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고지라] (2016)

(C) Toho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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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뜻을 담고자 일부러 카타카나로 표기했다는 <신 고지라>(シン・ゴジラ) 원제의 ‘신’은 우선 ‘新’이다. 지금까지 고지라 시리즈 28편은 거의 모두가 1954년판 제1편 <고지라>의 직계 속편이거나, 이 영화의 극중 사건, 즉 방사능을 축적한 거대 괴수 고지라의 일본 상륙 및 습격을 전제로 해 왔다. 반면 <신 고지라>는 최후의 보루였던 원조마저 없었던 일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완전히 새로운 고지라 영화이다. 만일 2016년 현재(극중 시점이자 일본 개봉 당시) 일본에 인류의 상식을 초월한 거대 괴수가 나타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 네르프도 에반겔리온도 없는 현실에 갑자기 사도가 나타난다면 이 세계는 대체 어떻게 변하고 말 것인가.

바로 그 ‘에바’를 만들었던 안노 히데아키 총감독과 히구치 신지 감독 겸 특기감독이 이 질문에 답하는 방법은 자못 과감하다. 시리즈의 기존 작품이 고지라 문제에 대처하는 평범한 민간인이나 과학자, 군인, 정치가 등 사회 각계를 비교적 공평한 비중으로 묘사했던 데 비해, <신 고지라>는 민간인 측을 좀처럼 조명하지 않고 정부 쪽으로 시선을 고정한다. 얼핏 이 영화는 거대 괴수의 습격을 상정한 정부의 대응 시뮬레이션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촘촘하게 얽힌 관료주의 조직으로서 규정과 방침에 따르기만 한다면 잘 굴러갈 것만 같던 일본 정부는 고지라라는 불가해한 존재 앞에서 헛발질을 거듭한다. 회의를 열지 않으면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복잡한 절차와 의전에 집착하며, 행동에 나서기보단 책임 소재를 따지는 데 급급한 정치가들이 관료주의의 패악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 사이에 초동 대응을 위한 시간까지 집어삼킨 고지라는 일본을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만큼 망가뜨린다.

63년 전 공개된 원조 <고지라>의 주제는 전쟁과 핵무기에 대한 경고와 반대였다. 핵실험과 방사능을 짐승의 거대화 원인 이상으로 활용하는 데 인색했던 여타의 당대 괴수영화와는 달리, <고지라>는 이 주제를 대단히 진지하고 올곧게 유지하여 시대를 뛰어넘은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후 속편이 계속 나오면서 희석되거나 아예 사라졌을 때도 있을지언정,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로서 <고지라>의 가치는 언제나 유효하다. <신 고지라>는 고지라로 촉발된 일본 정부의 기능 부전을 통해 원조의 주제의식을 계승하면서 과거의 그 전쟁에 버금가는, 아니, 후대에 끼칠 악영향이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할 근래의 재난을 말한다.

영화의 세 주역은 미증유의 재난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을 대표한다. 야구치 란도(하세가와 히로키 분)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을 지키는 일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우직하게 밀어붙이고,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카요코 앤 패터슨(이시하라 사토미 분)은 일본이 그가 전달하는 뜻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길 바란다(다만 그는 처음부터 야구치에게 협조적이었고, 고지라 격퇴를 위해 UN 다국적군이 핵공격을 한다는 극약처방이 떨어지자 일본계인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며 야구치와 손잡는다). 한편 관료주의의 품에 안겨 그 논리 대로 움직이는 아카사카 히데키(타케노우치 유타카 분)는 야구치를 견제하며 국민보다 국가의 존속을 더 중시한다.

각자의 관점이 서로 맞부딪치는 가운데 결국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고 행동하여 최악의 사태를 막은 인물은 야구치이다. 그가 이끄는 대책본부에 모인 자들은 하나같이 조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오타쿠 성향을 지닌 괴짜들이지만, 이상주의자가 아닐까 싶을 만큼 일직선인 야구치의 주도로 하나의 목적을 향해 무섭게 힘을 모아 간다. 다가오는 파국 앞에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고자 분투하는 야구치와 카요코, 대책본부 사람들의 모습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며, 앞서 참담하게 드러났던 관료주의 패악의 대안으로 제시된다.

안노와 히구치 두 감독은 건전한 사고방식과 단결력을 갖고 딱 부러지게 일할 줄 아는 젊은 세대에게서 일본의 미래를 보았던 것 같다. 비록 동결되었지만 소멸하지 않고 토쿄 한복판에 남게 된 고지라는 일본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이제는 재난이 할퀴고 간 커다란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는 변화된 현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고지라를 막아낸 그들이 있다면 우리는 희망을, 미래를 계속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신 고지라>는 전작의 안이한 재탕에 그치지 않고 살아 숨쉬는 현재성을 지닌 드라마로서 원조 이래 가장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영화 밖 현실의 그 재난이 벌어진 뒤 드러난 선진국이자 문명국가라는 일본의 민낯이란 과연 어땠는가. 세월호를 경험한 한국의 관객에게도 그것은 전혀 낯선 광경이 아니었다(짤막하게나마 휴대전화로 찍은 사고 현장의 영상들이 나왔을 때 나는 가슴이 섬뜩하고 먹먹해졌다).

