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호 특촬영화 블루레이 신작 발매 정보

엊그제 헤이세이 모스라 3부작의 블루레이가 11월 3일 발매된다는 소식을 전한 바 있는데, 같은 날 토호 특촬영화 블루레이 2편이 함께 나온다.

<프랑켄슈타인 대 바라곤> (1965)
フランケンシュタイン対地底怪獣

(C) Toho Co., Ltd.

60년대 특촬 괴수영화의 개가로 손꼽히는 ‘토호 프랑켄슈타인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프랑켄슈타인 대 바라곤>을 드디어 블루레이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서 얻은 착상을 일본식 괴수영화에 접목하여 공포와 비극을 강조한 이색작. 당대 최고 수준의 특촬 영상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인기 괴수 바라곤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자매편에 해당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수 산다 대 가이라>(1966)는 2010년 1월 앞서 블루레이로 발매된 바 있다.

영상: 컬러 / 2.35:1 화면비 / 1,080p
음성: (1) 일본어 DTS-HD MA 모노 (2) 일본어 2001년 리믹스 DTS-HD MA 5.1 (3) BGM 트랙 DTS-HD MA 모노
자막: 일본어
디스크: BD25G 1장
상영시간: 94분

부록
– 음성해설 (배우 쿠보 아키라)
– 예고편 (HD)
– 티저 예고편 (HD)
– 미사용 특촬 컷 (SD)
– 해외판 추가 장면 (SD)
– 결말이 다른 본편 (HD)
– 츠부라야 에이지 감독의 촬영 대본 (HD)*
*는 블루레이에 새로 추가되는 부록.

히로시마에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소년. 성장함에 따라 거대해져 가는 소년의 수수께끼!
연구시설을 빠져나온 소년의 앞을 땅속에서 나타난 흉폭한 괴수가 막아섰다!

태평양전쟁 말기, 독일에서 잠수함으로 운반해 온 불사신의 심장. 히로시마에서 발견된, 성장과 함께 거대화하는 소년은 그 심장이 자라난 것일까? 그러나 소년은 자기 손을 잘라 연구시설을 탈출하고 만다. 먹을 것을 찾아 북상하는 소년. 그 즈음 아키타 유전의 지저에서 거대 육식 괴수가 출현한다. 불사신의 괴인과 흉폭한 괴수, 그 끝없는 사투의 승자는 누구인가!

감독: 혼다 이시로
특기감독: 츠부라야 에이지
각본: 마부치 카오루
음악: 이후쿠베 아키라
주연: 타카시마 타다오, 미즈노 쿠미, 츠치야 요시오, 사하라 켄지, 타자키 쥰, 후지타 스스무, 닉 애덤즈

<마탕고> (1963)
マタンゴ

(C) Toho Co., Ltd.

특촬 공포영화의 걸작 <마탕고>도 이번에 처음으로 블루레이 발매된다. 윌리엄 H. 호즈슨의 공포소설 [한밤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일본 과학소설계의 명편집자였던 후쿠시마 마사미가 번안 및 각색에 참여한 작품.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군상의 처절한 묘사, <고지라>와는 다른 방식으로 원폭의 잔향을 담아낸 영상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영상: 컬러 / 2.35:1 화면비 / 1,080p
음성: 일본어 DTS-HD MA 모노
자막: 일본어
디스크: BD25G 1장
상영시간: 89분

부록
– 음성해설 (주연 배우 쿠보 아키라)
– 예고편 (HD)
– <마탕고>의 특수효과에 대하여 (SD)
– 후쿠시마 마사미의 세계 (SD)
– 제작 노트 (정지 화상)
– <마탕고> 환상의 제작 과정 영상 (HD)*
*는 블루레이에 새로 추가되는 부록.

안개에 떠 있는 제3의 생물! 인간을 습격하는 마탕고!
피를 얼어붙게 하는 공포영화의 결정판!

