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8] (2011)

(C) Paramount Pictures
(C) Paramount Pictures

가정해 본다. <수퍼 8>(Super 8)는 J. J. 에이브럼스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고. 1966년생인 에이브럼스는 영화의 시대배경인 1979년 우리나라 나이로 14살이었을 것이고, 이는 영화의 주인공 조 일행의 나이와 얼추 맞아떨어진다. 에이브럼스를 비롯한 또래들은 유년기에 TV에서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과 <심해 괴물>(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을 보며 공포와 매혹이 거칠게 뒤섞인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동네 재개봉 극장에서 팝콘을 집어먹으며 <살아 있는 시체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을 보았을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옹기종기 모여 만화책을 읽고, 손가락에 접착제와 에나멜을 잔뜩 묻혀가며 조립식 모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스타 워즈>(Star Wars)와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를 보았을 때, 그 전에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경이로움과 흥분을 맛보며 스크린을 눈으로 뚫어버리기라도 할 듯이 바라보았을 것이다. 집에 한 대씩은 있었을 수퍼 8mm 카메라를 들고 널따란 교외 지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자신들이 흠뻑 섭취했던 문화 자양분을 바탕으로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그들의 꿈자락(당시엔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지언정)을 하나씩 하나씩 자아냈을 것이다. 길쭉하고 빨간 젤리를 서로 나눠 먹으면서.

흔히들 ‘떡밥의 제왕’이라 일컫는 에이브럼스지만, <수퍼 8>를 보면서는 그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별로 기대할 필요도 없고, ‘뭐가 있나~’하고 찾아볼 것까지도 없다. 이 감동적인 영화에서 고작 슬러쇼(왜 아니겠어?)니 뭐니 하는 걸 찾으려고 눈을 부라리고 있어야 하는가 말이다(사실 그보다 훨씬 많은 이런저런 것들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들이다). 에이브럼스의 전작인 <미션 임파서블 III>와 <스타 트렉>과 같이 놓고 보았을 때, <수퍼 8>에서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눈에 띈다. 어느 쪽이나 예전에 에이브럼스를 매료시켰을 미국의 대중문화 컨텐츠를 업데이트한 작품들이지만(이는 그의 TV 시리즈들도 마찬가지다), <수퍼 8>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듯한 고백적 성격이 더 강하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E. T.>가 한때 그랬듯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수퍼 8>는 <미지와의 조우>와 <E. T.>, 조금 더 나아가 <구니스>를 보면서 자란 세대들이라면 저절로 미소를 지을 만한 영화이다. 70년대라는 향수 어린 시대배경, 결손가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소년/소녀들이 환상적인 모험을 통해 서로, 또는 어떤 미지의 존재와 교감을 이루고 마침내 갈등을 해소하여 성장을 시작한다는 내용, 미국 대중문화의 풍부한 인용,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연출, 감각적인 시각효과 같은 것들 말이다. 말하자면 에이브럼스가 그 나이에 겪었을 법한 일상에 역시 그가 꿈꾸었을 법한 비일상적인 사건이 수퍼 8mm 카메라라는 매개체를 통해 결합한 이야기이자, 스필버그 영화를 사랑했던 세대에게 바치는 종합 선물 세트가 바로 <수퍼 8>인 것이다.

아아, 그래서일까.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오래 전 살던 동네의 익숙한 골목길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야기가 흐르는 내내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잠시라도 지울 수가 없었다. 때로는 너무나도 즐거워서, 그럴 때마다 극장에서 주위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행동, 즉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기도 했다. 시작하면서 파라마운트 로고에 이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로고, 군데군데 존 윌리엄스나 제리 골드스미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마이클 지아키노의 음악, 역광을 활용하여 독특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스필버그의 전매특허격 연출을 변용한 화면, 그리고 비록 영화 속에서만 만날 수 있지만 나의 어린 시절과 전혀 닮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그 아이들. 그 아이들이 무비 카메라를 들고 좀비 영화를 찍으며 주고받는 이야기들, 그 속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작지만 뜨거운 열정과 순수한 꿈. <수퍼 8>에는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바로 그 추억과 열정, 꿈이라는 요소에 이끌렸다. 에이브럼스가 이 영화를 만든 건 떡밥 따위가 아니라 바로 그것을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스크린 속에서 살아 숨쉬는 듯한 그 아이들을 보며 나는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어쩌면 아직 피어나지 못한 채로, 그 시절 그대로인 채로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영화 속 대사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와 공명하며 마음 속에 약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남겼다. 무엇일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아직도 가슴 속을 울리고 있는 그 무언가의 모습을 찾으러 나만의 작지만 담대한 모험을 나서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원제: Super 8
감독: J. J. 에이브럼스
주연: 조얼 커트니, 엘 패닝, 카일 챈들러, 라일리 그리피스, 라이언 리
북미 개봉: 2011년 6월 10일
한국 개봉: 2011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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