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필드] (2008)

(C) Paramount Pictures, Bad Robot
(C) Paramount Pictures, Bad Robot

<클로버필드>(Cloverfield)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괴수영화가 아닐지 몰라도, 가장 현실감 있는 괴수영화임에는 틀림없다. 다른 장르영화가 그렇듯 괴수영화 역시 단순한 형식을 큰 변화 없이 오랜 세월동안 활용하여 왔다. 인간이 보유한 물리력과 지력을 압도하는 생물이 인간 문명의 상징(주로 대도시)을 습격하여 미증유의 파괴를 초래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괴수영화를 이루는 형식이다. 그것은 이제 전혀 새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고리타분하고 유치하다는 비웃음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클로버필드>는 소재의 식상함을 스타일로 극복했다. 심지어는 관객의 넋을 잠시 나가게까지 한다.

이 영화가 취한 스타일은 이야기를 철저히 인간의 시점 속에 가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화를 이루는 모든 장면은 주인공 일행이 가진 단 한 대의 캠코더로 촬영되었다고 설정되었다. <블레어 위치 프로젝트>와 비슷한 형식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이미 녹화한 내용을 새로 촬영한 내용이 덮어쓸 수 있다는 캠코더 특유의 장점으로 영리하게 해결했다. 여기에 치밀한 계획에 의한 가상의 우발적 상황이라는 연출이 덧붙여져 강력한 화학작용이 발생했다. 또한, 카메라의 단일 시점은 화면 속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제한하여 관객이 영화 속 상황에 대해 더욱 능동적인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주인공이 군인이나 과학자 등 괴수 퇴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반인이라는 점도 괴수영화로서는 흔치 않은 경우이다. 휴대전화가 중요한 소도구로 등장한다는 점과 함께, 이는 괴수영화 종주국이 아닌 나라에서 만들어졌으면서도 오히려 그 때문에 장르의 클리셰에 함몰되지 않았던 이색작 <괴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화학약품이나 폭탄보다 캠코더와 휴대전화가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클로버필드>를 21세기라는 시대에 최적화된 괴수영화 – 농담 삼아 ‘UCC 괴수영화’ – 라 부를 수도 있겠다.

덕택에 관객은 순서대로 찍어 편집을 거치지 않은 캠코더 영상만으로도 등장인물과 금세 친숙해지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굉음과 함께 평범한 일상이 찢어진다. 이미 등장인물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점까지 공유하게 된 관객은 아비규환의 연속을 거치며 점차 그들과 하나가 된다. <클로버필드>에서 관객은 더 이상 괴수영화를 관람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경험한다.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으로 담은 기존 괴수영화의 영상에 익숙한 골수팬들은 캠코더 한 대로 대체 뭘 보여줄 수 있겠냐는 우려를 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교묘한 동선 배분을 통해 스펙터클은 물론 충분한 리얼리티도 확보하였다. 일개 시민이 고층건물을 닥치는 대로 무너뜨리면서 전진하는 거대한 괴수의 전신을 어떻게 촬영할 수 있었겠는가? <클로버필드>는 <우주전쟁> 이후 시각적으로 가장 뛰어난 괴수영화이기도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괴수가 가져온 정서적 반응이 마치 그 몸에서 무수히 떨어진 징그러운 기생생물처럼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극 중의 괴수는 정체를 알 수도 없으며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핵실험이나 환경파괴 등의 분명한 탄생 원인이 있었던 다른 괴수들과 달리 관객은 이 괴물이 무엇이었는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어쩌면 <클로버필드>의 괴수는 징후와 실체를 파악할 수 없으며 그 종결 시점조차 알 수 없는, 현재 이 세상에 상존하는 불안과 공포를 대변하는 존재가 아닐까. 마음속에 아직도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앉아 있는 것만 같다.

