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녀한] 부천영화제 상영 (+[괴시] 유튜브 공개 중)

(C) (주) 우진 필림

강범구 감독의 공포영화 <몽녀한>(1984)이 다음 달 제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 8일-18일)에서 상영된다.

<몽녀한>은 영화제 프로그램 가운데 스트레인지 오마쥬에 선정되어, 7월 10일 오전 11시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가 일반 공개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서 한국의 희귀 공포영화를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이다.

현역에 있는 동안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던 강범구 감독은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로 손꼽히는 <괴시>(1980)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대만 합작영화인 <몽녀한>은 도시기담, 멜로드라마 그리고 80년대 초반 한국영화로는 특기할 만한 크리처 공포영화의 요소가 포함되었다. 당시 해외에서 유행했던 장르 코드를 한국영화에 도입한 강범구 감독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 하겠다.

<괴시>는 지난 5월부터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 고전영화 유튜브 채널에 공개 중이니, <몽녀한>과 함께 감상하면 좋겠다.

또한, 괴수보호구역은 2016년 5월 강범구 감독과 만나 <몽녀한>, <괴시>를 비롯하여 감독이 관여한 합작영화에 대해 인터뷰한 바 있다. 아울러 참고하기를 권한다.

인터뷰/ [괴시], [몽녀한]의 강범구 감독 (2016년 6월 20일)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웹사이트

인터뷰/ [괴시], [몽녀한]의 강범구 감독

강범구 감독 (촬영: 홍기훈)
강범구 감독 (촬영: 홍기훈)

강범구 감독은 1950년대 촬영 스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래 <지옥화>(1958), <비정>(1959), <지평선>(1961), <슬픔은 없다>(1961), <현상 붙은 사나이>(1961) 등 10여 편의 작품에 촬영감독으로 참여했고, 1962년 <북극성>으로 감독 데뷔하였다. 이후 1988년 <칠소여복성>까지 26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기획, 각색 등의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대만, 홍콩과의 합작영화를 다수 만들었던 인연으로 중국어권 영화의 수입 업무에도 오랫동안 종사한 바 있다.

강범구 감독의 작품은 멜로드라마, 음악, 첩보, 액션, 공포, 권격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있다. 특히 한국 최초의 본격 좀비영화로 회자되는 <괴시>(1980)와 크리처-공포영화라는, 한국에선 드문 하위 장르에 속하는 <몽녀한>(1983),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의 대역을 맡았던 당룡이 주연하고 황정리가 공연한 권격영화 <사망탑>(1980) 등이 장르영화 팬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만남에서는 감독의 이력에 얽힌 여러 가지 일화와 함께 위 세 편의 영화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만났던 자리의 상황에 의하여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진 일반적인 인터뷰 형식이 아니라, 감독이 독자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 형식으로 정리하였다. 이 인터뷰는 지난 5월 17일 서울에서 이루어졌다.

 

영화에 대한 생각

영화는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감독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나 스스로 뒤떨어진다고 여겨 남들을 따라가려고, 남보다 앞서려고 노력과 공부를 많이 했고 파격도 감행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잃기도 했고… <여자 베트콩 18호>(1967) 때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를 좋아했으므로 우리 영화를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잃지 않았다.

 

옛 충무로의 일화들

– 옛날엔 모든 것이 부족했다. 감독 계약을 하게 되면 네거티브 필름 몇 자 쓰느냐를 두고 영화사 사장과 타협부터 해야 했다. 보통 2~3만자를 썼다. 필름을 아끼느라 카메라에 장착할 때 저절로 감기는 부분도 2~3프레임씩이나마 되감아 악착같이 절약했다. 그러니 NG가 최대의 공포였다. 도중에 제작비가 떨어져 찍은 분량만으로 마무리할 때도 있었고… 당연히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다.

– 해외 수출 때는 원본 네거티브 필름으로부터 복사본(듀프 네거)을 만들어 그걸 보내야 한다. 하지만 필름 복사 비용이 너무 비싸서 원본 필름을 빌려주거나 그냥 보냈다. 그러다가 돌려받지 못할 때도 많았고… 그렇게 유실된 작품이 많다. 설사 복사본을 만든다 해도 원본을 보관할 여력이 없었다.

