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 대 고지라] 1963년 국내 개봉설에 관하여

한겨레와 네이버가 제휴한 영화 전문 매체 ‘씨네플레이’에 오늘 이런 글이 올라왔다는 지인의 제보를 받았다.

https://m.blog.naver.com/cine_play/222283643920


이달 25일로 예정된 <고지라 대 콩>(Godzilla vs. Kong) 국내 개봉에 편승하여, 실은 고지라와 콩은 1962년 <킹콩 대 고지라>에서 맞붙은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이 영화는 1963년 1월 국내 개봉했으며 국내 최초로 상영된 일본영화라는 것이다.

괴수영화를 잘 모르거나 즐기지 않는 관객에게 <킹콩 대 고지라>는 금시초문이겠지만, 괴수 팬들에게는 기본 상식이자 필수 감상작이니 여기서 상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킹콩 대 고지라>의 1963년 1월 국내 개봉설이다. 이 글의 필자 이하영 씨는 <킹콩 대 고지라>의 국내 개봉이 미국영화로 위장한 우회 개봉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아울러 <킹콩 대 고지라>는 이후 <킹콩 최후의 결전>이라는 제목으로 비디오 출시가 되었는데, 감독과 배우의 이름을 엉터리로 표기하고 한국어 더빙을 해서 헐리우드 영화로 둔갑했다고 적었다.

<킹콩 최후의 결전> 비디오에 대한 내용은 사실이다. 나는 그 비디오카세트를 갖고 있고 본편도 직접 보았다. 일본영화가 아직 개방되지 않았던 시절, 일본영화를 헐리우드영화인 양 위장하여 극장에 걸거나 비디오로 출시한 일이 종종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재미있게도 고지라 시리즈에는 <킹콩 최후의 결전> 말고도 그러한 위장, 우회 배급의 예가 또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킹콩 최후의 결전] VHS 비디오카세트. 개인 소장품. 1990년 동아미디어 출시.
[킹콩 최후의 결전] 타이틀 화면. 위 사진의 VHS 캡처. (C) Toho Co., Ltd. / Universal Pictures / John Beck / RKO General Pictures

그렇다면 <킹콩 대 고지라>의 1963년 1월 국내 개봉설을 따져 보자. 정부가 외국영화 수입을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했고 일본영화 수입은 아예 금지하고 있던 1960년대 초반에 어떻게 <킹콩 대 고지라>가 한국에 개봉할 수 있었을까? 시대상에 비추어 봤을 때 그럴 법하지 않은 주제에 대해 글을 쓰려면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하영 씨의 글에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먼저, 이하영 씨는 <킹콩 대 고지라>가 한국에 수입되었다는 ‘근거’로 유니버설을 통해 미국에 상영되었으니 그걸로 우회하여 수입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리고 1990년 비디오로 출시된 <킹콩 최후의 결전>은 유니버설이 배급한 헐리우드 영화로 검열 당국을 속이기 위해 감독과 출연진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꾸고, 한국어 더빙까지 했다고 역시 ‘추정’한다. 여기까지 나열한 것 가운데 맞는 것은 감독과 출연진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꾼 것이 전부다(위 비디오카세트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듯이). 나머지가 몽땅 ‘추정’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미국에서 유니버설이 배급한 <킹콩 대 고지라>는 서양인 배우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새로이 촬영, 삽입하고 재편집과 영어 더빙을 하여 대대적인 현지화를 거친 별도의 판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비디오로 출시된 <킹콩 최후의 결전> 역시 이 미국 개봉판을 바탕으로 다시금 재편집과 한국어 더빙을 거친 또 하나의 판본이라는 것. 그렇지만 이하영 씨의 글에는 <킹콩 대 고지라>가 미국에서도 상영되었다고만 했지, 현지화된 판본으로 공개되었다는 언급은 없다. 배경을 모르는 독자는 오리지널 일본판이 그대로 미국에서 상영되었고, 그것이 한국으로 넘어왔을 거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물론 <킹콩 대 고지라>는 미국과 일본의 대표 괴수의 격돌을 그린 영화이므로 일본 원판에도 서양인 배우가 몇 명 출연하긴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본을 주된 무대로 한 일본영화이므로 일본 배우들의 출연 장면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반면 유니버설의 미국 공개판은 다른 서양인 배우들과 함께 상당한 재편집을 통해 일본 장면 분량을 크게 줄였고 영어 더빙까지 되어 있다. 만일 일본판 그대로였다면 <킹콩 최후의 결전> 비디오 출시 당시 감독과 배우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꾸는 것 정도로는 절대로 당국을 속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건 두 판본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간단히 논파할 수 있다. 두 판본 다 양국에서 블루레이 디스크와 DVD로 나와 있으니 궁금하면 구해 보시라. 해외 직구가 가능한 세상에 못할 일이 뭔가? 뿐만 아니라 미국판은 국내 케이블 채널 아시아 M에서 가끔 틀어 주기까지 한다.

