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 샌디에고 코믹콘 한정판 피겨

반다이 아메리카가 전미 최대 규모의 대중문화 컨벤션, 샌디에고 코믹콘에서 판매할 고지라 한정판 피겨 정보를 발표했다.

고지라 탄생 60주년 기념 상품인 이 한정판 피겨는 단 500세트만이 제작, 판매되고 각 패키지에는 고유번호가 부여된다. 피겨의 높이는 6.5인치(약 16.51cm)이며 재질은 소프트 비닐. 조형은 2004년작 <고지라: 파이널 워즈>에 등장했던 고지라를 재현하고 있다. 이 조형은 본고장 일본에서도 발매되지 않았고, 60주년 기념품이라는 것도 있어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하겠다.

한정판을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패키지는 고정 부분을 경고 문구가 인쇄된 봉인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를 풀어내어 상자를 열면 마치 팝업북처럼 고지라에 의해 파괴된 도시의 종이 모형이 펼쳐진다. 그 한가운데 위치한 고지라는 몸 군데군데에 반사된 불길을 표현하는 붉은색 하이라이트가, 등지느러미에는 방사열선 예열을 표현하는 푸른색이 칠해졌다.

판매는 코믹콘의 반다이 부스에서 이루어진다. 정가는 60달러이지만 이는 운 좋게 코믹콘에서 직접 구입할 경우. 나중에 경매나 일부 매니아 대상 쇼핑몰 등지에 틀림없이 매물이 올라올 텐데, 이를 손에 넣으려면 프리미엄을 각오해야 한다.

(C) Toho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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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 코믹콘은 7월 24일부터 27일까지 샌디에고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다. 반다이 아메리카는 고지라 이외에도 <파워 레인저>, <빅 히어로 6> 관련 한정 상품을 판매할 예정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 출처 링크에서 확인하시라.

출처: 반다이 아메리카 샌디에고 코믹콘 2014 특설 페이지

‘고지라’라는 괴수

(C) Toho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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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의 별명은 ‘괴수의 왕’이다. 그와 지명도를 양분하는 또 다른 괴수인 킹콩에 비해 21년이나 늦게 태어났지만, 이른바 ‘스펙’만 본다면 고지라는 킹콩을 압도하는 사상 최강의 괴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관총 세례를 맞고 숨을 거둔, 몸집만 빼면 평범한 고릴라와 다르지 않았던 콩과는 달리 고지라는 체내에 방사능을 축적한 거대한 고대생물의 돌연변이이다. 그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고 끈질기며, 사실상 불사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단시간에 토쿄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만큼 막대한 파괴력도 지녔다. 인간의 군대는 그의 간식거리도 안 되는 상대가 된 지 오래이고 수도 없이 밀려드는 적 괴수와 싸워 대부분 승리했으며, 심지어는 우주괴수들과도 호각으로 맞선다. 지구상에서, 아니, 우주의 꽤 넓은 범위 안에서 고지라를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1954년 스크린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고지라는 대표적인 시리즈 영화 주인공으로 손꼽히는 제임스 본드보다 많은 28편의 영화에 나왔고, 헐리우드에서는 두 번째 리메이크가 만들어지고 있으며(2014년 여름 개봉), 이외에도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중매체에 이식되었다. 완구를 비롯한 수천 종의 관련상품도 끊임없이 생산되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팬들의 지갑을 꾸준히 털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고지라가 영화 속뿐만 아니라 그 밖에 있는 현실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괴수의 왕임을, 당신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고지라는 2차대전 당시 일제의 홍보용 영화에 동원되었던 특수촬영 기술이 전후 영화산업의 환경에 맞춰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던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토호 영화사의 프로듀서 타나카 토모유키는 50년대 초반 일본에서 재개봉한 1933년판 <킹콩>을 보고, 괴수가 등장하는 특수촬영 영화에 대한 수요가 있음을 감지했다. 일본을 습격하는 거대 괴수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한 타나카는 이를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정교한 특수촬영 기법으로 유명했던 츠부라야 에이지,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이후 그의 조감독으로도 활약하게 되는 혼다 이시로 감독과 힘을 합쳤다. 마침내 1954년 11월 일본에서 공개된 <고지라>는 9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히트, 이후 괴수영화를 중심으로 SF, 호러, 스릴러 등의 하위 장르로 분화되는 ‘특촬’이라는 일본 특유의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1956년에는 미국인 배우를 등장시킨 장면을 삽입하여 재편집한 미국 개봉판 <괴수왕 고지라>가 공개되어 역시 흥행에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서양에도 일본 특촬영화가 꾸준히 소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고지라는 점차 인간에게 친숙해졌고, 때로는 스스로 인간의 편에 서는 캐릭터로 변모해 갔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유행의 변화와 영화계의 흥망성쇠에 좌우되는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 때문이다. 가상의 캐릭터에게 어른의 사정이란 방사능이나 재해보다 더 강력하고 두려운 것이었을 터. 고지라가 대중에게 ‘B급’이나 ‘싸구려’로 인식된 것도 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조악한 영어 더빙과 화질로 선보였던 해외 공개용 재편집판들도 작품의 제대로 된 면모를 파악하기 어렵게 해 왔다. 물론 정말로 값싸게 서둘러 만들어진 엉성한 영화들도 분명히 있지만, 대다수의 고지라 시리즈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작비가 투입되며 골든 위크나 여름방학, 정월 연휴철 등에 맞춰 관객들과 만나는 블록버스터이다.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60년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시리즈가 이어졌다는 사실은 고지라가 일본은 물론 세계 대중문화의 아이콘임을 증명한다.

