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녀한] 부천영화제 상영 (+[괴시] 유튜브 공개 중)

(C) (주) 우진 필림

강범구 감독의 공포영화 <몽녀한>(1984)이 다음 달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 8일-18일)에서 상영된다.

<몽녀한>은 영화제 프로그램 가운데 스트레인지 오마쥬에 선정되어, 7월 10일 오전 11시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가 일반 공개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서 한국의 희귀 공포영화를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현역에 있는 동안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던 강범구 감독은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로 손꼽히는 <괴시>(1980)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대만 합작영화인 <몽녀한>은 도시기담, 멜로드라마 그리고 80년대 초반 한국영화로는 특기할 만한 크리처 공포영화의 요소가 포함되었다. 당시 해외에서 유행했던 장르 코드를 한국영화에 도입한 강범구 감독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 하겠다.

<괴시>는 지난 5월부터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 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 공개 중이니, <몽녀한>과 함께 감상하면 좋겠다.

또한, 괴수보호구역은 2016년 5월 강범구 감독과 만나 <몽녀한>, <괴시>를 비롯하여 감독이 관여한 합작영화에 대해 인터뷰한 바 있다. 아울러 참고하기를 권한다.

인터뷰/ [괴시], [몽녀한]의 강범구 감독 (2016년 6월 20일)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웹사이트

인터뷰/ [괴시], [몽녀한]의 강범구 감독

강범구 감독 (촬영: 홍기훈)
강범구 감독 (촬영: 홍기훈)

강범구 감독은 1950년대 촬영 스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래 <지옥화>(1958), <비정>(1959), <지평선>(1961), <슬픔은 없다>(1961), <현상 붙은 사나이>(1961) 등 10여 편의 작품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했고, 1962년 <북극성>으로 감독 데뷔하였다. 이후 1988년 <칠소여복성>까지 26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기획, 각색 등의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대만, 홍콩과의 합작영화를 다수 만들었던 인연으로 중국어권 영화의 수입 업무에도 오랫동안 종사한 바 있다.

강범구 감독의 작품은 멜로드라마, 음악, 첩보, 액션, 공포, 권격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특히 한국 최초의 본격 좀비영화로 회자되는 <괴시>(1980)와 크리처-공포영화라는, 한국에선 드문 하위 장르에 속하는 <몽녀한>(1983),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의 대역을 맡았던 당룡이 주연하고 황정리가 공연한 권격영화 <사망탑>(1980) 등이 장르영화 팬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만남에서는 감독의 이력에 얽힌 여러 가지 일화와 함께 위 세 편의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만났던 자리의 상황에 의하여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감독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 형식으로 정리하였다. 이 인터뷰는 지난 5월 17일 서울에서 이루어졌다.

 

영화에 대한 생각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감독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 스스로 뒤떨어진다고 여겨 남들을 따라가려고, 남보다 앞서려고 노력과 공부를 많이 했고 파격도 감행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잃기도 했고… <여자 베트콩 18호>(1967) 때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했으므로 우리 영화를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잃지 않았다.

 

옛 충무로의 일화들

– 옛날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감독 계약을 하게 되면 네거티브 필름 몇 자 쓰느냐를 두고 영화사 사장과 타협부터 해야 했다. 보통 2~3만자를 썼다. 필름을 아끼느라 카메라에 장착할 때 저절로 감기는 부분도 2~3프레임씩이나마 되감아 악착같이 절약했다. 그러니 NG가 최대의 공포였다. 도중에 제작비가 떨어져 찍은 분량만으로 마무리할 때도 있었고… 당연히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다.

– 해외 수출 때는 원본 네거티브 필름으로부터 복사본(듀프 네거)을 만들어 그걸 보내야 한다. 하지만 필름 복사 비용이 너무 비싸서 원본 필름을 빌려주거나 그냥 보냈다. 그러다가 돌려받지 못할 때도 많았고… 그렇게 유실된 작품이 많다. 설사 복사본을 만든다 해도 원본을 보관할 여력이 없었다.

– 동아수출공사 기획실장으로 있던 70년대 일인데, 당시 친했던 정소영 감독이 <애수의 샌프란시스코>(1975)라는 대본을 가져와서 미국 현지 촬영을 하게 되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허가제였고 외화 관리도 엄격하여 제작비로 2만 달러만 갖고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조수 하나 두고 촬영을 진행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런데 도중에 회사에서 기왕 어렵사리 해외에 나간 김에 영화 한 편을 더 찍어 오라길래, 김기영 감독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새 대본을 받아 왔다. 사실 대본의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줄거리만 적힌 것이었다. 그래서 대강의 스토리만 어찌어찌 담아 귀국 후 연결하여 완성했다.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 사정은 또 달랐으니까. 그 영화가 <황혼의 만하탄>(1974)이었다.

