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 (2014)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C) Warner Bros. Pictures / Legendary Pictures / Toho Co., Ltd.

단도직입적으로, 2014년도 헐리우드판 <고지라>(Godzilla)는 진짜 고지라 영화이다. 그것도 일본 오리지널 시리즈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수작이다. 적어도 우리는 이 리메이크에서 진품의 흔적을 애써 찾느라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아도 된다.

<고지라>가 담아내려는 스펙트럼은 태산 만한 괴수 그 자신만큼이나 크고 넓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1954년 공개된 역사적인 오리지널 영화의 재해석이다. 원작의 고지라는 바닷속에 잠들어 있던 고대생물로서, 핵실험의 부산물인 방사능을 몸에 축적하게 되자 그에 응징하듯 인간 문명을 파괴한다. 그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겪은 일본의 핵과 전쟁에 대한 공포의 반영이었다.

리메이크는 기본 설정을 몇 가지 바꾸기는 했으나, 오리지널의 주제 의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이를 21세기 현재의 방식으로 제시한다. 여기에 후쿠시마와 인도양 등 실제 재난/인재에 대한 언급이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다. 1954년 <고지라>를 본 관객들이 불과 9년 전 히로시마/나가사키를 연상시키는 묘사에 몸서리를 쳤듯이, 60년 뒤의 우리 역시 몇 년 지나지 않은 미증유의 재난이 스크린에 재현되는 것을 보며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로이 서술된 고지라의 기원은 오리지널의 핵심을 더욱 더 확장한다. 이번 고지라는 태곳적 더 강력했던 자연 방사능에 의해 태어난 괴수이다. 그리고 파괴자의 역할은 무토(MUTO)라는 다른 괴수가 맡는다. 무토는 방사능을 양분으로 삼고 전자기파를 일으켜 소통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류 문명의 필수 요소인 전기를 차단하는 재앙을 불러 온다. 당초 인간은 고지라를 위협 대상으로 인식하여 그를 제거하고자 핵을 썼다. 고지라는 살아남았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무토인 것이다.

고지라는 파괴자인 무토를 제거하여 자연계의 균형을 맞추려는 지구의 어떤 의지, 더 나아가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물론 인간을 지킨다는 것은 그의 사전에 없는 말이다. 결국 인간은 고지라와 무토 양쪽으로부터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오리지널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좀 더 독하게 전달했다고 할까. 그렇다고 리메이크의 고지라가 그답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고지라 시리즈는 오랜 역사를 지녔고,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때때로 영웅적인 모습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지라가 지닌 여러 가지 얼굴의 하나이다. 따라서 고지라의 몇몇 특징적인 설정이 바뀌었을 지언정, 오리지널 <고지라>의 정수를 잃지는 않았다. 오히려 재해석을 통해 그것을 계승, 확장했다는 데 이 영화의 의미와 가치가 있고, 동시에 그것은 제작진의 원전에 대한 존중을 증명하기도 한다. 고지라 시리즈의 팬으로서 이것은 기쁜 일이다.

새로운 고지라는 그동안 발전한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 기술이 아낌없이 동원되었고, 개렛 에드워즈 감독만의 독특한 감각도 더해져 컴퓨터 그래픽임에도 실사 특촬을 능가하는 중량감과 거대감, 그리고 보는 이를 내리누르는 듯한 엄청난 존재감을 표현한다. 이 시각효과의 박력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수준이다. 아이맥스의 거대한 스크린과 첨단 사운드 시스템이 결합한 고지라의 포효는 아찔하고, 푸른색 방사열선을 토하는 모습은 장쾌하다. 업그레이드된 영상 기술과 함께 그 특징을 신중하게 살려낸 2014년판 고지라의 이미지는 원조보다 더 원조 답다. 시리즈의 휴면기였던 지난 10년 동안 목말랐던 팬들의 가슴은 이 영화로 촉촉히 젖게 될 것이다.

반면, 그 기대만큼 영화의 전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지라>의 인간 드라마는 근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경향을 충실히 따라 극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적어도 초반 1시간 동안은 방사능 누출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처럼 보일 정도다. 고지라와 무토가 나타난 뒤에도, 괴수 장면과 인간 장면의 잦은 교대 배치로 인해 괴수들의 싸움은 고조될 만하면 끊기고, 또 끊기기를 반복한다. 장면 하나하나의 질은 매우 높지만, 대체로 고지라의 등장은 클라이맥스를 제외하면 충분하다 싶을 정도가 못 된다.