요트를 타고 대양으로 나간 7명의 남녀. 그러나 갑자기 폭풍을 만난 요트는 먼바다의 외딴섬에 표착하고 만다. 물과 음식을 찾아 섬을 탐색하는 일행은 섬 반대편 만에서 난파선을 발견한다. 하지만 승무원은 모두 행방불명에 선내에는 약간의 통조림과 ‘마탕고’라고 표시된 의문의 버섯 표본만 있을 뿐이었고, 어째서인지 선내의 거울이 모조리 깨져 있었다. 이 섬에는 대체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이윽고 음식이 바닥나자, 일행은 불신감과 욕망을 드러내며 내분에 휩싸인다. 절망적인 굶주림 속에서 그들은 금지된 버섯을 차례로 입에 대는데…

감독: 혼다 이시로
특기감독: 츠부라야 에이지
각본: 키무라 타케시
원작: 후쿠시마 마사미
원안: 호시 신이치
음악: 벳쿠 사다오
주연: 쿠보 아키라, 사하라 켄지, 타치카와 히로시, 츠치야 요시오, 코이즈미 히로시, 미즈노 쿠미, 야시로 미키

그리고 특촬 괴수영화는 아니지만, <신 고지라>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던 오카모토 키하치 감독의 전쟁영화 2편도 같은 날 블루레이로 발매된다. 오카모토 감독의 열렬한 팬인 안노 감독은 여러 편의 연출작에 오카모토 감독 작품을 인용한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이 2편은 <신 고지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격동의 쇼와사 오키나와 결전> (1971)
激動の昭和史 沖縄決戦

(C) Toho Co., Ltd.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투 중 하나인 오키나와 전투를 군, 민 양쪽의 시각에서 냉혹할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이다. 이미 군으로서의 존재 의미를 상실한 대본영의 지리멸렬한 모습, 패색이 짙은 가운데 군인과 민간인 가릴 것 없이 허망하게 죽어 가는 전장의 참상이 소름끼치도록 건조하게 이어진다.

영상: 컬러 / 2.35:1 화면비 / 1,080p
음성: 일본어 DTS-HD MA 모노
자막: 일본어
디스크: BD25G 1장
상영시간: 149분

부록
– 예고편 (HD)
– 오카모토 키하치 <오키나와 결전>을 말하다 (SD)
– <오키나와 결전>으로 보는 오키나와 전투의 역사 (정지 화상)
– 촬영 현장 풍경 (HD)*
*는 블루레이에 새로 추가되는 부록.

대본영은 오키나와를 버릴 것인가!?
피투성이의 전장을 압도적인 박력으로 영상화!

태평양전쟁 말기, 압도적인 물량으로 일본을 궁지에 몰아넣던 미국은 드디어 오키나와를 향해 창끝을 겨누었다. 강대한 미군에 맞서 싸우고자 수비를 굳건히 하는 오키나와 수비대. 그러나 본토 결전을 위해 오키나와를 버린 돌 취급하는 대본영은 최정예부대를 오키나와에서 철수시킨다. 국내 최대의 결전이 되었던 오키나와 전투의 전모를 귀재 오카모토 키하치 감독이 혼신의 힘으로 그려낸, 주민까지도 몰아넣었던 비참한 전투의 자초지종이 인정사정 없는 화면에 전개된다.

감독: 오카모토 키하치
각본: 신도 카네토
음악: 사토 마사루
주연: 코바야시 케이쥬, 탄바 테츠로, 나카다이 타츠야, 카야마 유조, 사카이 와카코, 오조라 마유미

<일본에서 가장 긴 날> (1967)
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

(C) Toho Co., Ltd.

이 영화는 아직 감상할 기회가 없었고, 2015년 하라다 마사토 감독이 다시 만든 버전인 <일본 패망 하루 전>을 본 적이 있다. 히로히토 천황이 태평양전쟁 항복 선언을 결정한 8월 14일 정오부터 이튿날인 15일 정오 항복 선언(옥음방송)을 낼 때까지, 긴박한 상황이 거듭되었던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그렸다. 원작은 오야 소이치*의 동명 넌픽션.

