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울버린] (2013)

(C) 20th Century Fox, Marvel Entertainment
(C) 20th Century Fox, Marvel Entertainment

앞서 개봉했던 <아이언 맨 3>와 마찬가지로, 마블 수퍼히어로 영화들은 올해 들어 서로 작정이라도 한 듯이 주인공들에게 한 번씩의 커다란 전환점을 내밀고 있다.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 맨 3>로 사실상의 3부작을 매듭지었다면, 울버린은 지금까지의 고뇌를 아다만티움 갈퀴로 완전히 끊어버리고자 분투하는 것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제2단계의 출발점인 <아이언 맨 3>도, 내년에 <X-멘: 다가올 과거의 나날>이라는 초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더 울버린>도 이쯤에서 주인공의 발목을 잡아 왔던 굵직한 갈등 요소 하나씩을 내던지고, 도약을 위한 기력 충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더 울버린>(The Wolverine)은 주인공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던 불사와 치유 능력에 그 어느 때보다도 오롯이 집중한다. 로건, 또는 울버린은 돌연변이로 인해 영생을 얻지만, 필연적으로 그에 따른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된다. 사회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소외된 것은 물론,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잃게 된 것이다. X-멘이 되면서 동료들을 얻었지만 초능력에 얽힌 끔찍한 과거는 그를 결코 놓아주려 하지 않는다. 야수적인 본능과 전사로서의 천부적인 재능도 사방에서 끊임없이 적을 끌어들인다. 울버린이 구원 받으려면, 아니, 스스로를 구원하려면 그의 삶을 가득 수놓아 온 비극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것이다.

주인공이 일생을 건 투쟁의 여정에 나서는 <더 울버린>은 그리하여 다른 X-멘 영화보다 훨씬 더 어둡고 훨씬 더 잔혹하다. 덧붙여 <아이언 맨 3>처럼 영화 한 편의 범위 안에서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낸다. 이렇게 강한 독자성은 작품에 상당한 집중력과 완결성을 가져다 주며, <더 울버린>을 X-멘 시리즈에서 유난히 도드라지게 한다. 한정된 수명을 살아야 하기에 울버린의 초능력을 탐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과 자연인으로서의 구원을 추구하는 울버린의 내적 갈등이라는 두 주제도 결말과 무리 없이 잘 연결지어졌다. 이를 통해 영화 시리즈에서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를 그리는 데 중요한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은 소득이자 의의이다.

유감스러운 부분은 울버린에게 주어진 약점이 이야기에 긴박감을 더해 줄 만큼 치명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왕 약점을 건드리려면 아예 밑바닥까지 굴러떨어지도록 확실히 초능력을 빼앗아 버리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불사의 생명과 신비한 치유력이 사라졌음에도, 그 전처럼 초인적인 격투 솜씨와 지구력을 뽐냈던 울버린의 묘사는 중반부 전개에 제대로 몰입하기 어렵게 했다. 따라서 결말의 카타르시스도 납득할 만은 했을지언정 본디 그랬어야 할 만큼 강하지 않았다. 이야기의 잠재력을 충분히 폭발시키지 못하니 스핀오프로서, 속편으로서 전편 <X-멘 탄생: 울버린>을 의미 있게 앞질렀다는 인상도 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X-멘 시리즈의 팬이라면 <더 울버린>을 볼 만할 것이라고 수줍게 말하고 싶은 이유는, 여전히 활력이 넘치고 성실하게 배역을 소화한 휴 잭먼과 새로운 얼굴, 특히 유키오 역의 릴라 후쿠시마이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잘 짜여져 있고, 후쿠시마도 참신한 인물상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두 사람의 모습을 앞으로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 즐겁다. 지리적 배경을 일본으로 설정하면서 가능해진 접근전 위주의 격투 액션과 이국적인 정서 등도 시청각적 차별성으로서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예고편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된 총알 열차 시퀀스도 짧긴 하지만 볼 만한 대목이었다.

