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광구] (2011)

(C) (주) JK 필름, CJ E&M 픽처스
(C) (주) JK 필름, CJ E&M 픽처스

영화의 제목 <7광구>는 실재하는 공간을 뜻하기도 한다. 현실 속의 7광구는 제주도 남단과 일본의 큐슈 서부 사이에 위치한 대륙붕으로서, 석유와 천연가스가 다량 매장되어 있다고 추정되는 곳이다. 석유가 나지 않아 매년 수입하는 양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개발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고, 더욱이 일본과 경계선을 맞닿고 있는 지역이라 자원과 주권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충돌하는 곳이다. 따라서 7광구는 영화 속에서도 지극히 현실적일 수 있는 공간이고, 석유 시추의 꿈을 품고 그곳에 몸담은 노동자들 역시 독특한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7광구에서 노동자들이 석유 대신 끔찍한 괴물과 맞닥뜨린다 – 한국에서 만든 괴수영화로서 이 이상의 멋진 설정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7광구>는 잠재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각본과 연출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전모를 드러내는 건 좀 더 나중이지만 괴수가 생각보다 빨리 등장하는데, 특히 전반부의 괴수 에피소드는 전체 이야기에 녹아들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겉돈다. 대표적인 예가 괴수의 촉수에 찔려 입술이 부어오른 대원의 에피소드다. 제대로 된 괴수영화에서 어떤 등장인물이 생전 듣도보도 못했던 생물에게 입술을 찔렸다면 그것은 앞으로 있을 공포의 전조로 기능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찌질한 언행을 일삼는 등장인물을 더욱 찌질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하려는 장치로 쓰였을 뿐이다. 석달 후 아무 일도 없이 말짱하게 입술이 나은 그를 보고 허탈했던 나는 잠시 동안 내가 방금 느꼈던 허탈함이 정당한 것이었는지를 스스로 되물어야 했다. 내가 이 장르의 공식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었던 탓인가? 아니면 ‘이야기 속의 언행과 상황은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시나리오 작법의 기본을 (의도적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무시한 각본가와 연출진의 탓인가? 내가 요즘 오락영화 경향에 어두웠나? 알쏭달쏭했다.