*원작의 실제 저자는 한도 카즈토시. 1965년 첫 출간시에는 오야 소이치 명의로 나왔고, 1995년 재판시 원저자 명의로 표기되었다.

영상: 컬러 / 2.35:1 화면비 / 1,080p
음성: (1) 일본어 DTS-HD MA 모노 (2) 일본어 2005년 리믹스 DTS-HD MA 5.1
자막: 일본어
디스크: BD50G 1장
상영시간: 157분

부록
– 예고편 (HD)
– 촬영 여담 (정지 화상)*
– 그날은 이리하여 재현되었다 (정지 화상)*
– 오카모토 키하치 감독의 그림 콘티 (동영상)*
*는 블루레이에 새로 추가되는 부록.

쇼와 20년(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 종결의 순간까지 이르는 24시간을 그린다!

쇼와 20년(1945년) 8월 14일 정오. 이야기는 황거 내 어전회의에서 시작된다. 포츠담 선언 수락을 둘러싼 육군성과 정부의 격론, 대립. 자결을 각오한 아나미 육군대신. 옥음방송 준비에 고심하는 NHK와 궁내성. 철저 항전을 주장하는 청년 장교들의 옥음반 탈환 작전, 반란군의 수상관저 습격… 그리고 이튿날 15일 정오, 옥음방송. 전후 일본인의 출발점이 된 파란과 격동의 하루를 오카모토 키하치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그려낸 박진감 넘치는 전쟁 드라마 거편!

감독: 오카모토 키하치
각본: 하시모토 시노부
음악: 사토 마사루
원작: 오야 소이치
주연: 미후네 토시로, 야마모토 소, 시무라 타카시, 카야마 유조, 마츠모토 코시로

가격은 각 5,076엔(소비세 8% 포함가)이다.

출처: 아마존 일본 (프랑켄슈타인 대 바라곤, 마탕고, 격동의 쇼와사 오키나와 결전, 일본에서 가장 긴 날)

인터뷰/ 일본 특촬영화의 명배우, [고지라]의 타카라다 아키라

타카라다 아키라 (사진 제공: 타카라다 기획)

1954년 공개된 괴수영화의 기념비적인 걸작이자, 킹콩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괴수 캐릭터를 세상에 내놓았던 작품이 바로 <고지라>(ゴジラ)이다. 이 영화가 ‘특촬(特撮)’이라는 일본의 독특한 영상 장르를 부흥시키면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흐름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타카라다 아키라(宝田明) 씨는 <고지라>와 거의 동시기에 데뷔하여 2016년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배우이다. 그는 나루세 미키오, 이나가키 히로시, 오즈 야스지로, 이타미 쥬조, 키타노 타케시 등 당대의 유명 감독들과 작업하였으며, TV 드라마와 버라이어티,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2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였다.

또한 특촬 괴수영화의 팬들에게는 영원한 고전 <고지라>의 주연이자, 이후 일세를 풍미한 토호 특촬영화의 간판 스타로도 친숙하다. <모스라 대 고지라>, <세계대전쟁>, <괴수대전쟁>, <킹콩의 역습>, <위도 제로 대작전>, <고지라 VS 모스라>, <고지라: 파이널 워즈> 등 출연작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팬들은 그의 명성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런 타카라다 씨가 최근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2015년 12월 20일부터 오는 3월 6일까지 서울과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감독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을 위해서이다. 아울러 타카라다 씨는 지난 2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자신의 출연작 세 편을 한국 관객들에게 직접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위해 특별 상영작인 <고지라>, <세계대전쟁>, <두 아들>을 직접 고르기도 했다.

괴수보호구역은 일본 특촬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명배우 타카라다 아키라 씨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아래는 그 기록이다.

 

괴수보호구역/ 먼저, 어제(*1 한국 관객들과 두 차례에 걸쳐 만남을 가지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1: 이 인터뷰는 2월 21일 이루어졌다. 타카라다 씨와 한국 관객들의 첫 만남인 <딸, 아내, 엄마>와 <방랑기> 상영 및 토크 이벤트는 전날인 2월 20일이었다.