울버린은 X-멘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뮤턴트지만, 단독 주인공으로 등장한 스핀오프에서는 유난히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편이 남겼던 씁쓸한 뒷맛 때문에, 이 두 번째는 아무래도 기대감을 최대한 접고 마음을 비운 상태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한 자세는 약간의 위험을 동반한 <더 울버린>의 감상에 제법 도움이 되었다.

원제: The Wolverine
감독: 제임스 맨골드
주연: 휴 잭먼, 릴라 후쿠시마, 오카모토 타오, 사나다 히로유키, 핼 야마노우치
북미 개봉: 2013년 7월 26일
한국 개봉: 2013년 7월 25일

[크로니클] (2012)

(C) 20th Century Fox
(C) 20th Century Fox

<크로니클>(Chronicle)이 흥미로운 까닭은 다른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했던(또는 다루지 않았던) 주제, 그러니까 초능력을 도덕성이나 책임감으로 통제한다는 개념이 없어져 버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과감히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것은 기껏해야 일장연설이나 그에 가까운 무언가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길로 빠지기엔 너무나도 팔팔하다. 젊고 생명력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빼면 삶의 모든 면에서 울퉁불퉁한 길을 끝도 없이 달리는 것만 같은 사춘기라는 시기. 초능력(그 근원과 정체는 극중에서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은 그 시기의 불안정한 마음의 빈틈에 재빨리 파고든다. 남은 것은 그것으로 무엇을 하느냐는 것 뿐. 엄청난 힘을 손에 넣은 세 사람이 하나같이 수퍼히어로가 된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왠지 <스파이더맨> 같은 영화는 가짜가 아닐까라는 불경스러운(?) 생각마저 잠시 든다.

<크로니클>을 보면서 고통스러운 사춘기를 소재로 한 <캐리>나 <미러, 미러>,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존재들을 그린 <아키라>, <스캐너즈> 같은 장르영화/애니메이션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한 관점에서라면 <크로니클>도 그다지 새로운 작품은 아니고,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의 재활용에 불과할 수도 있다. 캠코더와 CCTV 등의 시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발견된 영상’ 연출 기법도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크로니클>은 결코 낡지 않았다. 그 속에는 폭발하듯 강렬하고 생생한, 때때로 보는 이의 마음을 할퀴곤 하는 감정으로 가득하고, 다소 전형적이지만 성실한 연기로 표현되어 동정심과 관심을 기울일 만한 등장인물이 있으며, 어두운 동굴 속을 거침없이 달려가는 연출이 있다. 이야기 두루마리가 놀라운 속도로 풀리면서 그 핵심으로 집중해 가는 전개는 압도적이다. 피로감마저 느껴질 법한 수퍼히어로 영화의 홍수 속에서, 이 정도로 힘 있고 균형 잡힌 작품을 찾는 건 의외로 쉽지 않다.

마지막 장면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장면이 흘러가는 동안 관찰자인 나, 보는 이와 기록자인 카메라의 시점이 주인공의 시점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주인공의 눈이 되어, 아니 주인공 그 자신이 되어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럼으로써 나는 주인공이 꿈꾸었던 피안이 무엇이었는지를, 그가 왜 멈추지 못했는지를, 비극 속에서도 그의 모습이 왜 그토록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웠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얄밉게도 바로 그 순간 영화는 끝난다. 궁금증을 몹시도 자극하는 미스테리 몇 가지가 남는데, 그것은 속편에서 밝혀질지도 모르겠다. 엔드 크레딧을 천천히 넘겨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 연대기(chronicle)의 다음 장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힘’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원제: Chronicle
감독: 조쉬 트랭크
주연: 데인 드한, 알렉스 러셀, 마이클 B. 조던, 마이클 켈리, 애쉴리 힌쇼
북미 개봉: 2012년 2월 3일
한국 개봉: 2012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