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맨] (2015)

(C) Mar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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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는 시리즈 최초의 내전(civil war)이라는 격변을 앞두고 보는 이를 잠시 엉뚱해 보이는 샛길로 안내한다. <앤트맨>(Ant-Man)은 새로운 수퍼히어로의 소박한 탄생을 그렸다는 점에서 MCU의 첫 번째 작품 <아이언 맨>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자신의 과오를 속죄하기 위해 ‘두 번째 기회’를 잡는 주인공, 수퍼히어로의 초인적 능력과 관련된 기술을 둘러싼 테크노 스릴러풍 플롯, 서로의 반대편을 반영한 듯한 두 숙적의 대결과 같은 요소들이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이야기가 쉴드-어벤저스라는 거대한 세계의 일부이면서도 그 한구석의 미시 세계에 집중하였다는 점이다. 쇼맨쉽을 발휘하며 자신의 능력을 대중에게 아낌없이 뽐내는 토니 스타크 / 아이언 맨과는 달리, 스콧 랭 / 앤트맨은 개미들의 힘을 빌려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을 펼친다. 1년 내내 열리는 스타크 엑스포의 화려한 면면과 꼬마의 방 한쪽을 장식한 토머스 기차 완구가 톡하고 탈선하는 묘사의 극명한 대비. 그러면서도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앤트맨도 결국 MCU의 벽 틈에 숨어 있던 개미였음을 암시하며, 그의 다음 임무를 기대하게 한다.

MCU의 전례 없는 성공적 전개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1년에 2편 이상의 관련작이 소개되다 보니 약간의 피로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때 나타난 앤트맨은 MCU에 참신한 바람을 불어넣으면서 피로감을 덜어 주는 숨고르기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당초 예정 대로 에드가 라이트가 완성했다면 좀 더 막나가는 재미가 짙은 이색작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라이트의 강판에 따라 프로젝트를 떠맡은 페이튼 리드의 이 버전도 결코 나쁘지 않다.

이러한 장점은 시종일관 경쾌한 템포와 따뜻한 시선을 잘 유지한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으로 더욱 두드러진다. 첫 장면부터 신뢰감과 이야기를 중반까지 이끌고 갈 충분한 저력을 지녔음을 증명한 마이클 더글러스, 작품의 톤과 더 이상을 바랄 수 없을 만큼 어울렸던 폴 러드,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훔치려 들었던 멋진 감초 마이클 페냐, 이 영화에서도 좋았지만 다음 작품에서 더 설레게 할 것 같은 에반젤린 릴리, 주역 가운데 가장 허술하게 구축된 인물을 카리스마 하나로 살려낸 코리 스톨 등 정말 하나같이 훌륭한 출연진이다.

여기에 ‘크기’를 주제로 한 다양하고 기발한 시각효과 연출, B급 크리처영화의 전통을 현재 기술로 되살려내어 응용한 듯한 개미들의 묘사 등 헐리우드 정평의 영상 기술이 결합하여 MCU 최초의 수퍼히어로 주역 교대극이 완성되었다. 대군을 이룬 개미들과 함께 힘차게 팔다리를 휘두르며 달려가는 앤트맨의 모습은 마치 <줄어드는 사나이>와 <개미 제국>의 21세기식 돌연변이와도 같은 인상적인 이미지이다. 이때 화룡점정의 역할을 하는 것은 기분 좋은 복고 느낌을 듬뿍 간직한 크리스토프 벡의 음악.

굳이 옥에 티를 집어내자면 스콧의 가족애 묘사를 비롯한 일부 설정과 플롯의 진부함을 들 수 있을 텐데, 이것조차도 너그러이 넘어가고 싶을 만큼 즐겁게 보았다면 내가 과찬을 하고 있는 걸까. MCU 제2단계는 대단원에서 보는 이의 의표를 살짝 찌르며 마무리되는데, 아마도 그것은 태풍의 눈이었을 것이다.

원제: Ant-Man
감독: 페이튼 리드
주연: 폴 러드, 마이클 더글러스, 에반젤린 릴리, 마이클 페냐, 코리 스톨
북미 개봉: 2015년 7월 17일
한국 개봉: 2015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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