 

타카라다 아키라/ 관객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루세 감독님의 작품 두 편을 다 보신 분들도 계셨고, 작품은 물론 감독님에 대해서도 매우 상세히 알고 계셨습니다. 나루세 감독님께서 생존해 계셨다면, 당신의 작품이 이렇게 한국에서 상영되며 관객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기뻐하셨을 겁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괴수보호구역/ 이번 영화제 특별 상영작으로 <고지라>와 <세계대전쟁>을 비롯한 세 편의 영화를 직접 고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카라다 아키라/ 이왕 특별전에 참여하는 김에, 나루세 감독님 작품 뿐만 아니라 저의 대표작인 <고지라>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62년 전인 1954년 토호에서 제작되었는데, 제게는 세 번째 출연작이자 첫 주연작이기도 하지요. 이후로도 50년 동안 시리즈로 이어지며 토호의 달러 박스로서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지라 자신도 이렇게 히어로로서 지지를 받게 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감회가 새로워지는 작품이로군요.

 

괴수보호구역/ <고지라>에서 함께 연기하셨던 코우치 모모코 씨와 히라타 아키히코 씨와는 다른 여러 작품에서도 공연하셨습니다. 지금은 그리운 이름이 되신 이 두 분과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는지요?

 

타카라다 아키라/ 코우치 모모코 씨는 1953년 토호 뉴 페이스 동기생이었습니다. 토호 뉴 페이스는 1기생 미후네 토시로 씨로 시작되어 여러 대스타를 배출했던 시스템이지요. 코우치 씨와는 6기생으로 함께 입사하여 촬영소에서 1년 동안 연기 연구생 동료로 지냈습니다. <고지라>를 같이 하게 되어 매우 편안한 마음으로 촬영할 수 있었어요. 히라타 아키히코 씨는 한 기수 선배님이셨는데, 최고 학부를 졸업하신 우수한 분으로서 영화의 길을 택하신 경우입니다. 출연자 대부분이 가깝게 지냈던 분들이라 마음 편히 촬영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무엇보다도 기뻤던 것은 <7인의 사무라이>에 출연하셨던 시무라 타카시 씨(<고지라>에서는 야마네 쿄헤이 박사 역)와 함께 연기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들과 함께했던 작품이 <고지라>였습니다.

 

괴수보호구역/ 앞서 배우 중심으로 <고지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작품을 연출하신 혼다 이시로 감독님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고지라> 이외에도 다수의 작품을 함께 만드셨는데, 타카라다 선생님께서 보신 혼다 감독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에는 그다지 잘 알려진 감독님이 아니기도 하셔서(이 대목에서 타카라다 씨는 ‘음, 과연 그렇겠군요.’ 라고 말했다), 이분에 대한 선생님의 추억도 들어 보고 싶습니다.

 

타카라다 아키라/ 혼다 감독님께서 토호에 입사하셨을 당시, 동기생으로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님이 계셨지요. 저는 혼다 감독님과 괴수영화 말고도 <내 가슴속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는다> 등을 함께했습니다만, <고지라>를 맡으셨을 때는 그분도 고민이 많았을 겁니다. 책임감도 굉장히 무거웠을 테고요. 혼다 감독님께도 괴수영화는 처음 경험하는 거라서 말이죠. 토호라는 회사 입장에서도 과연 이 영화가 히트할 것이냐, 그렇지 못할 것이냐 예측하기 어려운 도박이었을 겁니다. 영화 산업 자체에 그런 측면이 있긴 합니다만, 첫 번째 작품이 성공하지 못 했다면 두 번째는 만들어지지 않았겠지요.