고지라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나왔던 이름 모를 괴물과 몇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미군이 한강에 방류한 화학약품에 의해 태어난 ‘괴물’처럼, 고지라는 원래 심해에서 잠자고 있던 고대생물이었다(그것이 당시의 고생물학 기준으로 표현된 티라노사우루스형 직립 공룡이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핵실험의 방사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깨어난 고대생물은 이에 복수라도 하듯이 인간 문명을 파괴하는 거대 괴수 고지라로 거듭난다. 인간, 특히 일본인의 관점에서 고지라는 원폭과 방사능에 대한 공포의 실체화이다. 시리즈 첫 편인 <고지라>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공개되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한, 고지라는 일본에 자주 일어나는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 가운데 하나로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일본인에게 그는 깊은 애증의 대상이자 사람이 아닌 것으로서 기묘한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존재이다.

괴수 특촬 장르의 퇴조로 인해 고지라 시리즈는 2004년 제28편 <고지라: 파이널 워즈>가 개봉한 뒤 일단 종료했다. 그러나 ‘최후의 전쟁’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가 되는 2014년, 헐리우드 리메이크의 결과에 따라 향방은 달라질 수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방사능과 원자력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역설적으로 오리지널 고지라의 부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절멸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것이 그의 역할이자 운명이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 두려움은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와서도 힘차게 고동치는 고지라의 심장, 그것에 깃든 불사의 생명력이 그렇듯이.

* 이 글은 2012년 문화 웹진 리딩툰(현재 운영 종료)에 썼던 무비 몬스터 소개글 ‘몬스터 유한회사’ 가운데 고지라 부분을 발췌하여 가필, 수정한 것이다.

크레이그 본드의 매력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 이 글에는 <카지노 로얄>을 비롯한 크레이그 본드 시리즈의 내용 서술이 포함되어 있다. 스포일러에 민감하다면 주의하시라.

007 제임스 본드가 돌아왔다.

올해 2012년은 제임스 본드가 은막에 처음으로 등장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다. 작가 이언 플레밍이 1953년 발표한 소설 [카지노 로얄]을 통해 첫선을 보였던 가공의 첩보원 본드는 이후 여러 편의 속편 소설들과 라디오 드라마, TV용 영화, 만화 등의 주인공으로 활약했고, 1962년부터는 <살인 번호>를 시작으로 대중문화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장편영화 시리즈도 스물 세 편이나 만들어졌다(번외편까지 합치면 스물 다섯 편).

제임스 본드 영화는 역사상 가장 많은 편수가 만들어진 시리즈는 아니지만, 가장 오랫동안 사랑 받은 시리즈 가운데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50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세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변치 않는 인기를 누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대중을 본드 시리즈로 끌어당겼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게 마련이다.