캐스팅의 화려함을 중시하는 재난영화의 전통을 따른 듯, <고지라>의 배우들은 모두 인상적인 커리어를 지닌 신진과 베테랑이다. 애런 테일러 존슨은 육체적인 도전을 묵묵히 감내하지만 연기는 무덤덤하다. 그런 이미지가 이런 작품에 어울리기도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그에게 부족한 섬세한 감정 표현은 부인 역으로 분한 엘리자베스 올슨의 몫인데, 출연 분량과 인물로서의 비중이 너무 적다. 이 배우의 잠재력을 아끼는 팬들은 유감스럽겠다. 브라이언 크랜스턴과 데이비드 스트래턴은 주어진 역할을 정확히 해낸다(크랜스턴은 조금 감정 과잉인 느낌이 있지만). 와타나베 켄은 괴수영화의 필수적 인물인 과학자 역할을 힘없이 소화하지만, 오리지널에서 따온 극중 이름 ‘세리자와’다운 면을 조금은 나누어 갖고 있다. 고지라와 무토에 대한 비현실적인 설정 해설을 본고장 일본 출신의 와타나베와 신뢰감을 주는 배우 샐리 호킨스에게 할애한 것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줄리엣 비노쉬는… 정말 잠깐 나온다.

그밖의 몇 가지 점을 지적하자면, 적 괴수인 무토의 디자인과 설정을 들 수 있다. 무토는 <클로버필드>의 이름 모를 그 괴수와 오르가, 프테라노돈, 나방, 순록을 뭉뚱그린 듯한 외형이며 생태는 레기온을 연상시킨다. 더 나아가 놈을 격퇴하려는 군사 작전의 묘사에서는 헤이세이 가메라 3부작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고지라의 모호한 영웅적 위치 역시 어떤 면에서는 헤이세이판 가메라와 비슷하다. 괴수끼리의 대결을 비롯하여 가족 및 일상생활의 묘사, 얼핏 황당해 보이지만 극중의 논리로는 자연스러운 대 괴수 퇴치/회피 작전 등은 오리지널과 그 뒤를 이은 고지라 시리즈에 대한 애정 어린 오마주이다. 아울러 이 대목은 과거 B급영화로 취급 받았던 고지라 시리즈/괴수영화 전반의 흥취를 재현한 듯한 느낌도 든다. 이것 말고도 괴수/특촬영화를 즐겨 온 팬들이 찾아내어 씹고 뜯고 맛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작품 전반에 흩어져 있다.

이 모든 것을 한 편의 영화에 담으려는 거대한(동시에 넘칠 듯한 애정의) 야심은 대체적으로 준수한 결과로 수렴되었지만, 그럼에도 각본의 완성도 문제와 결정적인 카운터펀치라고 할 만한 것이 맨 끝에 가서야 나온다는 이 영화 최대의 단점을 낳기도 했다. 초반의 굉장한 몰입감은 중반부의 갈팡질팡하는 전개로 다소 지루해지고 처진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영화의 괴수 장면은 중요하며, 그 하나하나가 영화의 구조적 단점을 잊게 할 만큼 너무나도, 너무나도 뛰어나다. 이런 진부한 강조 수식어를 많이 쓰고 싶진 않았지만 고지라는 정말 제대로 그려냈다. 어쩌면 고지라 팬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명백한 사실은 이 리메이크를 통해 고지라가 부활을 완수했다는 것, 그것이다. 개렛 에드워즈 감독은 사기를 치지 않고 이 어려운 프로젝트에 정면으로 부딪혔으며,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행복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행복하다. <고지라>가 괴수왕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감히 믿는다.

별점: ***1/2 (만점은 넷)

원제: Godzilla
감독: 개렛 에드워즈
주연: 애런 테일러 존슨, 브라이언 크랜스턴, 엘리자베스 올슨, 와타나베 켄, 샐리 호킨스, 줄리엣 비노쉬, 데이비드 스트래턴
개봉일: 2014년 5월 15일 (한국) / 5월 16일 (미국)
공식 웹사이트: godzillamovie.com

P. S: 앞서 알려진 바로는 1954년판 <고지라>의 주연 타카라다 아키라가 출연한다고 했는데, 나는 영화 속에서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출연 장면이 삭제되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혹시 일본 개봉판에만 나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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