<고지라>가 개봉했던 1954년 당시 일본 총인구는 8천 8백만 명이었습니다(지금은 1억 3천만이 넘지요). 그 가운데 961만 명이라는, 지금도 상상하기 힘든 숫자의 관객을 동원하였습니다. 그것은 역시 일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핵의 위협으로 수십 만 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게 된 피폭국으로서의 경험과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또한 1954년 일본에서는 경기가 회복되면서 전후 재건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수소폭탄 실험이 실시되었죠. 이때 비키니 환초에서 조업 중이던 시즈오카 야이즈항 소속 어선인 제5 후쿠류마루가 피폭 당하면서, 일본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이후 9년 만에 세 번째로 핵의 위협에 노출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토호는 전 세계를 향해 핵 폐기를 호소하는 메시지를 발신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고지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오락적 괴수영화에 머무르지 않는, 커다란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었던 것이죠. 혼다 감독님도 전쟁터에서 생사가 오가는 경험을 하기도 하셨고, 전쟁에 대해 강한 비판 의식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감독님께선 <고지라>를 처음 맡으시면서 ‘이왕 만들 거라면 일본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영화로 하자.’ 라고 결심하셨습니다.

츠부라야 에이지 감독님은 특수촬영을, 혼다 감독님은 저희 드라마 부분을 따로따로 촬영하게 되었는데, 영상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저희 드라마 쪽에선 지금 나타난 고지라가 거대한 전신을 모두 드러낸 상태인지, 옆쪽을 바라보고 있는지, 뒤쪽을 바라보며 그리로 향하는 것인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꽤나 애먹었지요. 혼다 감독님께 ‘어떤 리액션을 보여 주면 좋을까요?’ 라고 여쭤 보아도, 감독님 역시 ‘으음… 그러게 말이야. 두 가지로 찍어 보면 어떨까? 고지라가 앞을 보고 있는 경우와 뒤를 보고 있는 경우를 둘 다 찍어 놓으면, 어느 쪽인가는 들어맞지 않을까?’ 이런 방법으로 촬영을 해 나갔습니다. 종종 츠부라야 감독님께서 그림 콘티를 들고 저희 쪽 현장에 오시는 날이면, 출연자도 스탭들도 모두 머리를 맞대고 ‘아, 고지라는 이쪽을 보고 있구나!’ 라며 서로 확인할 수 있었지요. 그렇게 그림 콘티를 애타게 기다리며 연기를 하던 상황도 있었습니다. 제1편을 만들 당시엔 그런 고생담이 많았어요.

혼다 감독님께선 항상 진지한 태도로 연출에 임하셨고, 저희는 그런 감독님의 인품에 탄복하여 경의를 품고 그분의 연출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괴수보호구역/ 매우 신사적인 분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타카라다 아키라/ (강하게 동의하며) 네, 그렇습니다! 참 조용하고 차분한 분이셨고, 현장에서 큰소리 한 번 내시거나 야단을 치거나 하신 적도 전혀 없었지요. 늘 진지하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저렇게 해 보면 어떨까 의논을 많이 하셨고, 저 역시 은사님을 뵙고 상담할 때처럼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코우치 씨도, 히라타 씨도 모두 마찬가지였죠.

 

괴수보호구역/ 지금까지 말씀을 듣고 보니 <고지라>와 <세계대전쟁>은 소재도 그렇고, 선생님의 극중 배역도 둘 다 해운과 관계되어 있다 보니 마치 형제와도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이 두 작품을 특별히 고르신 뜻을 알 것 같습니다.

 

타카라다 아키라/ 맞습니다. 두 영화 모두 핵의 위협에 대한 이야기이고, 당시가 냉전시대이기도 하여 피폭국인 일본은 핵의 절멸을 외치는 메시지를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게 던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가상의 존재인 고지라를 등장시키기도 했지만, <세계대전쟁>의 경우 일반 서민의 보편적인 가정을 다루었지요. 그들의 부자관계나 부부관계, 제 배역 입장에서는 그 가족의 딸과 맺고 있던 연인 관계 등이 핵의 위협에 따른 고민과 근심으로 변해 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지라>와 <세계대전쟁>은 공통점을 지닌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괴수보호구역/ 앞서 전쟁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여러 곳을 다니시며 반전 강연 활동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 연기 활동을 통해 느끼신 바도 있겠습니다만, 격동의 시대에 속했던 성장기 경험도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강연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와 이를 통해 강조하고 싶으신 바는 무엇인지요?

