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라이지즈] (2012)

(C) Warner Bros. Pictures
(C) Warner Bros. Pictures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The Dark Knight Rises)를 제작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좀 더 표면적인 단계에서, 저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프랜차이즈의 세 번째 영화 가운데 사람들이 제목을 댈 수 있는 것이 과연 몇 편이나 될까?”

과연 그렇다. 보통의 경우 어떤 영화가 성공하면 한 편 정도는 속편이 나올 수도 있지만, 세 번째 편까지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더 낮아질 것이다. 설령 만들어진다 해도, 그 가운데 우리가 즐겨 되새길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되는지 떠올려 보자. 내 경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스타 워즈 에피소드 VI: 제다이의 귀환>이 그렇고,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그렇다. 이 두 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성공적인 제3편이다. <백 투 더 퓨처 III>나 <리썰 웨폰 3>도 나쁘지 않았다. <대부 III>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상당히 볼 만하고 가치도 있는 영화이다. <스타 트렉 III: 스팍을 찾아서>나 <이클립스>도 괜찮은 제3편들이다.

이렇게 꼽아 보아도 열 편이 채 못 된다. 첫 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두 번째 편에서 그것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변주하는 데까지는 꽤 흥미롭다. 그런데 세 번째쯤 되면 그것도 슬슬 질리게 된다. 그리고 헐리우드의 경우에는, 많은 3편들이 1편의 설정이나 성공 요소로 되돌아갈 때가 많다. ‘이 1편으로의 회귀’는 헐리우드 3부작의 주요 특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이야기는 맥이 빠지고, 결과적으로 보는 이의 마음에 남을 만한 영화가 되는 데 실패하고 만다. 제3편의 실패담은 아마도 헐리우드에서 가장 빈번히 반복되는 실패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토퍼 놀런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수퍼히어로 영화 연작인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잇는 세 번째 배트맨 이야기,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는 과연 어떨까? 3부작의 징크스를 깨지 못한 범작(심지어는 졸작!)일까, 아니면 놀런이 의도했던 ‘사람들이 이름을 댈 수 있을 만한’ 세 번째 영화일까? 단언컨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는 3부작의 장엄하고 감동적인 결말이며, 거의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수퍼히어로 영화이다. 1편으로 돌아간다는 헐리우드 3부작의 클리셰를 따르는 듯하면서도, 진부함이 파고들 틈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여져 있고 놀라움과 의표를 찌르는 대목으로 가득하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시작되어 숱한 오르내림을 거쳤던 브루스 웨인의 담대한 여정은 이 3부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깔끔하고 뿌듯하게 막을 내리는 것이다.

전편 <다크 나이트>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을 배트맨이 가섬 시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 이야기로 이해했다. 처음 방랑을 떠나면서 했던, 가섬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며 자신의 어린 시절에 일어났던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지키기 위해, 배트맨은 스스로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는 그 어둠이야말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의 도입부에서 놀런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실은 그렇지 않다’라고. 과연 어둠 속에서 배트맨은, 그리고 브루스 웨인은 서서히 마모되어 가고 있었다. 가섬 시에는 평화가 찾아왔지만 진실을 아는 자의 마음 속에 평화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이는 경찰청장 제임스 고든도 마찬가지였다). 8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마침내 거짓 평화의 끝이 다가온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것을 산산조각낸 폭풍은 과거로부터 불어왔다.

놀런은 3부작의 마지막 편 두루마리를 풀어가면서 배트맨과 그와 같은 방향을 봐 왔던 선한 자들을 극단적인 절망과 고난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마치 거짓 평화를 연출했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듯이, 그들은 추락하고 쓰러져 좌절한다. 이 모든 고통의 행진을 용의주도하게 지휘하는 자가 바로 최강의 적, 베인이다. 베인은 <다크 나이트>의 조커와는 달리 확고한 목적을 지니고 행동하는 테러리스트이다(이 역시 1편으로의 회귀이다). 그에게는 조커 못지 않은 천재적인 두뇌와 배트맨을 세 명쯤 합친 것 같은 가공할 만한 육체적 힘이 있고, 이를 이용하여 가섬 시의 소외되고 차별 당하는 하층계급을 수하에 둔다. 즉, 베인이 노린 것은 계급갈등을 불씨로 한 폭동이자 가섬 시의 철두철미한 파멸이었던 것이다. 베인이 일으킨 칼바람은 예상 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몰아친다. 모두가 휘말려 쓰러진다. 특히 배트맨에게는 한층 더 쓰라리다. 그는 숨겨져 있던 과거의 진실이 잇달아 드러나면서 처참하게 얻어맞는다. 이윽고 그가 믿고 있었던 이상적인 세상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배트맨은 속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러한 그를, 베인은 철저히 짓밟아 어두운 동굴 속에 던져넣는다.

