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라’라는 괴수

(C) Toho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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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의 별명은 ‘괴수의 왕’이다. 그와 지명도를 양분하는 또 다른 괴수인 킹콩에 비해 21년이나 늦게 태어났지만, 이른바 ‘스펙’만 본다면 고지라는 킹콩을 압도하는 사상 최강의 괴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기관총 세례를 맞고 숨을 거둔, 몸집만 빼면 평범한 고릴라와 다르지 않았던 콩과는 달리 고지라는 체내에 방사능을 축적한 거대한 고대생물의 돌연변이이다. 그 생명력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하고 끈질기며, 사실상 불사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단시간에 토쿄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만큼 막대한 파괴력도 지녔다. 인간의 군대는 그의 간식거리도 안 되는 상대가 된 지 오래이고 수도 없이 밀려드는 적 괴수와 싸워 대부분 승리했으며, 심지어는 우주괴수들과도 호각으로 맞선다. 지구상에서, 아니, 우주의 꽤 넓은 범위 안에서 고지라를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는 아마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1954년 스크린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래 고지라는 대표적인 시리즈 영화 주인공으로 손꼽히는 제임스 본드보다 많은 28편의 영화에 나왔고, 헐리우드에서는 두 번째 리메이크가 만들어지고 있으며(2014년 여름 개봉), 이외에도 TV 시리즈,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중매체에 이식되었다. 완구를 비롯한 수천 종의 관련상품도 끊임없이 생산되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팬들의 지갑을 꾸준히 털어가고 있다. 이쯤 되면 고지라가 영화 속뿐만 아니라 그 밖에 있는 현실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괴수의 왕임을, 당신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고지라는 2차대전 당시 일제의 홍보용 영화에 동원되었던 특수촬영 기술이 전후 영화산업의 환경에 맞춰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던 과정에서 탄생하였다. 토호 영화사의 프로듀서 타나카 토모유키는 50년대 초반 일본에서 재개봉한 1933년판 <킹콩>을 보고, 괴수가 등장하는 특수촬영 영화에 대한 수요가 있음을 감지했다. 일본을 습격하는 거대 괴수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한 타나카는 이를 스크린에 옮기기 위해 정교한 특수촬영 기법으로 유명했던 츠부라야 에이지,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이후 그의 조감독으로도 활약하게 되는 혼다 이시로 감독과 힘을 합쳤다. 마침내 1954년 11월 일본에서 공개된 <고지라>는 9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히트, 이후 괴수영화를 중심으로 SF, 호러, 스릴러 등의 하위 장르로 분화되는 ‘특촬’이라는 일본 특유의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잡았다. 1956년에는 미국인 배우를 등장시킨 장면을 삽입하여 재편집한 미국 개봉판 <괴수왕 고지라>가 공개되어 역시 흥행에 성공했고, 이를 계기로 서양에도 일본 특촬영화가 꾸준히 소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고지라는 점차 인간에게 친숙해졌고, 때로는 스스로 인간의 편에 서는 캐릭터로 변모해 갔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유행의 변화와 영화계의 흥망성쇠에 좌우되는 여러 가지 ‘어른의 사정’ 때문이다. 가상의 캐릭터에게 어른의 사정이란 방사능이나 재해보다 더 강력하고 두려운 것이었을 터. 고지라가 대중에게 ‘B급’이나 ‘싸구려’로 인식된 것도 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조악한 영어 더빙과 화질로 선보였던 해외 공개용 재편집판들도 작품의 제대로 된 면모를 파악하기 어렵게 해 왔다. 물론 정말로 값싸게 서둘러 만들어진 엉성한 영화들도 분명히 있지만, 대다수의 고지라 시리즈는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작비가 투입되며 골든 위크나 여름방학, 정월 연휴철 등에 맞춰 관객들과 만나는 블록버스터이다. 다소의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60년에 걸친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시리즈가 이어졌다는 사실은 고지라가 일본은 물론 세계 대중문화의 아이콘임을 증명한다.

고지라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나왔던 이름 모를 괴물과 몇 가지 공통점을 지녔다. 미군이 한강에 방류한 화학약품에 의해 태어난 ‘괴물’처럼, 고지라는 원래 심해에서 잠자고 있던 고대생물이었다(그것이 당시의 고생물학 기준으로 표현된 티라노사우루스형 직립 공룡이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핵실험의 방사능으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깨어난 고대생물은 이에 복수라도 하듯이 인간 문명을 파괴하는 거대 괴수 고지라로 거듭난다. 인간, 특히 일본인의 관점에서 고지라는 원폭과 방사능에 대한 공포의 실체화이다. 시리즈 첫 편인 <고지라>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공개되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또한, 고지라는 일본에 자주 일어나는 지진이나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 가운데 하나로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일본인에게 그는 깊은 애증의 대상이자 사람이 아닌 것으로서 기묘한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 존재이다.

괴수 특촬 장르의 퇴조로 인해 고지라 시리즈는 2004년 제28편 <고지라: 파이널 워즈>가 개봉한 뒤 일단 종료했다. 그러나 ‘최후의 전쟁’으로부터 정확히 10년 뒤가 되는 2014년, 헐리우드 리메이크의 결과에 따라 향방은 달라질 수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방사능과 원자력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역설적으로 오리지널 고지라의 부활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절멸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것이 그의 역할이자 운명이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 두려움은 우리가 의식하든 하지 않든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이기 때문이다. 몸통에서 떨어져 나와서도 힘차게 고동치는 고지라의 심장, 그것에 깃든 불사의 생명력이 그렇듯이.

* 이 글은 2012년 문화 웹진 리딩툰(현재 운영 종료)에 썼던 무비 몬스터 소개글 ‘몬스터 유한회사’ 가운데 고지라 부분을 발췌하여 가필,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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