– 동아수출공사 기획실장으로 있던 70년대 일인데, 당시 친했던 정소영 감독이 <애수의 샌프란시스코>(1975)라는 대본을 가져와서 미국 현지 촬영을 하게 되었다. 당시는 해외여행이 허가제였고 외화 관리도 엄격하여 제작비로 2만 달러만 갖고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조수 하나 두고 촬영을 진행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런데 도중에 회사에서 기왕 어렵사리 해외에 나간 김에 영화 한 편을 더 찍어 오라길래, 김기영 감독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새 대본을 받아 왔다. 사실 대본의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줄거리만 적힌 것이었다. 그래서 대강의 스토리만 어찌어찌 담아 귀국 후 연결하여 완성했다.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때 사정은 또 달랐으니까. 그 영화가 <황혼의 만하탄>(1974)이었다.

강범구 감독은 과거 해외 출장 시 맥도널드에 익숙해져, 이번 만남도 맥도널드에서 가졌다. (촬영: 박상규)
강범구 감독은 과거 해외 출장 시 맥도널드에 익숙해져, 이번 만남도 맥도널드에서 가졌다. (촬영: 박상규)

– <황혼의 만하탄> 때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 올라가 촬영을 했는데, 엘리베이터를 도중에 갈아타야 할 정도로 높았다. 전망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다, 갑자기 빌딩 관계자가 불러세워 가슴이 철렁했다. 뭐 압수라도 당하나 싶었던 거다. 그런데 입장권을 다 내놓으라길래 줬더니 오히려 입장료를 돌려 줘서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영화 촬영으로 뉴욕 관광에 도움을 줘서 입장료를 면제해 준 거였다. 공식적으로는 이 영화의 촬영감독이 이성춘으로 되어 있으나, 사실은 감독 겸 기획자였던 내가 직접 촬영하였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였다.

– 연출작 가운데 지금 원본을 볼 수 없는 것으로는 <유랑극장>(1963)이 제일 아쉽다. 영화를 위해 노래를 9~10곡 정도 지었는데 박춘석 작곡가 작품이다. “바닷가에서” 같은 노래는 상당히 유행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조긍하 감독의 <아까시아 꽃잎 필 때>(1963)와 경쟁했다. 그땐 조긍하 감독 작품이 더 유명했다. 극장을 잡고 개봉일에 맞추느라 며칠 밤을 새며 만들었는데, 노래 부르는 긴 장면은 편집을 제대로 못 한 것이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순수하게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작품이기도 해서 애착이 많다. 내 영화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소만국경>(1964), 합작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때로선 감각이 상당히 앞섰던 작품으로 자평하는 <국제암살단>(1971)도 기억에 남는다. <칼맑스의 제자들>(1968) 같은 것은 중급 이상의 규모였는데, 강가에 폭탄을 묻어 놓고 진짜로 폭파시켜 가며 찍었다. 그때 조감독이었던 정진우 감독이 총을 잘 쏘는 걸로 유명했다. 알다시피 당시엔 영화 촬영에도 실탄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 배우들 중에서는 황해와 가장 가까웠고 작업도 많이 했다.

 

합작영화로 시작된 중화권과의 인연

– 60년대에는 첫 합작영화에 참여했기 때문인지 대만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졌다. 당시 우리 영화 정책 목표에 외화 확보가 포함되기도 했고, 영화인들에게 일자리를 많이 주려고 애썼다. 우리는 우리 대로 어떻게든 일을 따내어 먹고살아야 했으므로 해외 합작은 좋은 기회였다. 우리 배우나 감독들이 초청 받아 대만에 갔고, 나유 감독(이소룡이 주연한 <당산대형>, <정무문>으로 유명) 등 그쪽 인맥을 알게 되었다. 고인하 씨 같은 경우 <탈출명령>(1966) 합작을 계기로 만났는데 지금도 돈독한 관계다.

