즈>는 캐릭터나 설정의 근간을 뒤흔들어 완전히 다른 방향을 모색한 작품이 아니다. 영화적으로는 1978년작 <수퍼맨>을 2006년의 상황에 맞춰 새로이 만든 작품으로 봄이 타당하다. 기본에 충실하고 원전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으로 가득하다. 시각효과는 하늘 높이 솟아오르지만, 스토리텔링은 시대착오적이 아닐까 할 만큼 눈높이다. 그럼에도 진부하지 않고 보는 이를 행복하게 한다. 브라이언 싱어는 <X-멘>을 만들 때 그랬듯이, <수퍼맨 리턴즈>를 가장 수퍼맨다운 이야기로 만듦으로써 또 한 편의 걸작 수퍼 히어로 영화로 승화시켰다.

원제: Superman Returns
감독: 브라이언 싱어
주연: 브랜든 라우스, 케이트 보스워스, 케빈 스페이시, 제임스 마스든, 프랭크 랜젤라
북미 개봉: 2006년 6월 28일
한국 개봉: 2006년 6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