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 (2011)

(C) (주) JK 필름
(C) (주) JK 필름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 누구보다 빨리 배달해 준다는 소문난 퀵서비스맨 기수(이민기 분). 어느날 스케줄에 늦은 아이돌 가수를 태우라는 지시를 받고 만난 사람이 하필이면 옛 연인 아롬(강예원 분)이다. 그런데 아롬을 오토바이에 태우자마자 두 사람의 평범한 삶은 180도 방향을 뒤바꾼다. 아롬이 쓴 헬멧에 폭탄이 장치되었으며, 30분 안에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폭발한다는 협박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증거가 제시되자, 기수와 아롬은 이유도 모른 채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위험한 질주에 나선다.

<퀵>은 간단하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여,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가는 ‘하이 컨셉트 영화’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하이 컨셉트 영화는, ‘이 버스는 시속 50마일 미만으로 달릴 경우 폭발한다. 살아남기 위해 주인공은 계속 달려야만 한다’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스피드>이다. 공교롭게도 <퀵>도 속도와 시간을 조합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기수와 아롬은 키아누 리브스와 샌드라 불럭이 각각 분한 잭과 애니처럼, 폭탄을 끌어안은 채 속도와 경주하고 시간과 싸우며 죽도록 달린다. 윤제균 감독은(때로는 프로듀서는) 최근 들어 헐리우드에는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장르영화 컨셉트를 현지화하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인다. 재난영화인 <해운대>가 그랬고, 곧 개봉할 괴수영화 <7광구>가 그렇다. <퀵>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퀵>은 단순히 <스피드>를 본따는 데 그친 영화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퀵>을 보고 나면, 못 만든 아류작을 보았을 때 느낄 법한 ‘무슨무슨 영화 짝퉁인데 더 못 만들었잖아’라는 찝찝한 불만이 없다. 오히려 <퀵>은 액션의 스릴과 코미디의 웃음을 가장 순수한 상태로 만끽할 수 있는 영화이며, 한국 액션영화에서 속도라는 요소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고, 화면에 그것을 위해 노력한 제작진의 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이다. 그래서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가 아주 마음에 든다.

거슬렸던 부분이라면 일부 장면에서의 과장된 연출이다. 이를테면 비명.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 비명은 꼭 필요하다. 그렇지만 <퀵>에서는 주인공부터 단역까지 시도때도 없이, 목청이 찢어질 듯 비명을 질러댄다. 뭐가 좀 위험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카메라는 스피커를 박살낼 기세로 비명을 질러대는 등장인물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그 도가 지나쳐 가끔은 비명을 지르는 등장인물의 얼굴이나 표정이 아니라 목젖만 쳐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상황의 긴박감이나 위기감을 강조하기 위한 연출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퀵>에서의 비명은 종종 정량 이상을 복용한 약, 머리가 아플 만큼 조미료를 친 음식 같은 효과를 낸다. 아울러 조연들의 얄팍한 설정도 그렇다. 그저 웃기기 위해, 상황을 꼬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조연들이 좀 있다. 그들은 분명히 제 기능을 하지만, 인간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위에서 지적한 단점이 <퀵>의 순수한 즐거움을 해치지는 않는다. 주역 등장인물들의 성격 묘사는 간결하면서도 보는 이가 쉽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어, 위기에 빠진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액션 장면은 과감하고 도전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덕택에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장쾌한 화면이 속출하고, 스크린에서는 오토바이 질주의 맞바람과 폭발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코미디도 잘 먹힌다. 폭탄이 달린 헬멧을 쓴 채 샤워를 해야만 하는 아이돌 가수의 황당한 슬픔에 어떻게 박장대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퀵>은 근래 들어 본 가운데 가장 유쾌한 영화이기도 하다. 다른 영화라면 종종 흐름을 끊어 놓기도 하는 회상 장면에서조차 웃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다.

<퀵>은 제목 값도 못하는 다른 번지르르한 영화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이 영화는 정말 빠르다. 첫 장면부터 달리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굉음이 그치지 않고, 상영시간 내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오락영화로서, <퀵>은 자기 할 일을 확실히 해냈다. 신나고 화끈한 영화를 원하는가? 원 없이 웃고 싶은가? 보고 나서도 즐거운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 영화를 보고 싶은가? <퀵>은 바로 그런 당신을 위한 영화이다.

감독: 조범구
주연: 이민기, 강예원, 김인권, 고창석, 윤제문
한국 개봉: 2011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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