– 대만은 국민당이 직접 경영하는 중앙영화사가 있는 국영 체제였는데, <오리를 기르는 집> 같은 수작을 다수 만들어 냈다. 그들도 흥행이 잘되는 한국에 신세를 진 셈이다. 어디서든 진실하게 사업을 하면 아무 탈이 없다. 욕심을 더 부리거나 잔꾀를 부리니까 곤란해지는 거다.

– 대만과 가까운 홍콩과도 합작을 했다. 쇼 브라더스의 런 런 쇼도 한국을 좋아했다. 이한상 감독(대표작 1960년판 <천녀유혼>, <강산미인>, <양산박과 축영대> 등)과는 합동영화사와 합작할 때 알게 되었는데, 나중에 연출작인 <서태후>(1981)의 수입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은 동남아권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본영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시기였지만, 아무래도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남아권에서는 일본에 대한 감정이 나쁜 편이었다. 한국영화가 진출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 홍콩에서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신상옥 감독 납북 당시에도 홍콩에 체류 중이었다. 최은희 씨는 내가 정창화 감독, 신위균 씨, 남석훈 씨 등과 함께 대접 약속을 했는데, 식사가 차려지고 나서도 나타나지 않아 이상했다. 알고 보니 북한에 납치된 것이었다. 참 섬뜩한 이야기다.

(촬영: 박상규)
(촬영: 박상규)

 

연출 중단 후 이야기

– 영화 만드는 일을 중단한 계기는 자신이 없어져서였다. 외국에 자주 나가다 보니 이렇게 만들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랫동안 공백기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영화 수입에 종사하면서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돌아다니는 등 열심히 활동했다. 영화 수입 일로 한 달에 절반은 홍콩에서 보내곤 했다. 동아수출공사, 우진 필림, 황기성사단 등과 가까웠는데 동아수출공사의 경우 홍콩 골든 하베스트와 돈독한 관계여서 많은 작품을 들여왔다. 계기는 내가 이소룡의 <정무문>(1972)을 본 뒤, 그 다음 작품인 <맹룡과강>(1972)을 국내에 소개하면서이다. 그 일로 동아수출공사와 골든 하베스트가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수입 일은 영화계에 대기업이 진출한 15년쯤 전까지 계속했다.

– 요즘 한국영화를 다 보진 못 하지만 종종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볼 기회가 있다. 최근에 본 작품은 <귀향>(2015)이다. 아끼는 후배가 따로 있진 않다. 다들 잘 만드니까. 여러 여건이 잘 맞기도 하지만 우리 때보다 확실히 영화를 잘 만든다. 비용도 더 많이 들이고.

 

<괴시>에 대하여

– 홍콩에서 이탈리아영화(주: <잠든 시체를 그대로 두어라> Let Sleeping Corpses Lie / 1974년 공개된 이탈리아-스페인 합작 좀비영화)를 보고 나름대로 한국 상황을 반영하여 만든 작품이다. 국제 저작권 협약이 적용되지 않았던 당시의 관행이었다지만 남의 것을 갖다 한 건 맞고, 내가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안개 낀 거리>(1963)도 일본 작품을 참고한 것이다. 당시엔 홈 비디오도 없었고 기록 수단도 부족하다 보니 극장에서 참고할 만한 영화를 보면서 커트 분할이나 대사 같은 것들을 받아 적거나 아예 외우기도 했다.

– 이 영화의 주제는 과학의 발달이 가져올 수 있는 인간에 대한 해악이다. 각색 과정에서 병충해 방지를 위해 초음파를 사용한다는 등 한국의 실정에 맞는 설정으로 바꾸었다. 검열이 심해 유혈 장면을 여럿 삭제해야 했다.

– 합작영화 제작 경험을 살려 중국 배우들을 일부 캐스팅하였다.

– 야외 촬영은 대부분 광릉에서 이루어졌다. 수풀이 우거진 곳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광릉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주: 극중 배경은 강원도). 실내 촬영은 어디서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 미아리, 신설동 등 서울 여러 곳에 세트장이 있었다.

– 흥행은 잘 되지 않았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도 않았고, 여러 모로 극장에 걸기 쉬운 영화는 아니었다.