미국판에 새로 촬영되어 삽입된 장면 중 하나. 2021년 1월 13일 아시아 M 방영 녹화본 캡처. (C) Toho Co., Ltd. / Universal Pictures / John Beck / RKO General Pictures

또 한 가지, 이하영 씨는 <킹콩 대 고지라>의 국내 개봉 시기가 1963년 1월이라고 추정,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공개판 <킹콩 대 고지라>의 개봉일은 1963년 6월 26일이다. 1년에 수입 허용되는 외국영화 편수가 정해져 있었고, 영화사가 외국영화를 수입하려면 한국영화를 의무 제작하여 정부의 ‘쿼터’를 얻어야만 했던 시대에, 놀랍게도 일본 괴수영화의 미국 공개판이 미국보다 5개월이나 앞서 개봉했다고?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그럼 도대체 1963년 1월에 국내 개봉했다는 정보는 어디에서 나온 걸까?

궁금증은 의외로 금세 풀렸다. 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IMDb)의 <킹콩 대 고지라> 항목에 이 영화의 한국 개봉일이 1963년 1월 5일(!)로 게시되어 있던 것이다. 게다가 구글에서 <킹콩 대 고지라>를 검색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다. 아마도 필자는 이 자료에 기반하여 이른바 ‘국내 개봉설’을 주장한 것 같다. 하지만 유저가 직접 정보를 올릴 수 있는 IMDb의 특성상 틀린 정보가 게시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IMDb에 <킹콩 대 고지라> 한국 개봉일 정보를 근거 부족으로 삭제 요청해 두었으니, 기록을 위해 캡처 화면을 첨부해 둔다.

2021년 3월 22일 캡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검색해 봤지만 관련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1963년 1월 5일 신문 영화 광고란을 살펴도 <킹콩 대 고지라>는 없었다. 어렵사리 수입한 외국영화이니 당연히 신문에 광고를 내서 관객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모아야 할 텐데 어디에도 그런 흔적이 없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킹콩’과 ‘고질라’ 또는 ‘고지라’로 검색해도 관련 정보는 없었다.

학자의 연구를 위한 자료 검색이나 추적도 아니고, 이 정도만 찾아 봐도 <킹콩 대 고지라>의 1963년 1월 국내 개봉설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주장이다. 씨네플레이의 글에 주장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으니 더더욱 그럴 만하다. 게다가 아래 본문을 꼼꼼히 읽어 보면 우회 개봉이라는 편법을 썼을 것이라는 설명을 먼 훗날인 1990년 출시된 비디오에 대한 설명과 뭉뚱그려서 얼핏 주의깊게 읽지 않으면 1963년의 일을 1990년의 일로 대충 얼버무렸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필자 스스로도 주장에 대한 근거를 댈 수 없거나 자신이 없으니 이렇게 써 놓은 것이 아닐까?
1963년 국내 개봉설보다는 지엽적인 내용이지만, 킹콩이 승리했다는 서술도 틀렸다. 일본 원판은 무승부로 처리했고 미국판은 승부를 모호하게 얼버무렸다. 실은 <킹콩 대 고지라> 오리지널 일본판에서는 고지라가, 미국판에서는 킹콩이 각각 승리한다는 2가지 결말에 대한 도시전설이 오랫동안 나돌았다. 지금은 정보 격차의 해소 및 홈 비디오의 보급으로 이미 논파된 지 오래이며, 요즘 덕질하는 괴수 팬들은 쉰 떡밥이라며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본편의 묘사에 따르면 일본판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킹콩을 보여주면서 킹콩과 고지라의 울음소리를 차례로 삽입하여 무승부임을 암시했고, 미국판에서는 고지라의 울음소리가 삭제된 대신 ‘고지라가 흔적없이 사라졌다’는 대사로 승부를 모호하게 처리했다. 결말은 하나 뿐인데 그 처리와 해석에 차이를 둔 것이다.

