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 탈출] – 오리지널과 리메이크 비교

<혹성 탈출> 1968 vs. 2001: 인간은 언제까지 지구를 지배할까?

(C) 20th Century Fox
(C) 20th Century Fox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1968년도 작품 <혹성 탈출>(Planet of the Apes, 유인원의 행성)은 과거 안방극장을 통해 여러 번 방영되어 우리나라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SF영화이다. 이 영화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주인공은 우주여행 도중 어떤 행성에 불시착하는데, 그곳은 지능을 가진 유인원이 인간을 노예처럼 지배하는 곳이었다. 결말에서 그 행성은 미래의 지구임이 밝혀진다. <혹성 탈출>은 개봉 당시 대단한 인기를 끌어 여러 편의 속편(총 5부작)은 물론, TV 시리즈까지 제작되어 명실공히 한 시대를 풍미한 작품이 되었다. 주연은 <벤허>로 잊을 수 없는 배우 찰튼 헤스턴. <콰이강의 다리>로 유명한 작가 피에르 불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으로, 지금은 헐리우드가 남긴 대표적인 걸작 SF영화로 평가 받고 있다. 바로 이 <혹성 탈출>이 원작이 공개된 지 32년이 지난 올 여름, <배트맨>과 <슬리피 할로우>를 연출한 개성파 감독 팀 버튼에 의해 다시 만들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오리지널 <혹성 탈출>은 높은 지능을 가졌지만 자신과 다른 종인 인간을 야만적으로 통제하고 지배하는 유인원의 양면적인 모습을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한 작품이다. 이 뒤틀린 세계에서 인간은 유인원의 비참한 노예로 살아가야 하며, 반항하는 자들은 강제 뇌수술을 받고 사고 능력을 잃게 된다. 유인원은 고릴라가 이끄는 군부와 정치가인 오랑우탄, 지식인 침팬지로 구분되는데, 이들의 행태는 현대인의 군부와 정치인 그리고 지식인이 벌이는 모든 무능한 작태를 함축한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본 관객이 충격을 넘어선 절망에 가까운 감정에 휩싸이는 이유는 이야기의 무대가 지구라는 설정 때문이다. 다른 영화와는 달리 <혹성 탈출>에서는 결과적으로 탈출이 가능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팀 버튼의 2001년 리메이크는 오리지널과 설정이 거의 비슷하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다. 정치, 사회적 풍자 대신 유전공학으로 대표되는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몰고 올지도 모를 파국을 다루었다는 점이다. 단지 ‘컴퓨터’나 ‘기계’가 ‘유인원’이라는 탈을 썼을 뿐,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 같은 다른 SF영화들과 비슷하다. 이것은 이미 너무나 진부한 설정이어서 강한 메시지를 담는 데 적합하지 않다. 오리지널은 대단히 건조한 스타일로 지구의 황량한 미래상을 보여주어 관객을 정서적으로 압도했다. 반면, 리메이크는 처음부터 시각적인 성찬과도 같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화려한 영상을 선보인다. 요즘 관객이라면 아무래도 리메이크에 쉬이 눈길이 가겠지만, 탄탄하고 힘있는 전개와 설득력 있는 인물 묘사 면에서는 오리지널이 분명 한 수 위다.

(C) 20th Century Fox
(C) 20th Century Fox

작품의 의의도 오리지널 쪽이 더 강하다. 끝까지 진중한 드라마를 고집하는 오리지널에 비해, 마치 <브레이브하트>를 연상케 하는 후반부의 대규모 전투 장면을 보노라면 이번 리메이크는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그냥 보고 즐겨라’라고 강요하는 것만 같다. 이야기의 묘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반전에서도, 오리지널은 그 이전까지 쌓아 온 영화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훌륭한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리메이크는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이야기를 뒤틀어놓기에 바쁘다.

두 작품 모두의 공통적인 장점이 있다면 배우들, 특히 유인원으로 분한 이들의 훌륭한 연기와 특수분장이다. 그들은 손이 많이 가는 복잡하고 답답한 분장을 하고도 감동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원작의 특수분장 담당인 존 체임버즈는 지금도 그다지 녹슬어 보이지 않는 유인원의 얼굴을 만들어 내어 아카데미 특별상을 받았다. 리메이크의 경우 아카데미 분장상만 5번 수상했으며, 유인원 분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일급 특수분장사 릭 베이커가 발군의 솜씨를 보여 주었다.

이렇듯 두 편의 <혹성 탈출>은 각기 나름대로의 흡인력을 갖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는 오리지널이 더 우세하며,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리메이크가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 하나. 도대체 이토록 암울하고 절망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가 속편과 TV 시리즈는 물론이요, 30여 년 뒤 리메이크까지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 즉 ‘인간이라는 종이 과연 언제까지 지구의 지배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다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 우먼타임스 제25호(2001년 8월 3일-8월 16일자)에 실은 글. 내용 가운데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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