 

타카라다 아키라/ 저는 올해 82세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쯤 환갑을 맞았을 때 뭔가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구 만주국 하얼빈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전쟁으로 일본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얼빈에 소련군이 들어왔을 때는 총에 맞기도 했고, 부녀자들이 유린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에 대한 염증을 느끼며 고향에 돌아왔지요. 저는 군대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런 체험을 통해 전쟁에 대해 항상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그렇게 환갑이 될 때까지 일 쪽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인지, 내 삶을 통해 다음 세대와 어린이들에게 우리 세대가 어떤 메시지를 남겨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전쟁 반대와 핵 폐기를 위해 낼 수 있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결심으로 이어져, 일본 각지의 반전 집회나 헌법 구조 지키기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에는 히로시마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에 참가하여 강연을 하고 반전가를 함께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저희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생각에 예술 활동 이외에도 반전 운동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끝났지만, 타카라다 씨에게는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타카라다 아키라/ 음… 저는 고지라를 제 동급생, 클래스메이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동급생은 아득히 먼 저 하늘 위의 존재와도 같은, 전 세계적인 초 유명인사가 되어 버렸군요(웃음).

<고지라> 제1편이 완성된 후 촬영소에서 100여 명의 스탭과 관계자들이 모인 완성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마지막에 고지라가 백골이 되어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인간의 업이란 얼마나 강한 것인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지라는 바닷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생물(물론 가공의 것입니다만)일 따름이었지만 바다 위에서, 땅 위에서 일삼던 수폭실험의 피해자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고지라의 울음소리를 듣노라면 슬픔, 더 나아가 페이소스마저 느끼곤 합니다. 시사실에서 그런 고지라를 보던 저는 참으로 불쌍한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렸습니다. 단순한 디스트로이어(destroyer), 즉 파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점, 얼핏 악한 존재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캐릭터라는 점이 고지라가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아 온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또 한 가지. 62년 전은 컴퓨터 그래픽(CG)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고지라>는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 아날로그 작품입니다. 요즘에야 막대한 시간과 예산을 투입하여 전부 CG로 만들어 버립니다만, 그런 영상을 보면 어딘가 텅 비고 가짜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에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고지라>의 존재감 있는 흑백 영상이야말로, 인간이 올린 특수촬영의 개가가 아닐까요.

 

인터뷰를 도와 주신 분들

조영호 씨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연지미 씨 (동시통역사)
이와사키 히로아키 씨 (타카라다 기획)
홍기훈 씨 (빅 몬스터 클럽)

‘고지라’라는 괴수

(C) Toho Co., Ltd.
(C) Toho Co., Ltd.