본드 시리즈의 인기 요인을 꼽자면 흥미와 긴장감을 유발하는 이야기, 세계 각국에서 담아 온 다채로운 배경(특히 해외여행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과거에는 더욱 더 눈길을 끌었을 것이다), 박력 넘치도록 연출된 액션, 때로는 아기자기하고 때로는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멋진 특수차량과 비밀무기들, 본드 걸,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부른 주제가와 훌륭한 작곡가들이 만든 사운드트랙, 호쾌하고 현실도피적인 욕구를 채워 주는 모험담… 만일 이러한 인기 요인이 만질 수 있는 물건이라면 양 손에 다 담기에도 벅찰 만큼일 것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본드 시리즈의 가장 큰 인기 요인이자 매력이라면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 자신일 것이다. 특히 영화 속 본드는 거의 초인에 가까운 임무 수행 능력과 남성적 매력이 극대화된 인물로 묘사된다. 스파이 중의 스파이, 남자 중의 남자인 것이다. 이렇게 완벽한 인물이 온갖 난관을 넘어 임무를 완수하고 아름다운 본드 걸과 함께 망중한을 즐기는 결말로 이루어진 영화가 관객을 매료시키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본드를 지난 50년 동안 여섯 명의 배우들이 연기해 왔다. 제1대 숀 코너리(출연작 수 번외편 제외 6편), 제2대 조지 레젠비(1편), 제3대 로저 무어(7편), 제4대 티모시 달튼(2편), 제5대 피어스 브로스넌(4편) 그리고 현역인 제6대 대니얼 크레이그(현재까지 3편)가 그들이다. 이들은 각자 본드로 살아 숨쉬었던 스물 세 편의 영화를 각기 다른 이유로 빛나게 했고, 관객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각기 다른 배우들에게, 또는 그들 모두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줌으로써 보답했다. 워낙 오랫동안 많은 편수가 제작된 영화 시리즈인데다가, 같은 가상 인물을 여러 명의 배우들이 연기했기 때문에 본드는 동일인물임에도 편마다 여러 가지 매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관객들이 특정한 배우가 분한 본드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본드를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나의 베스트 본드는 대니얼 크레이그이다. 내가 쓰고 있는 글이라 내 경험에 한정된 바이지만, 흔히들 제1대 본드였던 숀 코너리를 최고의 본드로 꼽는 경우가 많은 듯 싶다. 조지 레젠비는 떡대 말고는 별달리 내세울 것이 없었고, 로저 무어는 좀 느끼했으며, 티모시 달튼은 좀 뻣뻣했고, 피어스 브로스넌은 그냥 무난했고, 그러니 코너리가 짱! 이라는 이야기도 들어 보았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걸까. 뭐 다 좋다. 내 경우는 무어의 출연작인 <나를 사랑한 스파이>로 본드 시리즈를 처음 접했고, 아무래도 첫 체험이어서인지 그 후로도 여러 편의 시리즈를 보았지만, 몇 년 전까지는 이 영화가 시리즈 가운데 가장 좋았다(칼리 사이먼의 주제가 “Nobody Does It Better”는 지금 들어도 살살 녹는다). 무어에 대해 말하자면, 본드의 플레이보이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배우였다. 적어도 내게는.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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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2006년 대니얼 크레이그의 첫 본드 출연작이자 시리즈의 리부트인 <카지노 로얄>을 감상하게 되면서 완전히 뒤바뀌었다. 여기는 그럴 만한 자리가 아니므로 그 영화의 장점을 일일이 나열하진 않겠지만, 분명히 말하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카지노 로얄>이 ‘혁신’이었다는 점이다. 스무 편이 넘는 장기 시리즈를 이어가다 보면 매너리즘과 피로감이 생기게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그야말로 철두철미하게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감독인 마틴 캠벨은 본드를 90년대에 훌륭히 적응시킨 수작 <골든아이>(1995)를 연출한 인물이었는데, <카지노 로얄>로 같은 목적을 다른 시대에서 더 훌륭하게 이룬 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대니얼 크레이그가 있다. 2005년 그가 본드 역으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자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던 비아냥 어린 목소리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금발이라 원래 설정에 맞지 않는다느니(플레밍의 소설 속 본드는 흑발이다), 너무 투박한 마스크라느니, 성적 매력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얘기들. 하지만 외모나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크레이그 본드는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중요한 건 배우의 머리카락 색깔이나 얼굴이 아니라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이 어떻게 행동하고 표현되는가이다. 어떻게 보면 선배들과는 달랐던 크레이그의 다소 무색무취한 이미지가 제작진이 의욕적으로 모색하고 있었던 시리즈의 새로운 방향성에 적합했던 것이 아니었나 한다. 마치 스케치북을 가득 채운 백지처럼 말이다.

