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닥터 페퍼’ 고지라 광고

앞서 소개한 ‘스니커즈’ 고지라 광고를 보고 나니, 예전 ‘닥터 페퍼(Dr. Pepper)’ 고지라 광고도 떠오르길래 함께 이야기해 본다. 먼저 광고부터 확인하시라.

이들 광고는 1984년작 <고지라>의 북미 개봉판인 <고지라 1985>와 타이업한 것이다. <고지라 1985>는 <고지라>에 미국인 배우들을 기용하여 새로이 촬영한 장면을 삽입, 재편집한 버전. 고지라 시리즈 제1편인 1954년작 <고지라>가 2년 뒤인 1956년 같은 방법으로 재편집되어 <괴수왕 고지라>라는 제목으로 북미 개봉했던 전례를 그대로 따랐다.

실제로 84년판 <고지라>는 54년판 <고지라>의 직계 속편으로 설정되었고, 마찬가지로 <고지라 1985>도 <괴수왕 고지라>의 속편으로 만들어졌다. <괴수왕 고지라> 북미 촬영 장면에 주인공 스티브 마틴 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레이먼드 버가 <고지라 1985>에도 같은 배역으로 다시 출연하여, 극중 미군의 컨설턴트로 활약한다.

닥터 페퍼는 <고지라 1985>의 스폰서로서 미국인 배우들의 새 촬영분에 PPL로 참여하였고, 개봉을 전후한 홍보에도 나섰다. 위에 소개한 광고는 그 일환이었던 것이다. 영화 본편에도 등장인물들이 닥터 페퍼를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고지라 1985>의 북미 배급사는 로저 코먼 감독의 뉴 월드 픽처스였다. 여러 모로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맨정신으로는 다소 보기 힘들 수 있는 관련 영상을 하나 감상하며 끝낼까 한다. <고지라 1985>의 러브 테마로 사용된 “I Was Afraid to Love You”라는 곡의 뮤직 비디오이다. 문제는 곡이 영화의 분위기와 전혀, 절대로, 완벽히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나름대로 심각하지만, 노래는 밝고 코믹하기까지한 것이다. 이 부조화는 가히 흑역사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죄의식을 동반한 즐거움을 원한다면 한번 보시라 :^) 여기에도 물론, 닥터 페퍼의 흔적이 있다.

출처: 유튜브

‘스니커즈’ 고지라 광고

마즈 주식회사의 유명한 초코바 브랜드 스니커즈(Snickers)의 새 광고에 고지라가 등장하였다.

두 종류의 광고가 나와 있는데, 두 번째 ‘확장판’에는 미공개 컷이 하나 추가되어 있다.

(광고 영상은 현재 비공개)

스니커즈는 ‘배가 고프면 당신은 평정을 잃습니다’를 중요한 광고 컨셉트로 표방하고 있는데, 이번 광고는 ‘만일 스니커즈가 없어 고지라가 배고파진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였다. 배가 고파 짜증이 난 고지라는 엄청난 재난을 초래할 수도 있는 존재. 그러니 스니커즈는 인류를 재난으로부터 지켜줄 수도 있는 멋진 간식이라는 것을 이 영상은 유쾌하게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 광고는 5월 개봉하는 헐리우드 리메이크로 고지라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에 편승한 것이다.

광고 속 고지라는 두툼한 눈두덩 때문에 <모스라 대 고지라>(1964)에 등장하여 유명해진 통칭 ‘모스고지’와 비슷해 보인다.

스니커즈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홍보 이미지도 확인하시라.

(C) Mars, Inc.
(C) Mars, Inc.
(C) Mars, Inc.
(C) Mars, Inc.
(C) Mars, Inc.
(C) Mars, Inc.
(C) Mars, Inc.
(C) Mars, Inc.