<클로버필드>는 고난이도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처럼 하늘과 땅이 잠시 자리를 바꾼 것 같은 아찔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지나친 비밀 위주의 홍보가 유발한 거부감과 불안감을 뛰어넘는 저돌적인 힘을 지닌 이 괴수는 두 발이든 네 발이든, 제 스스로 단단히 땅을 딛고 일어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원제: Cloverfield
감독: 매트 리브스
주연: 마이클 스탈 데이비드, T. J. 밀러, 오데트 유스트먼, 제시카 루카스, 리지 캐플런
미국 개봉: 2008년 1월 18일
한국 개봉: 2008년 1월 24일

[우주전쟁] (2005)

(C) Paramount Pictures, DreamWorks SKG, Amblin Entertainment, Cruise/Wagner Productions
(C) Paramount Pictures, DreamWorks SKG, Amblin Entertainment, Cruise/Wagner Productions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공포영화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그는 어떤 공포영화 감독보다도 스크린 속 공포를 잘 다룬다. 동시에 그가 다루는 공포는 매우 정형화되어 있어 이제는 그 수법이 뻔히 보일 정도가 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우주전쟁>의 도입부에서 벌어지는 외계인의 첫 습격 장면은 보는 이의 얼을 빼놓는다. 스필버그의 테러 묘사는 ‘공포를 다루는 법’이라는 가상 해설서의 황금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참신한 시각적 요소가 추가되어 매번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우주전쟁>은 역대 최고의 재난영화이며, 시각적으로 가장 뛰어난 괴수영화이다.

스필버그 영화의 원점은 그가 유년기에 매료되었던 문화 요소들이다. 그가 오슨 웰즈의 라디오 드라마 대본 원본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로 알 수 있듯이, <우주전쟁> 역시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장르영화의 연속선 위에서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창작자가 당대의 현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명제를 굳이 들이밀지 않더라도, 이 영화에 9. 11 테러가 스필버그를 때리면서 남긴 충격과 분노의 흔적이 녹아있음은 너무나도 분명히 드러나 있다. 외계인에 의해 무차별 파괴되는 시가지와 도망치는 군중의 묘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세부는 9. 11 당시 우리가 실재함을 확인했던 것들이다.

묘하게도 <우주전쟁>은 그가 한 손에 블록버스터를, 다른 한 손에 진지하고 심각한 드라마를 들고 나오곤 했던 전력을 상기시킨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그 둘을 합친 작품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우주전쟁>은 <대결>이나 <조스>와 같은 스필버그 초기 걸작의 아우라를 느끼게 한다. 단순한 이야기에 관객의 시선을 압도하는 이미지로 중첩된 장르영화의 거칠고 음산한 질감은 마치 1970년대로부터 2005년으로 곧장 건너뛴 듯 생생하고 힘이 넘친다.

스필버그 영화는 과연 진보적일까. 내가 쉽사리 판단할 수 있는 바가 아닐지라도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스필버그는 <우주전쟁>으로 퇴보하지도 추락하지도 않았다. 한국에서 그에 대한 찬반양론이 전례 없이 난무했던 이유는 <우주전쟁>이 불균질했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에게 ‘스필버그를 까야 쿨하게 보이거든’ 이라는 인식을 심는 평자와 논객들의 호들갑에 있다. <우주전쟁>에 대한 혹평 속에는 정작 영화에 대한 비판보다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헐리우드의 유대인 감독에 대한 반감이나, 이 영화에 들어맞지도 않는 미국 우월주의 운운만 있을 따름이다. 그자들은 바로 그 점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침을 튀겼지만,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영화의 결말이 불만스러운 관객이 많을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문화 현실이다. <우주전쟁>은 2005년 가장 확대해석된 영화들 가운데 한 편이었다.

원제: War of the Worlds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톰 크루즈, 다코타 패닝, 저스틴 채트윈, 팀 로빈스, 미란다 오토
북미 개봉: 2005년 6월 29일
한국 개봉: 2005년 7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