필자 이하영 씨는 하하필름스의 대표이자 [영화 배급과 흥행]이라는, 국내에서는 드물게 배급이라는 주제를 다룬 책을 내기도 했다. 영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급은 어떻게 기능하는지 등에 대해서 일개 팬인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경험과 식견을 지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개 팬이 봐도 의아함을 감출 수 없는 근거가 전무한 주장을 접하고 나니 필자가 고지라와 킹콩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데다가, <킹콩 대 고지라> 본편을 보지도 않았을 거라는 심증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 이 글은 결과적으로 <고지라 대 콩>과 <킹콩 대 고지라>를 처음으로 접하게 될 관객을 호도하고 말 것이다. 이 영화의 2가지 결말설이 한 잡지의 잘못된 글로 인해 수십 년동안 나돌았던 것처럼 말이다. 괴수영화, 특히 고지라 시리즈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유감을 금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킹콩 대 고지라>가 1963년 1월 한국에 개봉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 정도는 믿고 싶다. 오랜 세월이 지나 새로이 발굴, 발견되는 유물이나 사실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는 것이며 나도 그 정도는 흥미를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하영 씨의 글 제목을 인용해 본다.

‘<킹콩 대 고질라> 1963년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적이 있다?’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내가 그 주장을 받아들이게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근거를 대라.

4 thoughts on “[킹콩 대 고지라] 1963년 국내 개봉설에 관하여”

  1. 이번 기회를 통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좀 뒤졌는데
    62년 5월에 아시아 영화제를 서울에서 했었는데 일본에서 특촬영화의 출품은 없었습니다.
    대신 귀중한 정보를 얻게 되었는데
    72년 5월에 다시 아시아 영화제를 서울에서 개최를 하였습니다만 이때
    괴수총진격, 남해의 대괴수를 일반 관람에게도 제한 상영을 했네요
    그리고 63년 5월에 “킹·콩과 고릴라”라는 오타로 짧막하게 영화를 소개했네요
    사실 킹콩도 명칭이 일본식이라 킹그콩그 킹구콩구 전부 제각각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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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영화제에 대해서는 저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63년 5월 킹·콩과 고릴라’는 찾지 못했었네요. 귀중한 정보 감사합니다.

      ‘킹그콩그’였던가, 여하튼 카타카나식으로 검색해서 일제강점기 때 33년판 <킹콩>에 대해 언급했던 기사를 찾은 적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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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도 방금 네이버 메인에 저 포스트를 보고 놀랐습니다.
    진짜 개봉했었다면 괴수팬들은 다 알고잇었을텐데? 싶었거든요.
    혹시몰라 인터넷검색, 옛날신문 아카이브 뒤져보며 찾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사실일지 아닐지 모를 이야기가 포털메인에 있어서 이상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네요…
    일찌감치 고지라같은 영화들이 수입되었다면 정말 극장개봉했을지도 모를일일테니 말이죠.
    좁디좁은 괴수팬덤 크기까지 커졌을지도 모르는건 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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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알려져 있고, 축적된 역사와 자료가 풍부한 작품이나 장르에 대해서도 낭설이나 날조를 퍼뜨리길 서슴지않는데, 그렇지 않은 작품/장르이니 더욱 얕잡아본 결과가 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전문가라는 필자께서 말이죠. 그런 글이 네이버 메인에까지 올라 있다니 착잡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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