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터] (2012)

(C) Walt Disney Pictures
(C) Walt Disney Pictures

존 카터가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낸 해는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인 1912년이었지만, 내가 그를 처음으로 만난 지는 몇 년 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나는 과학소설에 별로 관심이 없어 아이디어 회관이나 동서추리문고 같은 장르 문고 역시 읽은 기억이 없다. 몇 년 전이 되어서야 [화성의 존 카아트]라는 제목으로 축약 번역된 바숨 시리즈 첫 작품 [화성의 공주]를, 그것도 직지 프로젝트의 전자책으로 읽은 것이 나와 카터와의 첫 만남이었다.

상당히 뒤늦은 만남이었지만, 나는 카터의 모험담에 금세 빠져들었다. 왜냐하면 그 속에는 내가 평생 좋아해 온 영웅, 별천지, 전쟁, 모험, 로맨스와 같은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오래된 이야기라는 사실도 내게는 매력적이었다. 100년 전의 관점에서 바숨 시리즈는 그럴듯한 과학소설이었겠지만,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다시 보면 극중 화성에 대한 묘사는 말 그대로 ‘판타지’가 된다. 하지만 그 기나긴 시간의 세례를 받은 뒤의 시대착오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돌이켜 보면, 바숨 시리즈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 워즈>나 <플래쉬 고든>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원조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내가 끌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후대의 모방작을 먼저 접한 뒤에야 원전을 만나는 이 문화의 역류 현상. 나는 마땅히 원전이 선사했어야 할 신선한 충격과 경이감을 모방작에서 앞질러 느꼈고, 오히려 원전에서 익숙함과 편안함을 찾았던 것이다.

영화 <존 카터>(John Carter) 역시 그래서 마음에 든다. 이 영화는 [화성의 공주]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 다음 편인 [화성의 신들]의 일부 요소가 포함되었고, 여러 가지 새로운 설정도 덧붙여져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와 연출은 고색창연하고 복고적 성격이 강하다. 남북전쟁 시기의 군인 존 카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화성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여러 종족이 뒤얽힌 갈등의 소용돌이에 뛰어들게 된다는 줄거리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원작의 향기 역시 그다지 손상되지 않았다. 이야기와 현실의 시대 감각이 각각 어긋나면서 발생하는 시차 자체도 나에게는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파격이나 재조명을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제작진은 원작에 될 수 있으면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 이야기를 제대로 옮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한다.

각색 과정에서 이야기가 좀 더 복잡해졌고, 수많은 등장인물이 입/퇴장을 반복하다 보니 다소 힘이 부치는 대목이 없진 않지만, 100년 전에 지어진 이야기를 100년 뒤의 기술로 스크린 위에 옮긴 이 영화, <존 카터>를 보는 감흥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하다. 소설을 읽고 상상했던 바숨의 모습과 스크린 위에 펼쳐진, 해석을 거친 바숨의 모습을 확인하고 비교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았다. 황폐하면서도 아름답고, 잔혹하면서도 고결하며, 야만과 문명, 마법과 과학이 공존하는 별천지 바숨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다.

원제: John Carter
감독: 앤드루 스탠튼
주연: 테일러 키취, 린 콜린스, 윌렘 데포, 마크 스트롱, 사만다 모튼
북미 개봉: 2012년 3월 9일
한국 개봉: 2012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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