이 같은 허술한 연출은 기본적으로 괴수에 대한 극중 설정이 탄탄하게 되어 있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괴수영화에서 괴수의 생태와 플롯의 연계성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는가. <7광구>에서는 ‘괴수가 왜 사람을 습격하는가?’라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챙기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다. 극중 괴수는 사람을 죽여 은신처로 데려간다. 그곳은 끈적끈적한 점액질 물질로 온통 뒤덮여 있고, 군데군데 시체들이 놓여 있다. 영화는 그걸 잠깐 보여주고 만다. 괴수는 사람을 잡아먹을까? 애써 사람을 죽인 뒤 끌고 가서 하는 일이 뭘까? 점액질은 왜 온통 뿌려 놓았을까? 그 안에는 알이나 새끼들이 있어, 사람을 양분으로 쓰려고 했던 걸까? 영화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햇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 살고 있어 우리가 속한 광합성 생태계와는 전혀 다른 생태를 가진 것으로 설정된 괴수가, 도대체 어떤 원리로 물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는지조차 논리적으로 보여주지 못한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랐던 걸까. 괴수의 생태를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것은 괴수영화의 가장 큰 재미 가운데 하나이자, 이야기 자체의 설득력을 갖추는 것이라는 점을 <7광구>를 만든 사람들은 간과한 것 같다. 단지 괴수가 석유를 대체할 가능성을 지닌 거의 무한정한 에너지원이었다는 참신한(그러나 여전히 논리적으로 믿기 힘든) 설정만이 이야기와 아주 조금 맞닿아 있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괴수를 화면으로나마 그럴 듯하게 잡았냐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 영화에서 괴수는 말 그대로 ‘그냥’ 나타난다. 그런 깜짝쇼는 처음 한두 번은 먹힐지 몰라도, 보는 이에게 공포와 스릴을 선사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연출은 아니다. 괴수가 나타나지 않을 때 더욱 압박감과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몇몇 잘 만든 괴수영화/공포영화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일단 괴수가 나타나면, 우리가 여러 차례 본 다른 영화에서 개성 없이 따온 장면들이 상영시간을 채워 간다. 오토바이와 시추 파이프를 활용한 몇몇 액션 장면이 그나마 볼 만했지만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인간 드라마 부분은 또 어떤가. 역시 구멍이 많다. 7광구에 집착에 가까운 애착을 지닌 주인공 해준(하지원 분)의 동기는 과연 무엇인가? 그곳에서 시추 작업 도중 순직한 아버지 때문인가?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 캡틴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잠시 들여다 보는 장면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마따나 7광구가 산유국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에 중요한 곳이어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동기마저 영화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단지 해준이 말보다는 행동을 중시하는 강단 있는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따름이다. 말 그대로 ‘액션을 위해’ 조잡하게 기워낸 인물 설정인데, 하필이면 그런 인물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해준 다음으로 비중을 지닌 캡틴(안성기 분)은 또 어떤가. 대체 왜 그 인자해 보이던 캡틴이 변모하게 되었을까? 괴수가 에너지원이었다는 극중 설정상 이 영화의 중심 사건 이면에는 7광구를 관리하는 정유회사 또는 더 나아가 정부의 음모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뒷설정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건 그럴 듯한 보충설명이 필요한 부분으로서, 심지어는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괴수를 생체병기로 쓰겠다는 웨일랜드-유타니사의 황당무계해 보이는 음모 정도라도 비중을 두었어야 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해준의 아버지는 그러한 캡틴의 (또는 조직의) 욕망에 대한 희생양이었을까? 아니면 해준의 아버지가 괴수의 첫 발견자였고, 그 효용성에 집착한 캡틴이 변하게 되었을까? 아버지와 캡틴이 이를 두고 대립하는 장면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캡틴의 변모를 설명하기에는, 그리고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두 명의 주요 인물과 그들의 동기가 부실한 것은 애초에 영화 속 가상세계를 어떻게 꾸려야 할 지에 대해 고민이 부족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앞서 말했듯 7광구처럼 현실성을 지닌 가공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던 배경을 두고 말이다. 나름대로 ‘주인공 커플’이었던 해준과 동수(오지호 분)의 로맨스 비슷한 관계 따위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이야기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동수가 죽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나친 코미디 연출도 <7광구>에서는 대부분 독이었다. 이제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 박철민과 종종 송새벽이 담당했는데, 괴수가 나오기 전까지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고 보는 이가 등장인물과 어색함을 풀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괴수가 나타난 다음에는 대부분 제대로 먹히지 않았고 오히려 스릴의 맥을 끊어놓기 일쑤였다. 아마도 극중 가장 찬반양론이 분분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인 ‘박수 쳐’ 장면을 되새겨 보면, 그런 상황에서 나올 만하다고도 생각이 드는 한편, 그렇지 않아도 스릴이 부족한 영화의 분위기를 꺾는 데도 한몫을 단단히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시아 최초의 아이맥스 3D라는 입체영상과 시각효과는 어떤가. 절반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3D는 괴수보다도 인간 등장인물들과 배경 사이에서 빛을 발했다. 이상하게도 괴수가 나타났을 때 영상은 대부분 평면적이었다. 일부 장면에서는 훌륭한 입체감과 중량감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 수가 너무 적었다. 그렇다면 대체 돈을 더 내고 이 영화를 3D로 보아야 할 까닭이 있을까? 괴수가 꽤나 존재감과 중량감이 있었고, 위협적인 존재로서는 나름대로 제 역할을 했다고 보기에 더욱 안타깝다. 섬뜩한 촉수와 강력한 힘을 이용한 돌진, 그리고 사냥감에 대한 끈질긴 집착과 강인한 생명력 등 이 괴수는 설득력 있는 배경 설정과 치밀한 연출이 뒷받침되었더라면 한강의 괴물과 함께 한국의 새로운 무비 몬스터로 등극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7광구라는 장소의 상징성을 이야기에 결합시키는 방법에 대해, 윤제균 프로듀서와 김지훈 감독쯤이나 되는 수장들이 이끄는 연출팀이 고민을 안 했을 리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만 해 냈다면, <7광구>는 <괴물>의 뒤를 이을 진짜로 제대로 만든 한국 괴수영화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나는 영화 속에서 그에 대한 앙상하디 앙상한 흔적을 찾는 데도 힘이 들었다. 어쩌면 제작진은 순수한 공포와 스릴이라는 장르적 효과를 노린 스트레이트한 괴수영화 /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적당히 ‘있어 보이는’ 7광구라는 배경을 두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에도 <7광구>는 너무나 허술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장르답게 괴수영화와 공포영화는 온갖 클리셰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규칙을 창조하거나 최소한 익숙해진 것조차 솜씨있게 활용하는 데 이 영화는 철저히 실패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7광구>는 장소에 대해, 그 의미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이야기와 맺는 관계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이 실패는 <7광구>를 어정쩡한 괴수-코미디로 만들고 말았다. 마지막에 해준이 시추 파이프 여기저기에 노동자들이 쓴 메시지를 읽는 장면은 눈으로 보기에만 좋았을 뿐, 내 마음을 아주 조금밖에 움직이지 못했다.

미치겠는 건 <7광구>가 하필이면 괴수영화라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불만을 그렇게 털어놓았음에도, 나는 이 영화를 내칠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 장르영화는 또 한 편의 기억할 만한(동시에 언제까지나 아쉬워할 만한) 애증 어린 괴수 한 마리를 품게 된 셈이다.

감독: 김지훈
주연: 하지원, 안성기, 오지호, 박철민, 송새벽
한국 개봉: 2011년 8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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