제작진이 선택한 시리즈의 중심적 변화 가운데 하나는 본드를 예전보다 훨씬 더 인간적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 시작에 해당하는 <카지노 로얄>은 기존 시리즈의 리부트로서 본드의 초기 임무와 성장담(!)을 그린 이야기라는 점, 섬세한 심리 묘사에 집중한 훌륭한 각본, 크레이그를 비롯한 주요 배우들의 호연 등으로 참신한 본드의 이미지를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이 21세기 본드 시리즈에서 크레이그는 여전히 초인적인 첩보원이지만(그것이 본드의 본질이자 시리즈의 전통이므로), 그럼에도 좀 더 상처 받기 쉽고 심리적인 갈등을 겪는 본드의 모습을 그 어느 때보다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주었다. 완벽한 인물로 알고 있던 그가 실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결점 투성이이기도 합니다, 라는데 어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을까.

본드의 인간적 매력이 가장 풍부하게 드러나는 시점은 그가 운명의 여인 베스퍼 린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이다. 임무를 위해 여자와 살을 섞곤 했던 본드는 린드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면서 첩보원이라는 직업마저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극 후반부 린드가 이중첩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이어 비참한 죽음을 맞으면서 본드의 절망감은 극에 달한다. 본드 최대의 위기가 부비 트랩이 아닌 사랑했던 여인의 배신이라니! <카지노 로얄>의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살인면허> 이후 본드의 감정이 가장 격정적으로 드러난 대목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시련을 겪으면서 첩보원으로서의 본드는 더욱 단단해지고 한 단계의 성장을 이룬다. 그것이 냉혹한 이 세계의 생존 법칙. 본드에게 그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존재가 바로 직속상관 M이다. 고아가 된 본드를 거두어 MI6 최고의 첩보원으로 키운 M은 그에게 마치 양어머니와도 같은 존재처럼 묘사된다(본드가 M을 호칭할 때 쓰는 ‘ma’am’이라는 표현은 영국식 발음 때문에 때로는 ‘mom’처럼 들린다. M이라는 이니셜은 또 어떤가). 본드 역시 헌신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M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조직의 이익과 본드 개인의 의지가 충돌할 때면, M은 여지없이 조직의 편을 든다(물론 그 역시 로봇은 아니므로 고심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발생하는 본드와 M의 애증관계 역시 크레이그 본드 시리즈를 흥미롭게 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본드의 인간적인 면을 드러내는 극적 장치로 훌륭하게 기능한다.

그리고 이렇게 편을 거듭하면서 축적해 왔던 모든 것이 신작 <스카이폴>에서 한꺼번에 폭발한다. 본드는 도입부에서 상징적인 ‘죽음’을 맞고, 혹독한 ‘부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배후에는 M이 범할 수밖에 없었던 ‘원죄’가 있고 본드 역시 그 손아귀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에 맞서기 위해, 부활한 본드는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어떤 지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대단원이 연출되는 것이다. <스카이폴>은 21세기라는 지금 이 순간, 제임스 본드가 왜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5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을 견뎌 온 이 시리즈가 어떻게 미래를 도모할 것인지를 더할 나위 없이 멋지게 보여준 영화이다. 크레이그는 <스카이폴>에서 자신만의 본드 이미지를 집대성한다. 투박한 얼굴에 금발인 제임스 본드. 상처 받고 절망하지만, 결국은 다시 단단해져 적을 찢어발기고 포효하는 수컷. 크레이그의 본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응축된 채 동시에 한 인물을 관통하는 어떤 흐름 그 자체가 된다. <스카이폴>이 끝나고 엔드 크레딧이 오르기 전, 007 테마곡이 극장 안을 가득 채우면서 50주년 기념 로고와 함께 ‘James Bond Will Return(제임스 본드는 돌아올 것이다)’이라는 약속의 메시지가 뜨는 순간, 그 순간의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크레이그 본드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