강범구 감독은 과거 해외 출장 시 맥도널드에 익숙해져, 이번 만남도 맥도널드에서 가졌다. (촬영: 박상규)
강범구 감독은 과거 해외 출장 시 맥도널드에 익숙해져, 이번 만남도 맥도널드에서 가졌다. (촬영: 박상규)

– <황혼의 만하탄> 때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올라가 촬영을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도중에 갈아타야 할 정도로 높았다. 전망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다, 갑자기 빌딩 관계자가 불러세워 가슴이 철렁했다. 뭐 압수라도 당하나 싶었던 거다. 그런데 입장권을 다 내놓으라길래 줬더니 오히려 입장료를 돌려 줘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영화 촬영으로 뉴욕 관광에 도움을 줘서 입장료를 면제해 준 거였다. 공식적으로는 이 영화의 촬영감독이 이성춘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은 감독 겸 기획자였던 내가 직접 촬영하였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 연출작 가운데 지금 원본을 볼 수 없는 것으로는 <유랑극장>(1963)이 제일 아쉽다. 영화를 위해 노래를 9~10곡 정도 지었는데 박춘석 작곡가 작품이다. “바닷가에서” 같은 노래는 상당히 유행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조긍하 감독의 <아까시아 꽃잎 필 때>(1963)와 경쟁했다. 그땐 조긍하 감독 작품이 더 유명했다. 극장을 잡고 개봉일에 맞추느라 며칠 밤을 새며 만들었는데, 노래 부르는 긴 장면은 편집을 제대로 못 한 것이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순수하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해서 애착이 많다. 내 영화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소만국경>(1964), 합작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때로선 감각이 상당히 앞섰던 작품으로 자평하는 <국제암살단>(1971)도 기억에 남는다. <칼맑스의 제자들>(1968) 같은 것은 중급 이상의 규모였는데, 강가에 폭탄을 묻어 놓고 진짜로 폭파시켜 가며 찍었다. 그때 조감독이었던 정진우 감독이 총을 잘 쏘는 걸로 유명했다. 알다시피 당시엔 영화 촬영에도 실탄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 배우들 중에서는 황해와 가장 가까웠고 작업도 많이 했다.

 

합작영화로 시작된 중화권과의 인연

– 60년대에는 첫 합작영화에 참여했기 때문인지 대만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우리 영화 정책 목표에 외화 확보가 포함되기도 했고, 영화인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주려고 애썼다. 우리는 우리 대로 어떻게든 일을 따내어 먹고살아야 했으므로 해외 합작은 좋은 기회였다. 우리 배우나 감독들이 초청 받아 대만에 갔고, 나유 감독(이소룡이 주연한 <당산대형>, <정무문>으로 유명) 등 그쪽 인맥을 알게 되었다. 고인하 씨 같은 경우 <탈출명령>(1966) 합작을 계기로 만났는데 지금도 돈독한 관계다.

– 대만은 국민당이 직접 경영하는 중앙영화사가 있는 국영 체제였는데, <오리를 기르는 집> 같은 수작을 다수 만들어 냈다. 그들도 흥행이 잘되는 한국에 신세를 진 셈이다. 어디서든 진실하게 사업을 하면 아무 탈이 없다. 욕심을 더 부리거나 잔꾀를 부리니까 곤란해지는 거다.

– 대만과 가까운 홍콩과도 합작을 했다. 쇼 브라더스의 런 런 쇼도 한국을 좋아했다. 이한상 감독(대표작 1960년판 <천녀유혼>, <강산미인>, <양산박과 축영대> 등)과는 합동영화사와 합작할 때 알게 되었는데, 나중에 연출작인 <서태후>(1981)의 수입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동남아권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본영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기였지만, 아무래도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권에서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나쁜 편이었다. 한국영화가 진출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 홍콩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신상옥 감독 납북 당시에도 홍콩에 체류 중이었다. 최은희 씨는 내가 정창화 감독, 신위균 씨, 남석훈 씨 등과 함께 대접 약속을 했는데, 식사가 차려지고 나서도 나타나지 않아 이상했다. 알고 보니 북한에 납치된 것이었다. 참 섬뜩한 이야기다.

(촬영: 박상규)
(촬영: 박상규)

 

연출 중단 후 이야기

– 영화 만드는 일을 중단한 계기는 자신이 없어져서였다. 외국에 자주 나가다 보니 이렇게 만들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랫동안 공백기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영화 수입에 종사하면서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돌아다니는 등 열심히 활동했다. 영화 수입 일로 한 달에 절반은 홍콩에서 보내곤 했다. 동아수출공사, 우진 필림, 황기성사단 등과 가까웠는데 동아수출공사의 경우 홍콩 골든 하베스트와 돈독한 관계여서 많은 작품을 들여왔다. 계기는 내가 이소룡의 <정무문>(1972)을 본 뒤, 그 다음 작품인 <맹룡과강>(1972)을 국내에 소개하면서이다. 그 일로 동아수출공사와 골든 하베스트가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수입 일은 영화계에 대기업이 진출한 15년쯤 전까지 계속했다.

– 요즘 한국영화를 다 보진 못 하지만 종종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볼 기회가 있다. 최근에 본 작품은 <귀향>(2015)이다. 아끼는 후배가 따로 있진 않다. 다들 잘 만드니까. 여러 여건이 잘 맞기도 하지만 우리 때보다 확실히 영화를 잘 만든다. 비용도 더 많이 들이고.