<괴시> (컬러 / 85분 / 1980년 4월 10일 공개)
주연: 유광옥, 강명, 박암, 왕옥환, 홍윤정

(C) 한림영화 (주)
(C) 한림영화 (주)

강원도 산골에서 병충해를 막기 위한 초음파 방출 실험이 실시된다. 그러나 실험의 부작용으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들이 되살아나 닥치는 대로 마을 사람들을 습격하기 시작한다. 세미나 참석차 한국에 온 중국인 강명, 그와 우연히 만난 수지, 그리고 수지의 자매 부부 등이 사건에 휘말리고, 희생자는 점점 늘어만 간다.

흔히 한국 최초의 좀비영화로 손꼽히는데, 이에 대한 검증은 잠시 미루어 두고 작품 자체만 본다면 조지 A. 로메로가 창시한 현대 좀비영화의 작법을 충실히 답습한 현지화 버전이라 할 만하다. 이 영화가 나왔던 80년대 초반에는 특수효과의 발달로 경천동지할 유혈 묘사가 경쟁적으로 터져나왔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해외의 상황. 대신 <괴시>에는 검열의 제한을 피하여 유혈묘사 대신 분위기와 극중 상황으로 공포와 불안감을 조성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좀 더 스타일리쉬했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정통 좀비영화의 흥취를 머금은 한국영화라는 점에서 여전히 그 매력을 잃지 않는 작품이다.

 

<몽녀한>에 대하여

– 소재가 괜찮아 보여 만들게 된 영화이다. 마침 괴기영화가 유행이기도 하여, 흥행성이 있거나 적은 제작비로 만들 수 있는 소재라면 기꺼이 선택했다. 한 편이라도 더 팔아야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

– 촬영은 한국과 대만에서 골고루 진행되었다.

– 각색은 주동운 작가가 맡았는데, 현대를 무대로 고전적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기조는 중국 측에서 낸 아이디어이다.

– 괴수 수트는 중국에서 제작했다. 수트 액터는 상황에 따라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 기용했다.

– 합작 영화라는 특성 상 한국과 대만 양국 배우들은 각자 서로의 언어로 대사를 했다. 이를 나중에 한국어로 더빙한 것이다.

<몽녀한> (컬러 / 90분 / 1984년 8월 18일 공개)
주연: 문태선, 첸리윈, 국정숙, 추이소핑, 문미봉

(C) (주) 우진 필림
(C) (주) 우진 필림

잔혹한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여 도시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는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들리는 기묘한 피리 소리, 그리고 그때마다 사라지는 기자 이옥정. 옥정과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 고강영은 이 두 가지 정황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공포영화의 전성기였던 80년대 초반 선보인 <몽녀한>은 한국과 대만의 합작영화. 멜로드라마를 가미한 크리처-공포영화로서도 흥미롭고, 도회를 무대로 한 기담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뱀 괴물의 모습은 그야말로 특촬 수트를 보는 듯하지만, 당시의 관점으로는 꽤나 존재감 있는 크리처로서 인상을 남기지 않았나 싶다.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분야를 탐색했던 작품이다.

 

<사망탑>에 대하여

– 액션 장르에서 한국영화와 홍콩영화의 차이라면, 한국영화는 6. 25의 영향이 있어서인지 총격, 권격 위주로 좀 더 현대적인 인상이다. 반면, 홍콩영화는 쇼 브라더스의 왕우가 나오는 칼싸움 액션영화의 예로 알 수 있듯 고전적인 인상이다.