출처: 스니커즈 공식 유튜브 채널, 스니커즈 공식 페이스북

[가디언의 전설] (2010)

(C) Warner Bros. Pictures
(C) Warner Bros. Pictures

‘영상은 좋지만, 이야기가 약하다.’ 광고나 뮤직 비디오 업계에서 영화로 건너온 감독들의 작품을 평할 때 관용구처럼 쓰는 표현이다. 이 표현은 짧은 시간 안에 이미지와 그 속의 메시지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이들 매체와 좀 더 긴 호흡으로 이끌어야 하는 영화 사이의 큰 차이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사용되어 왔지만, 때로는 이 분야 출신 감독들이 ‘이야기를 다룰 줄 모른다’는 편견이 개입되어 종종 남용되기도 했다. 물론 그러한 편견에 값하는 영화들도 있기는 했다.

<가디언의 전설>(Legend of the Guardians: The Owls of Ga’Hoole)을 연출한 잭 스나이더 감독도 광고를 통해 유명세를 얻으며 영화계로 넘어왔다. 그렇지만 스나이더는 영상과 이야기를 독특한 감각으로 결합한 작품을 선보이면서 오히려 주목을 받아왔다. 데뷔작인 <새벽의 저주>부터 바로 전 작품인 <워치멘>까지, 스나이더는 폭발하고 질주하는 듯한 이미지를 살린 인상적인 장르영화를 만들었다. 관람 전까지 그 높은 기대치만큼이나 나를 불안하게 했던 <워치멘>만 해도, 스나이더는 복잡한 플롯과 강렬한 정치적, 시대적 메시지에 전혀 주눅들지 않은 채 그래픽 노블보다 더 그래픽 노블다운 영화, 이미지가 내러티브이고 내러티브가 이미지인 영화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3D 애니메이션 <가디언의 전설>도 영상의 질 만큼은 독보적인 수준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 영화의 화면은 3D 영화의 새로운 경지에 ‘거의’ 근접했다. 올빼미들은 문자 그대로 얼이 빠질 만큼 사실적이다. 공들여 작업한 흔적이 너무나도 확연히 드러나는 올빼미들의 컴퓨터 그래픽은 정교한 3D 효과와 결합하여 경이로운 실재감을 창출해 낸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저렇게 인간과 똑같은 수준의 지능과 감정을 가졌고, 갑옷과 무기를 만들 줄 알며, 마법과 신화와 역사가 혼재된 시간을 사는 특별한 올빼미들이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덧붙여 3D 입체영상이라는 마술은 관객이 올빼미와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여기에 아이맥스 대형 화면이 곁들여진다면 그 효과는 다섯 배쯤 더 난다). 3D 비행 장면 연출에 한 획을 그었던 <드래곤 길들이기>의 박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유감스럽게도 <가디언의 전설>에서 스나이더의 연출은 나사가 빠져 있다. 이야기의 큰 틀은 그럭저럭 유지되지만, 군데군데 필요하다 싶은 내용이 생략되어 있다. 때로는 마땅히 A에서 B를 거쳐 C로 넘어가야 할 대목을 A에서 C로 어물쩍 뛰어넘어 버린다. 어떤 장면들은 연결이 퍽 어색하고 지나치게 편의적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이야기는 압도적인 박력을 선보인 영상과 제대로 융합하지 못한 채 계속 겉돈다. 그렇다고 흥미롭거나 좀 튀는 캐릭터가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렇고 그런 족속뿐이다. 그런 캐릭터들이 이미 앞일이 빤히 내다 보이는 정해진 길을 따라 가면 모든 일이 너무나 쉽게 해결되어 버리니, 마음 속에 남는 여운이 옅을 수밖에 없다.

각색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세 권 분량의 원작을 한 시간 반이 조금 넘는 영화로 줄이자니 가지치기가 상당히 많았으리라.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살이 다 발려지고 뼈만 남은 꼴이 되었다. 가족 관객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임을 감안하더라도, <가디언의 전설>은 얼개만 간신히 남은 영웅신화이다. 그리고 ‘영상은 좋지만, 이야기가 약하다’는 평을 들을 만한 영화이다. 본편 상영 전에 선보였던 ‘로드 러너’ 단편이 똑같이 단순한 이야기임에도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으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원제: Legend of the Guardians: The Owls of Ga’Hoole
감독: 잭 스나이더
주연: 짐 스터지스, 휴고 위빙, 에밀리 바클레이, 애비 코니쉬, 라이언 콴튼
북미 개봉: 2010년 9월 24일
한국 개봉: 2010년 10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