다른 한편으로 <신 고지라>는 모든 고지라 시리즈를 총괄하여 재해석한 작품이라고도 하겠다. 안노와 히구치 두 감독은 현재와 과거의 토호 로고를 덧대어 보여 주는 걸로 모자라, 새파란 화면에 하얀 글자가 인상적인 ‘토호 영화 작품’ 로고까지 끼워넣는다. 고지라 팬에게 식사 전 한 모금 마시는 물이라고 할 이 화면들조차 그 거대한 녀석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이다. 뒤이어 스크린에 펼쳐지는 특촬의 향연은 몹시도 독특하다. 하나의 장면에서조차 특촬의 현재와 과거가 혼란스러울 만큼 뒤얽혀 있고 엄청난 양의 정보로 채워져 있다. 특촬이라는 문화를 전수하고 보존하려는 안노의 몸부림이 느껴지는 것만 같은 <신 고지라>의 영상은 한 번의 관람만으로는 도저히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다.

12년 만에 휴면에서 깨어난 2016년판 고지라는 원조 일본판 시리즈 최초의 풀 CG 고지라이면서도, 그 움직임과 질감은 수트메이션을 강하게 의식한 것이다. 동작에 따라 천천히, 미세하게 흔들리는 고지라의 머리와 손목을 보라. 애니메이션으로 이야기하자면 마치 초대 고지라를 최신 작화로 구현했다고 할까. 수폭실험의 버섯구름이 그대로 굳어져 생명을 얻은 것 같은 고지라의 조형을 보노라면, 혼다 이시로 감독과 츠부라야 에이지 특기감독이 초대 고지라를 어떤 이미지로 구상했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에 비하면 고지라가 급속히 진화하여 형태를 바꾸어 간다는, 역시 처음 도입된 설정은 그저 지엽적인 요소로 여겨진다.

고지라가 땅을 디디는 굉음에 놀라 날아가는 새들과 강력한 진동에 줄을 지어 떨어져 내리는 기왓장, 도로의 자동차들을 사방으로 튕겨 날리며 전진하는 고지라 제2형태의 앞모습을 도로 양쪽 건물들 사이에 비좁게 밀어넣고 포착한 컷, 붕괴하는 건물 내부의 기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부서지는 광경, 건물 위 머리만 보이는 고지라를 원경으로 잡은 컷, 철교의 철근 구조물 너머로 보이는 고지라를 담은 화면 등은 아날로그 특촬의 구도와 미장센 그대로이고, 쇼와 고지라 영화와 기타 특촬영화의 음악과 효과음(고지라의 울음소리와 걷는 소리, 자위대 병기의 포격음, 착탄음, 폭발음 등)까지도 고스란히 사용했다. 이는 안노 총감독이 예전에도 종종 했던 연출이지만 <신 고지라>에서는 한층 본격적이다. 무인 열차를 폭탄으로 활용한다는 작전은 기존 작품에서 고지라가 기차를 박살냈던 묘사를 뒤집은 것이다. 고지라 대책을 세우는 과정이 에반겔리온의 야시마 작전과 비슷하다지만 그 야시마 작전도 <고지라 대 헤도라>와 연결된다. 그 시절 특촬의 맛과 향이 살아 있는 화면에 이후쿠베 아키라의 장쾌한 구작 음악과 사기스 시로의 음울한 신곡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입혀져 있다.

고지라가 1954년의 초대를 바탕으로 했다면, 이야기의 틀은 이전까지 정치권을 가장 비중 있게 다루었던 1984년판 <고지라>를 연상시킨다. 다른 토호 특촬영화, 특히 <일본 침몰> 등 1960-70년대 대작 재난영화와 SF영화의 이미지도 선한데, 극의 흐름과 편집은 안노 총감독 특유의 템포를 타 매우 빠르고 유연하며 몰입도도 강하다. 300명이 넘는 배우들이 몰려나와 전문용어를 긴 대사에 담아 읊고 복잡한 내각과 군대의 온갖 시행 절차를 훑어가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이다. 안노 총감독의 전작이나 그가 좋아하는 작품도 많이 인용 및 변주했다. 토쿄를 불바다로 만든 고지라가 화염을 등지고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면서 사도를 떠올리지 않을 관객은 없을 것이다. 작전을 짤 때 에반겔리온의 유명한 테마가 울려퍼지는가 하면, 주요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설정은 안노 모요코의 만화가 원전이며, 특정 조직을 무대로 한 군상극이라는 구조와 다량의 자막 삽입은 오카모토 키하치 감독 작품의 흔적이다(2005년 타계한 오카모토 감독을 이야기의 열쇠를 쥔 인물 마키 고로 교수로 설정하여 사진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철저한 계산과 통제로 혼재된 이러한 조화와 부조화는 온고지신과 청출어람의 진수로서 작품을 예상 이상으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제대로 된 고지라 영화를 감상하는 기쁨을 다시금 선사한다. 이것을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는가. 이것은 진짜다. 그래서 <신 고지라>는 ‘眞(일본식 발음으로는 ‘신’) 고지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가득한 충격적인 3장의 스틸 사진은 단순한 설정 장난이 아니라 영화의 모든 것을, 안노와 히구치 두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영화가 끝나는 순간 <신 고지라>는 말 그대로 ‘神 고지라’가 된다. 무엇보다도 <신 고지라>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이다. 그 사실은 이 세상에 고지라를 위한 자리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려 준다. 새로운 고지라 영화이자 진정한 고지라 영화, 신을 그려낸 고지라 영화 <신 고지라>는 또 하나의 ‘원조’로 승화되어, 이 불멸의 괴수가 다음 60년을 향해 나아갈 여정의 출발점이 된다.

원제: シン・ゴジラ
총감독 / 각본: 안노 히데아키
감독 / 특기감독: 히구치 신지
주연: 하세가와 히로키, 이시하라 사토미, 타케노우치 유타카, 이치카와 미카코, 마츠오 사토루, 츠카모토 신야
일본 개봉: 2016년 7월 29일
한국 개봉: 2017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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