 

<괴시>에 대하여

– 홍콩에서 이탈리아영화(주: <잠든 시체를 그대로 두어라> Let Sleeping Corpses Lie / 1974년 공개된 이탈리아-스페인 합작 좀비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한국 상황을 반영하여 만든 작품이다. 국제 저작권 협약이 적용되지 않았던 당시의 관행이었다지만 남의 것을 갖다 한 건 맞고, 내가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안개 낀 거리>(1963)도 일본 작품을 참고한 것이다. 당시엔 홈 비디오도 없었고 기록 수단도 부족하다 보니 극장에서 참고할 만한 영화를 보면서 커트 분할이나 대사 같은 것들을 받아 적거나 아예 외우기도 했다.

– 이 영화의 주제는 과학의 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인간에 대한 해악이다. 각색 과정에서 병충해 방지를 위해 초음파를 사용한다는 등 한국의 실정에 맞는 설정으로 바꾸었다. 검열이 심해 유혈 장면을 여럿 삭제해야 했다.

– 합작영화 제작 경험을 살려 중국 배우들을 일부 캐스팅하였다.

– 야외 촬영은 대부분 광릉에서 이루어졌다. 수풀이 우거진 곳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광릉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주: 극중 배경은 강원도). 실내 촬영은 어디서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미아리, 신설동 등 서울 여러 곳에 세트장이 있었다.

– 흥행은 잘 되지 않았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도 않았고, 여러 모로 극장에 걸기 쉬운 영화는 아니었다.

<괴시> (컬러 / 85분 / 1980년 4월 10일 공개)
주연: 유광옥, 강명, 박암, 왕옥환, 홍윤정

(C) 한림영화 (주)
(C) 한림영화 (주)

강원도 산골에서 병충해를 막기 위한 초음파 방출 실험이 실시된다. 그러나 실험의 부작용으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들이 되살아나 닥치는 대로 마을 사람들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세미나 참석차 한국에 온 중국인 강명, 그와 우연히 만난 수지, 그리고 수지의 자매 부부 등이 사건에 휘말리고, 희생자는 점점 늘어만 간다.

흔히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로 손꼽히는데, 이에 대한 검증은 잠시 미루어 두고 작품 자체만 본다면 조지 A. 로메로가 창시한 현대 좀비영화의 작법을 충실히 답습한 현지화 버전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가 나왔던 80년대 초반에는 특수효과의 발달로 경천동지할 유혈 묘사가 경쟁적으로 터져나왔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해외의 상황. 대신 <괴시>에는 검열의 제한을 피하여 유혈묘사 대신 분위기와 극중 상황으로 공포와 불안감을 조성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좀 더 스타일리쉬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정통 좀비영화의 흥취를 머금은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여전히 그 매력을 잃지 않는 작품이다.

 

<몽녀한>에 대하여

– 소재가 괜찮아 보여 만들게 된 영화이다. 마침 괴기영화가 유행이기도 하여, 흥행성이 있거나 적은 제작비로 만들 수 있는 소재라면 기꺼이 선택했다. 한 편이라도 더 팔아야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

– 촬영은 한국과 대만에서 골고루 진행되었다.

– 각색은 주동운 작가가 맡았는데, 현대를 무대로 고전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기조는 중국 측에서 낸 아이디어이다.

– 괴수 수트는 중국에서 제작했다. 수트 액터는 상황에 따라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 기용했다.

– 합작 영화라는 특성 상 한국과 대만 양국 배우들은 각자 서로의 언어로 대사를 했다. 이를 나중에 한국어로 더빙한 것이다.

<몽녀한> (컬러 / 90분 / 1984년 8월 18일 공개)
주연: 문태선, 첸리윈, 국정숙, 추이소핑, 문미봉

(C) (주) 우진 필림
(C) (주) 우진 필림

잔혹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여 도시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는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들리는 기묘한 피리 소리, 그리고 그때마다 사라지는 기자 이옥정. 옥정과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 고강영은 이 두 가지 정황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공포영화의 전성기였던 80년대 초반 선보인 <몽녀한>은 한국과 대만의 합작영화. 멜로드라마를 가미한 크리처-공포영화로서도 흥미롭고, 도회를 무대로 한 기담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뱀 괴물의 모습은 그야말로 특촬 수트를 보는 듯하지만, 당시의 관점으로는 꽤나 존재감 있는 크리처로서 인상을 남기지 않았나 싶다.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분야를 탐색했던 작품이다.

 

<사망탑>에 대하여

– 액션 장르에서 한국영화와 홍콩영화의 차이라면, 한국영화는 6. 25의 영향이 있어서인지 총격, 권격 위주로 좀 더 현대적인 인상이다. 반면, 홍콩영화는 쇼 브라더스의 왕우가 나오는 칼싸움 액션영화의 예로 알 수 있듯 고전적인 인상이다.