여기서 과거와 연결되는 또 하나의 고리. “우리가 왜 넘어지는 줄 아니, 브루스?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란다.” 브루스 웨인의 아버지 토머스는 어린 시절 우물에 떨어졌던 그를 구조한 뒤 그렇게 말했다. 되돌아 보면 놀런의 배트맨 시리즈는 쓰러지거나 떨어져 다친 웨인이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들이었다. <배트맨 비긴즈>는 웨인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이었고,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이 된 웨인이 설사 어둠 속일지언정 그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는 그가 어둠을 깨고 일어나 스스로 구원하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일 것이다. 웨인은, 그리고 배트맨은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혼자의 힘으로만 구현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스로를 모질게 소모해 왔던 것은 아닐까.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배트맨이 없는 세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그동안 자신을 옥죄어 왔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만이 웨인이, 그리고 가섬이 스스로를 구원하는 길이 아닐까.

놀런은 보는 이들을 그 길로 안내하면서 앞선 두 편을 통해 구축된 설정을 발전시키는 한편,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던 수많은 복선들을 끌어모아 정리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드러내 보인다. 그의 연출은 마치 수천 조각의 퍼즐을 빠른 속도로 리드미컬하게 끼워 맞춰 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가 새로운 이야기이면서도 3부작의 일부라는 점을 충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그는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아예 처음부터 붙잡은 채, 이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도록 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우직하게 따라간다. 등장인물이 더 많아진 데다 다소 복잡한 플롯을 전개할 동력을 얻기 위해 초반부는 조금 산만하게 진행된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일단 동력을 충전한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 지축을 울리며 진격하기 시작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이후 가장 훌륭한 3부작의 완결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의 매듭짓기가 <다크 나이트>의 정서적 충격에 비해 강도가 약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에 버금가는 파급력을 지닐 수 있는 영화가 많다는 게 이상하다(우리는 때때로 기적을 당연지사로 여길 때가 있다)! 놀런은 <다크 나이트 라이지즈>에서도 전편의 장점을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이다. 정교한 플롯과 현실적인 물리법칙의 엄정하면서도 파격적인 적용, 모범적인 연기, 압도적인 스펙터클로 관객의 감정에 호소하는 연출은 ‘절정’이라는 이야기의 특성에 힘입어 그 효과가 배가된다. 이를 통해 놀런이 빚어낸 세 편의 배트맨 신화는 완벽한 구조를 이루며, 하나의 탄탄하고 독창적인 배트맨 세계로 승화된다.

원제: The Dark Knight Rises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주연: 크리스천 베일, 마이클 케인, 게리 올드먼, 앤 해서웨이, 톰 하디, 조셉 고든 레빗, 마리옹 꼬띠아르, 모건 프리먼
북미 개봉: 2012년 7월 20일
한국 개봉: 2012년 7월 19일

[아이언 맨 2] (2010)

(C) Marvel Studios
(C) Marvel Studios

<아이언 맨 2>(Iron Man 2)는 전편의 마지막 장면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토니 스타크가 자신이 아이언 맨임을 공언하면서 기자회견장을 패닉에 빠트리는 모습을 저 멀리 러시아에 있는 어떤 허름한 골방에서 다시 보게 된다. 이곳에서는 한 노인이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의 아들은 슬픔을 이겨내고자 보드카를 연신 들이킨다. 마침내 노인이 죽고 아들의 슬픔은 분노로 변한다. 토니 스타크 / 아이언 맨의 새로운 적, 이반 반코 / 윕래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이번 속편의 적은 윕래쉬 한 명만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스타크로부터 아이언 맨 수트를 압수하려 하고, 틈만 나면 그를 물어뜯으려는 라이벌 군수업자 저스틴 해머는 윕래쉬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강력한 위협 세력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스타크의 회사는 경영실적이 악화되고 있고, 스타크 자신은 아이언 맨으로서 세계평화를 지킨다는 자아도취와 자연인 토니 스타크로서 수트 착용 후유증의 괴로움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자학적 기행을 일삼기 시작한다. 등장인물과 에피소드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으니 관객은 불안해진다. 이러다 <배트맨 & 로빈> 꼴이 되는 건 아닐까. 아니, 그건 너무 심한 가정이고 최소한 <스파이더맨 3> 만큼은 해 줘야 할 텐데.