(C) Eon Productions, Danjaq LLC, United Artists Corporation, Columbia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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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8] (2011)

(C) Paramount Pi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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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해 본다. <수퍼 8>(Super 8)는 J. J. 에이브럼스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고. 1966년생인 에이브럼스는 영화의 시대배경인 1979년 우리나라 나이로 14살이었을 것이고, 이는 영화의 주인공 조 일행의 나이와 얼추 맞아떨어진다. 에이브럼스를 비롯한 또래들은 유년기에 TV에서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과 <심해 괴물>(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을 보며 공포와 매혹이 거칠게 뒤섞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동네 재개봉 극장에서 팝콘을 집어먹으며 <살아 있는 시체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을 보았을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옹기종기 모여 만화책을 읽고, 손가락에 접착제와 에나멜을 잔뜩 묻혀가며 조립식 모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스타 워즈>(Star Wars)와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를 보았을 때, 그 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경이로움과 흥분을 맛보며 스크린을 눈으로 뚫어버리기라도 할 듯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집에 한 대씩은 있었을 수퍼 8mm 카메라를 들고 널따란 교외 지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자신들이 흠뻑 섭취했던 문화 자양분을 바탕으로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그들의 꿈자락(당시엔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지언정)을 하나씩 하나씩 자아냈을 것이다. 길쭉하고 빨간 젤리를 서로 나눠 먹으면서.

흔히들 ‘떡밥의 제왕’이라 일컫는 에이브럼스지만, <수퍼 8>를 보면서는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별로 기대할 필요도 없고, ‘뭐가 있나~’하고 찾아볼 것까지도 없다. 이 감동적인 영화에서 고작 슬러쇼(왜 아니겠어?)니 뭐니 하는 걸 찾으려고 눈을 부라리고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사실 그보다 훨씬 많은 이런저런 것들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들이다). 에이브럼스의 전작인 <미션 임파서블 III>와 <스타 트렉>과 같이 놓고 보았을 때, <수퍼 8>에서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눈에 띈다. 어느 쪽이나 예전에 에이브럼스를 매료시켰을 미국의 대중문화 컨텐츠를 업데이트한 작품들이지만(이는 그의 TV 시리즈들도 마찬가지다), <수퍼 8>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듯한 고백적 성격이 더 강하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E. T.>가 한때 그랬듯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수퍼 8>는 <미지와의 조우>와 <E. T.>, 조금 더 나아가 <구니스>를 보면서 자란 세대들이라면 저절로 미소를 지을 만한 영화이다. 70년대라는 향수 어린 시대배경, 결손가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소년/소녀들이 환상적인 모험을 통해 서로, 또는 어떤 미지의 존재와 교감을 이루고 마침내 갈등을 해소하여 성장을 시작한다는 내용, 미국 대중문화의 풍부한 인용,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연출, 감각적인 시각효과 같은 것들 말이다. 말하자면 에이브럼스가 그 나이에 겪었을 법한 일상에 역시 그가 꿈꾸었을 법한 비일상적인 사건이 수퍼 8mm 카메라라는 매개체를 통해 결합한 이야기이자, 스필버그 영화를 사랑했던 세대에게 바치는 종합 선물 세트가 바로 <수퍼 8>인 것이다.

아아, 그래서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오래 전 살던 동네의 익숙한 골목길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야기가 흐르는 내내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잠시라도 지울 수가 없었다. 때로는 너무나도 즐거워서, 그럴 때마다 극장에서 주위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행동, 즉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기도 했다. 시작하면서 파라마운트 로고에 이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로고, 군데군데 존 윌리엄스나 제리 골드스미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마이클 지아키노의 음악, 역광을 활용하여 독특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스필버그의 전매특허격 연출을 변용한 화면, 그리고 비록 영화 속에서만 만날 수 있지만 나의 어린 시절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 아이들. 그 아이들이 무비 카메라를 들고 좀비 영화를 찍으며 주고받는 이야기들, 그 속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작지만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꿈. <수퍼 8>에는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바로 그 추억과 열정, 꿈이라는 요소에 이끌렸다. 에이브럼스가 이 영화를 만든 건 떡밥 따위가 아니라 바로 그것을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스크린 속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그 아이들을 보며 나는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어쩌면 아직 피어나지 못한 채로, 그 시절 그대로인 채로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영화 속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와 공명하며 마음 속에 약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남겼다. 무엇일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아직도 가슴 속을 울리고 있는 그 무언가의 모습을 찾으러 나만의 작지만 담대한 모험을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원제: Super 8
감독: J. J. 에이브럼스
주연: 조얼 커트니, 엘 패닝, 카일 챈들러, 라일리 그리피스, 라이언 리
북미 개봉: 2011년 6월 10일
한국 개봉: 2011년 6월 16일