– 극중 공작새를 부리는 장면이나 사자가 나오는 사파리 장면 등은 홍콩에서 촬영했다. 홍콩 측의 오서원 감독이 그런 볼거리를 동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리 잘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망탑> (컬러 / 75분 / 1980년 3월 1일 공개)
주연: 당룡, 황정리, 원화평, 진요림, 원진위

(C) 동아수출공사
(C) 동아수출공사

사형 진길용을 방문하려던 무도가 김태중은 길용이 불귀의 객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장례 도중 어떤 세력이 길용의 시신을 훔쳐가자 태중은 그 뒤를 쫓아 길용의 죽음과 관련된 음모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주연 당룡은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 이소룡의 대역으로 출연한 바 있고, 이어 <사망유희>의 속편격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도 대역 겸 이소룡의 동생 역을 맡았다. 국가 별로 다수의 편집본이 존재해서인지 이 한국 공개판도 컨티뉴이티가 엉성하고 완성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 이소룡식 권격영화의 개성 없는 아류작에 속하지만, 한국 액션영화의 계보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한번쯤 짚고 넘어갈 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마치며

1924년생인 강범구 감독은 올해 93세의 고령이지만 못 해도 20년 이상은 젊어 보일 만큼 매우 정정하였다. 시종일관 진솔하고 겸손하였고 지금은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딱 부러지게 인정하는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과거 잦은 해외 출장으로 익숙해진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놓고 활기 있게 이야기를 이어 가는 90대 노감독의 모습은 쉽게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일종의 예고편이다. 강범구 감독과 만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으므로… 읽으면서 특히 <괴시>와 <몽녀한>에 대한 내용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다면, 조만간 다른 지면을 통해 강범구 감독과 다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기회에 대해서는 따로 알리도록 하겠다.

인터뷰를 도와 주신 분들
박지환 씨
홍기훈 씨 (빅 몬스터 클럽)
박상규 씨 (빅 몬스터 클럽)

부천영화제 ‘고지라 60주년 특별전’ 상영!

(C) Toho Co., Ltd.
(C) Toho Co., Ltd.

국내 최초의 고지라 특별전 / 부대행사도 기획

괴수/특촬영화, 특히 고지라 시리즈의 팬들에게 기쁘고 의미 깊은 소식이다.

다음 달 열릴 제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PIFAN)에 올해 60주년을 맞은 고지라 시리즈를 기념하는 특별 프로그램이 포함되었다. 괴수대백과: 고지라 60주년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번 특별전에서는 괴수영화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1954년작 오리지널 <고지라>를 비롯하여 <괴수대전쟁>(1965), <괴수총진격>(1968), <고지라 대 헤도라>(1971), <메카고지라의 역습>(1975), <고지라 VS 비오란테>(1989), <고지라: 파이널 워즈>(2004) 등 모두 7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쇼와 시리즈에서 5편, 헤이세이와 밀레니엄 시리즈에서 각각 1편씩을 뽑은 구성이다.

한국에서 고지라 시리즈를 위한 상영 프로그램이 기획된 것은 이번이 처음. 6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시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실로 귀중한 이벤트이다. 상영작들 역시 2003년 국내에서 처음 상영되었던** 1954년판 <고지라>를 빼면 모두 국내 미공개작. 어느 영화가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특히 스펙터클이 강조된 괴수영화는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터. 일본 괴수영화의 진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아래는 각 상영작의 간략한 소개 및 상영 정보.

<고지라> (ゴジラ, 1954)
감독: 혼다 이시로 / 주연: 타카라다 아키라, 코우치 모모코, 히라타 아키히코, 시무라 타카시
포맷: 35mm 필름 / 오리지널 일본어 음성 / 한국어 자막

고지라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제1편이자 영화사에 남을 괴수영화의 걸작. 핵실험으로 인해 방사능을 축적한 고대생물이 일본을 습격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반전 · 반핵 메시지를 전달한다. 혼다 감독의 탄탄한 연출과 ‘특촬의 신’ 츠부라야 에이지 특기감독의 정교하고 박력 있는 특수효과는 ‘특촬’이라는 일본 특유의 장르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후 킹콩과 함께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문화적 상징으로 정착한 고지라라는 괴수 캐릭터를 세상에 알린 작품.

——-

<괴수대전쟁> (怪獣大戦争, 1965)
감독: 혼다 이시로 / 주연: 타카라다 아키라, 닉 애덤즈, 미즈노 쿠미, 쿠보 아키라, 츠치야 요시오
포맷: 35mm 필름 / 영어 더빙 / 한국어 자막

토호 특촬영화의 2대 노선이었던 괴수영화와 SF영화를 본격적으로 조합한 시리즈 제6편. 고지라가 우주에서 활약한 첫 번째 작품이며, 당시 유행하던 개그 ‘셰!’를 몸소 선보이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구를 정복하려는 X성인과 킹기도라의 음모에 맞서 고지라와 라돈, 그리고 인류가 힘을 합쳐 싸운다는 호쾌하고 템포 빠른 활극적 연출이 돋보인다.

