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키드] (2010)

(C) Columbia Pictures
(C) Columbia Pictures

2년쯤 전 <베스트 키드>(The Karate Kid)가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퍽 냉소했다. 제아무리 윌 스미스가 제작자로 나선다고 해도, 오리지널 영화는 너무나 80년대다워 2000년대에 먹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더욱이 무대를 중국으로 옮긴다니, 그건 더 이상 카라테를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지 않겠는가 싶기도 했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영화의 원제는 ‘카라테 키드’이다). 소니 픽처스와 윌 스미스는 대체 뭘 노리는 것일까. 심지어는 ”카라테 키드’에 다른 누구도 아닌 성룡이 사부 역으로 출연한다니 그에겐 굴욕적인 일이지 않을까’ 라는 오지랖마저 넓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0년판 <카라테 키드>, 아니, <베스트 키드>를 보았다. 당초 시니컬했던 나의 태도는 누그러졌고, 소니와 스미스의 복안에 감탄하고 말았다.

일단 영화 자체부터. 2010년판 <베스트 키드>는 준수한 성장영화이다. 현실의 급격한 변화와 그 쓰라림에 치이던 한 소년이 현명한 스승의 도움으로 어려움에 맞서 나가며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호소력을 지니는, 대중영화의 왕도 가운데 하나이다. 소년의 성장은 삐걱거리던 가족과의 관계 개선과 풋풋한 로맨스의 시작으로 이어지고, 무엇보다도 무도를 익히는 과정의 두근두근하는 설렘이 있다. 점차 강해져 가는 자신에 대한 기쁨, 마침내 각고의 노력으로 현실의 장애물을 극복하는 순간 경험하는 통쾌함과 성취감. 놀랍게도 그것들은 이번 리메이크에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소년과 스승의 관계도 오리지널에서보다 더 정성 들여 그려졌다. 스승이 인생의 커다란 상처를 감춘 채 살아왔고, 그 역시 소년으로부터 상처를 치유받는다는 설정은 스승이 소년을 인도하는 모습에 집중했던 오리지널보다 감동적이다. 전작 <행복을 찾아서>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준 제이든 스미스는 예의 자연스러운 아역다움을 잃지 않았고, 성룡은 헐리우드에 진출한 이래 가장 눈시울 뜨거워지는 연기를 해냈다. 항상 팔팔하게 달리고 도약하고 뛰어내리고 주먹과 발을 날리던 성룡을 보면서 자랐던 내 또래의 세대들에게 그런 예전 모습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성룡도 스승에 어울리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새로운 감회를 갖게 한다. 그는 앞서 <포비든 킹덤>에서도 스승으로 등장했지만, 역할의 깊이와 정서적 힘은 이번 작품과 비교할 수 없다.

이러한 접근 탓에 리메이크는 페이스 면에서 조금 손해를 보긴 했다. 무도 수련 이상으로 캐릭터 묘사에 비중을 실었기에 그만큼 이야기의 예열도 더 오래 걸렸고 상영시간도 길어졌다(2시간이 조금 넘는다). ‘이쯤되면 몸을 풀 때인데’ ‘지루하다’라고 생각했던 대목이 종종 있다. 그렇지만, 내게는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온 것이 후반부의 폭발을 위한 유용한 연료가 되었다. 캐릭터와 감정을 더 깊이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영화 밖으로 조금 돌려보더라도 <베스트 키드>는 영리하다. 오리지널은 앞서 말했던 성장영화의 공식을 80년대 당시 경제력과 국력을 떨치던 일본 붐에 결합시켜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였다. 그 영리함은 2010년판 <베스트 키드>에서도 여실하다. 전통적인 국력은 물론 근래 들어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은 13억 이상의 인구만으로도 헐리우드에게 매력적인 시장이다. 이를 위해 오리지널의 카라테는 쿵푸로 바뀌었고, 무대도 미국에서 아예 중국 본토로 옮겨졌다(그런데도 제목이 그대로인 이유는 불명이지만). 중국전영공사의 적극적인 협조로 제작진은 자금성과 만리장성 등 본토의 명소와 절경을 멋지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고, 성룡과 쿵푸로 대변되는 중국의 우호적 이미지도 유감없이 선보였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면 소니 픽처스는 서구권은 물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서 엄청난 이윤을 남길 수 있고, 중국은 중국대로 나라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제작자 윌 스미스는 제이든을 자신의 뒤를 이을 차세대 액션 스타로서 전 세계의 관객에게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영화 속 제이든은 11살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육체미와 운동신경을 보여주었고,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매력적인 이미지도 지니고 있었다. 싹수가 보였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본편에는 가끔 이것이 극영화인지 아니면 중국 홍보용 다큐멘터리인지 혼동할 만한 장면들, 이를테면 중국의 고풍스러움과 눈부신 발전상을 노골적으로 선전하는 듯한 부분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성룡이 제이든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시도하는 특수한 요법이라든가 그들이 산 정상에서 마시는 샘물의 효능을 강조하는 장면은 헐리우드화된 동양의학이나 무술 묘사일 수도 있겠지만, 실소를 자아낼 만큼 이야기와 어울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베스트 키드>는 괜찮은 리메이크이다. 오리지널보다 좀 더 길지만 그만큼 탄탄해진 드라마와 역동적인 장면들이 더해져 여름철 오락영화로서 충실히 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어쨌든 제이든 스미스를 다시 봤다. 잘만 큰다면 아버지 못지 않은 스타가 될 것 같다.

원제: The Karate Kid
감독: 해럴드 즈워트
주연: 성룡, 제이든 스미스, 타라지 P. 헨슨, 한문문, 육위정, 우영광
북미 개봉: 2010년 6월 11일
한국 개봉: 2010년 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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