고지라의 별명은 ‘괴수의 왕’이다. 그와 지명도를 양분하는 또 다른 괴수인 킹콩에 비해 21년이나 늦게 태어났지만, 이른바 ‘스펙’만 본다면 고지라는 킹콩을 압도하는 사상 최강의 괴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관총 세례를 맞고 숨을 거둔, 몸집만 빼면 평범한 고릴라와 다르지 않았던 콩과는 달리 고지라는 체내에 방사능을 축적한 거대한 고대생물의 돌연변이이다. 그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고 끈질기며, 사실상 불사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단시간에 토쿄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만큼 막대한 파괴력도 지녔다. 인간의 군대는 그의 간식거리도 안 되는 상대가 된 지 오래이고 수도 없이 밀려드는 적 괴수와 싸워 대부분 승리했으며, 심지어는 우주괴수들과도 호각으로 맞선다. 지구상에서, 아니, 우주의 꽤 넓은 범위 안에서 고지라를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1954년 스크린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고지라는 대표적인 시리즈 영화 주인공으로 손꼽히는 제임스 본드보다 많은 28편의 영화에 나왔고, 헐리우드에서는 두 번째 리메이크가 만들어지고 있으며(2014년 여름 개봉), 이외에도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중매체에 이식되었다. 완구를 비롯한 수천 종의 관련상품도 끊임없이 생산되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팬들의 지갑을 꾸준히 털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고지라가 영화 속뿐만 아니라 그 밖에 있는 현실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괴수의 왕임을, 당신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고지라는 2차대전 당시 일제의 홍보용 영화에 동원되었던 특수촬영 기술이 전후 영화산업의 환경에 맞춰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던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토호 영화사의 프로듀서 타나카 토모유키는 50년대 초반 일본에서 재개봉한 1933년판 <킹콩>을 보고, 괴수가 등장하는 특수촬영 영화에 대한 수요가 있음을 감지했다. 일본을 습격하는 거대 괴수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한 타나카는 이를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정교한 특수촬영 기법으로 유명했던 츠부라야 에이지,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이후 그의 조감독으로도 활약하게 되는 혼다 이시로 감독과 힘을 합쳤다. 마침내 1954년 11월 일본에서 공개된 <고지라>는 9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히트, 이후 괴수영화를 중심으로 SF, 호러, 스릴러 등의 하위 장르로 분화되는 ‘특촬’이라는 일본 특유의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1956년에는 미국인 배우를 등장시킨 장면을 삽입하여 재편집한 미국 개봉판 <괴수왕 고지라>가 공개되어 역시 흥행에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서양에도 일본 특촬영화가 꾸준히 소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고지라는 점차 인간에게 친숙해졌고, 때로는 스스로 인간의 편에 서는 캐릭터로 변모해 갔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유행의 변화와 영화계의 흥망성쇠에 좌우되는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 때문이다. 가상의 캐릭터에게 어른의 사정이란 방사능이나 재해보다 더 강력하고 두려운 것이었을 터. 고지라가 대중에게 ‘B급’이나 ‘싸구려’로 인식된 것도 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조악한 영어 더빙과 화질로 선보였던 해외 공개용 재편집판들도 작품의 제대로 된 면모를 파악하기 어렵게 해 왔다. 물론 정말로 값싸게 서둘러 만들어진 엉성한 영화들도 분명히 있지만, 대다수의 고지라 시리즈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작비가 투입되며 골든 위크나 여름방학, 정월 연휴철 등에 맞춰 관객들과 만나는 블록버스터이다.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60년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시리즈가 이어졌다는 사실은 고지라가 일본은 물론 세계 대중문화의 아이콘임을 증명한다.

고지라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나왔던 이름 모를 괴물과 몇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미군이 한강에 방류한 화학약품에 의해 태어난 ‘괴물’처럼, 고지라는 원래 심해에서 잠자고 있던 고대생물이었다(그것이 당시의 고생물학 기준으로 표현된 티라노사우루스형 직립 공룡이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핵실험의 방사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깨어난 고대생물은 이에 복수라도 하듯이 인간 문명을 파괴하는 거대 괴수 고지라로 거듭난다. 인간, 특히 일본인의 관점에서 고지라는 원폭과 방사능에 대한 공포의 실체화이다. 시리즈 첫 편인 <고지라>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공개되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한, 고지라는 일본에 자주 일어나는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 가운데 하나로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일본인에게 그는 깊은 애증의 대상이자 사람이 아닌 것으로서 기묘한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존재이다.

괴수 특촬 장르의 퇴조로 인해 고지라 시리즈는 2004년 제28편 <고지라: 파이널 워즈>가 개봉한 뒤 일단 종료했다. 그러나 ‘최후의 전쟁’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가 되는 2014년, 헐리우드 리메이크의 결과에 따라 향방은 달라질 수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방사능과 원자력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역설적으로 오리지널 고지라의 부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절멸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것이 그의 역할이자 운명이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 두려움은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와서도 힘차게 고동치는 고지라의 심장, 그것에 깃든 불사의 생명력이 그렇듯이.

* 이 글은 2012년 문화 웹진 리딩툰(현재 운영 종료)에 썼던 무비 몬스터 소개글 ‘몬스터 유한회사’ 가운데 고지라 부분을 발췌하여 가필, 수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