——-

<괴수총진격> (怪獣総進撃, 1968)
감독: 혼다 이시로 / 주연: 쿠보 아키라, 코바야시 유키코, 아이 쿄코, 타자키 쥰
포맷: 35mm 필름 / 영어 더빙 / 한국어 자막

고지라 시리즈 제9편. 우주에서 온 광물생명체 키라크성인이 괴수들과 UN 과학위원회 구성원들을 조종하여 세계 각지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이에 키라크성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대원들은 최첨단 메카닉 문라이트 SY-3의 힘을 빌려 사악한 계획을 분쇄하고자 반격을 전개한다. 당시 영화산업의 위축, 대중 취향의 변화 등의 이유로 인해 완결편으로서 기획. 그러나 예상 이상의 흥행 성적으로 시리즈가 계속 만들어지게 되었다. 고지라를 비롯하여 그때까지 토호 특촬영화에 등장했던 유명 괴수 11마리가 집결한 화려한 스펙터클이 볼거리. 괴수들을 고립된 섬에 모아 놓은 괴수랜드라는 설정은 공룡 테마 파크를 내세웠던 [쥐라기 공원]보다 20년 이상 앞선 것이다.

——-

<고지라 대 헤도라> (ゴジラ対ヘドラ, 1971)
감독: 반노 요시미츠 / 주연: 야마노우치 아키라, 카와세 히로유키, 키무라 토시에, 마리 케이코, 시바 토시오
포맷: 35mm 필름 / 영어 더빙 / 한국어 자막

고지라 시리즈 제11편으로, 전 28편에 이르는 시리즈 중에서도 유난히 튀는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고지라와 싸웠던 헤도라는 당시 일본의 큰 사회문제였던 환경오염에서 힌트를 얻은 공해괴수. 헤도라가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며 인류에게 기괴하고 잔혹한 죽음을 선사하는 묘사, 방종하고 종말론적 행태를 보이는 청년층의 모습과 사이키델릭 유행의 반영, 애니메이션의 삽입 등 여러 가지 흥미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고지라가 처음으로 날아다닌(!) 장면으로도 유명. 어떻게 보아도 컬트영화의 요소를 두루 갖춘 이색작이다. 반노 감독은 2014년판 <고지라> 리메이크에 기획자로 참여하였다.

——-

<메카고지라의 역습> (メカゴジラの逆襲, 1975)
감독: 혼다 이시로 / 주연: 사사키 카츠히코, 아이 토모코, 히라타 아키히코, 무츠미 고로, 우치다 카츠마사
포맷: 35mm 필름 / 영어 더빙 / 한국어 자막

고지라 시리즈 제15편이자 쇼와 고지라 시리즈의 최종작. 혼다 감독, 타나카 토모유키 프로듀서, 이후쿠베 아키라 작곡가의 ‘원년 멤버’들이 모여 만든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메카고지라가 처음 등장하여 경쾌한 활극을 연출한 전작 <고지라 대 메카고지라>(1974)와는 달리, 54년판 오리지널을 연상케 하는 진지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특징. 전편에서 파괴된 메카고지라의 잔해를 회수하여 지구 정복을 노리는 외계 세력과 학계에서 퇴출당해 세상에 앙심을 품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손을 잡는다. 이들이 야기하는 재난을 막고자 과학자 이치노세와 인터폴, 그리고 고지라가 분투한다. 관객 동원수는 역대 최악인 97만 명. 이후 고지라 시리즈는 1984년 부활까지 9년에 걸친 동면에 들어가게 된다.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54년판 오리지널의 구성이나 주제를 변주한 점과 원전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력 등을 높이 평가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여성 각본가(타카야마 유키코)가 단독으로 크레딧에 오른 유일한 작품.

——-

<고지라 VS 비오란테> (ゴジラVSビオランテ, 1989)
감독: 오모리 카즈키 / 주연: 미타무라 쿠니히코, 타나카 쿄코, 타카시마 마사노부, 오다카 메구미, 미네기시 토루
포맷: 35mm 필름 / 영어 더빙 / 한국어 자막

1989년부터 1995년까지 총 6작품이 제작된 헤이세이 고지라 시리즈의 제1편이자, 전 시리즈 통산 제17편. 쇼와 시리즈에 특촬 스탭으로 참여해 온 카와키타 코이치가 처음으로 특기감독을 맡은 고지라 영화이다. 1984년 <고지라>로 일단 부활한 이후 5년 동안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난산 끝에 나온 작품으로서,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는 제작진의 의욕과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괴수영화라는 틀 안에서 첩보영화, SF영화, 산업 스파이 플롯, 로맨스영화 등 여러 가지 장르 요소가 뒤섞여 불협화음을 동반한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핵과 방사능이라는 고지라 시리즈 전통의 소재를 바탕으로 54년판 오리지널의 주제를 당대의 시선으로 훌륭하게 재해석하였다. 속도감 있는 드라마 연출과 중량감 넘치는 특촬도 작품의 높은 완성도에 기여했다.