– 극중 공작새를 부리는 장면이나 사자가 나오는 사파리 장면 등은 홍콩에서 촬영했다. 홍콩 측의 오서원 감독이 그런 볼거리를 동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리 잘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망탑> (컬러 / 75분 / 1980년 3월 1일 공개)
주연: 당룡, 황정리, 원화평, 진요림, 원진위

(C) 동아수출공사
(C) 동아수출공사

사형 진길용을 방문하려던 무도가 김태중은 길용이 불귀의 객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장례 도중 어떤 세력이 길용의 시신을 훔쳐가자 태중은 그 뒤를 쫓아 길용의 죽음과 관련된 음모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주연 당룡은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에 이소룡의 대역으로 출연한 바 있고, 이어 <사망유희>의 속편격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도 대역 겸 이소룡의 동생 역을 맡았다. 국가 별로 다수의 편집본이 존재해서인지 이 한국 공개판도 컨티뉴이티가 엉성하고 완성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 이소룡식 권격영화의 개성 없는 아류작에 속하지만, 한국 액션영화의 계보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한번쯤 짚고 넘어갈 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마치며

1924년생인 강범구 감독은 올해 93세의 고령이지만 못 해도 20년 이상은 젊어 보일 만큼 매우 정정하였다. 시종일관 진솔하고 겸손하였고 지금은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딱 부러지게 인정하는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과거 잦은 해외 출장으로 익숙해진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시켜 놓고 활기 있게 이야기를 이어 가는 90대 노감독의 모습은 쉽게 잊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이번 인터뷰는 일종의 예고편이다. 강범구 감독과 만난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었으므로… 읽으면서 특히 <괴시>와 <몽녀한>에 대한 내용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다면, 조만간 다른 지면을 통해 강범구 감독과 다시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기회에 대해서는 따로 알리도록 하겠다.

인터뷰를 도와 주신 분들
박지환 씨
홍기훈 씨 (빅 몬스터 클럽)
박상규 씨 (빅 몬스터 클럽)

[수퍼 8] (2011)

(C) Paramount Pictures
(C) Paramount Pictures

가정해 본다. <수퍼 8>(Super 8)는 J. J. 에이브럼스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고. 1966년생인 에이브럼스는 영화의 시대배경인 1979년 우리나라 나이로 14살이었을 것이고, 이는 영화의 주인공 조 일행의 나이와 얼추 맞아떨어진다. 에이브럼스를 비롯한 또래들은 유년기에 TV에서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과 <심해 괴물>(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을 보며 공포와 매혹이 거칠게 뒤섞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동네 재개봉 극장에서 팝콘을 집어먹으며 <살아 있는 시체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을 보았을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옹기종기 모여 만화책을 읽고, 손가락에 접착제와 에나멜을 잔뜩 묻혀가며 조립식 모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스타 워즈>(Star Wars)와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를 보았을 때, 그 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경이로움과 흥분을 맛보며 스크린을 눈으로 뚫어버리기라도 할 듯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집에 한 대씩은 있었을 수퍼 8mm 카메라를 들고 널따란 교외 지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자신들이 흠뻑 섭취했던 문화 자양분을 바탕으로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그들의 꿈자락(당시엔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지언정)을 하나씩 하나씩 자아냈을 것이다. 길쭉하고 빨간 젤리를 서로 나눠 먹으면서.

흔히들 ‘떡밥의 제왕’이라 일컫는 에이브럼스지만, <수퍼 8>를 보면서는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별로 기대할 필요도 없고, ‘뭐가 있나~’하고 찾아볼 것까지도 없다. 이 감동적인 영화에서 고작 슬러쇼(왜 아니겠어?)니 뭐니 하는 걸 찾으려고 눈을 부라리고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사실 그보다 훨씬 많은 이런저런 것들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들이다). 에이브럼스의 전작인 <미션 임파서블 III>와 <스타 트렉>과 같이 놓고 보았을 때, <수퍼 8>에서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눈에 띈다. 어느 쪽이나 예전에 에이브럼스를 매료시켰을 미국의 대중문화 컨텐츠를 업데이트한 작품들이지만(이는 그의 TV 시리즈들도 마찬가지다), <수퍼 8>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듯한 고백적 성격이 더 강하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E. T.>가 한때 그랬듯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수퍼 8>는 <미지와의 조우>와 <E. T.>, 조금 더 나아가 <구니스>를 보면서 자란 세대들이라면 저절로 미소를 지을 만한 영화이다. 70년대라는 향수 어린 시대배경, 결손가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소년/소녀들이 환상적인 모험을 통해 서로, 또는 어떤 미지의 존재와 교감을 이루고 마침내 갈등을 해소하여 성장을 시작한다는 내용, 미국 대중문화의 풍부한 인용,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연출, 감각적인 시각효과 같은 것들 말이다. 말하자면 에이브럼스가 그 나이에 겪었을 법한 일상에 역시 그가 꿈꾸었을 법한 비일상적인 사건이 수퍼 8mm 카메라라는 매개체를 통해 결합한 이야기이자, 스필버그 영화를 사랑했던 세대에게 바치는 종합 선물 세트가 바로 <수퍼 8>인 것이다.