전편의 공식을 별다른 의미 없이 반복하거나 그마저도 제대로 못하고 쓰러지는 다른 속편들에 비하면, 다행히도 <아이언 맨 2>는 군계일학이다. 존 파브로 감독과 저스틴 서루 작가는 전편의 황금공식에 적절한, 때로는 과감한 변화를 주면서, 수퍼히어로 영화로서는 일반적인 범주를 훨씬 뛰어넘은 호평을 받았던 <아이언 맨>의 속편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착실하게 해냈다. 우리는 스타크와 페퍼 포츠, 로디, 해피 등 주요 등장인물의 성격이 망가지지 않은 채 유머와 호통을 주고받는 모습을 여전히 즐길 수 있다. 히어로가 ‘실존’하는 적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존’과도 맞서 싸우며 결국 슬기롭게 극복하는 왕도 전개도 비교적 탄탄하다. 이 과정에서 조금 늘어지는 감이 없지 않지만 이를 대비해 적절히 치고 들어오는 볼거리와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어벤저스> 떡밥이 도처에 마련되어 있다.

배우들도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매력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활력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술독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조차 밉지 않다. 귀네스 팰트로우가 분한 페퍼 포츠와의 티격태격하는 궁합도 여전히 좋다. 그는 스타크 때문에 덜컥 CEO가 되다 보니 짜증이 좀 늘긴 했다. 배우 교체로 말이 많았던 로디는 돈 치들의 이미지 때문에 좀 뺀질거리고 경박한 느낌이 줄어든 대신, 모두가 기대했던 새로운 히어로 워 머신으로서 짊어져야 할 비중을 잘 받아냈다. 저스틴 해머는 좀 뻔한 악역이지만 샘 록웰의 노련미가 이를 충분히 상쇄했고, 윕래쉬는 미키 루크의 현재 이미지를 잘 살린 터프하고 카리스마 있는 악역이다. 등장인물과 에피소드가 늘어나 가장 큰 손해를 본 쪽은 블랙 위도우 역의 스칼렛 조핸슨이다. 배역과 그 비중이 얄팍해졌으니 배우 자신의 재능도 제대로 쓰여지지 못했던 것이다. 그나마 새뮤얼 L. 잭슨의 닉 퓨리는 떡밥 투척자로서 제 역할을 다 했다. 액션과 물량공세는 어떨까. 전편의 키워드가 아이언 맨 수트라는 궁극의 장난감을 구경한다는 신기함과 초음속으로 하늘을 나는 자유로움 등이었다면, 이번 속편에서는 아무래도 처음의 설렘은 조금 덜한 대신 이미 탄탄하게 확립된 세계관에서 가능한 화려하고 다양한 변화를 한껏 만끽할 수 있다. 휴대용 수트 ‘마크 V’는 정말로 탐이 난다.

<아이언 맨 2>는 전편의 장점과 매력을 충실히 유지하면서 속편의 규모 증대로 인한 이야기의 파탄을 납득할 수 있는 선까지 최선을 다해 막아냈다. 중반의 늘어짐이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면 전편을 즐겼던 팬들도 실망하지 않을 만하다. 그리고, <어벤저스>에도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

원제: Iron Man 2
감독: 존 파브로
주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귀네스 팰트로우, 돈 치들, 미키 루크, 샘 록웰
북미 개봉: 2010년 5월 7일
한국 개봉: 2010년 4월 29일

[스파이더맨 3] (2007)

(C) Sony Pictures
(C) Sony Pictures

여전히 좋았지만, 조금 과했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진이 빠질 정도다. 결말에 다다를 때쯤이면, ‘자, 베놈하고 샌드맨 보냈으니 그 다음은 얼른 내려가서 해리, 그 다음은 결혼 반지…’ 이렇게 벌여 놓은 사건들을 수습하기에 바쁘다.

놀라운 점은 그것들이 어떻게든 모두 수습된다는 것이며, 주제와의 연관성이나 에피소드 사이의 짜임새의 파탄도 잘 막아 놔서 작품의 전체적인 질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과 에피소드가 얽혔으니 잘못하면 <배트맨 & 로빈> 같은 꼴이 될 수도 있었지만, 작가들과 감독은 최선을 다 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역시 샌드맨과 뉴 고블린만으로 만들어야 했어, 싶지만 베놈이 없었다면 영화가 이만큼 화제를 모을 수 있었을까. 놈의 등장을 암시하는 정도로 끝냈다면 더 좋았겠지만, 팬들의 인내심은 3편을 넘기지 못했을 테니까.

액션 장면에 대해선 정말 할 말이 없다. 압도적이다. <스파이더맨 3>는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 그 자체이다. 또한, 플린트 마르코가 샌드맨으로 부활하는 대목은 <배트맨 리턴즈> 이후 수퍼히어로 영화에서 악당을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한 장면이다.

이미 4편 제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지만, 피터 파커의 성장담은 이쯤에서 완결을 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원제: Spider-Man 3
감독: 샘 레이미
주연: 토비 맥과이어, 키어스틴 던스트, 제임스 프랭코, 토머스 헤이든 처치, 토퍼 그레이스
북미 개봉: 2007년 5월 4일
한국 개봉: 2007년 5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