——-

<고지라: 파이널 워즈> (ゴジラ FINAL WARS, 2004)
감독: 키타무라 류헤이 / 주연: 마츠오카 마사히로, 키쿠치 레이, 돈 프라이, 키타무라 카즈키, 미즈노 마키, 쿠니무라 쥰
포맷: 35mm 필름 / 오리지널 일본어 음성 / 한국어 자막

2004년 고지라 탄생 50주년 기념작으로 공개된 역대 최대 규모의 시리즈 제28편. 현재까지 일본에서 제작된 마지막 오리지널 시리즈 작품이다. 이야기의 기본 틀은 <괴수총진격>을 답습하고 있고, 60년대 SF영화를 21세기의 영상 기술로 구현한 듯한 느낌을 준다. 기념작에 걸맞게 역대 출연 배우들과 괴수, 메카닉, 초병기 등이 대거 등장하여 하나의 떠들썩한 축제 같은 영화가 되었다. 여기에 키타무라 감독 특유의 액션 연출에 대한 집착이 덧붙여져 인간과 괴수 모두가 출전한 격투 토너먼트로서의 성격도 지녔다. 영화의 백미는 악역인 X성인 통제관으로 분한 키타무라 카즈키의 괴이한 연기.

<고지라>(1954)와 <고지라: 파이널 워즈>만 오리지널 일본어 음성판이고, 나머지 5편이 영어 더빙판으로 선보이게 된다는 점은 다소 유감. 그렇지만 과거 AFKN에서 영어로 더빙된 북미 공개판으로 고지라 시리즈를 접하기도 했던 국내 올드 팬들에게는 어쩌면 당시의 향수를 되살리는 감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별전을 위해 고지라에 관련된 부대행사도 별도 기획되었는데, 이에 대한 정보는 조만간 추가 발표될 예정으로 괴수보호구역에서도 그때그때 전하도록 하겠다.

제1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7월 17일부터 27일까지 경기도 부천 일대에서 열린다. 개막작과 폐막작을 제외한 일반 상영작 예매는 7월 3일 오후 2시부터 영화제 공식 웹사이트(http://www.pifan.com)에서 시작될 예정.

그 높은 지명도와 작품 가치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말까지 이어졌던 전후 일본문화 금지로 인해 제때 소개되지 못했던 고지라 시리즈. 그 대표작을 공식적인 경로로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인 이번 특별전에 괴수/특촬영화와 고지라를 사랑하는 팬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

(C)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C)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 <고지라>(1954)는 2003년 3월 20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아트 시네마에서 열렸던 ‘일본영화 황금기 – 1950년대 거장 15인전’을 통해 한국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다. 관련 정보는 다음 링크 참조.

http://www.cinematheque.seoul.kr/rgboard/addon.php?file=programdb.php&md=read&no=46&start=585

크레이그 본드의 매력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 이 글에는 <카지노 로얄>을 비롯한 크레이그 본드 시리즈의 내용 서술이 포함되어 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다면 주의하시라.

007 제임스 본드가 돌아왔다.

올해 2012년은 제임스 본드가 은막에 처음으로 등장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작가 이언 플레밍이 1953년 발표한 소설 [카지노 로얄]을 통해 첫선을 보였던 가공의 첩보원 본드는 이후 여러 편의 속편 소설들과 라디오 드라마, TV용 영화, 만화 등의 주인공으로 활약했고, 1962년부터는 <살인 번호>를 시작으로 대중문화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장편영화 시리즈도 스물 세 편이나 만들어졌다(번외편까지 합치면 스물 다섯 편).

제임스 본드 영화는 역사상 가장 많은 편수가 만들어진 시리즈는 아니지만,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은 시리즈 가운데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5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세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변치 않는 인기를 누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대중을 본드 시리즈로 끌어당겼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게 마련이다.