아아, 그래서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오래 전 살던 동네의 익숙한 골목길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야기가 흐르는 내내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잠시라도 지울 수가 없었다. 때로는 너무나도 즐거워서, 그럴 때마다 극장에서 주위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행동, 즉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기도 했다. 시작하면서 파라마운트 로고에 이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로고, 군데군데 존 윌리엄스나 제리 골드스미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마이클 지아키노의 음악, 역광을 활용하여 독특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스필버그의 전매특허격 연출을 변용한 화면, 그리고 비록 영화 속에서만 만날 수 있지만 나의 어린 시절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 아이들. 그 아이들이 무비 카메라를 들고 좀비 영화를 찍으며 주고받는 이야기들, 그 속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작지만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꿈. <수퍼 8>에는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바로 그 추억과 열정, 꿈이라는 요소에 이끌렸다. 에이브럼스가 이 영화를 만든 건 떡밥 따위가 아니라 바로 그것을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스크린 속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그 아이들을 보며 나는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어쩌면 아직 피어나지 못한 채로, 그 시절 그대로인 채로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영화 속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와 공명하며 마음 속에 약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남겼다. 무엇일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아직도 가슴 속을 울리고 있는 그 무언가의 모습을 찾으러 나만의 작지만 담대한 모험을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원제: Super 8
감독: J. J. 에이브럼스
주연: 조얼 커트니, 엘 패닝, 카일 챈들러, 라일리 그리피스, 라이언 리
북미 개봉: 2011년 6월 10일
한국 개봉: 2011년 6월 16일

[페이션트 X] (2009)

(C) GMA Films, Viva Films, RGUTZ Productions
(C) GMA Films, Viva Films, RGUTZ Productions

필리핀의 설화에 등장하는 악귀 아스왕(Aswang)을 소재로 한 이색 공포영화이다. 아스왕에는 다양한 기원이나 묘사가 있지만, 시체나 태아를 뜯어먹고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주된 특징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뱀파이어와 좀비의 특성을 조금씩 합쳐 놓은 듯한 모습이며,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는 현대적인 설정도 가미되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의사인 루카스. 어린 시절 자신의 보모인 구아다의 가족에 의해 형을 비롯한 일가를 잃은 그는 어느 날 용의자로 붙잡힌 구아다를 다시 만나 사건에 얽힌 충격적인 내막을 알게 된다. 구아다는 물론 그의 가족이 모두 아스왕이었던 것. 구아다는 루카스의 가족을 직접 살해하지는 않았지만 원인을 제공한 데 대한 죄의식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원망에 불타던 루카스는 구아다의 남편 마커스가 이끄는 호전적인 아스왕 일행의 습격을 받고, 전기충격으로도 불로도 총으로도 죽일 수 없는 아스왕의 퇴치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구아다임을 깨닫게 된다.

자국의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의도는 훌륭하지만, 이야기가 본궤도에 오르기까지의 예열 시간이 더디 흐르고 유혈이나 액션 묘사의 알싸한 맛이 좀 부족한 것이 흠이다. 감독, 제작, 촬영감독 등을 겸한 얌 라라나스는 호평을 받았던 2004년 공포영화 <에코>와 이를 직접 다시 만든 같은 제목의 영어판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원제: Patient X
감독: 얌 라라나스
주연: 리처드 구티에레즈, 크리스틴 레이예스, TJ 트리니다드, 미리암 퀴암바오, 난딩 조셉
필리핀 개봉: 2009년 10월 28일

* 2010년 7월 15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카탈로그 게재용으로 기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