[겟 스마트] (2008)

(C) Warner B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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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기관 ‘컨트롤’의 정보분석가 맥스웰 스마트(스티브 카렐 분)는 현장 요원을 지망하지만, 상관은 그의 분석 능력을 아껴 계속 내근으로 돌린다. 그러나 적 조직인 ‘카오스’가 컨트롤의 지하 기지를 습격하여 쑥대밭을 만들고 요원들의 정보를 훔쳐 공개해 버린다. 이에 신분이 노출되지 않았던 맥스웰이 현장 요원으로 차출되고, 성형수술로 신분을 감춘 베테랑 요원 99(앤 해서웨이 분)와 한 팀이 된다. 카오스는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콘서트장에 핵폭탄을 설치하고, 맥스웰과 요원 99는 테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겟 스마트>(Get Smart)라는 TV 시리즈가 있다는 건 16년 전 고등학교 시절에 처음 알았다. 당시 구독하던 [뉴스위크] 한국어판에 미래 기술을 예측한 대중문화의 여러 사례가 소개되었는데, 그 가운데 <겟 스마트>의 구두 전화기 스틸이 실렸던 것이다. 정장을 차려입은 주인공 첩보원이 밑창을 뜯어내어 기계 장치가 들여다보이는 검은 구두를 귀에 대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원작 TV 시리즈를 본 적은 없지만, 그 기묘한 부조화가 이끌어내는 우스꽝스러움은 알고 보니 <겟 스마트>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 새로이 만들어진 극장판 <겟 스마트>가 딱 그랬기 때문이다.

2008년판 <겟 스마트>를 감상하기 위해 원작 TV 시리즈를 줄줄 꿰고 있을 필요는 없다(가능하다면 당연히 그랬겠지만!).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딱딱한 권위와 첩보 영화의 규칙을 무너뜨릴 때 발생하는 웃음을 이해할 만한 감각만 있으면 누구든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 영화는 최근의 많은 리메이크나 시리즈 신작의 경향에 따라 주인공의 탄생 과정을 그렸다(프로듀서 찰스 로븐은 같은 컨셉트의 <배트맨 비긴즈>를 제작했으며, 이 영화에 한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다). 도입부 로비 장면에 나오는 전시된 자동차와 양복, 구두 전화 등이 예전 TV 시리즈의 소품이었고 나중에 뭔가 역할을 할 거라는 건 직감으로 알 수 있다. 굳이 사전 지식을 갖춰야 한다면 그 정도로 족하다.

러시아 시퀀스에서 전개가 조금 늘어지고, 유머가 먹히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앞뒤를 딱 맞춘 설정은 관객을 여러 차례 뒤집어지게 한다. 스티브 카렐은 정색을 하고 농담을 할 때 가장 웃기고, 주변 캐릭터의 묘사도 간결하지만 분위기를 이끄는 데 효과적이다. 빌 머리의 카메오는 최고다. 액션의 강도가 의외로 높아 스릴 넘치는 대목도 적지 않다. 다만, 화살이나 스테이플러가 얼굴에 박히는 등 종종 웃음을 싹 가시게 하는 냉혹한 묘사도 있다. 어쩌면 그러한 표현 수위의 간극이나 충돌조차 이 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일 텐데, 받아들일 것인지는 전적으로 관객의 취향에 달렸다. 그렇다고 <겟 스마트>가 수준급의 오락영화라는 사실까지 바뀌지는 않으니 안심하시라.

원제: Get Smart
감독: 피터 시걸
주연: 스티브 카렐, 앤 해서웨이, 드웨인 존슨, 앨런 아킨, 테렌스 스탬프
북미 개봉: 2008년 6월 20일
한국 개봉: 2008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