본드 시리즈의 인기 요인을 꼽자면 흥미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이야기, 세계 각국에서 담아 온 다채로운 배경(특히 해외여행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과거에는 더욱 더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박력 넘치도록 연출된 액션, 때로는 아기자기하고 때로는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멋진 특수차량과 비밀무기들, 본드 걸,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부른 주제가와 훌륭한 작곡가들이 만든 사운드트랙, 호쾌하고 현실도피적인 욕구를 채워 주는 모험담… 만일 이러한 인기 요인이 만질 수 있는 물건이라면 양 손에 다 담기에도 벅찰 만큼일 것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본드 시리즈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이자 매력이라면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 자신일 것이다. 특히 영화 속 본드는 거의 초인에 가까운 임무 수행 능력과 남성적 매력이 극대화된 인물로 묘사된다. 스파이 중의 스파이, 남자 중의 남자인 것이다. 이렇게 완벽한 인물이 온갖 난관을 넘어 임무를 완수하고 아름다운 본드 걸과 함께 망중한을 즐기는 결말로 이루어진 영화가 관객을 매료시키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본드를 지난 50년 동안 여섯 명의 배우들이 연기해 왔다. 제1대 숀 코너리(출연작 수 번외편 제외 6편), 제2대 조지 레젠비(1편), 제3대 로저 무어(7편), 제4대 티모시 달튼(2편), 제5대 피어스 브로스넌(4편) 그리고 현역인 제6대 대니얼 크레이그(현재까지 3편)가 그들이다. 이들은 각자 본드로 살아 숨쉬었던 스물 세 편의 영화를 각기 다른 이유로 빛나게 했고, 관객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각기 다른 배우들에게, 또는 그들 모두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줌으로써 보답했다. 워낙 오랫동안 많은 편수가 제작된 영화 시리즈인데다가, 같은 가상 인물을 여러 명의 배우들이 연기했기 때문에 본드는 동일인물임에도 편마다 여러 가지 매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관객들이 특정한 배우가 분한 본드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본드를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나의 베스트 본드는 대니얼 크레이그이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라 내 경험에 한정된 바이지만, 흔히들 제1대 본드였던 숀 코너리를 최고의 본드로 꼽는 경우가 많은 듯 싶다. 조지 레젠비는 떡대 말고는 별달리 내세울 것이 없었고, 로저 무어는 좀 느끼했으며, 티모시 달튼은 좀 뻣뻣했고, 피어스 브로스넌은 그냥 무난했고, 그러니 코너리가 짱! 이라는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걸까. 뭐 다 좋다. 내 경우는 무어의 출연작인 <나를 사랑한 스파이>로 본드 시리즈를 처음 접했고, 아무래도 첫 체험이어서인지 그 후로도 여러 편의 시리즈를 보았지만, 몇 년 전까지는 이 영화가 시리즈 가운데 가장 좋았다(칼리 사이먼의 주제가 “Nobody Does It Better”는 지금 들어도 살살 녹는다). 무어에 대해 말하자면, 본드의 플레이보이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배우였다. 적어도 내게는.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2006년 대니얼 크레이그의 첫 본드 출연작이자 시리즈의 리부트인 <카지노 로얄>을 감상하게 되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여기는 그럴 만한 자리가 아니므로 그 영화의 장점을 일일이 나열하진 않겠지만, 분명히 말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카지노 로얄>이 ‘혁신’이었다는 점이다. 스무 편이 넘는 장기 시리즈를 이어가다 보면 매너리즘과 피로감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그야말로 철두철미하게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감독인 마틴 캠벨은 본드를 90년대에 훌륭히 적응시킨 수작 <골든아이>(1995)를 연출한 인물이었는데, <카지노 로얄>로 같은 목적을 다른 시대에서 더 훌륭하게 이룬 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니얼 크레이그가 있다. 2005년 그가 본드 역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던 비아냥 어린 목소리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금발이라 원래 설정에 맞지 않는다느니(플레밍의 소설 속 본드는 흑발이다), 너무 투박한 마스크라느니, 성적 매력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얘기들. 하지만 외모나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크레이그 본드는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중요한 건 배우의 머리카락 색깔이나 얼굴이 아니라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이 어떻게 행동하고 표현되는가이다. 어떻게 보면 선배들과는 달랐던 크레이그의 다소 무색무취한 이미지가 제작진이 의욕적으로 모색하고 있었던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성에 적합했던 것이 아니었나 한다. 마치 스케치북을 가득 채운 백지처럼 말이다.

제작진이 선택한 시리즈의 중심적 변화 가운데 하나는 본드를 예전보다 훨씬 더 인간적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 시작에 해당하는 <카지노 로얄>은 기존 시리즈의 리부트로서 본드의 초기 임무와 성장담(!)을 그린 이야기라는 점, 섬세한 심리 묘사에 집중한 훌륭한 각본, 크레이그를 비롯한 주요 배우들의 호연 등으로 참신한 본드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 21세기 본드 시리즈에서 크레이그는 여전히 초인적인 첩보원이지만(그것이 본드의 본질이자 시리즈의 전통이므로), 그럼에도 좀 더 상처 받기 쉽고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 본드의 모습을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었다. 완벽한 인물로 알고 있던 그가 실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결점 투성이이기도 합니다, 라는데 어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을까.

본드의 인간적 매력이 가장 풍부하게 드러나는 시점은 그가 운명의 여인 베스퍼 린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이다. 임무를 위해 여자와 살을 섞곤 했던 본드는 린드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면서 첩보원이라는 직업마저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극 후반부 린드가 이중첩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어 비참한 죽음을 맞으면서 본드의 절망감은 극에 달한다. 본드 최대의 위기가 부비 트랩이 아닌 사랑했던 여인의 배신이라니! <카지노 로얄>의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살인면허> 이후 본드의 감정이 가장 격정적으로 드러난 대목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시련을 겪으면서 첩보원으로서의 본드는 더욱 단단해지고 한 단계의 성장을 이룬다. 그것이 냉혹한 이 세계의 생존 법칙. 본드에게 그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존재가 바로 직속상관 M이다. 고아가 된 본드를 거두어 MI6 최고의 첩보원으로 키운 M은 그에게 마치 양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처럼 묘사된다(본드가 M을 호칭할 때 쓰는 ‘ma’am’이라는 표현은 영국식 발음 때문에 때로는 ‘mom’처럼 들린다. M이라는 이니셜은 또 어떤가). 본드 역시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M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조직의 이익과 본드 개인의 의지가 충돌할 때면, M은 여지없이 조직의 편을 든다(물론 그 역시 로봇은 아니므로 고심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본드와 M의 애증관계 역시 크레이그 본드 시리즈를 흥미롭게 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본드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극적 장치로 훌륭하게 기능한다.

그리고 이렇게 편을 거듭하면서 축적해 왔던 모든 것이 신작 <스카이폴>에서 한꺼번에 폭발한다. 본드는 도입부에서 상징적인 ‘죽음’을 맞고, 혹독한 ‘부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배후에는 M이 범할 수밖에 없었던 ‘원죄’가 있고 본드 역시 그 손아귀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에 맞서기 위해, 부활한 본드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어떤 지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대단원이 연출되는 것이다. <스카이폴>은 21세기라는 지금 이 순간, 제임스 본드가 왜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5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견뎌 온 이 시리즈가 어떻게 미래를 도모할 것인지를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게 보여준 영화이다. 크레이그는 <스카이폴>에서 자신만의 본드 이미지를 집대성한다. 투박한 얼굴에 금발인 제임스 본드. 상처 받고 절망하지만, 결국은 다시 단단해져 적을 찢어발기고 포효하는 수컷. 크레이그의 본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응축된 채 동시에 한 인물을 관통하는 어떤 흐름 그 자체가 된다. <스카이폴>이 끝나고 엔드 크레딧이 오르기 전, 007 테마곡이 극장 안을 가득 채우면서 50주년 기념 로고와 함께 ‘James Bond Will Return(제임스 본드는 돌아올 것이다)’이라는 약속의 메시지가 뜨는 순간, 그 순간의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크레이그 본드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겟 스마트] (2008)

(C) Warner Bros.
(C) Warner Bros.

첩보기관 ‘컨트롤’의 정보분석가 맥스웰 스마트(스티브 카렐 분)는 현장 요원을 지망하지만, 상관은 그의 분석 능력을 아껴 계속 내근으로 돌린다. 그러나 적 조직인 ‘카오스’가 컨트롤의 지하 기지를 습격하여 쑥대밭을 만들고 요원들의 정보를 훔쳐 공개해 버린다. 이에 신분이 노출되지 않았던 맥스웰이 현장 요원으로 차출되고, 성형수술로 신분을 감춘 베테랑 요원 99(앤 해서웨이 분)와 한 팀이 된다. 카오스는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콘서트장에 핵폭탄을 설치하고, 맥스웰과 요원 99는 테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겟 스마트>(Get Smart)라는 TV 시리즈가 있다는 건 16년 전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알았다. 당시 구독하던 [뉴스위크] 한국어판에 미래 기술을 예측한 대중문화의 여러 사례가 소개되었는데, 그 가운데 <겟 스마트>의 구두 전화기 스틸이 실렸던 것이다. 정장을 차려입은 주인공 첩보원이 밑창을 뜯어내어 기계 장치가 들여다보이는 검은 구두를 귀에 대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원작 TV 시리즈를 본 적은 없지만, 그 기묘한 부조화가 이끌어내는 우스꽝스러움은 알고 보니 <겟 스마트>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 새로이 만들어진 극장판 <겟 스마트>가 딱 그랬기 때문이다.

2008년판 <겟 스마트>를 감상하기 위해 원작 TV 시리즈를 줄줄 꿰고 있을 필요는 없다(가능하다면 당연히 그랬겠지만!).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딱딱한 권위와 첩보 영화의 규칙을 무너뜨릴 때 발생하는 웃음을 이해할 만한 감각만 있으면 누구든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 영화는 최근의 많은 리메이크나 시리즈 신작의 경향에 따라 주인공의 탄생 과정을 그렸다(프로듀서 찰스 로븐은 같은 컨셉트의 <배트맨 비긴즈>를 제작했으며, 이 영화에 한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다). 도입부 로비 장면에 나오는 전시된 자동차와 양복, 구두 전화 등이 예전 TV 시리즈의 소품이었고 나중에 뭔가 역할을 할 거라는 건 직감으로 알 수 있다. 굳이 사전 지식을 갖춰야 한다면 그 정도로 족하다.

러시아 시퀀스에서 전개가 조금 늘어지고, 유머가 먹히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앞뒤를 딱 맞춘 설정은 관객을 여러 차례 뒤집어지게 한다. 스티브 카렐은 정색을 하고 농담을 할 때 가장 웃기고, 주변 캐릭터의 묘사도 간결하지만 분위기를 이끄는 데 효과적이다. 빌 머리의 카메오는 최고다. 액션의 강도가 의외로 높아 스릴 넘치는 대목도 적지 않다. 다만, 화살이나 스테이플러가 얼굴에 박히는 등 종종 웃음을 싹 가시게 하는 냉혹한 묘사도 있다. 어쩌면 그러한 표현 수위의 간극이나 충돌조차 이 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텐데, 받아들일 것인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취향에 달렸다. 그렇다고 <겟 스마트>가 수준급의 오락영화라는 사실까지 바뀌지는 않으니 안심하시라.

원제: Get Smart
감독: 피터 시걸
주연: 스티브 카렐, 앤 해서웨이, 드웨인 존슨, 앨런 아킨, 테렌스 스탬프
북미 개봉: 2008년 6월 20일
한국 개봉: 2008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